I'm reincarnated as a Doggo RAW novel - Chapter 56
57. 폭풍의 시작(3)
결국 폭우 속에서 한두 번 더 전기가 내려갔다. 예전엔 이런 일이 없었던 듯, 노파와 조은이는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꼭 필요한 것 외엔 모두 전선을 뽑아 놓았다.
컴퓨터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그날의 매매는 어제 손실액의 절반 이상 메꾼, 48,000원대에서 마무리 지었다. 더 하려 해도 신경이 쓰여서 제대로 하지도 못할 상황이었다.
“그래도 어떻게 참가비 이체도 했고, 800만 원도 대회용 계좌에 넣어서 등록도 맞췄으니 다행이다. 그치?”
“끼이잉…”
내 머릿속의 빛태창을 보며 나는 걱정이 들었다.
[종료일 2026년 3월 8일 오후 10시 13분. 현재 순자산 3,882만 4,350원]보증금 3,000만 원을 빼고 1,000만 원을 살짝 넘었던 자산은 생활비와 대회 참가비 100만 원 때문에 저렇게 줄어있었다. 게다가 저 882만 원 중 800만 원은 다음 주 월요일에 시작될 대회용 계좌에 넣어져 있었다.
남은 돈은 80여만 원.
물론 다다음 주에 노인의 연금과 지원금이 들어오긴 하겠지만, 무언가 빚을 벗어났으나 여전히 벼랑 끝이라는 느낌이었다. 이런 날씨 속에 어디에서 전단지를 돌리거나 공공근로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와, 정말 엄청나게 쏟아진다.”
무시무시하게 쏟아지는 비에 반지하 속은 아예 귀까지 먹먹할 정도였다. 땅에 바로 붙어 있다 보니 무시무시한 진동까지 느껴졌다. 빗방울이 아닌, 마치 작은 돌덩어리들이 쉴 새 없이 쏟아지는 것 같았다.
– 똑! 똑!
“어?”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노파가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우의를 입었으나 온몸이 비에 젖은 남자가 한 손에 삽을 들고 있었다.
“할머니, 별일 없으세요? 2층 사람이에요.”
“아이구, 시상에! 조은아 얼른 수건, 수건!”
조은이가 화장실에서 재빨리 수건을 내어왔다. 남자가 얼굴을 닦은 후 숨을 몰아쉬었다.
“지금 옥상에 난리가 났어요. 우수관으로 내려가는 배수구가 완벽하게 막혀버렸어요. 게다가 관 안에서도 막혀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어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옥상의 수채구멍이 왜 막혀?”
“아니, 옥상에 예전에 누가 상추랑 파 키운다고 스티로폼에 흙 잔뜩 담아놓고 방치했었잖아요? 그런 것들이 쌓이고 쌓여서 관을 막았나 보더라고요. 그 외에도 날아온 낙엽과 쓰레기들도 많고.”
스티로폼과 흙 이야기에 노파가 움찔했다. 난 바로 범인이 노파임을 알 수 있었다.
“그, 그래서요?”
“3층 옥상 계단 턱 너머로 물 엄청 흐르고 있어요. 보세요. 지금 빗물 말고 저 위에서 쏟아지는 물, 옥상에 수영장처럼 찬 물이에요. 그런데 문제는 우리 건물 옥상이 아니라 이 동네 전체 배수로랑 하수구가 벌써 차오르고 있어요.”
“뭐, 뭘 해야 허나?”
“만약을 모르니까 여기 내려가는 계단 입구 쪽에 모래주머니 같은 것 쌓아놓으세요. 그리고 물 새는 곳 없는지 확인하시고요.”
“모, 모래주머니? 그걸 어디서 구해!”
“아까 행정복지센터에서 내려놓고 간 것이 있어요. 맞은편 빌라 주차장에 있으니까 필요한 세대는 가져다 쓰래요.”
“고, 고마워요!”
남자는 말을 마치곤 서둘러 2층으로 올라갔다.
무언가 내리는 비와는 다르게 좍좍 떨어지는 것이 있다 싶었는데 그것이 옥상에 가득 찬 물이었다. 조은이가 재빨리 옷 위로 노란색 우비를 꺼내 입었다.
“어디 가려고!”
“말 못 들었어? 가서 모래주머니 가져와야지. 이렇게 많이 내리는데. 어떻게든 쌓아야 할 것 아냐.”
“그게 얼마나 무거운데!”
“그러니까 할머니는 여기 해피랑 있어. 내가 가서 가져올 테니까.”
그 말만 남긴 채 조은이는 슬리퍼를 신고 바깥으로 뛰어나갔다. 가냘픈 몸이 대문 밖으로 사라지고 잠시 후, 모래주머니 하나를 겨우겨우 든 조은이가 헉헉거리며 돌아왔다.
“와! 이거 장난 아니게 무겁다. 물 먹으니 더 무거워. 할머니, 유모차 좀 쓴다?”
“잉! 그리여! 아유, 다치지 않게 살살 해!”
조은이가 싱긋 웃으며 들고 온 모래주머니를 계단 입구 가장자리에 내려놓곤 유모차를 끌고 사라졌다.
애가 탔다. 내가 원래의 몸이라면 대신해서 뛰쳐나가 들고 올 텐데, 노파 또한 저리 무거운 것을 못 드니 오로지 조은이가 나서야 했다.
한참 후 낑낑대며 대문 앞까지 유모차를 밀고 온 조은이가 가득 담긴 모래주머니를 하나하나 들어 옮겨 쌓아가기 시작했다.
“한두 개 정도씩만 쌓으면 될까?”
“그것으로는 틈이 있으니 안 돼! 한 칸 쌓고 김장비닐 같은 것으로 깔고 덮어서 다시 쌓고 혀야 해!”
“응, 그럼 이렇게 두를 테니까 할머니가 비닐 좀 가져와!”
노파가 서둘러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바깥에서 작업하는 동안 조은이도 노파도 완전히 비에 흠뻑 젖어버렸다.
먹구름이 가득한 하늘, 아직 해가 환하게 떠 있을 시간이건만 마치 저녁처럼 어두웠다.
몇 번을 유모차를 끌어 오가며 모래주머니를 나르고 쌓는 동안, 결국 무거운 주머니 무게를 버티지 못한 바구니가 찢어져 내려앉았다.
“왈! 왈!”
아아, 내 안락했던 보금자리여.
“하아, 하아! 괜찮아, 고물상에서 하나 사 오면 될 테니까. 아니면 어디 중고 앱 알아보면 되니까 염려 마!”
“아유, 그래도 저것 2년은 썼다.”
주거니 받거니 하며 노파와 조은이는 힘을 더해 3단 높이로 계단 주변을 모두 쌓은 후 안으로 들어왔다.
“우선 몸에 물부터 닦어. 몸 덥혀야 하니께, 조금만 기다려. 할매가 커피 끓일 테니까.”
조금 있으니 구수하고 달콤한 믹스커피가 조은이의 손에 쥐어졌다. 하아, 그러고 보니 커피 못 마신 지도 몇 달이 넘었다.
“괜찮겠지? 저 정도 했으면.”
“애당초 이쪽으로 넘치지도 않어.”
“그래도 아까 모래주머니 가지고 올 때 보니까 길에 난 하수도에서 엄청난 소리가 났어. 쿠르르르! 하고. 평상시엔 저 아래에 흐르던 물이 엄청 차 올라와서 내 눈에 보이더라니까?”
조은이의 말에 노파의 눈이 살짝 흔들렸다.
“괜찮을겨. 여기 우리만 사는 것도 아니고, 수백 수천 가구가 사는 용숭동에 뭔 일이 있을라구.”
***
저녁은 노파와 조은이 모두 안방에 앉아 뉴스를 보는 데에 집중했다. 특히나 이쪽 지역의 내용이 나올 때는 모두 뚫어지게 화면을 바라봤다.
익숙한 건물과 역사. 그 앞은 이미 자동차가 전면 통제된 상황이었다. 낮에 찍힌 영상에도 타이어까지 잠겨 오도 가도 못한 차들이 비상등을 켜고 있었고, 전통시장도 완전하게 침수돼 상인들이 허벅지까지 찬 물을 헤치고 부산하게 물건을 정리하고 있었다.
“아유, 어쩌면 좋아! 저기 충남 정육점인디!”
노파에게 등뼈를 챙겨준 곳, 나를 예뻐하던 아저씨가 있던 곳.
“끼이이잉…”
나는 슬픈 눈으로 화면을 바라봤다. 전기가 나가 불이 꺼진 정육점 앞에서 천장에 매달린 등뼈와 돼지를 내려 어깨에 걸쳐 메고 물살을 헤치는 아저씨의 모습이 보였다. 어디든 냉장이나 냉동이 가능한 대형 냉장고가 있는 곳을 찾아가는 모습이었다. 그 뒤로 커다란 플라스틱 바구니에 랩으로 싼 고기를 가득 담고 머리에 인 아주머니가 뒤따랐다.
“휴우, 이게 뭔 꼴이여.”
“그러게 말이야, 할머니. 정말 안됐다. 모두 너무 고생이다.”
이윽고 뉴스는 예상외로 빠른 태풍의 이동과 특대형이라는 규모의 위력 앞에서 모든 것이 무력했다는 말과 함께, 각 지자체에서 미리 배수로나 하수 처리관 등에 대한 점검이 부족한 것이 아니냐는 전문가의 말을 내보냈다.
더 우울한 것은 내일이 본격적인 태풍의 상륙이고 이후 3일 정도 더 비가 내릴 것 같다는 말이었다. 즉 주중 내내 호우경보라는 소리였다.
“할머니, 난 공부할게. 텔레비전 보고 계세요.”
“잉, 그리여. 어디 물 새는 곳 없는지 잘 보고.”
“응, 염려 마. 가자, 해피야.”
“왈!”
작은 방으로 들어온 조은이는 조심스레 컴퓨터의 전원 코드를 꽂았다. 혹여나 다시 두꺼비집이 내려갈까 걱정했지만, 다행스럽게도 컴퓨터는 전원을 잘 흡수했다.
제대로 신경을 못 쓴 상황에서도 손실을 꽤 복구한 것은 분명 괄목할 만한 성과였다. 하지만 내가 더 놀랐던 것은 조은이의 집중력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자리에 앉자마자 다시 매매 프로그램을 열고서 장중 매매했던 것들을 체크하고 손절한 부분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큰 추세가 없으면 재빨리 본전에서 나오는 것도 나쁘진 않겠구나. 시간과의 싸움, 한 번 더 먹을 기회와의 싸움이니 말이야.”
책을 뒤적이며 온라인 동영상을 살펴보는 조은이의 눈빛은 정말로 강렬했다.
‘그래, 어차피 전부 잃어도 마이너스도 아닌데. 이 정도 노력하는데 800만 원 투자는 아깝지 않다.’
한참 동안 공부를 하던 조은이가 SNS를 열었다. 그리고 메뉴를 하나 만들기 시작했다.
‘오잉?’
비공개 메뉴로 고친 후, 조은이는 오늘의 매매 기록을 캡처해서 업로드했다. 44,500원에서 48,000원이 된 것까지 간략하게 기록한 후 완료를 누른 조은이가 한숨을 내쉬었다.
“내일은 진짜 더 공격적으로 해 봐야겠다. 원래 오늘부터 그러려 했는데 저놈의 비 때문에 전기가 나가는 바람에.”
“끼이이잉…”
“아무래도 컴퓨터가 더 편하긴 하니까. 그치?”
“왈!”
조은이 방 쪽의 베란다에서도 빗소리는 생생하게 들렸다. 어찌 보면 오히려 공부에 더 집중하도록 하는 ASMR 같기도 했다.
의자 위에 양반다리로 앉은 조은이. 그리고 그 위의 나.
마우스 클릭과 키보드 두들기는 소리, 빗소리.
나는 슬슬 잠이 오기 시작했다. 그리곤 조은이의 다리 위에서 꾸벅꾸벅 졸았다.
***
‘헉!’
나는 순간 어둠 속에서 고개를 번쩍 들었다.
빗소리의 ASMR은 훨씬 커져 있었다.
‘여기가, 여기가 어디지?’
나는 어둠 속에서 고개를 두리번거리다 여전히 조은이의 다리 위라는 것을 깨달았다.
“음, 으음…”
조은이의 신음 소리, 컴퓨터를 켜고 공부하다 그대로 엎드려 잠이 든 듯했다.
– 찰박 찰박!
무언가 물결이 치는 소리. 안이 흠뻑 젖은 느낌이 생생했다. 그러나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조은아! 조은아!!! 아아악!”
그때 안방에서 노파의 비명이 들려왔다.
“어, 어어?”
황급히 조은이가 몸을 일으키는 바람에, 나는 깜짝 놀라 무의식적으로 아래로 뛰어들었다.
– 찰싹!
‘!!!’
물이다.
“아왈왈왈왈! 아왈왈왈왈!”
“조은아! 얼른 일어나, 조은아!”
노파의 비명에 조은이가 의자에서 내려오다 발목까지 잠긴 물을 딛곤 깜짝 놀랐다.
“으악! 이게 뭐야, 할머니! 할머니!”
“전기가 나가서 아무것도 안 보인다. 조은아, 얼른 안방으로 와 봐!”
조은이가 서둘러 핸드폰을 찾아 불을 켰다. 그리고 주변이 물바다가 된 것을 확인했다.
“뭐야, 뭐야!”
조은이의 방 베란다에서 어마어마한 물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이미 베란다 바깥은 물이 가득 차 있었고 미닫이문 틈새로 졸졸졸졸 물이 쏟아지고 있었다.
나는 이 어이없는 상황 속에서 멍하니 서 있었다. 머릿속이 하얘진다는 것이 이런 느낌이었다.
“해피, 이리 와!”
번개처럼 날 안은 조은이가 찰랑이는 물을 헤치며 방문을 간신히 열었다. 작은 방의 물이 거실과 안방으로 좌아아악 퍼졌다.
거실에서 안방을 비추니 노파가 흠뻑 젖은 채 덜덜 떨고 있었다. 거실 안쪽의 보일러실에서도 물이 엄청 쏟아지고 있었다.
“어, 어떻게 이럴 수 있어?”
“나가야 해, 얼른 나가야 혀!”
조은이가 황급히 계단으로 향하는 새시 문을 열려 했다. 그러나 꼼짝도 하지 않았다.
“왈! 왈! 왈!”
나는 미친 듯이 짖었다.
그제야 조은이는 현관문 아래로도 엄청나게 물이 들어오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무슨 이유에선지 무너져내린 모래주머니가 문이 열리는 것을 막고 있었다. 간신히 온 힘을 다해 한 뼘 가까이 열자마자 계단에 엄청나게 고여 있던 물이 안으로 쏟아졌다.
어느새 종아리까지 물이 차버린 상황, 열리지 않는 문.
“일단 신고, 신고부터!”
조은이가 황급히 119를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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