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sorry I went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234
외전2. 자유와 예속 (1)
프란시스 가브리엘 하이드-와이트는 원고의 여백에 쓴다:
‘나는 내 이름이 싫다. 물려받은 긴 이름은 억압적이며 역겨운 과거를 상징한다.’
귀족의 성을 가졌다는 건 곧 과거의 어느 시점에 대량의 인명을 살상했거나, 대다수의 사람을 착취한 선조를 가졌다는 뜻이다.
가문에 학살자나 착취자가 여럿 생기면 그자들의 이름 역시 성처럼 계보를 따라 이어진다.
그런 종류의 가문이 복수로 결합될 때 후손의 이름은 출생증명서의 할당된 칸을 넘어설 만큼 길어진다.
베르너 닐스 하이드-와이트와 아델라인 이디 린디허스트의 정략결혼으로 태어난 외동아들로서, 프란시스는 자신의 이름을 역겹게 여길 이유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베르너 하이드-와이트 백작은 계관 시인이었지만 그의 선조까지 음유시인이었던 것은 아니다.
와이트 백작위는 시조가 레오니드의 장남과 함께 플라이드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며 얻은 것이다.
정확히는, 기사 규약을 어긴 자들의 목 백사십여섯 개를 성벽에 내걸고서 받게 된 작위란 뜻이다.
플라이드 전투의 광경을 묘사한 태피스트리는 다이닝 홀의 벽에서 낡아가며 대대로 후손들의 식욕을 떨어뜨렸다.
백작의 영지인 플라이드 평원은 드넓었으나 수자원이 부족했다. 때문에 농경과 목축에 활용하기 어려운 땅이었다. 물론 당시에는 영지민이 적으니 상관없었을 것이다.
그 후 장장 아홉 세기가 흘렀다.
척박한 평원에도 인구는 늘었고 영지 운영은 점점 어려워졌다. 와이트 백작가는 섭정 새빌 일파에 붙은 대가로, 압살롬 2세의 왕조귀환에 이르러 휘하의 기사단과 사병을 해체당했다.
몰락한 무가는 비슷한 전철을 겪은 가문과 결합하여 명맥만을 간신히 유지했다.
하이드-와이트로 이름이 바뀐 백작가의 말예 베르너가 태어났을 무렵, 집안엔 내실 없는 영지만이 남았다. 베르너는 두 발로 걷기 시작한 이래 부유한 약혼 상대만을 기다리는 처지가 됐다.
프란시스의 기준으로 나누자면 이쪽은 학살자의 분류이다.
그렇다면 린디허스트는 어떨까.
짝이 맞도록 이쪽은 착취자가 된다.
린디허스트 가문의 초대 가주는 원래 제대로 된 성도 없던 도공이었다.
90년 전, 그는 약삭빠르게 세리카식 도자기를 흉내 내 시장에 내놓았고, 자신과 같은 일을 하려던 경쟁자들은 밀고와 계략으로 파산시켰다. 그렇게 얻은 금을 휘둘러 남작 작위를 얻어 냈다.
린디허스트의 2대는 남작의 자녀로 태어났다. 백화점 카탈로그를 보고 도자기를 주문할 수 있는 시대는 그의 편이었다. 2대는 착취자로서 잘해냈다.
3대부터는 제대로 귀족이었다. 그의 부인은 철강업의 거부인 비튼 가문의 자녀로, 막대한 지참금을 가지고 왔다.
덕분에 린디허스트 3대 남작은, 거의 딸뻘의 여동생을 시집보낼 유서 깊은 구 귀족 가문을 수월하게 구할 수 있었다.
이렇게, 유서 깊으나 재정 상황이 열악한 가문의 이재 없는 아들과 도자기 산업으로 부를 쌓은 신흥 귀족의 고명딸은 부부가 되었다.
여자의 돈으로 남자의 영지에 다시 지은 컨트리하우스는 두고두고 회자될 만큼 장대한 건물이었다.
크게 지을 수밖에 없었다.
컨트리하우스를 반으로 나누어 남편과 부인, 서로의 공간을 완전히 분리했기 때문이다. 귀족이니 침실 따로 쓰는 거야 당연하다지만, 유별나게도 응접실과 서재까지 두 개씩이었다.
이 부분에 관해선 베르너에게 발언권이 없었다. 복잡한 혼전 계약서에는 아델라인의 재산 보존에 관한 항목이 수없이 숨어 있었던 탓이다.
아델라인의 지참금은 하이드-와이트 가의 룬데인 타운하우스를 완전히 새로이 꾸미고, 컨트리하우스를 짓고, 그 컨트리하우스를 운영할 안팎의 사용인 서른네 명을 평생 부리며 백 년을 살아도 될 금액이었다.
그들은 서로의 조건에 만족했다. 두 사람 다 젊고 건강해서, 덤덤한 부부 사이임에도 아이는 금세 들어섰다.
아델라인은 결혼한 지 이 년도 안 돼서 백작과 똑같은 머리와 눈 색을 가진 건강한 사내아이를 낳았다.
조부와 조모의 이름을 딴 아이는 흔한 열병 한 번 걸리고 무럭무럭 자랐다. 눈은 총명하게 맑았으며 잘 먹고 잘 자는, 돌보기 편한 어린아이였다.
결혼의 의무는 완벽하게 달성되었으므로, 베르너와 아델라인은 서로를 거의 볼 필요가 없었다.
시인이자 멋쟁이로 도회적 취미를 가진 백작은 연중 내내 수도의 타운하우스에서 머무르며 컨트리하우스에는 거의 행차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프란시스가 막 배밀이를 할 무렵, 아델라인의 오라비 역시 죽었다. 린디허스트 남작위는 4대째, 아델라인의 조카에게로 승계됐다. 린디허스트의 가업은 여전히 번성했다. 4대 남작은 시인에게 시집간 고모에게 일말의 관심도 두지 않았다.
아델라인은 약간의 유산을 추가로 받아 컨트리하우스의 한 편에 오랑저리(Orangery)를 지을 수 있었다.
아, 자유!
아델라인은 컨트리하우스를 자신의 성으로 삼아 자기 마음대로 살았다.
무도회도 살롱도 열지 않고, 별을 보거나, 정복왕 신화를 연구한다는 괴상한 마법사를 초빙해 강의를 듣거나, 그도 질리면 식물화를 그리고 화석 채집을 했다.
대부분의 취미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고 아델라인의 관심사는 매년 바뀌었다. 가내 도서관엔 중구난방의 장서가 늘어갔다.
그녀는 학문적 성취를 남기고자 하는 야망이 전무했고, 생활을 위해 노동할 필요도 없었으므로 내키는 대로 지낼 수 있었다.
억지로 코르셋을 입고, 더 가치 있는 이름을 붙여 줄 매수자를 찾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에 아델라인은 자신의 인생이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그녀에게 자유를 쥐어준 프란시스, 손이 전혀 가지 않는 순한 애는 유모와 메이드들 손에서 차근차근 잘 자랐다.
달포에 한두 번, 간혹 생각이 미칠 땐 너서리 룸에 들러보기도 했다.
아델라인이 가면 아기는 잿빛 눈을 커다랗게 뜨면서 신기한 걸 보듯 했다. 딱히 엄마라고 알아보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렇게 프란시스는 나이를 먹어 갔다.
아델라인은 아이가 네 살 때 가정교사를 구해 주었다. 아이는 수업 시간에 곧잘 자리를 지키고 숙제도 잘했다.
그러고 나서 한동안 그녀는 카롤링거의 백과전서와, 그에 관련된 자들의 저서를 탐독하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렇게 2년이 지났다.
가을의 어느 날 거버니스가 갑자기 그만두길 청했다. 여학교만 나온 자신은 더 이상 프란시스를 제대로 가르칠 수 없다고 했다.
아델라인은 하녀장에게 물었다.
‘프란시스가 몇 살이지?’
‘올해로 여섯 살, 8개월이 됐습니다, 마님.’
아델라인은 몇 년 만에 남편에게 전보를 쳤다. 요즘 사람들처럼 프란시스도 학교에 보낼까 했더니 베르너가 반대했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건 신귀족들이나 하는 짓이란 거다.
본인 역시 가정교사들 사이에서 자란 아델라인은 별 내색 없이 하녀장에게 다음 가정교사를 뽑으라고 명했다.
그리고는 잊었다.
하이드-와이트가의 안주인은 컨트리하우스 남쪽의 너서리 룸에서 자라는 어린애에 대해서 종종 잊곤 했다. 처음부터 그랬으므로 아이는 아무런 불만이 없었다.
하녀장은 충실하게 교사와 도련님의 의견을 들었고, 매년 가정교사가 갈렸다.
반바지를 입은 프란시스는 양말을 단정하게 올려 신고 착하게 앉아 학습실에서 선생들을 기다렸다.
역사, 철학, 고전.
또 프란시스가 원하던 수학과 화학.
아델라인이 변덕으로 끼워 넣었던 성악, 풍경화 그리기, 권투와 사격까지.
성악은 찬가이니 근처 교회의 신녀가, 권투와 사격은 플라이드 수비군에 마땅한 숙소가 없어서 컨트리하우스에 몸을 의탁한 신임 장교가 가르쳐 주었다. 그러나 다른 과목은 점점 선생을 구하기가 어려워졌다.
프란시스는 지나치게, 정상의 범위를 벗어날 정도로 빼어난 학생이었다.
선생들에겐 점점 더 높은 보수를 줘야 했고, 더 훌륭한 상급 학교 졸업자를 물색해야 했다.
마침내 프란이 아홉 살에 이르렀을 땐, 근방에서 구할 수 있는 가정교사로는 그 애의 왕성한 지식욕을 채울 수 없게 되었다.
‘어머니 다음 책 마차는 언제 오나요?’하고 물어보러 온 예의 바른 아이 앞에서 아델라인은 약간 심각한 표정이 됐다.
아픈 데도 없는 아이이건만 프란시스는 하여간 조그맸다. 아홉 살인데 여섯 살 정도로 보였다. 그런데 하는 말은 스물아홉 살처럼 들렸다.
키가 안 자라는 건 책을 읽느라 밤에 도통 잠을 안 자서인 것 같았다.
‘얜 누굴 닮았을까?’
저 특이한 머리색과 눈 색을 제외하면, 수려한 외모의 댄디로 명성을 날리는 남편과도 그리 닮지 않았다. 자신의 나른한 인상과도 거리가 멀다.
다 자라면 눈초리가 매서워질 것 같은 또랑또랑한 얼굴.
‘이런 애들은 뭔가를 저지르기 마련인데, 이상하게 얌전하단 말이지.’
그해 겨울 베르너가 마차 두 대에 짐을 싣고 겨울을 나러 왔다.
정부였던 오페라 가수와 파경을 맞은 뒤 거의 십 년 만에 컨트리하우스에서 시간을 보내던 베르너는, 자신의 아들이 카롤링거어를 거의 구사하지 못하는 데 충격을 받았다.
정부와 헤어진 탓에 다른 몰두할 거리가 필요해서였을까? 베르너는 직접 튜터를 뽑아야겠다고 나섰다.
베르너가 나섰기에 아델라인 역시 평소처럼 하녀장에게만 그 일을 맡겨둘 수 없었다.
논의가 있었고, 요구사항은 셋으로 좁혀졌다.
베르너: 완벽한 카롤링거어 실력, 고전과 역사를 함께 가르칠 수 있으면 금상첨화겠소.
아델라인: 저 애가 일을 해서 생활을 이어가야 하는 것도 아닌데, 기본적 품위를 갖춘 교사면 족해요.
프란: 어머님, 아버님.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수학도요.
린디허스트 집안의 연줄까지 써 가며 전국에서 사람을 찾았지만 저 모든 요구사항을 충족시켜주면서, 평원 한가운데의 컨트리하우스에 고립된 채 아홉 살짜리 사내애를 가르치며 살고 싶어 하는 교사는 드물었다.
가정교사로선 파격적이라 할 만한 금액을 임금으로 제시하고서야 세 사람이 면접을 보러 왔다.
베르너와 아델라인은 이의 없이 한 사람을 골랐다.
로버트 번즈.
카롤링거와 가까운 지역 출신, 하급 젠트리 집안의 삼남이었다.
테르게스티 종합대학을 졸업했으며 특기 과목은 카롤링거어 문법과 수학이라 했다.
디에르 시의 무역상 달림플 준남작이 쓴 소개장엔 로버트가 그의 두 아들에게 카롤링거어와 대수를 완벽하게 가르쳤다는 찬사가 적혀 있었다.
로버트는 달림플 준남작의 장남에 이어, 차남까지 폰틸러스 대학에 우등 입학시키고서 다음 직장을 찾는 거였다.
그의 취미는 독서로, 무도회나 연애 행각 따위엔 전혀 관심이 없다고도 했다.
완벽한 인재였다.
폐가 약해 힘든 일은 무리였고, 어릴 적 사고로 왼손이 의수였으며, 선천적인 장애로 오래 걷는 게 어려운 몸이 아니었다면 더 훌륭한 일을 할 사람이었다고, 하녀장은 프란시스에게 전해주었다.
자, 프란시스에게로 돌아가 보자.
이제는 어른이 된 프란시스, 가정교사를 필요로 하지 않게 된 프란시스에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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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밀히 말하자면, 어머니도 아버지도 당신을 고르지 않았다. 남은 후보가 당신이었던 것뿐이다.
막힘없이 카롤링거어를 쓰던 첫 번째 젊은이는 아버지가 나가보도록 했다.
‘그는 외교와 학문의 언어인 카롤링거어가 아니라 목수가 공작을 ‘너’ 라고 부르는 카롤링거어를 쓰는구나. 안 되겠다.’
다음 한 명은 수도원 학교의 교사를 하다 은퇴한 노인이었다. 말 한마디 안 붙이고는 어머니가 내보냈다.
옷차림이 천해서 싫다고 딱 잘랐다.
그 느릿한 귀족적 어투, 모음이 녹아버린 억양으로 권태로이 하던 말은 이랬다.
‘푸른 코트에 갈색 구두를 신는 남자를 내 응접실에 들인 것만으로도 모욕당한 기분이에요.’
어머니는 알비온에서 손에 꼽히는 거부, 사치재 상품을 만드는 집안의 둘째였다.
평소엔 때 시도 맞추지 않은 세리카 비단 나이트가운이나 입고 다녔지만, 그녀의 심미안은 절묘했고 고급과 저급에 대한 감각은 예리했다.
그래서 마지막 한 명인 로버트 번즈, 당신이 남았다.
나무랄 데 없는 검은 구두에 깨끗한 셔츠, 과하지 않은 유머를 보여주는 머리리본을 맨 당신이.
복장은 수수하지만 옷의 원단과 여밈이 고급스러웠다고, 가끔 몰래 간식을 나누어 먹던 하녀 아이가 속삭여준 소릴 들었다.
어머니는 당신의 태도와 자세를 봤다.
당신은 그녀의 종잡을 수 없으면서도 엄격한 심사를 만족스럽게 통과했다.
베르너 백작과 신고전주의 희극에 대해 나눈 카롤링거어 대화 역시 완벽했다. 당신의 태도는 비굴하지 않으면서도 겸손했고, 고지식하지 않으면서도 진지했다.
나의 부모는 당신을 좋은 선생이라고 판단했다.
세세히 살피지 않는 한 당신은 특징 없는 남자였다.
기본적으론 무난하고 신실해 보였다.
컨트리하우스 안에 갖춰진 예배당, 어머니는 빛의 축제 기간에나 들르는 성소에서, 여신의 신상 앞에 무릎 꿇는 자세가 익숙했다.
머리와 눈은 흔한 갈색, 이목구비는 밋밋했다. 키도 체격도 지극히 평범하여 길에서 지나치고 나면 인상이 떠오르지 않는 남자였다.
그리고 그러한 특징 덕분에 살아남았다.
검문과 처벌을 우회해서.
고발과 감시를 피해서.
무명으로 살며 철저하게 신분을 숨겼던 당신이, 소개장에 적힌 것 이상의 이력을 학생에게 들킨 건 전적으로 우연이었다.
나는 유별난 어린애였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평화로운 장원에서 자라며, 백과전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왼 어린애는 평소와 다른 일이라면 뭐든 눈치챘다.
예배당의 탑 위를 빙빙 돌며 일반적인 비둘기와는 다른 움직임을 보이는 개체를 발견한 후 세 달 간 꼬박 그 새를 관찰했다.
새는 주로 선생이 여신께 기도를 드리고 있을 동안 나타나곤 했다.
마침내 그 새를 그물로 붙잡아 다리에 묶인 메모를 뜯어냈을 땐 그저 의문을 해결해가는 즐거움만이 머리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전화와 전신의 시대에 그런 고풍스러운 옛 시절의 방법을 쓰는 데에선 허를 찌르는 참신함이 느껴진다고만 여겼다.
복잡한 수열 암호로 다섯 겹 우회 아래 감추어진 암호문의 내용은 이랬다.
〔디에르, 3b-7 평면교차지점 분기기 확보. 차질 없이 진행.〕
나는 열 살이었고, 평생 만나본 사람 중 가장 똑똑한 이인 새 튜터에게 끝없는 호기심을 내보이곤 했다.
나는 당신을 인격을 가진 한 사람, 나와 동등한 인간이라고 여길 줄 모르는 컨트리하우스의 미숙아였다.
인간과의 친애 어린 교류를 겪지 못한 유년기를 핑계로 대는 것은 구차하다. 나는 그러한 상황에서 아무런 고통도 박탈감도 느끼지 않았다.
모친은 부유했고, 원하는 책이나 실험 도구라면 어머니의 침실까지 소식이 갈 필요도 없이 재정 관리인이 지출을 허가했다.
그런 나를 당신은 전심을 다해 가르쳤다.
당신은 끔찍하도록 주의 깊은 사람이었지만 직업적 의무에는 의외로 충실했고 아이들을 좋아했다.
돌이켜보면 당시의 나는 아이보다 아기에 가까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꿀과 우유에 목욕을 하며 자라난 것 같은 아기라고, 당신은 나를 놀리곤 했다.
그 웃음은 스스로에 대한 후회였다.
당신이 평소처럼 수업을 하고자 학습실로 들어온 아침, 해독된 암호문은 당신과 나 사이에 국경선처럼 놓여 있었다.
어쩌면 그것은 진정 국경이 맞았다.
유년이라는 안온하고 두루뭉술한 나라와 엄혹한 현세의 영토를 가르는 선.
학습실 책상을 내려다보던 당신은 한순간 당혹한 표정을 지었다가 곧바로 다시 평소처럼 미소 지었다.
사람의 외모로 판단을 그르친 적 없는 당신의 인생에 유일한 실책이 나였다는 회상은, 결코 농담이 아니었을 것이다.
나는 단편적인 문제 풀이에 한해선 지독하게 총명한 어린아이였다.
암호의 해독은 올발랐다.
그 편지에 대해 집요하게 물으니 당신은 내 눈을 들여다보았고, 내가 진실을 얻을 때까지 그 자리에서 절대로 움직이지 않으리란 걸 알았다.
당신은 어린아이라 하여 상대를 무시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당신은 차분하게 고백했다.
평민원이 없던 시절 공화주의에 경도되어 야학의 교사로 일했고, 동료를 만들었노라고.
지금도 야학에 기부금을 내며, 옛 동료의 요청을 거절하고 싶지 않았다고.
나는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어머니의 서재에서도 그런 종류의 단어가 인쇄된 책들이 있기야 했다.
도색소설과 섞여 책등이 책꽂이 안쪽으로 향하도록 꽂혀 있던 서적들, 공-화-주-의의 신념, 혁명의 회고, 루테티아 급전, 백과전서파의 계승자들이 낳은 이념, 계몽주의의 자녀들이 남긴 저서.
종종 표지가 없고 앞뒤 권의 짝이 맞지 않는 금서들.
‘공화주의’ 같은 말을 현실의 인간이 발음하는 것은 난생처음 들었다.
당신이 내 생애에 출현함과 동시에, 짧은 평생을 지배했던 권태로운 평화가 화려하게 터져 나가는 것 같았다.
“자, 신의를 걸고 맹세해주렴. 이 이야기는 누구에게도 하지 않겠다고. 네가 스스로의 언동에 책임질 수 있는 성숙하고 독립적인 개인이라면 신의에 대해서도 같은 의무를 지켜야 한다.”
“나 프란시스 가브리엘 하이드-와이트는 신의를 다해 말합니다. 나는 신의가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지킬 의지가 있습니다.”
내겐 에테르 감응력이 발현하기 전이었고 당신은 비감응자였으니 구속력이라곤 없는 맹세였다.
그렇지만 내가 한 첫 맹세의 말만은 교본을 따른 듯 거창했다. 당신은 왼쪽 눈썹을 슬쩍 들어 올렸을 뿐 비웃지도 꾸짖지도 않았다.
“내달 디에르 시에서 선로 정비공들이 노동시간 단축을 요청하는 파업을 할 건데, 가장 적게 피해를 입히면서도 효과적으로 교통망을 멈출 수 있는 위치를 계산해 달라고 했어. 나는 테르게스티에서 토목과 지리도 배웠고, 계산이 빠르니까.”
딱 들어맞아서 어쩐지 미심쩍게 느껴지기까지 한 답이었다. 비둘기는 이날 처음 날아온 놈이 아니었다. 과연 그들은 ‘옛’ 동료일까?
그렇지만 당신은 카롤링거 문법 외엔 그 어떤 이야기도 하지 않을 표정이었으므로, 나 역시 얌전하게 교본을 펼쳤다.
당신의 답이 거짓 없는 것이었음은, 그다음 달 두 번째 수요일에 밝혀졌다.
일주일에 한 번, 묶음으로 저택에 배달되는 가 그 판정의 진실성을 보증했다.
나는 그 기사에서 증명의 기쁨 외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사람들의 삶도, 투쟁도, 요구도, 내겐 중요치 않았다.
신문에 처박고 있던 고갤 든 나는 다이닝 홀로 들어서는 당신을 돌아보며 웃었던 것 같다.
진실이 눈앞에서 전모를 드러낼 때의 지적 즐거움에 젖어.
당신은 보통은 그러지 않는 방식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사실은 평생을 통틀어 누군가가 머리를 쓰다듬어준 건 처음이었다. 나는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결국에 실패로 돌아간 크뤼엘 공작령 노동쟁의의 결과를 보며 당신이 어떤 생각을 했을지, 그때의 나는 알 수가 없었으니까.
당신의 표정은 내내 평온했다.
거짓말 역시 한동안은 유효했다.
당신은 여러 층위의 인생을 항상 준비해두는 사람이었고 그 인생의 파편들은 항상 일정 부분 진실이었기에, 아홉 살 난 어린애는 속아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좀 더 거시적인 형태의 진실은 사후에야 도달해오는 것이다.
이미 실체가 사라진 후, 기록들만이 당신에 대해 증언할 때에야.
장 로베르, 당신에 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