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sorry I went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336
동남 전쟁 (4)
낄낄거리며 걸어오던 4분대와 5분대 병사들은 클레이오 아세르를 보자 바짝 긴장해 빠릿빠릿 움직였다.
노나 중대가 기병대인 것과 달리, 데키마 중대는 전원이 보병으로 이뤄져 있었다. 데키마 중대로 배속되는 자들은 하나같이 전부 평민 출신이라 승마를 능숙하게 할 줄 아는 사람이 없었던 탓이다.
그들이 병영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강화]를 가르치는 게 아서였다. 아서는 언제고 항상 그렇게 했다.
이제야 겨우 검술 교본 기초 자세 한 번이나 따라해 본 징집병들에게 당장 검술을 쓰라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강화]로 몸을 보호하고, 에테르를 [전도]한 검으로 내리긋기만 할 수 있게 만드는 데에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마수 출몰과 전투는 병사들의 숙련을 기다려주지 않고 일어났다.
가장 실력이 낮은 병사들이 아서 곁에 남는 건, 데키마 중대에선 일반적인 일이었다. 아서는 급박한 상황에선 전경화 스킬을 써서라도 부하들을 구해내곤 했다.
아서의 전경화 성흔은 더 이상 비밀도 아니었다. 비록 ‘무한대’의 기능을 온전히 쓸 수 없고, 자기 검격 범위 안에 든 사람 정도만을 이동시킬 수 있긴 하지만, 폭탄이 터지거나 상급 검사의 검기가 비처럼 쏟아질 때는 그보다 유용한 대피소도 없었다.
한때 하인, 마부, 심부름꾼의 왕자였던 아서는 양치기와 농사꾼, 짐꾼들의 기사가 되었다.
그것은 오명이 아니라 위명이었다.
마법사들 사이에서 클레이오가 그러한 것과 마찬가지로, 같은 기사들 사이에서 아서는 경외와 충성을 함께 불러일으키는 존재였다.
아서 리오그난은 데르니에 대륙 최연소 소드마스터이다. 그가 있는 전장에서는 결코 알비온군이 패배하지 않는다.
그 거창한 말을 뒤집으면 결국 아서가 없는 전장에서는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는 뜻이다. 대개의 경우 패배했다.
그는 니네베 연대가 수비하는 기나긴 동남 전선의 모든 곳에 동시에 존재할 수 없었기 때문에.
병사들은 그가 없는 곳에서 죽었다.
그럼에도 멜키오르는 아서에게 전략적인 결정 권한을 결코 쥐여 주지 않았다. 아서는 오로지 전술 차원의 판단만을 내릴 수 있었다.
물론 일반적인 위관 장교라면 문제가 되지 않았을 사안이었다.
아서 리오그난 대위는 공식적으로 니네베 연대의 세 중대 중 하나인 데키마 중대의 중대장이었을 뿐이므로.
그러나 실상은 좀 달랐다.
3월 공세 당시 연대장인 오스왈드 대령이 전사하며 아서가 야전에서 임시로 연대장직을 수행했다. 급박한 상황이었고, 당시 연대장의 임종을 지킨 이들 중 가장 계급 높은 기사가 아서였다.
문제는 전투 종결 이후였다.
3월 공세 이후 새 연대장이 부임해오지 않아 아직도 공석으로 빈 지휘관 자리를 아서가 맡고 있는 실정이었다.
고위직 기사 상당수가 브룬넨으로 전향한 탓에 지휘관급 기사는 터무니없이 부족하다는 핑계로 멜키오르는 새 연대장 임명을 차일피일 미뤘다.
이미 국왕 대리직을 역임했던 아서는, 연대장의 역할도 무리 없이 잘해내기는 했다.
문제는 아서가 여전히 위관 장인 채 임시 연대장이 되었다는 부분이다. 3왕자를 제대로 진급시켜주지 않기 때문에 일어난 파행적 사건이었다.
아서는 대규모 전투가 있을 때마다 막대한 전공을 세웠다.
죽지도 않고서 반 년 만에 두 계급 특진을 이뤄낸 건 분명 대단한 성취였으나, 아서가 실제로 한 일과 해야 하는 일들에 비하면 지금의 취급은 야박한 것이었다.
그러나 아서는 제게 주어진 모든 의무를 말 없이 짊어지었다.
도저히 아서의 공적을 감출 수 없는 수준이었기에, 멜키오르는 3남에게도 알량한 국토방위장과 영예훈장을 달아주었다.
클레이오와 달리 아서는 자신이 수여받은 훈장의 약장을 모두 달았고, 제복 역시 흉갑까지 모두 갖추어 입었다.
전장에서 병사들을 살고 죽게 하는 명령을 내리는 사령관으로서 갖추는 형식이었다.
아서는 항상 생글생글 웃고 있는데도 그 웃음에서 위압감이 스며 나오는 존재로 완성되었다.
보통 이상으로 상당했던 체격은 지난 일 년 간 보다 위협적인 모습으로 성장했다.
부상으로 찢긴 제복은, 찢어졌다는 핑계로 두 번이나 새로 맞추었다. 치수 역시 한 사이즈가 늘었다.
너무 많은 전투가 그를 그렇게 벼려냈다.
이제 클레이오는 이전 생애의 기억이 멀게 느껴질만큼 알비온에 동화되었지만, 연대장급이 일선에 직접 나서야 하는 상황은 여전히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기사이자 장교이며, 전술 무기이자 지휘관인 이들은 항상 수가 부족했다.
전장에서 상급 기사는 지상전에 투입된 탱크와 전투기처럼 작동했다.
일종의 전술 무기이고, 수가 한정되어 있으며, 사용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귀중한 자원. 심지어 소드마스터에 이르면 그 중요성은 전략 병기에 필적하게 된다.
그러나 로사 페히테는 필리프에게 강요당한 언약으로 인해 학교를 벗어날 수 없고, 피어스 클라겐 단장은 병석에 누웠으며, 태서턴 트리스테인은 국왕 대리의 곁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아서는 동남 전선에서 알비온 측이 동원 가능한 유일한 소드마스터였다.
그의 거취 자체가 극비로 취급되었고, 아서의 위치를 탐색하는 브룬넨 측 육군 정보부에 혼동을 주기 위해 잘못된 내용의 발령서나 전신을 보내기도 했다.
개전 이후 모든 날들 동안 아서는 자신의 몸이 여러 개인 것처럼 행동해 왔다. 실제로도 여러 이형을 만들어 이곳저곳을 동시에 누비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어디서나 싱거운 우스갯소리를 달고 살았다. 아서는 그 어떤 절박한 상황에서도 여유를 잃는 법이 없는 지휘관이 됐다.
여신이 택한 왕재는 여전히 잘 웃었다.
그는 자신이 웃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내면적으로 마주한 절망을, 통솔하는 병사들에게 드러내서는 안 되는 자리에 올라 있었으므로.
클레이오가 병사들의 정신적 지주라면, 아서는 실질적인 지주였다.
아서가 저의 담대함을 유지하지 못하는 순간 동남 전선은 와해될 터였다.
그것은 전선의 병사라면 누구나 공감할 내용이었다.
그리고 클레이오에게는 그 누구의 공감도 살 수 없는 내적인 원칙이 있다.
그간 클레이오는 편집자 권한을 한 번, 작내 서술의 축성의 공명을 한 번 썼다. 아서를 구명하기 위해서였다.
편집자 권한을 발동시키고 싶었던 수많은 순간들, 되돌릴 수 있던 국면을 클레이오는 일관되게 무시했다.
아서가 죽는다면 세계도 죽는다. 정과 슬픔에 휘말려 판단을 그르친다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화마의 장 가운데서 신의 권한조차 만료된다면, 그 끝은 파멸뿐이었다.
맨 처음, 이제는 지워진 원고에서 3월 공세는 브룬넨의 승리로 끝났다.
옐레니아의 노익장 귄터 그라우에르트 공이 휘두른 창에 아서의 오른쪽 가슴이 꿰뚫렸을 때, 클레이오는 붕괴하는 세계의 암흑에 직면하여 편집자 권한을 발동시켰다.
이미 겪어 보았다 해서 다시 겪는 게 익숙해질 일은 아니었다. 세계와 더 깊이 동화된 지금, 아서가 눈을 감을 때 다가오는 절망과 공포의 깊이는 더더욱 깊었다. 그 참담함은 언어로 형용될 수 없는 것이다.
그때 클레이오는 이제까지 중 가장 긴 시간을, 편집자 권한을 통해 되감을 수 있었다. 이번에는 원고가 뒤섞이지 않았는지 아서의 몸에 아무런 상처도 생겨나지 않았다.
3월 공세의 첫날 새벽으로 돌아간 그는 차라리 제가 죽더라도 반드시 옐레니아 공국 기사단을 분쇄해내리라고 각오했다.
바로 그래서 ‘비탄의 정화’는 망설임 없이 사용되었으며, 기사 전부를 주살하려던 시도 역시 동시에 이루어진 것이다.
클레이오는 살인이 두렵다. 그러나 백여 명 기사의 심장을 멈추는 편이, 세상이 멸절하는 것보다는 나았다.
아서는 시간이 되돌아간 것을 자각했으나, 되돌리기 전 시간에서 일어난 일은 명확히 몰랐다. 그의 심장이 멈춘 동안의 사건이었으므로.
다수와 소수의 목숨을 저울질하는 판단은 클레이오, 저의 손에서 이루어지면 족했다.
자신의 모든 재능과 자질을 바쳐 아서의 뜻을 이뤄 주겠다는 오래된 신의의 말은 여전히 유효했다.
클레이오는 최선을 다했다.
그 결과가 항상 최선은 아니라 하더라도.
클레이오의 서클 안에서 ‘축성의 공명’을 입은 아서는, 히드라의 독이 아니라 스스로의 수련을 통해 소드마스터에 이른 기사 귄터 그라우에르트와 겨뤄 이겨냈다.
그 승리의 여파를 몰아 아서는 여론에 주의를 환기시켰다. 이때만은 평소 군부 인사들 모두에게 비판적인 도 아서의 뜻을 널리 퍼트리는 전령이 됐다.
전선에서고 후방에서고 모두가 전쟁에 지쳐가는 때였다. 아서는 비록 양보를 하더라도 브룬넨 측과 종전 협상 테이블을 만들고 싶어 했다.
반면 멜키오르는 전시 체제의 국가를 능란하게 운영하며 장기전에 대비했다.
왕의 관을 내놓으라는 아슬란의 요구는 들어줄 수 없는 것이기에 협상의 여지 역시 전혀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왕조 귀환 때 얻은 클로토강 유역을, 지난 일 년간의 엄청난 희생을 치른 후 포기하겠다는 아서의 주장은 귀족원보다도 평민원의 반발을 더 크게 샀다.
전쟁 중 치러진 5월의 평민원 선거는 중도파가 강세를 보였다. 자유당의 의석이 11석 인민연합당의 의석이 3석 줄고, 무소속 당선자가 늘었다. 애국심을 부르짖는 이들이 의회에 자리를 얻었다.
그들은 방공호를 파고, 야간 경계에 협조하며, 군수품 생산에 참여한 시민들을 대변했다. 지지기반이 평민층에 치우친 아서는 대중의 뜻을 완전히 무시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브룬넨의 황태자로 즉위한 아슬란으로 말할 것 같으면, 제가 발신한 선전포고의 내용에서 한 치도 물러나지 않았다. 타협이라는 것이 불가능한 상대였다.
아슬란이 두 왕국의 관을 모두 써야 한다는 선포는 이 전쟁의 근본적인 원인이었다.
키를 쥔 세 왕자 모두의 입장이 이리도 상이하니 종전은 여전히 요원해 보였다.
클레이오는 여신이 이 전쟁이 내도록 이어지기를 바라지 않으리라, 없는 낙관을 짜내어 전망할 뿐이었다.
독을 태우고, 정복욕을 사르고, 힘만 추구하는 자들을 역사에서 소각시킬 이 전쟁이.
신의 목적이 달성되고, 독소가 불탄 세계의 역사가 이어질 수 있다면 언제고 이 장은 완결되리라.
불은 고래(古來)로부터 정화의 은유였으나, 그 불길이 제 몸에 휘감긴 채로는 오로지 진화의 순간만을 기다리게 된다.
클레이오는 때때로 자신이 이미 다 타버린 형해처럼 느껴지곤 한다.
3월 공세의 마지막 전투가 있던 날, 제가 흘린 핏속에 누워 체액의 온기가 가시는 것을 느끼는 동안, 마지막으로 흐린 금빛 고지를 보았다.
그때 자신의 서사 개입도는 8할이었다.
언젠가 그 숫자가 일백에 다다른다면, 지금의 폐색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는 희박한 희망을 가져 본다. 그건 클레이오의 거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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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이오는 3소대까지 모두 불러내 소독을 끝내고서, 내친 김에 마수 경보 사이렌까지 완전 충전시켰다. 언제 마수가 나타날지 모르는 판국에, 에즈라 세르게프의 훌륭한 발명품을 놀려 놓을 순 없었기 때문이다.
스베토는 클레이오를 따라다니는 데만 해도 지쳐서 초주검이 됐다. 클레이오는 그냥 가서 쉬라고 스베토를 떼어내고 자신의 막사엔 혼자 돌아왔다.
새로 온 부관은 후방의 병원에만 있던 어린애라 영 위아래를 구분할 줄을 모르고 어깨에 힘이 너무 들어가 있었다.
클레이오는 친절하게 부관을 이끌어주는 종류의 상사는 아니었다. 죽을 정도 일 아니면 알아서 하라는 게 그의 태도였고, 평소엔 별 말이 없기에 부하 입장에서는 더 무서운 상사였다.
그런 그도 친구들 앞에서는 조금쯤 유해졌다. 마법사가 긴장을 푸는 유일한 순간이었다.
막사 안엔 이미 레티샤와 아서가 들어앉아 있었다.
이 풍경만은 학교에 다닐 때와 똑같았다.
과거에도 클레이오의 기숙사 응접실이나 연구실에서 모였던 것처럼, 니네베 연대의 977기 친구들은 여유가 생기면 클레이오의 막사에 모였다.
클레이오의 막사는 중상자를 치료하는 장소이기도 해서, 다른 친구들의 것보다 넓고 항상 깨끗했다. 당번병이 잘 정리해 놓는 덕이었다.
마수의 피를 흠뻑 뒤집어쓴 레티샤는 한쪽 어깨에 붕대를 감은 채 파스트라미를 끼운 호밀빵을 우걱우걱 먹어 치우는 중이었다.
“여어 레이!”
클레이오는 엉망진창인 꼴의 레티샤를 보자마자 눈썹을 휙 치켜올렸다.
“레티샤 너까지 나갔었어?”
“카라파스만 있음 몰라, 셉스까지 우글대고 있다잖아. 연락을 받자마자 우리 애들도 놔두고 눈썹 휘날리게 튀어갔지. 아까 밥도 다 못 먹어서 짐 먹고 있음.”
클레이오와 레티샤가 대화를 하는 동안, 아서는 레티샤 앞에 놓인 샌드위치 반 조각을 날름 빼앗아 덥석 물었다. 에테르를 잔뜩 쓴 직후라 배가 고픈 모양이었다.
그런 아서 역시 팔 움직임이 묘하게 둔했다.
클레이오의 표정이 한층 더 차가워졌다.
“이번 주는 너희 둘 다 치료 한도 벌써 다 찬 거 기억해라.”
“헐, 섭섭하게. 쪼끔 다친 건데.”
레티샤의 자못 넉살 좋은 말투에도 클레이오의 한기 도는 표정에는 실금 하나 가지 않았다.
일주일에 세 번 이상 부상당할 경우 치유 마법을 걸어주지 않는다는 게 클레이오의 원칙이었다.
중대장부터 일병까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클레이오는 제 원칙을 밀어붙였다. 그러지 않고선 매일같이 너덜너덜 중상을 입고 돌아오는 기사들을 끝없이 치료해야만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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