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sorry I went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338
동남 전쟁 (6)
가을엔 취사병들이 후방에서 불려 오고, 보급품을 관리할 행정보급계의 비감응자 군인들도 동남부로 발령이 났다.
요즈음에는 염장육과 으깬 감자, 당절임 과일 파이, 건더기가 굵직한 오렌지 마멀레이드, 시럽을 친 옥수수 푸딩, 순무와 당근 그리고 콘비프를 넣어 끓인 스튜, 두툼한 베이컨과 완두콩, 라드에 튀긴 감자 따위로 식단이 다양해졌다. 장교에게는 질 좋은 브랜디와 과일도 좀 주어졌다.
주둔 위치가 최전방에 가까울수록 완전히 식어 빠진 스튜를 받을 확률도 높아졌지만, 운 좋게 사령부 부근에 배치될 땐 최소 매일 한 번은 따듯한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병사들은 당연히 환호작약했다.
여름이 오기 전까지, 하루가 멀다 하고 적군과 교전이 벌어지던 중에는 말린 소시지와 딱딱한 비스킷, 차가운 콩 통조림으로 끼니를 연명해왔던 것이다.
하지만 상황이 개선된다 한들 군대의 기준이다. 본인이 음식을 가지고 불평한 적은 없지만, 알려진 미식가였던 클레이오에겐 영 입에 맞는 음식이 없어 보였다.
본인도 버텨내려면 무엇이든 먹어야 한다고 여기는지 어떻게든 물에 불린 오트밀이며 으깬 감자, 차에 적신 비스킷 같은 걸 삼켜보려고 노력하는 게 지켜보기 힘들 정도였다.
겨울 초입엔 정기 열차 편이 편성되어 후방으로부터 개인적인 편지와 소포를 받을 수 있게 된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레티샤는, 캔튼 부인이 보내오는 놀라운 식료품 꾸러미 ― 이런 음식도 장거리 배송이 돼? ― 가 아니었으면 클레이오는 겨울을 넘기기 전에 소멸했을 거라고 말했다. 농담이 아니라 진담이었다.
그만큼 클레이오는 늘 고단해 보였다. 지금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서는 가볍게 에테르를 전도시켜 꺼져 있던 마석 난로에 불을 지폈다. 그런 다음 손바닥으로 난로 온도가 적당한지 가늠해 본 뒤 클레이오의 곁으로 끌어다 두었다.
“레이 오늘은 그냥 쉬게 놔둬야겠다. [소독] 때문에 신경 많이 썼으니까.”
그런 아서를 레티샤가 쿡쿡 찔렀다.
“아서, 넌? 너 며칠째 안 잤음? 소드마스터도 사람인데 잠 좀 자지그래?”
“하하, 안 죽어, 안 죽어.”
“야 그러다 훅 간다. 피어스 클라겐 아직도 못 일어나는 거 봐.”
“그래그래. 언약도 안 깨고 히드라의 독도 안 먹게 조심하고 있으니 걱정 마.
“이 새끼 뚫린 입이라고 또 아무 말이나 해. 이시엘이 빨리 와야 하는데.”
“이시엘이 돌아오려면 한참 더 걸릴걸? 카라파스는 상대하고 나면 심력이 많이 깎이니까 오늘은 좀 봐 줘라, 레티샤. 그 메뚜기 놈은 너무 작아서 잡아내기가 힘들어.”
“그건 그래. 마석도 안 나오는 버러지들인데 상대하기만 좆같고, 에휴.”
“그래도 셉스에선 마석 제법 나오지 않았어?”
“아, 맞다. 나 완전 정신 놓고 옴. 이번 셉스는 물뱀이더라? 대박이야. 마석 아마조나이트가 나왔지! 그건 [정화]에 쓸 수 있잖아~. 레이 지갑에 넣어놔야겠음. 으흥.”
이들 사이에 또 하나 변치 않은 약속이 있다면, 마수로부터 회수한 마석은 모두 클레이오에게 넘긴다는 규칙이었다. 아이들은 꿋꿋하게 그 약속을 지켰다.
이시엘과 리피의 경우 ‘원칙적으로 작전 중 병사가 입수한 마석 전부는 국가에 귀속되고 마석 회수의 주체는 상사이니, 아세르 대령에게 마석을 넘기는 것은 규칙에 맞는 행동이다.’라고 주장했다.
다른 친구들은 ‘원래 마석은 다 레이 주는 거지!’로 퉁쳤다.
이유야 어떻든 마석을 클레이오에게 주는 게 가장 효율적인 사용법이긴 했다.
클레이오는 제 손에 들어오는 마석이란 마석은 모조리 동남 전선에서 소모했다.
마수가 지나치게 출몰해 골치인 동시에, 극희귀한 종류가 아닌 이상 마석 공급은 걱정할 게 없는 상황이 역설적이었다.
증권거래소와 원자재 거래 시장에서는 곡소리가 나왔다. 전쟁이 일어나면 으레 마석 가격이 폭등하겠거니 하는 예측하에 투자했는데, 실제 뚜껑을 열어보니 마석 가격은 횡보를 하다 오히려 소폭 하락한 거다.
동남 전선에서는 신선한 버찌보다, 버찌만 한 마석 루비가 더 흔하다는 농담이 돌아다닐 지경이었다.
일견 헐렁해 보여도 죽음의 위협 앞에서 바짝 군기가 든 병사들은 사적으로 마석을 유용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언제 전방을 벗어날 수 있을지 모르니 마석을 환금하는 덴 기약이 없었다. 돈으로 바꾼다 해도 마수와 브룬넨군이 휩쓸고 간 폐허에서 그걸로 무엇을 한단 말인가.
하지만 그 마석이 마법사의 손에 들려서 따스한 온기가 되고, 깨끗한 물이 되고, 검기를 막아주는 토벽이 되어줄 때는 돈보다 목숨을 먼저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마수 출몰이 마석을 공급하고, 인간끼리의 전투가 마석을 소모시켰다.
이런 기세로 마석을 소모해 나가다간 전쟁이 끝난 후엔 세상에서 더 이상 마석이란 걸 볼 수 없겠다는 예측이, 후방의 연구마법사들로부터 나왔다.
어쩌면 그것이 칼리오페의 뜻인지도 모른다고, 클레이오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친구들은 모두 들었다.
이전에도 때로는 먼 곳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마치 계시를 듣는 듯 굴던 친구는 점점 더 사람으로서의 존재감이 희미해졌다.
산 사람의 기척, 생명의 정기가 빠져나가고 걱정스러울 정도로 바싹 말라붙었다.
그 소진은 육체와 정신 모두에서 일어났다. 어딘가 비인간적인 기색이 도는 클레이오를, 일반 병사들이 존경하면서도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할지 몰랐다.
그렇지만 그 어떤 대기적을 펼쳐놓는다 하더라도 클레이오 아세르는, 이들 977기에게 둘도 없이 소중한 친구일 따름이었다.
입이 짧고, 안색이 나쁘고, 은근한 완벽주의자에, 골초이고, 보기보다 성질이 사납고, 필요하다면 계급으로 내리찍어서라도 상황을 정리해 버리는 과감함을 가진 친구.
그 친애는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적인 것이다.
저 애를 사람으로 취급하고 친구로 대하지 않는다면, 효율적인 살육 기계가 된 기사들은 또 어찌 인간이라 인정받을 수 있을까.
처음 전선에 배치된 알비온 신병들은 때로 적군이 아니라 아군의 기사들이 내보이는 전투력에 놀라 오줌을 지렸다.
기사 수가 터무니없을 정도로 차이 나는 적과 싸워 살아남은 기사들은 모두, 병기로서의 무감함과 살육에 임함에 있어 행동에 낭비가 없는 실용성을 갖추고 말았다.
한 명의 기사가 적의 기사 다섯 명을 상대해도 이기는 것이 아니라 겨우 패배하지 않는 전투를 내내 치러낸 결과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과정이 아니라 오로지 결과만을 본다. 세상 사람 모두가 이들의 지옥을 이해할 수는 없다.
클레이오의 막사에 모인 친구들은 일부러라도 옛날처럼 실없이 굴기를 즐겼다.
리피가 클레이오의 코트 자락에 마석을 쑤셔 넣는 동안 아서가 주변을 휘휘 둘러보았다. 기감을 펼쳐 봐도 원래라면 병영에 있을 친구들이 안 보였다.
“근데 오늘은 어째 여기 막사가 조용하지? 어디 보자 리피는 오늘 남측 분면 경계고, 첼은?”
“나도 셉스 잡으러 가느라 못 들었는데?”
리피와 아서가 서로를 바라보며 물음표를 띄우던 때.
그 질문에는 한 소위와 함께 막사 문을 걷고 들어오던 이시엘이 답해주었다.
“아서 님께서 출동하신 동안 공중타격대 지원 요청이 있어, 탕페트 드 네쥬 대위는 테르게스티 시로 비행 정찰에 나섰습니다. 금일 22시 귀환 예정입니다.”
“타격대장이 직접 나선 일이면 단순 의심은 아닐 텐데. 내 유능한 보좌관이 부재중이면 소식이 느리게 닿네.”
데키마 중대장의 보좌관이자 행정보급관인 이시엘은 하루라도 자리를 비우면 부대가 마비되는 핵심 인력이었다.
“다음에는 정보 전달을 더 원활히 하도록 통신병과에 주의를 주겠습니다. 아서 님, 카라파스는 모두 처리하셨습니까?”
“벌써 들었어? 한 마리도 빼놓지 않고 잡았으니 걱정 마. 뭐, 저 들판에서 다시 농사를 지으려면 한세월이 있어야 하겠지만, 그렇다 한들 사방으로 놈들이 퍼져나가게 둘 수도 없으니까.”
이시엘은 살짝 고개를 숙이더니 낮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중대한 토벌에 뒤따르지 못하여 유감이 큽니다.”
“아니야. 그만큼 중요한 임무 수행 중이었잖아. 그래서, 세르게프 후작과의 접견은 어떻게 됐지?”
그리고 그런 이시엘이 자리를 비워야 할 정도의 일이라면, 보통 사안은 아닌 것이다.
이시엘은 제믈리까지 급행열차를 타고 다녀왔다. 동행인은 아레미스 한이었다.
데키마 중대 1소대장인 아레미스 한은 본래 사병 출신 마법사라, 서클을 열고 검을 매개로 마법을 썼다. 사실상 검기와 효과가 비슷했다.
하지만 레벨이 낮아 이시엘처럼 열차보다 빠르게 달리는 일은 불가능했고, 그래서 오늘은 특별 열차가 편성되었던 것이다.
세르게프 후작과의 긴요한 접견을 위해서였다.
웬 꾸러미를 낑낑 내려놓던 아레미스는 눈치껏 아서와 첼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제 주인의 전언입니다. 아직 공식적으로 발표되진 않았지만, 후작이 지금 공석인 귀족원 의장 자리에 내정됐습니다. 귀족원 회의에서 다수결로 결정이 났고 신문에는 내일 기사가 뜰 겁니다.”
지금 아레미스 한은 데키마 중대의 제1 중대장이 아니라 리오그난 왕가의 3왕자를 대하는 있는 페텐카 세르게프의 사자로서 말하는 것이다.
“지금보다는 보급의 질과 양이 개선되겠군. 동남은 핀토스 산맥에서 내려오는 냉기 때문에 추워. 얼면 하등 소용없는 모직 코트 말고 솜으로 누빈 외투를 올해엔 드디어 보게 되나?”
“그렇게 힘써보겠다고 합니다.”
“겨울이 오기 전에 귀족원 의장이 결정 나서 다행이야. 작년 겨울엔 예산 집행이 제때 안 돼서 얼마나 골을 썩였는지.”
아서는 정말로 한시름 놓은 표정을 했다.
군인의 필수 자질이 에테르 감응력이다 보니 알비온군의 규모는 작았지만, 그렇다 한들 보급이 넉넉한 건 아니었다.
전쟁은 정예의 상급 기사들의 겨룸으로만 이뤄지지 않는다. 근본적으로는 진흙탕, 이와 쥐의 싸움이이며 밀가루와 물의 싸움이다.
아사자가 나올 만큼 굶주리거나 붕대가 없어 응급 처치를 못 할 만큼 보급이 달리지는 않았지만 그 이상의 넉넉함은 기대할 수 없었다.
티플라움 무기 하나만은 넉넉히 공급되는 게 그나마 다행일까?
하지만 에테르 레벨이 낮은 이들에게 무기조차 없이 싸우라고 강요했다면 군대는 적군이 아니라 아군의 왕실로 칼날을 돌렸으리라.
국왕 대리 멜키오르는 군을 움직일 수 있는 최저한의 보급량을 기가 막히게 계산해냈다.
데르니에 대륙은 기후가 온난해 식량 작황이 좋았다. 특히 평지가 많은 영토를 가진 알비온은 항상 식량자급률이 100%를 훨씬 상회했다.
그러나 중부부터 동남부까지 이어지는 곡창 지대의 절반이 전화에 휘말리고, 수백만 농민은 집과 터전을 버린 채 서쪽으로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식량 생산량은 종전처럼 유지되지 않았다.
출몰하는 마수들 역시 식량 생산량을 낮추는 원인이었다.
핀토스 산맥만큼은 아니지만 수도 부근에도 마수가 종종 나오게 된 탓에 전력 발전소가 멈춘 일도 여러 번이었다.
티플라움은 전기 설비를 갖춘 최신식 공장에서 가공되기에, 정전은 하루만 일어나도 무기 공급에 타격을 줬다.
그런 사정으로 인해 국왕 대리는 여러 부문에서 여력을 아끼고 있었다.
그는 전쟁이 쉽게 끝나지 않으리라는 확신하에 정치적 의사 결정을 내리는 게 분명했다.
처음에는 병사들도 사정을 이해하고 처지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사선을 수없이 넘나들며 교체 병력도 없이 일 년을 버틴 사람들에게 처음과 같은 군기를 유지하라고 요구하는 건 불가능했다.
전장에서 수집된 마석은 클레이오와 의무병들이 소모하는 분량을 넉넉하게 제한 뒤에도 상당한 양이었다.
왕실로 흘러들어간 마석만 제대로 이용해도 보급 상황이 나아질 터인데, 멜키오르는 동남 전선의 현실에서 눈을 돌려 병사들의 복지에 대한 아서의 요청을 묵살했다.
식사가 개선된 것도 평민원 측에서 압력을 넣은 결과였다. 이젠 방한 용품과 기호품 공급 개선도 있기를 바라서 아서는 제 세력을 결집시킨 거였다.
귀족원에 손을 뻗은 일은 성과가 있었다.
“내일부턴 12월인데, 사정이 이러니 빛의 축제를 제대로 챙기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기분은 내게 해 줄 특별 보급품입니다.”
이시엘은 세르게프 후작에게 받은 특별 보급품 목록을 품에서 꺼내 아서에게 공손히 건넸다.
화물 마차에 실려 올 짐은 명절의 진미와 기호 식품이었다.
술, 담배, 차, 커피. 몰트 위스키와 브랜디. 모두 전선에서는 부족한 것들.
페텐카가 보내는 신의의 징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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