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in Character’s Little Sister RAW novel - Chapter (104)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새하얀 눈밭에 붉은 액체가 흩날렸다. 두 동강 난 설원 박쥐가 푹신하게 깔린 눈 위에 소리 없이 안착했다.
세로로 잘린 단면에서 내장이 흘러내리고 척추뼈가 드러났다. 비위 약한 이한생이 구역질했다.
“우욱.”
채찍을 휘둘러 설원 박쥐를 순식간에 죽인 김율이 배시시 웃었다.
이보배는 언뜻 보아도 비범한 검은색 채찍을 보고 물었다.
“템빨?”
“투잡이라니까요.”
세상에 복합계가 있고 각성 직업이 둘인 사람이 있다면 복합계면서 각성 직업이 둘인 사람도 있을 수 있는 법이다.
“보물 사냥꾼은 전투계고 정보상은 보조계예요. 덕분에 레벨 올리기 얼마나 힘든지 몰라요.”
남들보다 열여섯 배는 힘든 게 이것 때문인 것 같다며 김율이 울상 지었다.
‘NPC가 아니고 주인공급인데?’
사실 주인공 보정을 받은 건 이씨 남매가 아니라 김율 아니었을까. 일단 외모만 보면 김율이 주인공인데.
이보배는 울상 지은 얼굴도 잘생긴 김율을 보며 떫은 감 씹은 표정을 지었다.
* * *
이보배와 일행은 적당한 장소를 발견했다.
절벽 아래가 적당히 파여 눈발이 들어차지 않고 뒤가 막힌 공간이었다.
이보배와 이한생은 스크롤을 찢어 안전 구역을 만들었다.
방어 마법을 수십 겹 중첩한 안전 구역이 완성되자 이귀한이 앞에 나섰다.
김율은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이귀한과 이보배 사이에 섰다.
눈보라 치는 설산은 태양이 먹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구름 그림자가 드리운 희고 검은 세계에서 이귀한의 그림자는 모든 그림자를 압도했다.
빛은 물론이고 희망마저 씹어 삼키는 칠흑 같은 어둠이 존재의 일부를 드러냈다.
상공을 배회하며 먹잇감을 찾던 설원 박쥐가 첫 번째 희생양이었다.
이귀한은 한 방에 몬스터를 죽일 수 있는데도 일부러 천천히 찢어 죽였다.
비위 약한 이한생이 다시금 헛구역질했다. 갈기갈기 찢어지는 몬스터보다 이귀한의 미소가 그의 비위를 자극했다.
이귀한은 가볍고 철없단 소리를 듣긴 하지만 사람 좋고 놀기 좋아하는 쾌활한 청년이었다.
공포 영화는 잘 봤지만 범죄 시사 프로그램은 보지 못했다. 야생 다큐멘터리에서 사자가 영양을 뜯어먹는 장면도 무섭다고 다른 거 보자고 말하던 청년이었다.
그런 큰형이 즐겁게 웃으면서 설원 박쥐의 날개를 잡아 뜯었다.
죽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로 찢어발긴 설원 박쥐 몸뚱이를 이한생에게 던졌다. 숨이 간당간당하던 설원 박쥐는 던져진 충격으로 죽었다.
“히익.”
“앗, 실수. 셋째 막타 주려고 했는데.”
이한생이 이보배를 붙잡고 덜덜 떨었다.
이보배는 이귀한이 설원 박쥐를 던지면서 얼굴에 튄 피를 닦았다.
“경험치 얻는다는 보장도 없으니까 막내 오빠는 그냥 가만히 있는 게 좋을 것 같아. 게다가 만약에 시스템이 공자님 상태를 정상으로 간주하면 레벨업하면서 전환될 수도 있잖아.”
“그럼 막내가 할래?”
악마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면 호의는 받아들이는 편이 낫다.
이보배는 묵묵히 빠루를 꺼냈다.
이한생이 입을 쩍 벌리고 몬스터 골통을 부수는 여동생과 웃으면서 살육을 즐기는 큰형을 쳐다보았다.
* * *
이해기는 시야를 가리며 얼굴을 때리는 굵은 눈발과 바람에 저항하며 내키지 않는 발걸음을 옮겼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진즉 나설 것을. 괜히 보배와 한생이에게 마음고생 시켰구나.’
착한 동생이 참다 참다 나서기 전에 이해기가 나섰어야 했다.
그게 옳았다. 동생을 지키겠다면 착하고 선량한 마음씨 또한 지켜줘야 한다. 이번엔 이해기가 너무 이기적이었다.
동생에게 괜한 짐을 떠맡긴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나는 아직도 한심하구나.’
한때 인명보다 소중한 게 없다고 여기던 시절이 있었다.
동생과 함께 재가 되어버린 과거의 자신을 떠올리며 이해기는 다시금 쓴웃음을 지었지만 곧 지웠다.
전투 중 방심은 금물이었다. 심지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은 회귀자가 모르는 사건이다.
‘예전엔 이런 변수 없이 무난하게 공략했던 균열이다. 어째서 이렇게 바뀐 거지?’
회귀자가 일으킨 나비 효과라고 하기엔 파장이 컸다.
아직 단서가 없었기에 이해기는 추측보단 상황을 정리하고자 노력했다.
‘지금쯤 밖에선 관리국과 인근 헌터들이 도착해 사람들을 피신시키고 있겠지. 침공형이란 보고도 받았을 테니 출구로 빠져나가는 몬스터는 안심해도 될 테고. 공략보단 방어선 구축과 주민 피난에 주력하고 있겠지. 힘을 숨기려면 서둘러야 해.’
중앙으로 갈수록 몬스터가 늘어났다.
이해기는 눈밭을 밟으며 은신하고 있던 설원 도마뱀을 베었다. 고작 설원 도마뱀의 기습 정도론 그를 위협할 수 없었다.
‘이상해.’
현재까지 이해기가 발견한 몬스터의 종류는 설원 시리즈다.
은신과 기습, 얼음 속성 공격이 주특기인 설원 리저드맨이 주 등장 몬스터였다.
비각성자는 서 있기도 어려울 만큼 휘몰아치는 바람이 청각을 뒤덮고 어린아이 주먹만 한 눈발이 시각을 유린한다.
온도로 각성자를 구분하는 설원 리저드맨에게 유리한 전장이었다.
경험 없는 파티였다면 몬스터가 아니라 환경에 이기지 못하고 퇴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고작 이런 구성에 원범찬이 이끄는 파티가 당했다고?’
원범찬은 1세대 각성자다. 딜러와 탱커 두 포지션이 가능한 베테랑이었다.
하청에 하청을 받는 신생 길드라지만 아라크네가 견실하다고 평가한 길드다.
원범찬은 실력과 경험 모두 평균 이상인 헌터였다.
게다가 허누리는 회귀자의 스카우트 명단에 있는 천재 탱커다. 지금은 초보지만 주머니에 송곳을 숨길 수 없듯 천재적인 재능을 발휘할 예정이었다.
그런 허누리와 원범찬이 탱커로 있는 파티인데 허누리 홀로 균열을 빠져나왔다. 원범찬이 허누리라도 살리기 위해 대피시킨 것이 틀림없었다.
‘뭐지?’
이해기는 미간을 찌푸렸다. 마감 임박한 균열은 갑자기 등급이 높아지는 경우가 있다.
이해기는 평범한 D등급 균열이 아니었다는 허누리의 말을 갑자기 등급이 높아졌다는 이야기로 해석했다.
허누리의 갑옷과 부상 유형으로 봤을 때 설원 리저드맨이나 설원 박쥐보다 강한 몬스터가 등장해야 했다.
하지만 이해기가 꽤 중심부에 다다랐음에도 불구하고 원범찬의 방어를 무시하고 허누리의 갑옷과 뼈를 뭉갤 만큼 강한 몬스터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
‘보스에게 당한 건가?’
이해기는 여러 가지 가설을 세우다가 약간 다른 마력의 흐름을 감지했다.
‘출구다.’
마침 출구는 그리 멀지 않았다.
이해기는 약간 방향을 틀어 출구로 향했다. 노블레스 길드원 중 생존자가 있다면 균열 밖으로 대피시키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해기는 눈보라 속 거대한 그림자를 발견했다.
2층 건물 크기의 그림자, 설원 코뿔소(보통 흰 똥 트리케라톱스, 줄여서 흰 똥 톱스라고 부른다)가 출구로 돌진하려고 했다.
출구 근처엔 몬스터 사체가 즐비했고 노블레스 길드원은 보이지 않았다.
부상을 치료하고 균열로 진입한 허누리도 없었다.
‘허누리가 데리고 출구로 나갔나?’
여전히 무언가 마음에 걸렸지만 설원 코뿔소가 나가게 둘 수 없었다.
이해기는 가볍게 뛰어 설원 코뿔소의 머리에 검을 박았다.
20년 넘게 쌓아온 손맛이 즉사했으리란 확신을 주었지만 정작 몬스터 사망을 알리는 시스템 알림은 뜨지 않았다.
꾸어어어엉!
설원 코뿔소의 안광이 붉게 빛났다.
‘저건!’
이해기는 검을 재차 휘둘렀다. 설원 코뿔소의 머리가 떨어지고 육중한 몸이 옆으로 기울어 쓰러졌다.
이해기는 급히 배를 갈라 마석을 찾았다.
“이건!”
이해기조차 바로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희미했지만 마석을 꺼내놓고 보니 확실했다.
이해기는 급변한 상황에 이를 악물었다.
‘마기다!’
이제는 사라진 시간선에서 세계를 멸망시킬 뻔한 대마왕의 마기였다.
* * *
헛구역질도 하다 보면 진짜 구역질로 바뀐다. 속이 완전히 비어 이제는 나올 것도 없었다. 그런데도 계속 속이 뒤집혔다. 신맛이 나다 못해 쓴맛이 났다.
속에서 올라오는 쓴맛도 주위를 덮은 피비린내를 지울 수 없었다.
정체 모를 괴물답게 몬스터들의 피는 각양각색이었다. 그래도 하나 공통점이 있었다.
모두 비렸다.
이귀한은 마기에 홀려 다가오는 몬스터들을 찢었다. 그렇게 찢은 놈을 숨만 붙여 동생에게 던졌다.
이보배는 이한생이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사명감을 품고 비참한 몬스터에게 죽음을 선사했다.
“오는 놈들이 없네?”
이귀한이 잠깐 휴식을 선언하자 김율이 탄산음료를 꺼내 바쳤다.
김율의 눈치 빠른 행동이 마음에 드는 듯 먼저 말을 걸었다.
“너 좀 유용하다?”
“기호 1번 김율입니다, 큰형님. 기억해 주세요.”
“아냐, 넌 기호 3번. 요한이가 1번.”
“보배 누나 만난 순이면 현우 형님이 1번 아닌가요? 보배 누나에게 마음 품은 순이어도 현우 형님이 1번일 텐데.”
“내가 첫째니까 내가 미는 놈이 1번. 둘째가 미는 놈이 2번. 너는 셋째가 미니까 3번.”
“그럼 큰형님이 밀어주시면 제가 1번이 되는 거네요!”
“너 쫌 유용하긴 한데 요한이가 더 유용한 거 같아.”
“아앗, 요한 형 스킬이 좋은 건 인정하지만 저도 한 유능 하는데요!”
“너 사람 못 죽이잖아.”
“제가 수배범을 얼마나 잘 잡는데요! 보배 누나가 증인이에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김율은 알았다. 이귀한이 말하는 ‘사람 죽인다’의 진짜 의미를.
이귀한은 대마왕답게 특정 인물이 이보배에게 위해를 끼칠 가능성이 있다면 치워 버릴 수 있는 매제를 선호했다.
범죄 피해자가 되고 난 후 강력 처벌해도 범죄 피해가 없던 것이 되지는 않는다. 그러니 범죄는 예방이 최고였다.
그런 연유로 이귀한은 최요한이 마음에 들었다.
이해기는 그것 때문에 최요한을 꺼리고 이귀한은 그것 때문에 최요한을 선호했다.
“허억허억. 아이고, 힘들어.”
안전한 곳에서 이귀한이 던져주는 몬스터를 패 죽이던 이보배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김율이 재빠르게 다가와 헌터용 에너지 젤리를 입에 물려줬다. 칼로리는 맛의 척도. 이보배는 고칼로리 에너지 젤리를 쪽쪽 빨았다.
눈 돌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도 수십 번 토하며 살육을 지켜보던 이한생은 그제야 눈을 질끈 감았다.
본인의 잔인함을 과시하는 큰형과 그런 큰형의 장기자랑에 한몫 거드는 여동생. 이한생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한생 형님은 물 드릴까요?”
“큰형에게 도대체…….”
이한생은 김율을 무시하고 이보배에게 말을 걸었다.
이보배는 김율에게 저리 가라고 손짓했다.
김율은 알아서 눈치껏 거리를 벌렸다. 그래 봐야 고위 각성자인 그에겐 목소리가 다 들릴 테지만 거리 벌리는 시늉이라도 해주는 게 어딘가 싶었다.
“다른 세상에서 고생 좀 했대. 큰오빠가 원해서 저렇게 된 건 아니야.”
“그래도 이건 이상하잖아. 저건 큰형이.”
아닌 것 같다는 말이 나오기 전에 이보배는 이한생의 입을 막았다.
이한생은 피 묻은 여동생의 손을 역겨워하면서도 피하지 않았다.
“말했잖아. 큰오빠 위험하다고. 저렇게 위험하고 이상해졌지만 그래도 우리가 보고 싶어서 돌아왔어. 내 오빠고 싶고 막내 오빠의 형이고 싶어서 참고 있어.”
겁에 질린 양아치는 그게 말이 되는 소리냐고 반문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갈피 잃은 그의 눈이 흔들렸다.
“막내 오빤 괴물들이 무서운데도 날 감쌌잖아. 그걸 조금 다르게 생각해 봐. 큰오빠가 무섭지만 큰오빠를 감싸주는 거야. 우린 그렇게 할 수 있어. 왜냐면 우릴 위해 큰오빠가 참아줄 거거든.”
“존나 미친 소리처럼 들리는데.”
“나도 그렇게 생각하긴 하는데 어쩌겠어. 큰오빠는 우릴 위해 돌아왔고 참기로 했어. 그러니까 우리도 그 정도 성의는 보여야 하지 않을까? 가족이라고 무한정 퍼줄 순 없잖아. 기브 앤 테이크 몰라? 오는 정이 있으니 가는 정도 있어야지.”
이귀한은 항상 동생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고, 시험하고 싶어 한다.
이보배는 늘 그런 큰오빠가 안쓰러웠다. 가끔 얄미울 때도 있다.
“이히히.”
지금처럼 일부러 이한생을 자극하고 이보배가 한 말에 좋아할 때가 그렇다.
‘그래도 어쩌겠어. 우리 오빤데.’
인간성을 상실하고 철과 양심, 윤리관을 모두 다른 세계에 두고 왔어도 동생들은 잊지 않은 이씨 집안 장남 아닌가.
“화르세인지가 정말 저 큰형이랑 같이 놀러 다녔다고? 진짜?”
“응.”
이한생은 믿기지 않는 듯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이한생 보라는 듯 몬스터 시체를 헤집던 이귀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몬가 요상한데.”
“무슨 일이세요, 큰형님?”
김율은 어느샌가 이귀한을 큰형님이라고 불렀다. 연기일지라도 근성 하나는 끝내주게 좋았다.
“몬스터가 너무 적은데. 어그로가 덜 끌리는데.”
“작은형님한테 쏠린 거 아닐까요?”
“아냐, 둘째 은신 잘하는데. 씁, 모지? 몬가 벌어지고 있는데 모르겠네.”
그런 대마왕의 궁금증을 풀어주려는 듯 이해기가 비호와 같은 속도로 달려왔다.
이보배는 균열을 공략하지 않고 돌아온 이해기를 보고 깜짝 놀랐다.
“작은오빠, 무슨 일이야?”
“형! 무슨 짓을 한 거야!”
이보배가 수틀릴 때 이해기를 찾는다면 이해기는 수틀릴 때 형을 부르짖는다.
이해기가 다짜고짜 이귀한의 멱살을 잡았다.
이귀한의 눈이 말똥말똥해졌다. 타락한 심연을 담은 눈으로 순수를 호소했다.
“나 아님. 나 모름.”
씨알도 안 먹혔다.
“이게 형 짓이 아니면 그게 더 무서워!”
이해기가 C등급 마석을 꺼냈다. 본인 힘이기 때문에 이귀한은 이해기보다 빨리 감지했다.
“어, 내 힘이다. 근데 나는 모르는데.”
“이렇게 부패하고 역겨운 마력의 주인이 형 말고 더 있다는 거야? 혹시 형 말고 다른 파괴신이나 대마왕 같은 게 있어?”
“씁, 아닌데. 나 정도 되는 악의 군주가 있으면 나도 알 텐데. 소문났을 텐데.”
“그럼 어떻게 된 거야! 형이 모르면 누가 알아!”
이해기는 이귀한의 멱살을 잡고 짤짤 흔들었다.
회귀자는 겁에 질려 있었다. 대마왕인 형의 이른 귀환으로 지구가 마기에 오염되는 미래가 바뀌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만약 대마왕 말고 다른 재앙이 지구에 강림한다면 인류는 어떻게 대항해야 하는가.
한현우가 정화수를 제작하려면 더 높은 레벨과 스킬 등급, 연금술사로서의 경험이 필요하다.
그건 회귀자도 앞당길 수 없는 전문가의 영역이었다.
“나는 켁, 진짜 켁, 모름 켁.”
동생이 겁먹은 걸 알아챈 이귀한이 얌전히 멱살을 내주고 계속 흔들려 줬다. 흔들리면서 입을 다물지 않아 야무지게 혀를 깨문 건 덤이었다.
“설마! 설마 시스템이 한생이를 억지로 전환시키려고……!”
온갖 가능성을 떠올리던 이해기가 유력 용의자로 시스템을 떠올렸다.
회귀자인 그와 마기의 주인인 이귀한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마기에 대해 알고 있는 게 시스템이었다.
나름 합리적인 의심이라 이해기가 본격적으로 의심하려는데 그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이씨 사남매에게 시스템 알림창이 떴다.
[아님.]시스템이 이씨 사남매에게 직접적으로 의사 표현한 건 라스트 엘릭서 레시피 이름으로 항의받은 이후 처음이었다.
‘얼마나 억울했으면.’
이보배는 시스템을 동정했다. 시스템이 얼마나 억울하고 이 오해를 막고 싶었으면 알림까지 띄웠겠는가.
이해기는 바로 용의 선상에서 시스템을 제외했다. 미안하진 않았다. 지극히 논리적으로 의심했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된 거지?”
곤혹스러워하는 이해기의 시야에 새로운 알림창이 생성되었다. 이번엔 제대로 된 퀘스트창이었다.
이보배도 퀘스트를 받았다.
[오염된 마력의 진원을 파악하시오]-난이도: 어려움
-보상: 진짜마지막최종파이널라스트엘릭서 레시피 조각
-페널티: 없음
‘라스트 엘릭서 레시피 조각이다!’
시스템이 퀘스트를 주지 않더라도 이보배의 평온한 삶을 위해서라면 마기가 등장한 원인을 밝혀내야 한다.
“가자.”
이보배는 안전 구역을 나왔다.
“보배야, 마기를 우습게 보…… 하긴, 형 옆에 있으면서 받는 마기가 더 많겠구나.”
위급한 상황에서 이해기는 동생을 떼놓고 가는 것보다 데리고 가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어쩔 수 없지. 같이 가자. 한생이는 내가 챙길게. 보배는 형이 챙겨.”
“형님들, 저도 같이 가도 되나요?”
김율이 손을 번쩍 들고 질문했다.
이해기는 이귀한이 만든 참상을 턱으로 가리켰다.
“아라크네, 의뢰다. 이번 사건에서 우리 흔적을 지워.”
“의뢰를 거절하고 따라가면요?”
“호기심 많은 고양이는 죽는다던데 호기심 많은 거미는 어찌 될지 모르겠군.”
이해기가 미약하게 살인 멸구 가능성을 내비치자 김율이 포기했다.
“알겠어요, 오늘 너무 많이 알았으니 이쯤에서 물러날게요.”
“반지 가져가.”
이보배가 반지를 빼 주려 하자 김율이 웃으면서 거절했다.
“위험할 수 있으니까 끼고 있어요, 누나. 왼손 약지에 낄 건 더 좋은 걸로 준비할게요.”
이해기가 이한생을 업고 이귀한이 이보배를 업었다.
이한생은 약간 반항했지만 대충 업히면 몸이 분리된다는 협박에 얌전히 업혔다.
이씨 사남매가 사라지자 김율은 현장에 남은 증거물을 보고 암담해했다.
쉬지 않고 몰아치는 눈보라로도 감출 수 없을 정도로 혈향이 짙었다.
“이걸 언제 다 치운담.”
툴툴거려도 일은 해야 하는 법.
김율은 눈밭에 뿌려진 피처럼 붉은 치파오로 갈아입었다.
* * *
균열 핵에 가까워질수록 타락한 마기가 강해졌다.
이해기는 이를 갈았고 이귀한은 당황했다.
“진짜 내 힘이네?”
“어떻게 된 거야?”
“모름.”
“형이 모르면 누가 알아!”
양심을 이세계에 버리고 온 뒤로 늘 남 탓만 하던 이귀한이 처음으로 본인을 의심했다.
“내가 요랬나? 너무 뿌셔뿌셔 하고 싶어서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듯 개수작 부렸나?”
세상 모든 악한 것이 악신의 관할이다. 불신 또한 그의 것이니 스스로에 대한 믿음 또한 부실했다.
그런 파괴신에게 믿음을 심어준 건 업혀 있는 동생이었다.
이보배는 큰오빠의 목을 강하게 끌어안았다.
“자신을 의심하지 마. 큰오빠는 잘 참고 있었어. 만약 큰오빠가 뭔가 했다면 작은오빠가 알아챘을 거야. 큰오빠 감시한답시고 10년 노는 거잖아.”
“그러게! 둘째가 잘못했네!”
내가 사고 치면 전부 둘째 책임!
이귀한이 큰 깨달음을 얻어 이해기를 보았다.
이해기는 한없이 방만했던 1년을 돌아보았다. 세계를 찢고 강림한 대마왕을 무찌른 용사로서 의심하고 감시하는 건 남매 중 그의 의무였다.
솔직히 철두철미하게 감시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약간 방심하긴 했다. 이해기는 지레 찔려 성질 냈다.
“그, 그건 형을 믿으니까! 형을 믿어서 그랬지.”
“믿지 마라. 믿는다.”
이귀한은 이해기를 신뢰하지만 이해기는 이귀한을 믿어선 안 된다.
속뜻을 알아차린 이해기가 순간 절망했다가 곧 마음을 추슬렀다.
이보배는 갑자기 무거워진 분위기를 바꿔보고자 전부터 생각하고 있던 것을 말했다.
“큰오빠가 정신 못 차리면 내가 정신 차리게 해줄게. 이랑 조합이면 가능하지 않을까?”
이귀한이 결국 이성을 잃고 파괴의 화신이 되었을 때, 그때 이보배가 으로 이귀한을 무릎 꿇리고 로 때리면 어떨까.
그럼 동생의 사랑에 정신이 번쩍 들어 제정신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이보배는 두 스킬을 얻은 후 계속 그런 상황을 염두에 두었다.
시스템이 그걸 노리고 스킬을 주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가 예상하지 못한 건 두 오빠의 반응이었다.
“택도 없는 소리!”
“막내야, 자살 반대다!”
심지어 화르세인지까지 튀어나와 이보배에게 잔소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