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in Character’s Little Sister RAW novel - Chapter (16)
“상태는 어떻습니까?”
-아, 그것도 아세요? 밑천 다 털렸네. 건강 상태는 양호해요.
10년 가뭄에 한줄기 단비 같은 소식이었다. 이보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정말 끊겠습니다. 급한 일이 끝나면 과장님 허락받고 도와드릴게요.
최요한은 마지막까지 친절했고 비명도 끝까지 이어졌다. 전화를 끊은 이해기는 가족들에게 최요한의 능력을 대강 설명했다.
“최요한은 접촉한 상대에게 표식을 찍을 수 있어. 표식 찍힌 사람의 위치와 상태를 알 수 있는데 거리가 멀어지면 방향만 파악할 수 있지. 그러니까 한생인 이 사이에 있다.”
이해기가 최요한이 있다고 주장한 장소와 병원 사이를 지목했다.
“최요한이 정확한 위치를 알지 못하는 걸 봐선 그쪽과 가깝지 않으니 이 사이엔 없는 거고.”
그는 직선의 중간 지점을 그었다. 중간 지점부터 병원 사이. 그 사이에 이한생이 있다는 얘기였다. 여전히 만만치 않은 범위였지만 마냥 막막하던 때보단 나았다.
게다가 최요한이 급한 일 끝나면 도와준다고 했다. 그의 능력이 있으면 이한생을 영영 잃는 사태는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얼른 가자!”
이보배는 열의에 불타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러나 가혹한 현실이 그녀의 열의에 찬물을 끼얹었다. 이보배는 경찰 연락을 받고 얼굴을 굳혔다.
* * *
환자복을 입은 청년이 만취한 사내에게 접근해 자연스럽게 어깨동무를 한다. 청년이 취객을 이끌고 골목길로 이동한다. 이내 둘의 모습이 화면에서 사라진다.
몇 분 후, 만취한 사내가 재등장한다. 환자복을 입은 청년은 보이지 않고 취객만 바삐 걸음을 옮긴다. 흐느적흐느적 갈지자로 걸어 골목에 들어간 취객과 동일인 같다.
하지만 요즘 카메라는 성능이 좋다. 야간이라도 이목구비를 구분할 수 있다.
그건 옷을 갈아입은 이한생이었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데.”
경찰이 혀를 내둘렀다. 이보배는 부끄러워 죽고 싶어졌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다.
“이 사람이 오빠 맞죠?”
“오빠는 맞는데. 오, 오해십니다. 저희 오빠는 양은 쳤지만 아리랑은 친 적 없거든요. 진짠데.”
분명 진실일진대 영상 속 망나니의 프로페셔널한 범죄 행각 때문에 구차한 변명처럼 들렸다.
“저희가 평범한 아리랑치기로 알고 별개의 사건으로 수사하고 있었는데 일이 이렇게 됐네요.”
“피해자분은, 다친 데는 없으신 거죠? 괜찮으신 거죠?”
“네. 본래 주사가 옷 벗고 노상에서 자는 양반이라 처음엔 당한 줄도 몰랐다네요.”
예전에도 그랬지만 요즘 같은 시대엔 정말 큰일 날 술버릇이었다. 피해자가 다치지 않았다는 소식에 이보배는 마음 놓고 부끄러워했다. 얼굴이 화끈거려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미쳤어, 미쳤어.’
평생 겪어본 적 없는 수치와 부끄러움에 절로 눈물이 고였다. 고개 숙여 떠는 자는 이보배 하나가 아니었다. 이해기는 얼굴이 삶은 문어가 되었고 이귀한은 동공이 풀린 눈으로 중얼거렸다.
“우리 집안에서 도둑놈이 나오다니. 부모님 뵐 면목이 없다.”
부모님 뵐 면목 없는 건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만약에 화르세인지와 이한생의 혼이 별개라면 이한생도 같이 부끄러워하고 있을 것이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피해자가 쉽게 용서했다는 점이다. 피해자는 망나니가 입원한 병원 직원이었다. 이보배의 사정을 알고 있어선지 동정의 힘으로 흔쾌히 용서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막내 오빠를 찾으면 다시 사죄드리겠습니다.”
집안에 망나니가 있으면 가장의 머리는 바닥과 가까워진다.
“괜찮습니다. 병이 나쁘지 사람이 나쁜 게 아니니까요. 또, 만약 기억이 돌아왔어도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을 수 있잖아요. 식물인간이 된 게.”
“균열의 날이요. 18살 때.”
“네. 18살이면 어린애네요. 어린애가 갑자기 모르는 곳에 내던져졌다고 생각해 보면 그럴 수도 있죠.”
“크흡.”
요즘 병원에선 인성으로 직원을 뽑나 보다. 이보배는 수치나 부끄러움이 아닌 감격한 나머지 눈물을 글썽였다.
균열의 날 이후 사람들의 인심이 각박해졌다고들 하지만, 인류애는 마르지 않는 샘처럼 예상치 못한 곳에서 펑펑 솟았다.
용서는 용서고 배상은 배상이다. 이보배는 명함과 인적 사항을 넘긴 후 파출소를 나왔다. 출소한 것도 아닌데 햇살이 눈부시고 두부가 당겼다.
‘김치에 갓 만든 뜨끈한 손두부 싸서……. 하아.’
막내 오빠가 실종되었어도 배는 고프다. 큰오빠가 실종되었을 때 절절히 깨달은 사실을 재차 깨닫게 되었다. 평생 모르는 게 좋은 사실이었다.
가족의 부재는 익숙해지지만 배는 한 끼만 굶어도 요동친다. 이귀한이 또 실종되고 이해기마저 실종되어도 이보배의 배는 꼬르륵 소리를 내며 허기를 호소할 것이다.
이보배는 궁금해졌다. 오빠들이 모두 사라져도 그녀는 밥을 삼킬 수 있을까? 지금까지 견디고 살았으니 남은 삶도 이어갈까?
“막내야, 멍 때리기 그만. 얼른 찾으러 가자.”
이귀한의 재촉에 이보배는 눈을 떴다. 눈 뜨면서 결심했다. 이번엔 제대로 화내리라.
솔직히 그동안은 환자니까 봐줬다. 하지만 제 발로 병원을 탈출한 이상 이한생은 환자가 아니다. 도망자다.
만에 하나 기억이 돌아와 혼란스러운 나머지 탈출한 거라면 봐줄 용의가 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이보배는 주먹을 꽉 쥐었다.
“열 대는 때려줘야지!”
* * *
화르세인지는 능숙하게 취객을 꼬셔 옷을 벗겼다. 낯선 방식의 의복이지만 옷이란 게 다 그게 그거 아닌가. 구멍이 세 개면 하나는 머리 구멍이고 다른 둘은 손 구멍이다. 벗기면서 참고한 그대로 입으면 그만이었다.
가출해서 옷 바꿔 입기는 본래 화르세인지의 특기였다. 공작가 공자님인 화르세인지의 의복은 전신이 신분패이기 때문이다. 그를 잡으러 온 기사들에게 들키지 않으려면 가출한 후 빠른 환복이 중요했다. 가출의 승패 요소는 거기에 있었다.
가출 다음으로 중요한 건 금전이다. 이 또한 화르세인지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취객의 지갑을 턴다는 얘기가 아니다.
‘흥, 그런 짓을 할 리 있나.’
본래의 세계라면 지갑을 털었을 것이다. 공작가에서 보상받으라 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곳은 체키빙 공작가가 없는 다른 세계였다.
“쯧.”
화르세인지는 하늘을 올려다보고 못마땅해 혀를 찼다. 병원을 탈출하고 처음으로 본 이 세계의 밤하늘은 몇 번을 봐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달이 하나밖에 없다니. 참으로 모자란 세계로다.”
화르세인지가 알고 있는 밤하늘엔 달이 셋에 별은 무수하게 많았다. 그런데 이 세계는 달이 하나밖에 없고 별의 수도 적었다.
별의 개수야 지상이 너무 밝아 보이지 않는다 쳐도 달이 하나인 건 볼 때마다 이상했다. 보이지 않는 달 두 개의 빈자리가 허전하게 느껴졌다.
‘멍청한 돼지 같으니.’
백날 천날 여긴 다른 세계고 자기는 흑마술사가 아니라고 우길 게 아니라 이 밤하늘을 보여줬어야 했다. 그러면 화르세인지는 바로 믿었을 것이다.
제아무리 강한 악마의 힘을 빌렸다고 한들, 달을 하나로 합칠 순 없을 것 아닌가.
괜히 병원을 탈출했나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화르세인지는 바로 부정했다.
그에게 고문을 예고한 퀘스트가 병원을 나왔을 때부터 정지 상태가 되었다. 또한 병원을 탈출해 사악하고 부정한 악마를 다시 볼 일 없게 되었다. 병원을 탈출한 게 옳은 선택이었다.
‘그럼 먼저.’
화르세인지는 배를 어루만졌다.
“배가 고프군.”
그는 주위를 두리번거려 영업 중인 음식점을 찾았다. 밤도 낮처럼 환한 번화가답게 대부분의 술집과 음식점이 성업 중이었다. 개중 한 곳, 햄버거 가게가 화르세인지의 이목을 붙잡았다.
화르세인지는 당당하게 햄버거 가게에 입성했다. 취객의 지갑을 털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에겐 믿는 구석이 있었다.
‘TV를 봤을 때 햄버거 세트는 만 원 이하였다.’
화르세인지는 퀘스트 보상 목록에 적혀 있는 ‘10만 원’에 주목했다.
‘원은 화폐 단위일 터. 달이 하나밖에 없다고 숫자도 다르진 않겠지. 언어도 통하니 괜찮을 것이다.’
화르세인지는 빈자리에 앉아 점원에게 손짓했다.
“여봐라! 제일 잘나가는 걸로 내와라!”
이곳은 24시간 영업하는 패스트푸드점. 이 정도 진상은 하루에도 몇 번씩 출몰하는 격전지다.
“손님, 주문은 카운터에서 부탁드립니다.”
“돈은 여기 있다.”
화르세인지는 시스템에게 받은 돈을 인벤토리에서 꺼내 던졌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1만 원이었다.
진상 앞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던 직원이 허공에서 돈 꺼내는 모습을 보고 호다닥 뛰어와 돈을 받았다.
“아, 헌터님이시구나. 여기 킹버거 세트 하나.”
균열의 날 이후 진상계에 혜성과 같이 등장한 신유형이 있으니, 바로 헌터 되시겠다. 관리국의 가호 아래 폭행은 씨가 말랐으나 갑질은 사라지지 않았으니 서비스 업종 눈물 마를 일이 없다 카더라.
진상의 횡포 사전 예방 차원에서 직원이 햄버거 세트를 들고 왔다. 직원은 시야에서 진상을 치워 버릴 겸 상냥하게 권했다.
“1층 테이블이 정리 중인데 2층에서 드시겠어요?”
“좋다. 안내해라.”
“네네.”
화르세인지는 직원이 안내한 2층 창가 자리에 앉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발아래로 보이는 기분이 꽤 유쾌했다.
“훗, 배가 고프군. 이것이 이 몸의 주인이 좋아한다던 햄버거인가.”
먹는 방법은 TV에서 몇 번이고 봤기 때문에 숙지하고 있었다. 화르세인지는 포장지를 벗겨 햄버거를 한입 가득 넣고 깨물었다.
“이, 이 맛은!”
화르세인지는 게 눈 감추듯 햄버거를 먹어치웠다. 감자튀김에서 다시 한번 ‘이 맛은!’을 외치고 콜라에서 세 번째 ‘이 맛은!’을 외쳤다.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생소한 맛이지만 이상하게 그립고 익숙한 맛이기도 했다.
‘몸 주인이 좋아했다는 게 사실인가 보군. 돼지가 거짓말을 하진 않았구나.’
너무 빨리 먹어 아까운 생각이 들었기에 화르세인지는 직원을 호출했다. 가엾은 직원은 계단을 뛰어 올라왔다. 화르세인지는 직원의 얼굴에 만 원을 던졌다.
“같은 걸로 하나 더 가져와라. 거스름돈은 주방장에게 주는 팁이다. 주방장에게 전해. 아주 만족스럽다고.”
“네네, 영광입니다.”
화르세인지는 두 번째 햄버거는 음미하며 해치웠다. 배부르니 절로 등이 따뜻하고, 마음이 평화로워졌다.
화르세인지는 2층 구석에 있는 소파 자리로 이동해 누웠다. 잠깐 눈을 붙인 후 도망칠 생각이었다.
하나뿐인 달이 지고 해가 밝았다. 화르세인지는 일어나지 않고 쿨쿨 잤다. 병원을 탈출해 마음이 놓였던 탓이다.
패스트푸드점 2층 계단을 빠르게 뛰어오르는 소리가 나더니 이보배가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이보배는 빠른 속도로 2층을 훑은 후 환자복이 보이지 않자 실망해 계단을 내려갔다. 이때의 이보배는 화르세인지가 옷을 갈아입은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1시간 뒤 화르세인지는 잠에서 깨어났다. 아침으로 밤에 먹은 것과 동일한 메뉴를 주문했지만 오전엔 메뉴가 바뀐다는 얘기에 킹모닝을 먹었다.
2층에 대령된 킹모닝 세트를 보고 화르세인지는 양이 적다고 성질부렸다. 하지만 다 먹으니 은근 배가 찼기에 관대한 마음으로 직원을 용서했다.
쉴 만큼 쉬었고 배도 채웠다. 화르세인지는 카운터에 있는 직원에게 물었다.
“다른 세계로 가는 방법을 알고 있느냐?”
* * *
망나니가 옷을 갈아입었단다. 목격자를 찾을 때 환자복에 중점을 두었으니 뒤졌던 곳을 다시 뒤져야 했다.
‘뺑뺑이 도는 것도 아니고.’
이보배는 현기증이 나 벤치에 앉았다. 이해기가 체력 수치가 딸리는 동생을 걱정했다.
“보배야, 괜찮니? 힘들면 좀 쉴래?”
“아냐, 나 괜찮아.”
“아침부터 아무것도 안 먹고 12시 지났어. 우리야 괜찮지만 넌 아니잖아. 뭐라도 먹어라. 먹고 싶은 거 말해봐.”
“막내 오빠 찾아야 하는데 내가 어떻게 밥을 먹어.”
“내가 말했지. 그러지 말라고.”
이해기가 엄하게 이보배를 꾸짖었다. 그런다고 8년간 쌓아온 사고방식이 쉽게 바뀌진 않는다. 이보배는 미안한 마음에 가까운 패스트푸드점을 가리켰다.
“그럼 간단하게 햄버거 먹자. 날이 좋으니까 벤치에서 먹을까? 나 비타민D가 부족한 느낌이라. 내가 화장실도 다녀올 겸 사 올게.”
“그러자. 난 1966.”
“막내야, 난 트리플불고기.”
이보배는 오빠들의 주문을 접수한 후 패스트푸드점에 들어갔다. 오전 중에 한 번 수색한 곳이라 재수색 대상에 포함되어 있었다.
이보배는 주문에 앞서 2층을 훑었다. 건성으로 사람들 옷 입은 것만 보던 때와 다르게 꼼꼼하게 살폈지만 이한생은 없었다.
‘대체 어딜 간 건지.’
망나니의 피해자가 한 말이 계속 떠올랐다.
화르세인지 뭐시깽인 지금도 걱정된다. 그런데 만약 18살의 이한생으로 길거리에 내던져진 상태라면?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걸 목격하고 기억이 끊겼는데 낯선 거리에서 낯선 옷을 입고, 가족들에게 전화해도 받지 않는다면 심정이 어떨까?
그건 다른 세계에서 깨어나는 것에 필적할 만큼 무서운 일이다.
심지어 8년 동안 세계는 여러 번 격변했다. 2년에 한 번씩 강산이 바뀐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빠르게 발전하고 변화했다.
차라리 계속 망나니인 편이 마음은 덜 짠했다.
‘이러는데 내가 밥이 넘어가겠냐고.’
이보배는 소매 끝으로 눈가를 훔치며 주문 대기열에 섰다. 도저히 햄버거가 넘어갈 것 같지 않아 밀크셰이크나 먹고 말려는 그녀의 뒤로 스태프 실에서 나온 직원들이 지나갔다.
“다른 세계로 가는 방법 묻는데 왜 한강 가보라 그랬어?”
“다른 세계는 당연히 한강이지.”
“이세계는 트럭이지. 환생 트럭 몰라?”
“여기가 일본이냐? 한국은 한강이라고 균열의 날 전부터 정해져 있거든.”
“그럼 지방 사람은 어떡해?”
“그러니까 주인공이 다 서울 시민이잖아.”
“크, 그걸 몰랐네.”
퇴근하는 직원들의 잡담이었지만 듣는 이보배의 신경을 붙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이보배는 대기열에서 빠져나와 직원을 붙잡았다.
“저, 저기 죄송한데요.”
“네, 말씀하세요.”
자본주의의 미소를 잃지 않은 직원이 친절하게 대답했다.
“제가 일부러는 아니고 대화를 들었는데 다른 세계로 어떻게 가냐는 질문을 받으셨나요?”
“아, 네. 그냥 손님이. 아시는 분이세요? 죄송합니다. 저희가 말실수를.”
“아뇨! 아뇨! 제가 지금 사람을 찾고 있는데 들어보니 그 사람인 것 같아서요. 지금도 있나요?”
“아뇨, 한 시간 전에 나갔는데.”
“혹시 질문한 손님이 말투가 이상하고 다른 사람을 아랫것 부리듯 하고 옷은 이렇게 입은 사람이었나요?”
“네, 맞습니다.”
“찾았다!”
이보배는 펄쩍 뛰었다. 한 시간 전이라니, 너무 아까웠다. 옷 갈아입은 것만 알았어도 잡을 수 있었을 것을.
“그 망나, 진상이 어디로 갔는지 아세요?”
“죄송합니다. 가게를 나간 다음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겠어요.”
이보배는 가게 매니저에게 CCTV를 볼 수 있냐 청했으나 거절당했다. 당연한 일이다. 이보배는 일단 경찰에게 전화해 협조를 요청했다.
“큰오빠, 작은오빠!”
햄버거 사러 들어간 애가 빈손으로 나오자 두 오빠가 의아해했다. 그러든가 말든가 이보배는 따끈따끈한 뉴스부터 외쳤다.
“막내 오빠 여기 있었대! 한 시간쯤 전에 나갔는데, 한강 쪽으로 간 거 같아!”
그 뒤론 계속 운이 따랐다. 인근 노점상에게서 망나니가 택시를 타려다 승차 거부당했다는 증언을 들었다.
“계속 승차 거부당하기에, 지하철 타랬더니 역 위치 물어서 가던데요.”
남매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인근 지하철역을 향해 달렸다. 다만 미처 생각하지 못한 복병이 남매의 앞을 가로막았다.
“이게 지하철역이야, 던전이야.”
지하 쇼핑센터와 연결된 지하철역을 보고 이해기가 혀를 내둘렀다. 주말이라 사람이 몰려 직진하는 것도 힘들었다.
가끔 여기서 옷을 구입하는 이보배가 쇼핑센터 지도를 검색해 보여줬다.
“우리가 지금 여기고, 지하철 타는 곳은 여기. 이쪽은 쇼핑센터 서쪽이랑 동쪽이고.”
“……한생이가 지하철을 탔을까? 여기저기 헤매고 있을 것 같은데.”
“그럼 우리야 좋지. 하지만 막내 오빠는 햄버거도 사 먹었어. 속단하면 안 돼.”
‘돈은 어디서 난 건지.’
제발 절도만 아니길 빌 뿐이다.
“여기서 어떻게 찾는담?”
이해기가 한숨을 쉬었다. 도심 좀 다녀본 사람도 기가 질릴 인파와 꼬인 동선이었다. 항간에선 마굴이라 불리는 곳이니 이한생이 지하철을 포기하고 빠져나갔을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했다.
남매는 이번에도 둘로 나뉘어 찾기로 했다. 이보배는 이번에도 이귀한과 같이 움직였다. 이리저리 사람에 치이는 이보배를 보다 못한 이귀한이 멈춰 섰다.
“막내야, 잠깐만.”
“왜 그래?”
“시도만 해볼게.”
영문을 모르겠지만 이보배는 일단 이귀한의 말대로 멈췄다. 그랬더니 갑자기 기분이 나빠졌다.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악취를 맡은 것도 아닌데 속이 메스꺼웠다.
이보배만 그런 게 아니었다. 남매 주위를 시작으로 콩나물시루처럼 빽빽한 사람들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우엑.”
이귀한이 헛구역질했다. 이보배는 깜짝 놀라 큰오빠를 부축했다.
“큰오빠, 왜 그래? 나도 기분이 좀 이상한데 어디서 가스라도 새나?”
“막내야, 나 한 대만 때려줄래?”
“속이 안 좋아? 화장실 갈까?”
이귀한의 속이 뒤집힌 것과 별개로 이보배의 기분은 평소대로 돌아왔다. 불쾌해 보였던 주위 사람들도 다시 평범한 표정을 지었다.
“사람이 너무 많아.”
“사람 멀미하는구나.”
“싹 쓸어버리고 싶다.”
무슨 짓을 했는지 이귀한의 인내심이 임계점을 돌파했다. 기분이 갑자기 나빠졌던 일과 연관된 것 같았다.
“그치만 그러면 안 되잖아. 그러니까 정신 들게 한 대만.”
“큰오빠, 그건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아.”
이보배는 이귀한을 때리지 않고 그나마 사람 없는 구석으로 데려갔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귀한을 구성하는 99퍼센트는 파괴와 살육을 갈구하는 어둠이다. 이귀한에게 무작정 참으라고만 해선 안 된다. 주위에서 사전에 막아줘야 하는 것이다.
‘이래서 작은오빠가 큰오빠를 내버려 두지 않았구나.’
칭찬의 박수를 아낌없이 퍼붓는 이유가 있었다. 이보배는 이귀한을 달랬다.
“먹으면 좀 나아진댔지? 내가 시원한 음료 사 올 테니까 여기서 기다려.”
“그냥 때려.”
“아냐아냐, 큰오빠는 참을 수 있어. 날 위해서라도 참아줄 거지? 나 여기서 옷 자주 산단 말이야.”
이보배가 상표 없는 티를 펄럭이며 배시시 웃었다. 이귀한의 얼굴이 진지해졌다.
“참아볼게.”
“빨리 사 올게, 얌전히 기다려야 돼. 어디 가면 안 돼.”
이보배는 아이를 혼자 두고 나가는 부모처럼 몇 번이고 뒤를 돌아봤다. 잠깐이겠지만 이귀한을 혼자 두려니 불안했다.
다행히 이귀한은 잘 참았다. 지나가는 사람 사이에서 눈이 마주칠 때마다 손을 흔들어 참고 있음을 알렸다.
생과일주스를 파는 가게를 찾아 주문하자 눈 깜짝할 사이에 음료가 나왔다. 음료를 챙겨 돌아갔더니 이귀한이 두 팔 벌려 환영했다.
“빨리 왔네!”
“말했잖아, 빨리 온다고.”
이귀한은 싱글벙글 웃으며 키위 주스를 마셨다. 이보배도 차가운 레모네이드를 마시다 아랫배에서 전해지는 조짐에 인상을 썼다.
“큰오빠, 나 화장실 좀.”
“아까 안 갔어?”
“주문하고 가려다 막내 오빠 얘기 듣는 바람에 깜빡했어. 화장실은 사람이 많아서 좀 기다려야 하는데 참을 수 있지?”
“응.”
이귀한은 자신 있게 고개를 끄떡였다. 이보배 말대로 시원한 음료를 마시니 기분이 좀 나아졌다. 배변 활동에 좋다는 키위니까 내일도 똥을 쌀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 더 기분이 좋아졌다.
큰오빠의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고 이보배는 안심했다. 그렇다고 마냥 안심해선 안 된다.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전화하라 신신당부한 후 화장실에 줄 서서 기다렸다.
운 좋게도 우르르 빠져나와 예상만큼 오래 기다리진 않았다. 세면대에서 손을 씻은 이보배의 핸드폰이 울렸다.
‘최요한 씨네.’
이한생을 발견했다는 연락일까 하는 기대가 들었다. 이보배는 화장실을 빠져나와 근처 벽에 기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이보배입니다.”
-안녕하세요, 최요한입니다. 계신 곳에 거의 도착했는데요.
“아, 네! 저희 지금 XX역 지하상가에 있어요.”
-이한생 씨를 찾으신 것 같아 다행이네요. 별다른 일은 없으시죠?
“네? 작은오빠가 막내 오빠를 찾았나요?”
-어? 제가 봤을 땐 이보배 씨와 이한생 씨가 가까이에 계신데요. 아주 근접해요.
그 말을 듣자 이보배의 눈이 어느 때보다 빠르게 움직였다.
사람, 사람, 사람, 낯선 사람, 모르는 사람, 처음 보는 사람, 많고 많은 사람.
그 사람들 속에서 이보배는 귀신같이 아는 사람을 찾아냈다.
“막내 오빠!”
부르면 도망갈 거란 생각을 할 겨를도 없었다. 이보배는 인파의 흐름에 끼어들어 정면으로 부딪치며 이한생에게 다가갔다. 그녀를 발견한 망나니가 얼굴을 구기더니 도망가려고 했다.
“막내 오빠야!”
이보배가 애타게 외치자 체념한 듯 몸을 그녀 쪽으로 돌렸다.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잡히면 열 대다. 때리기 전에 안아주는 건 반품 불가 옵션이고.
한 걸음, 두 걸음, 이보배와 막내 오빠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거리가 되었을 때 공간이 압축되었다.
“어?”
놀란 이보배가 손을 뻗고 이한생도 그녀를 향해 달려왔다. 하지만 남매가 서로를 붙잡는 것보다 세상에 구멍이 뚫리는 게 더 빨랐다.
* * *
“어?”
“긁었냐?”
공용 주차장에 주차 중이던 최요한이 혀를 찼다. 박마노가 긁힌 차에 끼워둘 용도로 최요한의 명함을 뒤졌다. 최요한이 한숨을 쉬었다.
“균열입니다. 이보배 씨와 이한생 씨, 이귀한 씨의 마커가 동시에 사라진 걸 보면 흡수형이네요.”
흡수형 균열은 생성과 동시에 주위 사물이나 생명체를 흡수한다. 민간인 피해가 가장 심한 균열 유형이었다.
박마노는 마력과 스킬 쿨타임을 확인했다. 관할 관리국과 길드엔 시민들이 알아서 신고할 것이다. 현장과 가까운 이쪽은 얼른 가 어떤 균열인지 확인하는 게 정답이고. 흡수형이라 피해자가 많을 테니 공략 가능한 균열이면 얼른 들어가 처리하면 더 좋다.
“이해기는?”
“빠른 속도로 이동 중입니다. 균열 쪽으로 가고 있겠죠.”
“균열 앞에서 대기하라고 전화해. 우리도 간다고.”
“기다릴까요?”
한 번 균열로 가족을 잃은 남매다. 생산계 막냇동생과 각성했지만 정신이 온전치 않은 동생, 균열에 빨려들어 실종되었다가 겨우 돌아온 형까지 동시에 빨려 들어갔는데 얌전히 기다릴까?
박마노는 명쾌하게 대답했다.
“빨리 찾고 싶으면 기다리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