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in Character’s Little Sister RAW novel - Chapter (39)
12. 에필로그
프린세스 프린스 프린세스의 출석 보상을 놓친 이귀한의 분노는 어마어마했다. 이해기는 마왕의 분노에 정면으로 맞서려 했다. 그러나 이보배와 화르세인지도 그의 편이 아니었다.
결국 이해기는 백기를 들고 모두의 분노가 풀릴 때까지 머슴을 자처하게 되었다.
“빨래가 왜 이렇게 많지? 이전의 두 배는 되는구나.”
“정확해. 집에 사람이 넷이라 두 배가 되었어.”
이씨 집안의 공식 머슴 이해기가 빨래를 개면서 투덜거렸다. 이보배는 소파에 누워 이해기의 불평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뉴스를 봤다.
-신라 길드가 고의적으로 짐꾼과 채집꾼을 낙오시켜 마감 시간을 늘린 의혹이 사실로 밝혀지며 사회에 큰 파장을 주고 있는 가운데, 균열 및 헌터 관리국에선 여죄 여부를 엄중 수사하겠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습니다.
“꼴좋다.”
이해기가 피식 웃었다.
“신라도 작은오빠 적이었어?”
“적에도 못 미치는 송사리였다. 그들로 인해 죽을 뻔했던 건 맞지만 알아서 자멸하니 신경 쓸 필요 없지.”
이보배가 느낌이 안 좋다며 챙겨준 C급 포션이 아니었다면 이해기는 낙오되어 균열에서 명을 달리했을 것이다. 혼자 남았을 동생을 생각하면 화가 나지만 결국 각성하고 살아나왔으니 상대할 가치도 없었다.
“아라크네에게 정보 좀 찔러줬더니 발각되는 게 빠르긴 하네. 원래는 2년 뒤에 밝혀지는데.”
“사람이 어떻게 저런 짓을 할까.”
“사람이니까 할 수 있는 거다. 그러니 보배야, 너도 사람의 선의를 너무 믿지 말거라. 네가 순수한 마음을 유지했으면 좋겠다 싶다가도 워낙 세상이 흉흉하니 최소한의 경계는 했으면 좋겠다. 너도 알다시피 오빠가 트라우마가 있어.”
“응, 간헐적 과보호.”
뉴스를 틀어두면 이해기가 계속 과보호를 할 것 같아서 이보배는 채널을 돌렸다. 평일 오전이라 그런지 채널을 아무리 돌려도 재밌어 보이는 프로가 없었다.
그때 이보배와 이해기의 핸드폰이 동시에 울렸다. 이귀한이 게임 초대 문자를 보낸 것이다.
“형한테 이 게임 괜히 알려줬어. 과금을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모른다.”
“큰오빠는 그 게임이 그렇게 재밌대? 하는 거 구경했는데 별 재미없던데.”
“사람들이 이세계에서 온 플레이어에게 친절한 게 마음에 든대.”
“…….”
내막을 생각하면 슬픈 이야기였다. 이보배는 이귀한이 용돈을 모두 게임에 쏟아붓더라도 봐주기로 했다.
“큰오빠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글쎄다. 내게도 말해주지 않으니 좀 더 두고 보도록 하자꾸나.”
“알겠어.”
리모컨을 누르며 방황하던 채널 유랑자 이보배는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서 손을 멈췄다. 스릴러 영화 예고편이 나오는데 무척 재밌어 보였다.
“우리 저거 보러 갈까?”
“저거 주인공이 범인이다.”
이보배는 리모컨을 이해기에게 집어 던지려다 참았다. 이해기가 분노한 동생을 신경 쓰지 않고 말을 이었다.
“상업성과 작품성 모두 만족시킨 명작이라고 재방송을 얼마나 자주 해줬는지 모른다. 난 지겨워.”
“이래서 회귀자는…….”
어지간하면 를 쓰지 않겠다는 결심이 이럴 때마다 흔들렸다. 이보배는 복식호흡으로 마음을 가다듬었다.
다음 영화 소개가 이어졌다. 눈을 사로잡는 화려한 액션과 CG의 향연에 이보배가 눈을 크게 떴다. 액션 감수를 검성이 맡았다는 대목에선 귀를 의심했다.
“검성이 영화도 찍어?”
정확하겐 찍은 게 아니라 액션 감수를 맡은 것이다. 하지만 세계 최강이라 불리는 헌터가 균열 공략하기도 바쁜데 영화 액션을 감수했다는 얘기에 절로 관심이 갔다.
“아, 저거. 천만 관객 찍은 영화다.”
“우와, 재밌나 보네. 스포일러 금지. 절대 금지.”
“그런데 저 영화.”
“안 들려! 안 들려! 아아아아! 하나도 안 들린다!”
이해기가 또 뭐라고 말할까 봐 이보배는 귀를 막고 ‘아’만 외쳤다. 이해기가 입을 다무는 것을 보며 귀에서 손을 떼자 이해기가 또 영화 관련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
이보배는 미래에서 다 보고 온 회귀자의 스포일러 테러를 피하기 위해 소파에서 일어났다.
이귀한은 초대 문자를 돌린 후 1일 8시간 수면을 채우기 위해 낮잠을 잤다.
이한생은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에게 도시락 배달 가는 봉사에 따라갔다. 이보배는 말리고 싶었지만 화르세인지가 비각성자에게 맞을 능력치는 아닌지라 어쩔 수 없이 허락했다.
어쨌든 집엔 이해기와 이보배만 깨어 있다. 이해기는 콧노래를 부르면서 집안일을 하고 있고 이보배는 한가하고 심심하다. 이해기에게 말을 걸면 스포일러가 튀어나올까 봐 놀자고 할 수도 없었다.
‘나도 낮잠 잘까? 아냐, 그건 아니지.’
결국 이보배는 가볍게 산책을 다녀오기로 했다.
“저녁 먹기 전에 돌아오렴. 오늘 저녁 반찬은.”
“저녁 반찬 스포일러도 금지야!”
반찬은 먹고 싶은 걸 요청한 게 아니면 장바구니 내용물과 주방에서 풍기는 냄새로 알아맞히는 것이 인생의 재미 아니겠는가.
설렁설렁 공원을 산책하며 퇴직자의 참맛을 누리던 이보배가 수상한 소리를 포착했다. 따라오는 발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뒤를 돌아봤다. 그녀의 뒤엔 아무도 없었다.
‘잘못 들었나?’
설마 대낮부터 여자 뒤를 쫓는 변태가 있다고 생각하고 싶진 않았다. 찝찝해 산책할 마음이 뚝 떨어졌다. 이보배는 집으로 돌아가려고 걸음을 재촉했다.
“악!”
그 순간 뒤통수에서 강렬한 충격이 전해지며 눈앞에 불꽃이 튀었다. 이보배는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 * *
‘여기는…….’
의식이 돌아온 이보배는 힘겹게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머릿속이 징 울리면서 지끈거렸다. 얻어맞은 뒤통수는 피부가 터졌는지 화끈거리면서 아팠다.
‘여기가 어디지.’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해 보이지 않는 건 줄 알았는데 주위가 어두웠다. 이보배는 움직이려다 손이 뒤로 묶인 상태임을 깨달았다. 그나마 다행히 다리는 묶이지 않았다.
이보배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처음엔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눈이 어둠에 적응하자 가까운 것은 대충 보였다.
누워 있는 그녀에게 가장 가까운 건 바닥이었다. 콘크리트 재질의 바닥에선 특유의 먼지 냄새가 났다. 어딘가의 건물 안인 것 같았다. 어두워서 문은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누가.’
이보배는 입술을 꽉 깨물고 울상을 지었다. 도대체 누가 무슨 목적으로 그녀를 기절시켜 감금했단 말인가.
‘인신매매?’
생산계 각성자 인신매매는 세계적인 인기 사업이라던 박마노의 말이 떠올랐다.
이보배가 각성자인 건 동네 사람이라면 대부분 알았다. 인신매매를 목적으로 한 납치일까? 각성자 범죄율 최하위를 자랑하는 대한민국에서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이보배는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참고 또 다른 가능성을 생각해 보았다.
‘사적인 원한은 없지. 내가 얼마나 바쁘게 살았는데.’
다른 사람 원한 살 시간도 없을 만큼 기계처럼 일만 했다. 이보배는 가족 중 원한 살 만한 사람이 없는지 생각했다.
‘큰오빠는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었으니까 패스. 작은오빠는 가능성이 있네.’
수시로 적이 아니라는 둥 적이 있었다는 둥 말하는 이해기다. 이한생의 인간관계를 되짚어볼 것 없이 이해기였다. 무조건 이해기였다.
‘아니야. 그것도 작은오빠가 헌터로 활동한 미래 얘기잖아. 작은오빠가 얼마나 성실하고 착하게 살았는데.’
회귀한 이해기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몸을 사리는 건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시스템이 알고 이보배가 알았다.
여러 가지 가능성을 점쳐 보던 이보배는 밖에서 들려오는 발소리에 숨을 죽였다. 녹이 슨 무언가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열렸다.
기절하고 시간이 얼마 흐르지 않았는지, 아니면 하루 이상 지났는지 밝은 빛이 쏟아졌다. 눈을 감고 기절한 척하려던 이보배는 익숙한 목소리에 저도 모르게 눈을 떴다.
“돼지야!”
도시락 배달 봉사 활동을 간 화르세인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강한 빛이 들어오는 바람에 이보배는 눈을 찡그렸다.
“막내 오빠! 구하러 와준 거야?”
반색한 그녀를 비웃듯 이한생이 앞으로 고꾸라지며 쓰러졌다. 뒤에서 누군가가 이한생을 걷어찬 것이다.
“아니, 나도 잡혔다.”
‘에라이.’
한심한 건 한심한 거고 걱정되는 건 걱정되는 거다. 막내 오빠까지 납치당했단 사실에 이보배의 심장이 거칠고 불길하게 뛰었다.
“벌써 깨어났나? 너무 약하게 친 거 아니야?”
“어차피 깨울 거 뭐 어때.”
“감히 나를 걷어차다니! 용서하지 않겠다!”
화르세인지가 외치자 걷어차는 소리가 들렸다. 망나니가 신음했다.
“이 새낀 왜 이렇게 팔팔해? 돌았다더니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되나?”
문이 닫히고 건물 조명이 켜졌다. 천장, 벽과 바닥만 있는 텅 빈 건물이었다. 사용하지 않는 창고 같았다.
이보배는 납치범들을 파악하기에 앞서 이한생의 안위를 살폈다. 이보배처럼 손이 뒤로 묶인 화르세인지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납치범은 모두 다섯이었고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다. 무기를 장비한 것이 헌터 같았다.
“누구세요? 저희한테 왜 이러세요? 저희 집 돈 없어요. 진짜 없어요.”
“납치당했는데 말도 안 더듬네? 무섭지도 않은가 봐? 이 집안은 핏줄부터 재수가 없나.”
다섯 명 중 가운데에 서 있던 납치범이 이보배에게 건들거리며 다가왔다. 그러더니 이보배를 걷어찼다. 난데없는 폭력에 이보배는 비명을 질렀다.
“꺄악!”
“네가 할 일은 하나야. 이해기한테 살려달라고 비는 거.”
“돼지를 건드리지 마라!”
다가온 납치범이 손짓하자 네 명이 이한생을 구타했다. 이자가 주범이거나 리더인 듯했다.
이보배는 아픈 것도 잊고 외쳤다.
“때리지 마요!”
“네 걱정이나 해.”
납치범이 이보배를 걷어차고 발로 밟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무방비 상태에서 폭력에 노출되어 그저 무서웠다. 살려달라고 빌지 않은 건 마찬가지로 저항하지 못하고 맞는 막내 오빠 때문이었다.
“도대체 왜 이러시는 거예요!”
“네 오빠 이해기. 그 새끼가 관리국에 우릴 꼰지른 걸 모를 줄 알아? 처음 볼 때부터 재수 없는 새끼였는데 감히 고용주를 배신해?”
“우리 오빤 누구 배신할 사람 아니에요!”
납치범이 이보배의 머리카락을 잡고 강제로 위로 끌어 올렸다. 이보배는 이를 악물고 비명을 참았다.
“쥐뿔도 없는 짐꾼 새끼를 고용해 준 게 누군데 유언비어를 퍼뜨려 길드를 배신해?”
납치범이 이보배의 얼굴에 침이 튀길 정도로 격렬하게 외쳤다.
“이해기 그 새끼가 짐꾼들 선동하고 쑤시고 다녀서 증거 모아 관리국에 찌른 거 모를 줄 알아? 지가 찌른 거 감추려고 사계절을 통해 관리국에 전달했지! 여동생이 사계절 다닌다고 잘난 척하더니 너 사계절 그만뒀다며? 이젠 문제 될 것도 없지.”
납치범의 말을 듣고 나니 이보배는 대충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요약하자면 이거다. 신라 길드는 갑질이 심했고 균열에 일부러 사람을 낙오시키는 등의 흉악 범죄를 저질렀다.
이번에 그 사실이 들통났는데 이 저열한 악당들은 이해기가 증거를 모아 사계절에 찔렀다고 오해한 것이다. 그래서 보복하기 위해 이보배와 이한생을 납치한 것이고.
사계절 길드가 복수할까 무서워 이보배가 퇴사한 후에 납치했다는 점에서 1류를 깎는다.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재수 없다는 이유로 이해기를 고발자로 지목한 부분에서 또 1류를 깎는다.
마지막으로 저항 못 하는 인질을 두들겨 패는 점에서 1류를 깎는다.
이해기 말대로 상대할 가치도 없는 송사리였다. 삼류 악당이란 말도 아까웠다.
납치범들이 너덜너덜해진 화르세인지를 끌고 와 이보배 옆에 두었다. 코피가 터져 피범벅이 된 얼굴을 보자 이보배는 참지 못하고 울상을 지었다.
송사리가, 아니, 송사리라고 하는 건 송사리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저열하고 되다 만 삼류 악당이 핸드폰으로 어딘가에 전화했다. 인질을 잡았으니 이해기를 불러오려는 속셈이겠지만 이해기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통화 중? 하하!”
저열한 새끼가 이보배를 발로 툭툭 건드렸다.
“잘나신 이해기가 통화 중이라는데? 동생이 납치된 것도 모르고 어디에 그렇게 전화하고 있을까? 내가 다시 걸었을 때 이해기가 받지 않으면 그때마다 한 대다.”
요즘은 불량배도 그렇겐 삥을 안 뜯는다. 납치범들이 이보배와 이한생을 죽이지 않고 이해기를 기다릴 셈인 것 같아 이보배는 안도했다.
‘누구든 오면 너흰 끝이야.’
이해기든 이귀한이든 한 명만 오면 납치범들은 끝난다. 신라 길드에 소속된 헌터들이니 레벨이 적잖이 높을 테지만 오빠들이 질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저열한 새끼가 다시 전화를 걸었다. 이보배가 들으라는 듯이 스피커로 돌려두었고 이번에도 통화 중이란 안내 음성이 떴다.
“들었어? 이걸로 한 대다.”
저열한 새끼가 다시 이보배의 머리를 잡아당겨 끌어 올렸다. 따귀를 때리려는 듯해 이보배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부르릉.
멀리서 희미하게 차 소리가 들렸다. 저열한 새끼도 들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지나갈 차라고 여긴 듯했다. 그러나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또 올 놈 있냐?”
“없어.”
“젠장, 여기 아무도 안 쓰는 곳 맞지?”
“차명으로 빌린 곳이야. 우리 말고 다른 사람이 올 리 없어.”
“그럼 저건 뭐야!”
차 소리는 점점 가까워지더니 바로 건물 밖에서 들렸다.
납치범 중 하나가 나가서 확인하려는데 큰 소리를 내며 창고 문이 부서졌다. 문을 부수고 들어온 차에서 이해기가 내렸다.
“발견했다. 고맙다, 아라크네.”
“네놈 이해기! 여길 어떻게 알고!”
저열한 새끼의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오래 놀라진 않았다. 저열한 새끼가 동료 납치범에게 눈짓했다. 저열한 새끼가 말 그대로 저열하게 웃었다.
“꼴에 B급으로 각성했다지? 그래 봐야 신라 길드의 정예를 상대할 순 없을 거다.”
“둘째야, 얘네 알아?”
“모르는데.”
“쟤네는 널 알잖아.”
“너무 하찮아서 몰라.”
“왜 하찮은 게 막내랑 셋째 납치하게 뒀어?”
“끝낸 뒤에 혼나면 안 될까?”
차에서 뒤이어 나온 이귀한을 본 저열한 새끼가 낄낄 웃었다.
“귀환자라고 했던가? 각성자가 둘이면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으냐? 동생들이 다치는 걸 보고 싶지 않다면 당장 무릎 꿇고 빌어라.”
납치범 넷이 이귀한과 이해기를 포위했다. 마법사도 있는지 거리를 벌려 스킬을 준비하는 모습이 심상치 않았다.
이보배와 이한생을 발견한 이귀한의 눈에서 빛이 사라졌다. 어둠 속에서 요사스럽게 빛날 때보다 빛이 사라지는 게 더 무서웠다.
“둘째야, 자신의 일은.”
“스스로 하자. 알아서 척척척. 스스로 어른이.”
노래가 끝나기 전에 이해기가 움직였다. 삽시간에 넷을 쓰러뜨린 이해기가 저열한 새끼에게 고개를 돌렸다. 저열한 새끼가 이보배의 옷자락을 잡고 강제로 일으켜 목에 칼을 들이댔다.
“말도 안 돼! 어떻게 너 따위가 넷을 동시에!”
이해기가 한숨을 쉬면서 다가왔다. 이보배는 목에 드리워진 칼날의 서늘함을 피부로 느꼈다.
“다가오면 죽여 버린다!”
“이러지 마세요. 제가 우리 집안 가장이란 말이에요.”
납치하기 전 목표에 대한 사전 조사는 필수다. 이미 알고 있을 것 같지만 혹 모르니 한번 주지시킨 다음 이보배가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꿇어, 새끼야.”
이보배는 을 발동했다. 천하의 박마노도 무릎 꿇린 SS급 스킬이다. 삼류도 되지 못하는 저열한 새끼가 버틸 수 있을 리 없었다.
“이게 무슨!”
저열한 새끼가 칼을 떨어뜨리고 바닥에 무릎 꿇었다. 이보배는 풀려나자마자 오빠들에게 달려갔다. 이보배와 교환하듯 이해기가 저열한 새끼에게 쇄도했다.
저열한 새끼는 몇 대 맞자 바로 기절했다. 이귀한이 이보배의 묶인 손을 풀어주었다. 이보배는 손이 풀리자마자 포션을 꺼내 화르세인지의 상태를 살폈다.
“어헝헝, 막내 오빠 일어나.”
참았던 눈물이 쏟아졌다. 몸이 흔들리자 망나니가 신음을 내며 눈을 떴다. 이보배는 이한생의 입에 포션을 꽂아 넣고 전신에 포션을 뿌렸다. 망나니는 입에 물린 포션병을 뱉었다.
“어떻게 된 것이냐.”
“둘째가 싼 똥 스스로 치웠어!”
실제론 남이 싼 똥이지만 어쩌겠는가. 상대가 이해기를 지목했으니 이해기가 똥 주인이다.
이보배가 비축한 B급 포션을 썼기에 이한생의 몸은 깨끗하게 나았다. 이보배는 막내 오빠의 몸 상태를 여러 번 확인한 후에야 자신의 몸을 치료했다.
“어떻게 온 거야? 우리가 납치된 것도 몰랐잖아.”
그러다 이보배는 이한생의 핸드폰이 위치 추적이 된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아, 막내 오빠 폰을 위치 추척한 거야?”
“아니다. 한생이 핸드폰은 납치된 장소에 떨어져 있었어.”
“그럼 어떻게 납치된 걸 알았어?”
이해기가 납치범들을 한데 모아 손과 발을 묶었다. 그들이 인벤토리에서 날붙이를 꺼내 밧줄을 자르지 못하도록 신경 써서 묶으며 이보배의 질문에 대답했다.
“최요한이 너와 한생이가 부상과 기절 상태라고 전화해서 알려줬다. 최요한에게 방향을 듣는 걸론 빨리 찾을 수 없어 아라크네에게 부탁했지. 아라크네가 위치를 확인하는 게 더 빠르니까.”
아라크네가 최요한, 이해기와 동시에 통화하면서 길을 안내해 줘 도착할 수 있었단다.
‘감사 인사 해야겠네.’
쿠키와 음료수를 바쳤는데 또 감사할 일이 늘었다. 이번엔 최요한에게 무엇을 바쳐야 할 것인가. 피가 엉겨 붙은 머리를 정돈하는데 이해기가 납치범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더니 발을 잡았다.
“끄으으윽!”
똑. 똑. 과일 따는 것처럼 단조로운 손놀림에 납치범들의 발목이 부러졌다. 싸늘한 표정으로 다리 열 개를 모조리 부러뜨린 이해기가 중얼거렸다.
“내가 동생을 잃고 배운 게 하나 있지.”
원하던 것이 모두 충족된 완벽한 일상에 감춰왔던 모습이 드러났다.
“복수는 빨리하면 안 돼.”
이해기는 웃지 않았다. 복수는 즐거운 일이지만 웃어선 안 된다. 감정에 몰입해 지나치게 빨리 끝내 버리는 실수는 한 번으로 족했다.
그는 더 잘하기 위해 돌아온 회귀자였다. 이귀한의 말대로 1+1을 할 생각은 없지만 먼저 건드린 놈이라면 참지 않아도 괜찮았다.
이해기의 낯선 면모를 보고 이보배는 눈을 깜빡였다. 화르세인지는 인상을 썼다.
“사기꾼이 아니라 도살자였느냐.”
“나! 나나! 둘째야, 그거 내 전문!”
“나도 꽤 하는데 나한테 맡기면 안 돼, 형?”
“넌 몸만 털잖아! 난 영혼까지 알뜰히 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