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in Character’s Little Sister RAW novel - Chapter (93)
공의 여동생이다
7
안경원숭이 장편소설
목차
외전 11. 사계절 길드 (2)
외전 12. 이상한 나라의 양아치
외전 13. 뒷수습 (1)
외전 11. 사계절 길드(2)
[레벨이 올랐습니다!]레벨이 올랐다는 반투명한 알림창이 뜸과 동시에 이보배의 몸에 누적된 육체, 정신 피로가 싹 가셨다.
파티창엔 레벨이 표시되지 않지만 사계절 길드 마스터들은 그녀의 레벨 업을 귀신같이 알아차렸다.
“레벨 업 축하드립니다.”
“축하해요!”
“이번이 네 번째인가? 빠르네.”
“전부 이보배 씨가 노력한 성과입니다.”
이보배가 던전에 들어온 지 5일이 지났다. 거의 매일 레벨 업 한 것이나 마찬가지니 폭렙도 이런 폭렙이 없었다.
이보배는 이 모든 공을 한현우에게 돌렸다.
“전부 한현우 씨 덕분이에요! 제게 이런 기회를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기회는 노력하는 사람에게 찾아오는 법입니다.”
이로써 이보배의 레벨은 29가 되었다.
정신력은 유독 능력치가 잘 올라 홀로 독보적이고 마력도 팍팍 올라 어지간해선 마력 부족할 일은 없을 것이다.
추효풍은 혹시라도 분위기 띄울 일 있으면 뿌리려고 가져온 꽃잎을 레벨 업 축하용으로 뿌렸다.
아끼는 동생의 연애를 포기하니 마음이 편안했다.
화장실에서 나온 사람처럼 시원하게 웃던 추효풍의 미소가 갑자기 사라졌다.
“입구 쪽 바람이 이상한데.”
“리젠됐어?”
“한 마리인 것 같다. 나랑 시우가 다녀올게.”
질풍 방패가 빙제를 옆구리에 끼더니 바람처럼 사라졌다. 이보배는 둘을 걱정했지만 정작 빙제의 연인인 나여름과 길드원인 한현우는 태연했다.
“혹 모르니까 나도 이 근처 돌아보고 올게. 입구에 설치할 테니까 건드리지 말고.”
나여름이 공방을 나가며 입구에 피를 뿌렸다. 피는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거리다가 바닥에 흡수되어 사라졌다.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소멸시키고.”
그 말과 함께 나여름도 통로 저편으로 사라졌다.
이보배는 긴장해서 몸을 움츠렸다. 힘의 차원이 다른 큰오빠와 세계를 구했다는 작은오빠가 늘 곁에 있어서 잊고 있었던 공포가 떠올랐다.
“는 여름 누나의 직업인 블러드 워리어의 스킬입니다. 피를 사용해 대상을 속박하는 가시 함정을 설치할 수 있죠. 시전자의 피는 물론이고 타인의 피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유용하고 좋은 스킬입니다.”
건드리지 않으면 안전하다며 한현우가 이보배를 안쪽으로 이끌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형이랑 누나들은 강하고 저도 1인분 몫은 합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보배 씨를 지키겠습니다.”
“그게 아니라, 제가 이런 대우를 받아도 되나 싶어서요.”
호위 자체는 당연히 받아야 한다. 이보배는 실시간으로 세계를 구하고 있고 이보배의 안전이 곧 세계의 안전이다.
이보배는 타인의 목숨을 짓밟고서라도 악착같이 살아야 할 의무가 있었다.
하지만 경호원이 사계절의 길드 마스터 급이 되니 슬슬 부담스럽다. 한현우가 제공해 준 히든 피스에 길드 마스터 호위까지 곁들어지니 이보배의 양심이 아프다고 외쳤다.
“제가 한 것도 없는데 너무 과분하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 그, 그래서 더 열심히 하고 있지만요! 다음에 더 좋은 기회 주셔도 염치없이 받을 거긴 해도요!”
왜 나에게 꿀 찍은 떡을 주는지 모르겠지만 주는 대로 받아먹겠다! 나중에 후회해도 나는 모른다! 떡은 최대한 맛있게 먹어줄게!
이보배가 비굴한 속내를 감추지 않자 한현우는 눈을 깜빡였다. 그녀의 자존감이 낮다는 나여름의 말이 저절로 떠올랐다.
“이보배 씨는 이런 대우를 받아도 됩니다. 마땅합니다.”
“제가 뭘 했다고요. 사계절 다닐 때도 솔직히, 한현우 씨 말대로 자기 계발도 안 했잖아요. 물론 나름 포션 1팀 에이스로서 돈 받은 만큼은 기여했다고는 생각해요! 딱 그 정도라 그렇지.”
이보배가 자조하자 한현우가 반박했다.
“지금은 아니지 않습니까. 한동안 정체기가 있었지만 이보배 씨는 자신의 길을 찾아 성장하고 있습니다. 전 이보배 씨가 저와 동등하거나 더 위대한 연금술사가 되리라 확신합니다. 왜냐면.”
고개를 숙였던 한현우가 이보배와 눈을 맞췄다.
“왜냐하면…….”
이보배는 강바닥에 가라앉은 차돌처럼 물기 어리고 새까만 그의 눈동자를 들여다보았다.
“이보배 씨는 이한생 씨를 구했으니까요.”
이보배보다 앞서 이한생이 그녀를 구했다. 이보배가 당연한 일이라고 답하려는데 한현우가 입술을 달싹였다. 이보배는 입 다물고 한현우를 기다렸다.
입술을 달싹인 한현우는 쉽게 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한참 후에야 그가 작은 목소리로 고백했다.
“저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유명 헌터의 개인사는 당사자가 원하지 않아도 공공재처럼 취급된다.
이보배가 관심 갖지 않아서 그렇지 인터넷에 검색해 보면 온갖 과거사가 진짜인 듯, 혹은 지어낸 얘기인 듯 상세하게 튀어나왔다.
그렇게 관심 없는 이보배도 한현우에 대해선 어느 정도 주워들은 이야기가 있었다. 각성 직업이 같은 데다 회사의 높으신 분이니 듣기 싫어도 정보가 들렸다.
한현우는 부잣집 도련님이었다. 위로 누나가 셋 있는데 한 명은 균열의 날 사망했다. 부모와는 사이가 아주 좋지 않아서 거의 의절한 수준이란다.
“저는 막내 누나를 구하지 못했어요.”
“그건 한현우 씨 잘못이 아니에요.”
이보배가 멍청하게 도망치지 못해 이한생이 그녀를 감싸다가 다친 것이 그녀의 잘못이 아니듯.
한현우가 누나를 지키지 못한 것도 그의 잘못이 아니었다.
심지어 한현우의 누나가 몬스터에게 습격당할 때 그는 누나와 다른 장소에 있었다. PC방에서 게임을 하다가 각성했으니까.
다른 장소에 있던 누나의 죽음이 왜 그의 탓이겠는가.
세계에 금이 간 날 벌어진 비극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이보배 자신이 생각해도 뻔한 위로였지만 이것 말곤 할 말이 없었다.
한현우는 눈살을 찌푸렸다. 뻔한 위로 때문에 그런 게 아니었다.
“저는 이보배 씨와 다릅니다. 저는 의사에게 항의하지 않았어요. 병원은 환자로 가득했고 의료진은 고장 난 로봇처럼 움직였죠. 누나는 너무 심하게 다쳐서 치료해도 가망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의사가 누나의 치료를 포기한다고 말했을 때 동의했습니다. 그냥 받아들였습니다.”
균열의 날은 누구에게나 크든 작든 흉터를 남겼다. 한현우가 눈을 감고 심호흡했다.
“환자가 계속 밀려들었어요. 병상은 물론이고 복도에도 자리가 없어 사람들이 쓰러져 있었습니다. 의료진, 약품, 기계 모든 것이 부족한 상황에서 밖엔 몬스터가 돌아다녀 부족한 것들이 보충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누나 같은 중환자를 치료하느니 살 가능성이 높은 다른 환자를 치료하는 게 낫잖아요. 의사 판단은 현명했습니다. 효율적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한 번도, 그걸 후회한 적 없었습니다.”
후회하지 않는다는 한현우의 몸이 떨렸다. 이보배가 위로하기 전에 그는 자력으로 극복했다. 한현우의 바둑알처럼 까만 눈동자가 이보배를 담았다.
“면접에서 이보배 씨를 뵙기 전까지는요.”
한현우는 이보배가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는 면접날을 거론했다.
이보배는 필사적으로 머릿속 기억의 서랍장을 뒤졌다. 뒤엎고 헤집다 마침내 꽁꽁 숨겨둔 실마리를 발견했다.
그 실마리를 잡아당기니 새까맣게 잊은 게 거짓인 양 생생하게 떠올랐다.
급하게 마련해 훔쳐 입은 것처럼 어색했던 정장. 그때나 지금이나 크고 아름다운 사계절 빌딩. 막내 오빠의 목숨이 자신에게 달려 있다는 질식할 것 같은 책임감.
모든 게 이보배를 짓눌렀다. 이보배는 숨 막혀 기절할 것 같았다. 같이 면접 보는 사람들은 하필 모두 어른이었다. 어른이라는 것 자체만으로 이보배는 그들이 눈부셨다.
그땐 어른이면 전부 큰오빠처럼 보였다. 이보배의 고집 때문에 균열에서 실종된 큰오빠처럼.
면접관 자리에 또래 소년이 앉아 있었지만 이보배는 반갑지 않았다.
그는 이보배와 위치가 달랐다.
이보배를 추천한 강철 깡통 허심은 그 소년이 알고 보면 정 많고 착한 아이니 친해지면 좋겠다고 말했지만 소년의 입에서 나온 말은 착하지 않았다. 나빴다.
“최종 학력이 중졸이시군요. 왜 고등학교에 입학하지 않았죠?”
이보배 딴엔 간병인비라도 줄여보고자 선택한 결과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큰오빠는 돈이 더 들더라도 막냇동생이 학교에 가길 원했을 것이다. 실제로도 학교에 다니라 설득했었다.
그때마다 이보배는 귀를 막고 거부했다.
이보배가 직접 하겠다고 우겼던 간병도 그렇다.
간병인은 아무것도 모르는 중학생보다 전문 지식을 갖춘 전문가가 낫다.
똑같이 전문 지식이 없는 문외한이라면 근력 있는 어른이나 남자가 낫다.
인건비가 땅에 떨어진 시기라 큰오빠의 벌이면 간병인을 고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보배와 가족의 미래를 고려한다면 이보배가 간병을 하지 않고 고등학교에 입학하거나 어디든 가서 일을 배우는 게 효율적이었다.
당시의 이보배는 그걸 몰랐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더니 딱 그랬다.
이보배는 이한생이 자신을 구하느라 다쳤으니 자신이 돌봐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쓸데없는 고집이었다.
면접관 한현우가 꼬집은 게 그 부분이었다.
한현우는 이보배가 감정에 휩쓸려 이성적이고 효율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한 게 아닐까 걱정했다.
“비효율적입니다.”
한현우의 지적은 이보배의 자격지심과 불안, 완벽히 버리지 못한 싸가지의 뇌관을 건드렸다.
이보배는 부모님이 돌아가시면서 버렸다가 노점상 하면서 주워온 성질머리를 터뜨렸다.
면접장에서 면접관에게 삿대질하며 소리친 것이다.
“비효율적이라뇨! 누가 효율 따지면서 가족 챙겨요! 그런 정신 나간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리고 우리 오빤 나을 거예요! 현대 의학이나 포션이 고치지 못하면 내가 고칠 거예요! 난 연금술사니까! 두고 보세요. 몇 년이 걸려도 포기하지 않아요. 난 우리 오빨 고칠 거예요, 할 수 있어요. 우리 엄마 아빠 딸이니까. 큰오빠랑 약속했으니까 할 수 있다고요!”
밑도 끝도 없이 감정에 호소하며 배짱을 부린 이보배에게 합격 메일이 날아왔다. 귀하의 담력과 근성을 높이 산다나 뭐라나.
‘괜히 잊은 게 아니구나.’
이보배는 자책하는 의미에서 혀를 깨물었다.
‘부끄러워서 잊은 거였어.’
잊고 싶은 과거를 떠올린 이보배가 살짝 한숨을 쉬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이런 말 하고 싶지 않았지만.
“용케 합격시키셨네요.”
“실력은 검증되었고 근성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절 노려보는 눈에 독기가 가득해 무슨 일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을 것 같았거든요. 저는, 그러니까, 후회하지 않던 저는.”
한현우가 씁쓸하게 웃었다.
“비효율적으로 사는 이보배 씨가 마음을 바꿔 성장에 힘쓴다면 훌륭한 연금술사가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오만한 생각을 품었습니다.”
씁쓸하게 웃던 한현우가 눈을 내리깔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마음이 바뀐 건 저였어요. 면접에서 이보배 씨를 뵙고 난 후 가끔 막내 누나가 떠올랐습니다. 한 번도 좋아한 적 없는데, 죽은 것만 불쌍하다고 생각했었는데 가끔 보고 싶어졌어요. 그런데 볼 수 없었죠. 죽었으니까. 내가 포기해서 죽었으니까. 이한생 씨는 이보배 씨가 포기하지 않아서 살았는데 막내 누나는 제가 포기해서 죽었으니까.”
한현우는 입을 다물었다. 입술을 짓뭉개다 떼었다.
“이보배 씨를 뵌 그날부터 오늘까지 줄곧, 당신을 질투했습니다.”
한현우의 눈이 다시 이보배에게 향했다. 이보배는 한현우의 감정을 무겁다 여기면서도 피하지 않았다.
“저는 1세대고, 1세대 중에서도 나름 네임드입니다. 거기에 믿을 수 있는 길드원까지 있습니다. 항상 노력했고 세상이 격변한 후 노력은 절 배신하지 않았습니다. 고작 그런 것들을 위안 삼아 이보배 씨를 질투하는 마음을 달랬습니다. 하지만 결국 이한생 씨는 깨어났고 이보배 씨는 라스트 엘릭서의 존재까지 알았습니다. 이보배 씨가 부여한 페널티를 고려하면 저보다 우수하단 얘기죠.”
한현우의 목소리가 메이더니 말하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한현우는 참았는데도 결국 속눈썹에 맺혀 버린 물방울을 소매로 닦았다.
이보배는 손수건을 건넸지만 한현우는 계속 소매로 얼굴을 문질렀다.
“정말 좋아한 적 없습니다. 깡패에, 매일 짜증만 내고, 내가 학교에서 왕따당할 때 도와준 적도 없습니다. 그래도 가끔 그리워요. 후회합니다. 이미 죽은 사람을 떠올리고 그리워하느라 쓸데없이 감정 소모해도, 이런 비효율적인 일로 시간을 보내도 그게 제 인생을 방해하진 못할 겁니다. 그게 비효율적인 일이 아니란 걸 이보배 씨가 증명해 주었으니까요.”
한현우처럼 이보배의 목도 꽉 메었다. 이보배는 이를 악물어 눈물을 참았다.
거칠게 본인의 얼굴을 비비는 한현우의 손목을 조심스럽게 건드렸다. 그러자 한현우는 손목을 내리고 이보배가 내민 손을 잡았다.
“이보배 씨를 질투하고, 존경합니다. 진심입니다. 이보배 씨는 이런 대우를 받을 자격이 충분해요.”
꾸욱.
이보배의 손을 잡은 한현우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이보배는 잡힌 손을 빼내지 않고 맞잡았다. 붉게 달아오른 눈가만큼 잡은 두 손의 사이가 습하고 뜨거워졌다.
천상계 VVIP에 직장 사장, 엄두도 못 낼 전투 연금이기에 언제나 우러러보았으나 한현우도 인간이었다. 균열의 날 모두를 덮친 비극을 피하지 못한 동갑내기 남자애였다.
언제나 냉정해 보이던 한현우의 눈가가 눈물에 젖어 촉촉했다. 이보배가 유달리 진한 검은색에 감탄하는데 반투명한파티창이 한현우의 얼굴을 가렸다.
[무카쟌 Lv.62를 처치했습니다. 경험치를 얻지 못합니다.]류시우와 추효풍이 리젠된 몬스터를 처치한 것이다. 반가운 소식에 이보배가 반색하는데 통로 쪽에서 괴성이 들렸다.
“시우야! 왜 하필 지금!”
여자 목소리였다. 던전에 여자는 이보배와 나여름밖에 없으니 나여름의 비명이 틀림없었다. 한현우가 깜짝 놀라 외쳤다.
“여름 누나, 무슨 일이에요!”
한현우는 이보배를 염려해 바로 움직이지는 않고 즉시 를 작동시킬 수 있도록 적당한 투척물을 쥐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시우랑 효풍이 오빠가 너무 늦게 끝낸 게 마음에 안 들어서.”
“듣고 보니 좀 걸리긴 했네요.”
“아예 빨리 잡든가, 기왕 시간 끌 거면 더 끌 것이지 하필 타이밍 딱 맞춰서…….”
통로에서 등장한 나여름은 설치한 를 발로 건드렸다. 혈액이 창이 되어 솟아올랐다가 다시 흐물흐물한 액체가 되어 나여름의 신체에 흡수되었다.
“누나 괜찮겠어요?”
“이 정도는 괜찮아.”
나여름의 직업 블러드 워리어는 희귀 직업이다. 피를 소모해 스킬을 사용하고 적의 피를 흡수할수록 능력치와 스킬 위력이 상승한다.
하지만 광전사란 별명에서 짐작할 수 있듯 피를 많이 흡수하면 피아를 구분하지 않고 주위를 공격했다.
직업 스킬이 다양하고 범용성이 높은 데다 공격력도 보장되니 좋은 직업처럼 보이지만 단점도 있었다. 피가 없는 몬스터를 상대로는 위력이 약화된다.
나여름의 등장에 이보배는 급히 눈물을 닦았다. 나여름이라면 한현우와 절친한 사이니 그의 사정을 알고 있겠지만 한현우를 배려해 말을 돌렸다.
“일단 광전사가 되면 광폭화 진정제를 써도 효과가 없나요?”
“없어요. 비슷한 직업이나 스킬엔 효과가 있는데 저한텐 안 통하더라고요.”
“이보배 씨는 유마리 씨의 의뢰를 받았었죠. 마침 잘되었습니다. 제가 여름 누나를 위해 제작했던 진정제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앗, 정말요? 감사합니다.”
그럴싸했던 분위기는 깨지고 다시 연구 의욕 불태우는 연금술사 둘만 남았다.
나여름은 아쉬운 마음에 이마를 짚다가 묘안을 떠올렸다. 이전엔 통하지 않았지만 이젠 통할 것이다.
“둘이 동갑이잖아요. 친구인데 편하게 말하지 그래요?”
이전의 이보배였다면 감히 그럴 수 없다며 적극 사양했을 터다.
하지만 한현우가 용기 내어 한 고백을 들은 지금의 이보배는 다르다. 이보배는 약간 고민하며 한현우의 눈치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럴까?”
“그러자.”
“조금 어색하고 그러네. 하하.”
“나도 친구가 별로 없어서……. 내가 더 어색해할 테니까 너그럽게 봐줘.”
스물다섯 동갑내기 청춘은 서로를 마주 보며 머쓱하게 웃었다. 기가 막힌 타이밍에 몬스터를 처치한 빙제와 질풍 방패가 돌아왔다.
“기왕 입구까지 간 김에 한 바퀴 돌고 왔는데 여긴 별일 없지?”
“현우랑 이보배 씨 눈가는 왜 저래? 또 최루액 실험했어?”
스승 루트에서 친구 루트로 루트 변경에 성공했다. 관계가 진전되었으니 중간에 방해받았어도 남는 장사다.
하지만 애써 그렇게 생각해도 숨죽이고 관전하던 아쉬움이 크다.
나여름은 기막힌 타이밍에 몬스터를 잡은 둘을 흘겨보았다.
* * *
“오늘로 마지막이니 라면 먹을까? 길마 생각은 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