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190)
190화. 고인물이 이중 전직을 하는 법 (2)
시간뿐 아니라, 공간 자체가 인과로부터 도려낸 것만 같았다.
무채색으로 물든 시계(視界).
그곳에서 웃음기가 완전히 사라진 마케드로스가 진혁을 바라봤다.
“아무래도…… 그저 그런 인간이 아닌 것 같구나.”
“그래서 말했잖아. 들어보고 결정하라고.”
진혁이 어깨를 으쓱했다.
“먼저 묻겠다. 어떻게 내 이름을 알고 있는 거지?”
“‘썩어 가는 심장’이 내가 모시는 마왕의 이름이다. 이거면 네가 앞으로 할 질문들까지 모두 한꺼번에 해결되겠지.”
익숙한 이명이 튀어나오자 마케드로스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모를 리가 없지.
어찌 모를 수가 있을까?
마계의 10명뿐인 마왕 중 하나를.
‘5계층에서 나한테 제안을 했던 게 이렇게 도움이 되네.’
5층에서 자신의 사도로 전직하라고 권유 아닌 협박을 했었다.
당시에는 귀찮은 저주나부랭이나 받아서 짜증만 났었는데, 이제 와서 보니 그 일이 이렇게나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게 됐다.
“……마왕이랑 직접 관련이 되었다는 건…….”
“맞아. 내가 그분을 모시는 ‘검은 사도’야. 이곳에 온 것도 원래 성물에 관한 정보를 보강하기 위해 왔던 거였지.”
진혁이 굳어 있는 사람 중 하나를 향해 고개를 까딱했다.
마인 협회에 소속된 멜레나.
마인 특유의 마기가 몸속에 배어 있는 걸 마족인 마케드로스가 놓칠 리 없다.
더군다나 마왕을 후견자로 둔 특수 클래스 ‘검은 사도’는 마왕의 손발이 되어 탑을 오르는 플레이어로 마계에 관한 다양한 정보들을 그 누구보다 빨리 접할 수 있는 포지션이었다.
“과연…….”
마케드로스가 스스로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대상이 검은 사도라면 ‘썩어 가는 심장’을 통해 자신의 진명을 들은 것도.
봉인되어 있던 마왕을 해방시킬 수 있는 성물의 위치를 알고 있는 것도.
전부 말이 되었다.
하지만.
“썩어 가는 심장의 사도가 어째서 나에게 성물의 위치를 알려 주겠다는 거지? 내가 모시는 분의 봉인을 풀어 봤자 너희들에게 이득이 되는 건 없을 텐데?”
마계의 이권도 꽤나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있었는데, 썩어 가는 심장과 마케드로스가 모시는 마왕은 동맹 관계가 아니었다.
물론, 그 사실 또한 진혁이 알고 있는 범위 내였지만.
“그래서 말하는 거야.”
진혁이 태연한 표정을 가장했다. 입꼬리를 비릿하게 올려주는 건 덤이다.
“알다시피 우리 쪽 마왕께선 서열 경쟁이니 뭐니 하는 것에 관심이 없어. 오죽하면 마인들도 우리 쪽 마왕을 위해선 일을 하지 않겠다고 할 정도라니까?”
적당히 쓸 만해 보이는 플레이어 하나를 검은 사도로 전직시킨 뒤, 그 녀석을 데리고 유희나 즐기는 마왕.
그것이 ‘썩어 가는 심장’이라는 이명을 가진 마왕 ‘베리엘’이 지닌 성향이었다.
모든 아귀가 착착 맞아 떨어지자, 마침내 마케드로스가 의심을 완전히 걷어냈다.
이런 정보는 정말로 상대가 검은 사도가 아닌 한 결코 알아낼 수 없는 내부 정보였기 때문이다.
“재밌군. 그러니 줄을 바꿔 타고 싶다?”
“보아하니 그쪽이 섬기는 마왕께선 적극적인 것 같거든. 나는 야망 있는 주인이 좋더라고. 성물의 위치를 넘길 테니 대신 나에 대한 미래를 약속해 줘.”
“미래를 약속해 달라……. 우리 쪽 검은 사도가 되고 싶다는 말이냐?”
“그래. 계약 때문에 쉽진 않겠지만, 방법이 한 가지 있어.”
“듣고 있다.”
“‘어긋난 균열’에 들어갈 수 있다면…… 마왕과의 계약을 끊을 수 있을 테니, 거기로 들어갈 수 있는 열쇠만 주면 돼.”
[어긋난 균열].그래. 이게 핵심이다.
시공간의 개념이 완전히 달라지는 균열에 갇히게 된다면 적어도 1년은 내부에 갇혀 있게 될 터.
3개월 이상 직접 마기를 보충받지 못한 사도는 결국 마왕과 강제적으로 연결이 끊어지게 된다.
‘……라는 점을 이용해 균열에 들어갈 수 있는 티켓을 얻을 수 있겠지.’
진혁이 떨리는 심장을 가까스로 진정시켰다.
다른 곳에 비해 마력이 압도적으로 풍부한 균열은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기연이었다.
스킬의 숙련도를 높일 수 있는 건 물론, 그곳에 있는 먹음직스러운 경험치 덩어리 몬스터와 극한의 생존 환경 또한 성장을 위한 밑거름이 될 게 틀림없었다.
‘어서 덥석 물어라.’
나쁜 거래는 아니잖아?
한쪽은 오매불망 기다리던 성물의 위치를 얻고.
한쪽은 그걸 알려 준 대가를 얻고.
덤으로 이곳에서 치고받고 싸우는 것도 피할 수 있게 됐으니 그야말로 일석 삼조다.
물론, 나에게 일석 삼조라는 뜻이다.
“…….”
잠시 고민하던 마케드로스가 재차 물었다.
“자진해서 균열에 들어가고 싶다? 그곳은 마족들도 가기 꺼려하는 곳인데?”
“더 위쪽 물에서 놀려면 그 정도 고생은 감내해야지.”
“푸하하하! 그런 자세는 마음에 드는군. 하긴, 그 뻔뻔하고 악랄한 점 때문에 사도로 뽑힌 걸 테지만.”
능청스러운 진혁의 답변에 마케드로스가 광소를 터뜨렸다.
솔직하고 직설적인 어투가 제법 마음에 든 모양이다.
“칭찬 고마워. 수락했다는 의미로 듣지.”
진혁이 생긋 웃었다.
그러나.
“아니.”
마케드로스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거절의 의미는 아니다.
그보다는…….
무언가 기대와 호기심이 잔뜩 섞인 얼굴로 다른 걸 바라고 있었다.
“네놈이 아무리 많은 걸 알고 있다고 해도 직접 그 실력을 보기 전에는 받아들일 수 없다.”
마왕의 직속이 될 수 있는 기회.
그런 기연을 단순히 말빨 하나만으로 줄 리가.
당연히 그에 걸맞은 무용을 입증하기 전까진 그 어떠한 것도 약속할 수 없다는 의지가 실린 말이었다.
“계속 몸을 써서 꽤 피곤한데, 다음에 하면 안 되냐?”
“안됐지만, 다음은 없다. 기대에 충족하지 못한다면 너도 내 계획을 망쳐버린 것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할 거다.”
탈락은 곧 죽음이라는 뜻인가.
어디 있는 빌어먹을 회사랑 이념이 아주 비슷하다. 내로남불일지는 모르지만, 당해 보니 등골이 오싹하네.
“시작하기 전에 한 가지만 물어봐도 될까?”
“물론이다.”
“먼저, 지금 쳐 둔 이 결계 비슷한 것의 보안은 얼마나 철저하지?”
“관리자는 물론, 그 어떠한 존재도 이 안을 엿볼 순 없다. 손톱만큼의 마력도 외부로 새어나갈 일 또한 없지. 그러니 그런 부분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마케드로스가 어깨를 으쓱했다.
“한데, 그게 왜 궁금한 거냐?”
“별건 아니야.”
단지.
“내 능력이 귀찮은 놈들한테 들키는 건 내키지 않았거든.”
원래라면…… 이집트 놈들의 시선을 고려해 이 능력을 사용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갖춰졌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마치 그런 제약이 아니었다면 저자세로 나올 필요가 없다는 듯한 말투로구나.”
조금도 믿지 않는 얼굴이다.
하긴, 말만 해서는 그렇게 보일 수밖에 없겠지.
그렇다면.
맛보기로 살짝 보여 주면 된다.
건방지게 시험이니 뭐니 하면서 협박을 한 게 얼마나 오만한 짓이었는지.
순간.
무채색의 세계에 색(色)이 덧씌워졌다.
‘이건……?’
마케드로스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희미하지만, 틀림없다.
분명 흑과 백으로 점철된 시계에 위화감이 느껴졌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완벽하게 제어하고 있는 결계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능력이라니.
“너…… 대체.”
마케드로스의 말은 그 끝을 맺지 못했다.
[고유 능력 ‘태양의 성역’이 발동됩니다.] [고유 능력 ‘흑천마황공(黑天魔皇功)’이 발동됩니다.]두 개의 능력이 발현되었고.
[‘검은 성역’이 구축됩니다.]쿠쿠쿠쿠쿠쿠!
심상 세계가 개변했다.
***
검은 성역(聖域).
그 어떠한 외적으로부터도 더럽혀지지 않은 신성한 장소를 일컫는다.
그리고.
검은 태양과 사막으로 이루어진 이곳은…….
적에게 심해와도 같은 무거움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더 이상 자격의 증명이 필요한가?”
진혁이 물었다.
태산과 같은 기세의…… 질문이었다.
“…….”
마케드로스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침묵을 지켰다.
성역이 발동되기 전까지는 한 인간의 재롱잔치에 어울려 주는 느낌이었다면.
성역이 발동된 이후는 진혁에 대한 개념을 완전히 재정립하는 중이었다.
‘이런 인간이 존재할 줄이야…….’
한 걸음.
이 앞으로 한 걸음만 더 들어간다면 검게 물든 모래에 삼켜져 영원히 나올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이 세계는 상식에서 벗어나 있었다.
‘전력을 다한다면 죽일 수 없는 건 아닐 테지만…….’
그런 건 테스트가 아니다.
목숨과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할 혈투일 뿐이지.
무엇보다 인간을 상대로 전력을 다해야만 승산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 자체가. 마케드로스로서는 어이가 없는 일이었다.
“자격은 충분하다. 사실, 이쯤 되면 이쪽으로 와 달라고 부탁을 해야 하는 게 맞겠지. 검은 사도가 된 플레이어는 몇 명인가 만나 봤지만, 그중에서도 단연 네가 독보적이다.”
이 말은 진심이다.
그 정도로 눈앞에 있는 인간이 탐이 났다.
이런 막대한 힘을 지닌 자가 자신들의 ‘검은 사도’가 돼 준다면, 단숨에 성물들을 모아 마왕을 부활시키고…….
다시 한 번.
그래, 다시 한 번 탑의 정상에 도전해 볼 수 있을 거다.
마케드로스가 순식간에 끌어 모았던 마력을 흩어 버렸다.
동시에 진혁 역시 ‘검은 성역’을 해체했다.
‘사도로 전직한 멍청이들이 있는 건가. 젠장. 이건 좀 골치 아프겠는데…….’
짧은 고민이 스쳐 지나갔고.
우우우웅!
검게 물든 시계가 원래대로 돌아오며, 멈췄던 시간이 다시 흘러가기 시작했다.
그걸로…….
거래가 성사되었다.
마케드로스가 진혁을 향해 손을 뻗었다.
어느새 손에는 검은색 열쇠 하나가 나타나 있었다.
“이게 네가 원하는 열쇠다.”
[균열의 열쇠]입수 난이도: 측정 불가
내용: 균열로 들어갈 수 있는 열쇠로, 탑의 상층부 거대 세력 중에서도 극히 일부만이 소유하고 있습니다. 입수 자체도 매우 어려운데다 혹여 열쇠를 얻었다고 한들 균열이 있는 곳을 찾는 건 또 다른 영역의 문제입니다.
드디어 이걸 손에 넣었다.
그것도 말 하나 잘해서 말이지.
일이 톱니바퀴 맞물리듯 착착 맞아 떨어지는 쾌감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었다.
‘계속 싸우자고 할까 봐 살짝 쫄았네.’
만약, 신격에 버금가는 고유 능력을 복사하지 못했더라면, 마케드로스는 주저 없이 공격을 감행했을 것이다.
놈의 기준에서 ‘쓸모 있다’는 어지간한 보스를 한참이나 상회하는 수준이었으니까.
모든 일을 끝마친 진혁이 주위를 둘러봤다.
마케드로스는 검은색 열쇠 하나를 남긴 채 그대로 사라진 상태였다.
남은 건, 탈진해 의식을 잃어버린 록히드 길드의 플레이어들과 나머지 사람들을 수습해 이곳에서 벗어나는 것뿐이다.
그때였다.
“주, 주군 괜찮으신 겁니까? 아까 그놈은……!”
“그 무지막지한 놈을 인간이 해치운 건가?”
월영과 카라칼이 한 걸음에 달려왔다.
마케드로스의 위압감이 상당했을 텐데, 그 와중에도 정신을 잃지 않은 걸 보면, 두 녀석 다 물건은 물건이다.
‘하긴 내가 뽑은 사원들인데 당연히 이 정도는 돼 줘야지.’
피식 웃은 진혁이 월영과 카라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조금 있다가 말해 줄게. 우선은 플레이어들부터 챙겨서 미로 입구로 가. 그리고 눈에 띄지 말고 다시 돌아오고.”
밖으로 나가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언노운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 일부러 가면을 쓴 채 활동했으니까.
그러나 그것보다는…….
지금 당장 따져야 할 일이 한 가지 남아 있었다.
잠시 뒤, 모두가 사라진 걸 확인한 진혁이 허공을 향해 중얼거렸다.
“지켜보고 있는 거 다 알고 있습니다. 저에게 할 말이 있을 텐데요?”
그러자.
파츠츳!
기다렸다는 듯이 허공에서 스파크가 튀어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