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94)
94화. 고인물이 빌드업을 하는 방법 (1)
입수 난이도: 오버랭크
내용: 출처가 밝혀지지 않은 특수 아이템으로 사용 시 시련의 탑 10층에 있는 장소 중 원하는 곳과 연결됩니다.(쿨타임: 90일, 지속 시간: 30분.) 플레이어가 성장함에 따라 연결할 수 있는 층도 올라가며, 마찬가지로 유지되는 시간 또한 늘어납니다. (동반 1인까지 함께 데려갈 수 있습니다.)]
시련의 탑을 플레이하다보면 몇 가지 사기적인 아이템이나 능력들을 발견할 수 있다.
국립 중앙 박물관에서 얻은 고유 능력 ‘융합’이 그중 하나였고.
지금 보고 있는 ‘경계를 허무는 거울’ 또한 거기에 해당됐다.
두근! 두근! 두근!
진혁의 심장이 빠르게 고동쳤다.
공식적으로 보스 몬스터의 충성을 받아내는 게 상식을 깬 플레이였긴 했으나.
‘설마, 이걸 줄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는데.’
고인물조차 들뜨게 만드는 규격 외 보상.
엘리스에게 통 크게 휴식을 제안한 것도 모두 이 흥분을 주체하지 못해서였다.
‘일단 필요한 것들부터 좀 모아야겠어.’
한 번 사용하면 다시 사용하기까지 90일이란 시간이 필요할 터.
최고의 조건을 갖춘 상태에서 거울을 사용해야만 한다.
진혁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무얼 해야 할지는 이미 전부 생각해 뒀다.
‘먼저…….’
우우웅!
진혁이 핸드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뚝!
채 한 번이 다 울리기도 전에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앗! 대표님! 어쩐 일로 연락을 다 주시고. 하마터면 저희를 잊어버리신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다 들 정도였습니다.”
검은 까마귀 길드의 바지사장, 김희웅이었다.
진혁 덕분에 인생이 완전히 바뀐 김희웅은 그동안 중견 길드인 검은 까마귀를 관리하고 있는 중이었다.
특유의 수완을 살려 제법 탄탄하게 말이다.
진혁이 멋쩍게 입맛을 다셨다.
“최근 좀 바빴거든.”
너무 바빠서 반쯤 잊고 있었지.
“하하. 물론, 이해하고 있습니다. 요즘 대표님 얼굴이 안 나오는 채널을 찾기가 더 힘들 정도니까요.”
“응?”
“에이, 왜 모른 척하고 그러십니까? 한국 아니, 세계에서 제일 스포트라이트 받고 계시는 분이.”
하긴, 요즘에 꽤 유명해지긴 한 것 같다.
그냥 나가면 사람들이 알아보고 말을 걸 정도였으니까.
“인사치레는 됐고, 길드 쪽은 어때? 나 없는 동안 잘 굴러가고 있어?”
“너무 잘돼서 문제죠. 대표님 보고 가입하려는 플레이어가 폭주하고 있거든요.”
“날 보고 가입하려는 플레이어? 그런 사람들이 그렇게 많아?”
“예. 일단 선별해서 받고 있긴 한데, 하루에 몇 백 명씩 몰려드는 통에 관리가 불가능할 정도예요.”
하루에 몇 백 명이라니.
이건 또 무슨 난리냐?
길드를 키우는 데 큰 욕심은 없지만, 김희웅이 과로사라도 했다간 곤란하다.
‘가입 조건으로 대머리+전신 선탠+비키니만 입고 다니는 조건을 넣든가 해야겠군.’
참고로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적용시킬 생각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입하겠다는 놈들은 받아 줘야 한다.
그 정도로 제정신이 아닌 놈들은 적으로 만드는 것보다 길드 안에 잡아 두는 게 나을 테니까.
무엇보다 진정한 룩을 아는 고인물들은 존중해 줄 수밖에 없다.
“그건 내가 알아서 조절해 줄게.”
“꼭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리고. 혹시 나한테 연락 온 건 없어? 예를 들어 싸울아비 쪽이라든가.”
“아! 안 그래도 싸울아비 쪽에서 대표님을 계속 찾았습니다. 그…… 치료제 조합법을 받는 대신 독점 던전을 주기로 계약했다고 하던데요?”
“사실 나도 그것 때문에 연락했어. 이제야 여유가 좀 생겼거든. 그래서 말인데, 싸울아비 쪽 김기태 플레이어랑 약속을 좀 잡아 줄 수 있을까?”
“가능은 합니다만, 언제로 하면 되겠습니까?”
“최대한 빨리 잡아 줘. 그리고 해 주는 김에 유명 음악회랑 미슐랭 식당, 전부 예약 좀 해 주고. 국내든 해외든 상관없어.”
“예? 그건 또 왜……?”
“내가 일일이 이유까지 말해 줘야 하나?”
“아, 아닙니다. 가장 좋은 자리로 예매해 드리겠습니다.”
그걸로 통화가 끝났다.
진혁이 피식 웃으며 핸드폰을 집어넣었다.
‘이해가 안 되겠지.’
김희웅은 물론,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거다.
한창 성장을 해야 하는 시점에서 한가롭게 맛집이나 찾고 음악이나 즐기는 건 상식적으로 말도 되지 않았으니까.
특히 6층이 여유롭게 성장할 수 있는 최고의 조건을 자랑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더 말이다.
시련의 탑 6층 ‘엘프의 숲’.
이곳은 일종의 쉼표라고 해야 할까?
6층 전체를 아우르고 있는 광대한 숲은 평화 그 자체였다.
게다가 단순히 이곳에서 놀고먹으며 90일간 시간을 보낸다면, 다음 층으로 가는 길이 열리기에.
플레이어들은 이 기간 동안 각자의 스킬과 능력을 단련하고 레벨업을 하는 데 집중했다.
6층에 출석 도장만 찍고 주로 1층에서 5층까지 던전이나 미궁을 도는 방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쉬라고 해서 6층을 버려두면 그것이야 말로 멍청한 짓이지.’
이제 전입 온 이등병한테 자리에 누워서 편히 쉬라고 했다면?
이제 첫 직장을 잡았는데 ‘할 일 없으니 OO씨는 이만 퇴근해’라는 소리를 들었다면?
‘요즘 군생활 편해졌구나.’ 하면서 자리에 드러눕거나.
‘그럼 저는 20000. 고생하십쇼!’ 하면서 이타치가 될 경우 윗사람들이 좋게 볼까?
시련의 탑도 마찬가지다.
각 층에는 목적이 있고 그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기연이 있다. 결코 이유 없이 존재하는 층은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진혁은…….
그 누구보다 완벽하게 6층에서의 90일을 보낼 생각이었다.
오직.
고인물만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음악회나 미슐랭은 그걸 위한 포석이지.’
진혁이 차근차근 계획을 세웠다.
그나저나.
‘귀쟁이 녀석들. 간만에 다시 보겠군.’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과연 놈들이 내가 하는 걸 보고 얼마나 놀랄지. 또 그걸 통해 얼마나 좋은 걸 토해낼지 말이다.
***
김희웅으로부터 다시 연락이 온 건 1시간 정도가 지난 후였다.
싸울아비 길드의 김기태와는 영등포 근처에 있는 커피숍에서 보기로 한 상황.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한 진혁이 생크림이 잔뜩 올라간 프라푸치노를 홀짝였다.
‘역시 피로를 푸는 데 당분을 보충해 주는 것 만한 것도 없다니까.’
안타깝게도 민트초코가 다 팔린 터라, 이걸 시켰지만, 초코 프라푸치노도 그럭저럭 먹을만 했다.
바로 그때.
저벅.
일반인들과는 달리 마력이 가득 실린 발걸음이 다가왔다.
굳이 확인해 보지 않아도 안다.
싸울아비 길드에 소속된 랭커, 김기태였다.
“오랜만에 뵙는군요. 강진혁 플레이어님.”
김기태가 짧게 고개를 숙였다. 속에 쌓여 있는 게 많을 텐데도 꽤나 공손한 말투다.
진혁도 생긋 웃으며 김기태를 맞아 주었다.
“테스트 때 본 이후로 처음이니, 정말 오랜만이긴 하네요.”
물론, 정확히 말하면 그때와는 다르다.
랭크조차 정해지지 않았던 꼬꼬마 시절과 달리 지금은 S등급 판정을 받았으니까.
게다가 각종 활약으로 인해 둘 사이의 인지도는 비교하는 것 자체가 우스울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니 저토록 저자세로 나오는 거겠지.
‘이래서 힘이 있어야 하는 거구나.’
진혁은 다시 한번 절감했다.
이 세계에서 힘과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말이다.
느긋하게 소파에 몸을 기댄 진혁이 재차 입을 열었다.
“만드라고라의 위치는 죄송하게 됐습니다. 탑을 오르는 데 집중하느라 미처 말씀드릴 여유가 없었거든요.”
“……아무렴, 그러셨겠죠.”
김기태가 똥 씹은 얼굴을 지었다.
상대가 정상급 랭커여서 참고 있는 거지. 만약, 다른 사람이었으면 칼부터 뽑았을 기세다.
하지만, 진혁은 그런 시선을 가볍게 흘러 넘겼다.
“그런 의미에서 계약 조건을 살짝 바꾸고 싶습니다. 제가 듣기론 싸울아비에서 보유하고 있는 A급 던전이 몇 개 된다고 하던데요. 아마, 3층이었죠?”
1층에 있는 독점 던전 10개.
그 당시는 매력적이었지만, 레벨이 30이 넘은 지금은 그다지 쓸모가 없다.
이제 와서 고블린들이랑 술래잡기 하면서 놀 것도 아니고. 성장을 했으면 그에 걸맞은 던전이 필요하지 않겠나?
“그러니까. 저희가 보유하고 있는 1층의 10개 던전 대신. 3층의 A급 던전 중 하나를 달라는…… 그, 그런 말씀입니까?”
“제대로 들으셨네요.”
“해독제 조제법은 이토록 늦게 알려 주시겠다고 하면서. 오히려 저희 쪽 조건은 올려 버리겠다고요?”
“바로 그런 뜻이죠.”
무엇이든 한 번 더 복습하는 것도 아니고.
왜 앵무새처럼 자꾸 되묻는지 모르겠다.
얼굴이 붉어진 걸 보면 화가 난 것 같긴 한데…….
이럴 땐 냉수라도 한 잔 권해야 하나?
“……강진혁 플레이어님. 저희를 대체 뭘로 보고 계시는 겁니까.”
으음.
필요한 걸 아낌없이 제공해 주는 나무?
하지만, 속마음을 그대로 말할 수는 없겠지.
이럴 땐 전 세계에서 공통으로 사용되는 변명을 해 줄 수밖에.
“물가 상승률과 원자재 가격의 상승 그리고 인건비의 증가로 인해 부득이하게 내린 결정입니다.”
“그게 무슨……! 저희는 자선단체가 아닙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요구를 들어드리려고 이곳에 온 게 아니란 말입니다!”
김기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가시려고요?”
“그런 이야기를 하실 거면, 더 이상 말해 봐야 입만 아픕니다.”
“흐음. 3층의 미궁 [회색 신전]. 제가 알기론 싸울아비 쪽에서 보유하고 있지만, 공략이 계속 실패하고 있지 않나요?”
“……!”
몸을 돌리려던 김기태가 멈칫했다.
의외의 이름이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그건, 또 어떻게 아신 거죠?”
“여기저기서 주워들었습니다. 이래봬도 인맥이 제법 넓거든요.”
싸울아비가 보유하고 있는 던전의 리스트는 이곳에 오기 전 김희웅을 통해 전달받았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 ‘회색 신전’이 있는 걸 본 순간.
진혁은 확신했다.
싸울아비가 갖고 있는 전력으론 미궁의 공략을 엄두도 내지 못할 거라고.
그리고 그 예상은 정확하게 적중했다.
‘역시, 반응하는군.’
신전에 잠들어 있는 보물을 얻고 싶지만, 공격대가 모조리 헛물만 켜고 있으니 속이 바싹 타들어가고 있겠지.
그런데 타이밍 좋게 미궁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으니 당연히 가던 걸음도 멈출 수밖에.
상대가 관심을 보였으니 이제 열심히 입을 털어주면 된다.
어떻게든 낚아서 이쪽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도록 말이다.
“혼자, 보상을 꿀꺽하겠다는 말이 아닙니다. 어차피 회색 신전은 20인용 미궁이라 혼자서는 공략이 불가능하니까요.”
“…….”
제일 중요한 것은 시스템의 규칙을 들먹이며 김기태를 안심시키는 것.
“게다가 싸울아비 측에서도 손해가 막심할 텐데, 어설프게 시도하다 더 많은 플레이어를 잃기보단 차라리 실력이 증명된 저와 함께 가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그건…… 그렇겠죠.”
두 번째로 중요한 건 명분을 주는 거다.
불리한 거래를 하는 게 결코 약해서가 아닌, 자신들의 길드에 소속된 플레이어들을 아끼기 위해서라는 그럴 듯한 명분을.
세 번째로 중요한 건 미안하다는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미안함이란 단순히 말로만 하는 사과가 아니다.
사과가 진실 되게 느껴지도록 그에 맞는 대가를 지불하는 것.
이것이 세 번째 조건의 핵심 포인트다.
“만드라고라는 1층 기본 상점에서 구입할 수 있습니다. 상점 주인이 권하는 재스민 티를 11번 연속으로 마셔야 골방에 숨겨진 비밀 물품들을 볼 수 있는데요. 맛이 더럽게 없긴 하지만, 참고 드셔야 됩니다.”
“……헙!?”
김기태가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설마 만드라고라의 위치를 먼저 말해 줄 거라곤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탓이다.
할 말을 잃었는지 잠깐의 침묵이 이어졌다.
‘이렇게까지 한다면 속일 생각을 하는 건 아니겠지.’
김기태는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길드의 긴부들과 이야기해 본 뒤, 미궁의 공략 일정을 알려 드리죠.”
그리고 만족한 미소를 지은 채 진혁에게 악수를 청했다.
‘강진혁. 네임드 치곤 너무 허술하군. 우리 쪽으로선 잘된 일이다.’
상대가 상대이니 만큼. 대놓고 이용해 먹을 순 없었다. 그래도 싸울아비 길드에게 유리한 쪽으로 판을 짤 수 있는 발판은 마련된 셈이다.
하지만,
김기태는 결코 모를 것이다.
회색 신전에 숨겨진 비밀을.
“하하.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진혁도 기분 좋게 김기태의 손을 붙잡았다.
‘이제 필요도 없는 1층의 상점이나 실컷 이용하라고.’
쓰디쓴 재스민 차를 11잔이나 먹으면 그날 밤은 밤새도록 화장실을 들락날락 거리느라 고생 좀 할 거다.
‘나는 너희들이 갖고 있는 미궁와 길드원들. 모두 잘 이용해 줄 테니까.’
그렇게.
서로가 다른 생각을 하며.
기존에 맺었던 계약이 갱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