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other of the Soon-to-be Crazy Male Lead RAW novel - Chapter 107
곧 미치는 남주의 엄마입니다 107화 –
“파괴 신을 믿습니꽈!”
“믿습니돠!”
지금 내 앞에서 두 손을 높이 들고 방방 뛰고 있는 저 여자는, 조금 전 내 앞에서 조신하게 찻잔을 기울이고 있던 어린 영애였다.
절대 동일 인물이라고 생각하지 못할 만큼 너무나도 다른 모습이다.
‘엄마야. 흰자위밖에 안 보여.’
아까 전까지는 차분하게 내리뜨여 있던 어여쁜 눈이었는데. 지금은 광기 어린 희번덕한 눈이다.
“후후. 세리아 영애의 마음이 절절히 느껴지지 않나요? 실리아도 처음은 낯설겠지만, 점점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드러내 보이게 될 거예요.”
옆에 서 있던 미야가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확신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수줍은 얼굴과 말의 내용이 아주 언밸런스한 것 같은데. 나는 그녀의 미소에 어색한 웃음으로 화답해 주었다.
“아하하. 네에…….”
그러니까, 내가 여기 어떻게 오게 되었더라.
분명 시작은 이전 티타임과 같았다.
* * *
샤랄라한 저택에 다그닥 다그닥 마차를 타고 내렸을 때, 나를 반긴 건 볼을 발그레하게 물들인 미야였다. 미야가 두 손을 마주 잡고 들뜬 기색으로 말했다.
“실리아, 어서 와요! 이렇게 또 제 초대에 응해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오늘도 나와 있었던 거예요, 미야?”
“네에. 실리아가 온다고 생각하니까 저택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더라고요.”
이때까지만 해도 내 두 번째 여자 사람 친구의 열렬한 환영이 정말 고맙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나는 이내 미야를 따라 티타임이 열리는 장소로 발길을 옮겼다.
“오늘은 저번과 다른 곳에서 티타임을 하기로 했어요. 실리아도 보면 좋아할 거예요.”
평소의 미야와 달리 조금 자신감이 넘치는 게, 정말 좋은 곳인가 보다. 그리고 그녀의 자신감은 확실히 이유가 있었다.
미야가 안내한 곳은 온실이었고, 내 생에 본 온실 중 가장 커다랬다.
“와아. 꽃이 정말 많이 피어 있네요.”
게다가 온실 안에는 지금 날씨에 보기 어려운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천장에는 넝쿨이 휘어 감고 있었는데, 사이사이 피어 있는 붉은 꽃이 아주 화려했다.
눈이 닿는 곳 어디든 꽃이 잔뜩 피어 압도된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였다.
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도 감탄이 나올 정도로 웅장하고 아름다워 진심을 담아 말했다.
“정말 예뻐요!”
그러자 미야가 쑥스러운 듯 살짝 고개를 숙였다.
“저희 타운하우스의 자랑이에요. 제가 본저가 아닌 이곳에 있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정말 아름답고 멋진 곳이 많거든요.”
“그렇군요. 본저에는 이런 온실이 없나 봐요?”
“네. 본저는 아무래도 너무 따분해요. 아버님이 계속 귀찮게 하시기도 하고.”
미야가 입을 뾰로통하게 내밀었다.
홀먼 백작이 미야를 금지옥엽처럼 아낀다더니, 옆에 있으면 좀 귀찮게 하는 모양이다. 아마 그건 아버지의 사랑이겠지만, 역시 성인에게는 퍽 귀찮은 일이지.
나는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미야가 살짝 기쁜 듯한 얼굴로 말했다.
“그리고 이곳에 있으면 실리아도 만날 수 있고, 저와 뜻이 맞는 이들과 뜻깊은 시간도 가질 수 있는걸요.”
뜻이 맞는 이들과 뜻깊은 시간?
아아. 티타임 같은 걸 말하는 거구나. 이때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렇게 여유롭게 매일 같이 티타임을 즐기며 아버지가 벌어 주는 돈으로 여유롭게 사교 모임을 갖고 룰루랄라 예쁜 옷을 입고 여유롭게 지내는 모습이라니.
이게 바로 금수저의 삶인가.
자고로 빙의란 이런 영애의 몸에 하는 것이 옳지 않은가, 하고 생각했다가.
‘하지만 그러면 악시온을 만나지 못했겠지.’
이내 고개를 저었다. 딱히 미야가 부럽지는 않았다. 이미 난 가진 게 너무 많으니까.
“이쪽으로 오세요, 실리아. 티타임이 열리는 곳으로 안내할게요.”
나는 온실 깊숙한 곳으로 안내하는 미야를 따라 좀 더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이전에 보았던 어린 영애들이 하얗고 예쁜 테이블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었다.
“어머, 에반로아르 영애! 오늘도 오셨군요.”
“이번에도 만나게 되어 기뻐요.”
지난날 내 말도 안 되는 러브 스토리에 감격한 영애들은 오늘도 나를 보며 눈을 빛내고 있었다. 이전 날 꽤나 개념이 없다고 생각한 영애들이지만, 저렇게 반짝이는 눈들을 보고 있자니 조금 귀여워 보이기도 했다.
어린애들이 뭘 알겠나.
나는 그들에게 싱긋 웃어 보이며 마련된 자리에 앉았다. 한차례 서로의 근황 토크를 하던 영애들은,
“저번에 호안 영식 보셨어요? 원래도 잘생겼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어쩜, 콧날이…”
“후후. 저는 그분이 성인식을 치를 때부터 눈여겨보고 있었죠.”
이어서 주변 남자들에 대한 이야기꽃을 피웠다. 나는 별로 관심이 없는 주제였기에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온실의 꽃이나 감상하던 때였다.
“그래도 역시 제국의 최고 미남은 다자르 시아스터 공작님이시잖아요?”
그때 누군가 살짝 흥분한 목소리로 툭 말했다. 그러자 영애들의 분위기가 마치 공감한다는 듯 조용해졌다.
“그건 너무 당연한 이야기라 다들 굳이 말을 꺼내지 않은 거죠.”
“아… 그런가요?”
말을 꺼낸 영애가 살짝 무안한 얼굴로 뺨을 긁적였다. 그러자 이제껏 가만히 있던 미야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시아스터 공작님은 좀 무섭지 않아요? 초월자잖아요. 초월자들은 모두 왠지 무섭던데. 저는.”
“으음. 아무래도 그렇긴 하죠. 약간 인간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있잖아요.”
“맞아요. 아무래도 쉽게 다가가기 어렵고…….”
다자르가 주변 영애들에게 대충 이런 평을 받고 있었군. 왜 그의 쓰레기 같은 인성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가, 하고 생각했다가.
‘아. 내숭이 만렙이었지.’
평소 내게 보이는 모습과 달리 바깥에서는 기품 넘치고 예의 있는 대공작의 면모를 보이는 사람이니. 영애들에게 평이 꽤 괜찮은 것 같았다.
‘흥. 뭔가 좀 괘씸하네.’
그때 한 영애가 불쑥 내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에반로아르 영애께서 저번 ‘안식의 장’ 때 시아스터 공작님과 춤을 추지 않았었어요?”
“어머. 맞아요. 그때 다들 놀랐었는데. 시아스터 공작님과 평소에 친분이…… 있으셨나 봐요.”
친분……? 친분이라.
따지고 보면 다자르 말을 빌려 한배를 탄 사이고, 어쩌다 보니 요새 손도 잡고 다니는 사이지만.
‘미안하지만, 댁들이 기대하는 그런 파격적인 러브 스토리는 없답니다.’
혹시 나와 다자르가 어떤 모종의 관계라도 있나, 하는 저 호기심 가득한 눈들을 보니 픽 웃음이 나왔다.
다자르와 나 둘 다 아이를 데리고 있는, 비슷한 상황이니 저런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건 이해가 가지만.
‘그 사람은 이미 임자가 있다고.’
그것도 제가 지켜야 하는 세계를 바칠 만큼 아주 열렬히 사랑하는, 연인이.
나는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아아아무 연도 없어요. 그날 제가 좀 불쌍해 보였는지 갑자기 춤을 청하시던데요. 같은 처지라서 그런지, 제게 용기를 주시고 싶으셨나 봐요.”
“어머. 그런 깊은 사연이 있었군요. 호호…….”
이후 다자르에 이어 모로카닐, 그리고 에이슈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슬슬 티타임이 무르익고 영애들이 삼삼오오 나뉘어 이야기를 나누는 쯤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어쩌다 보니 미야, 다른 영애 한 명과 함께 온실을 걷게 됐다.
’어라. 그러고 보니 이 영애, 저번에 저택에 돌아갈 쯤 미야와 따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그 영애네.‘
그때 봤을 땐 조금 소극적이고 침울해 보였는데. 오늘은 웬일인지 얼굴이 밝았다.
잡담을 주고받으며 온실을 걷던 중, 꽤 많이 걸었다 하는 생각이 들 쯤이었다. 다른 영애들과 꽤 거리가 멀어졌고, 주변은 어쩐지 으슥했다. 그때 이런 이야기가 불쑥 나왔다.
이제껏 조용히 걷고만 있던 미야에게서였다.
“실리아 영애도 아픔이 많은 것 같아요.”
네? 아픔이요?
내가 모르는 사이에 나 어디 다쳤던가.
나는 내 무쇠 팔과 무쇠 다리를 슬쩍 내려다보았다. 오늘도 아주 건강해 보이는 몸이다.
“음…… 그런가요?”
“네에. 저는 아픔이 있는 이들을 쉽게 알아볼 수 있거든요. 영애는 분명 아픔이 있어요.”
응? 내가 이상함을 느낀 건 그때부터였다.
“혹시 파괴 신이라는 존재를, 들어 보신 적 있나요?”
“파괴 신……?”
“네. 이 세상에 종말을 가져오는 존재죠. 이 파괴 신은 아픔이 있는 이들에게 행복을 안겨다 줘요.”
세계에 종말을 주는데 어떻게 행복을 안겨다 주죠. 속으로 멍하니 중얼대는데, 미야가 이어 말했다.
“이전부터 느꼈어요. 마치 세상을 달관한 것 같은 그 푸른 눈을 보고 말이에요.”
그건 그냥 실리아의 디폴트 눈인데.
“게다가 다른 이에게 철저히 무관심한 것 같은 그 염세적인 태도.”
그건 그냥 제가 그렇게 생겨 먹은 인간이라서 그런데요.
“……그래서 조심스레 제안하는 거예요. 저와 함께 파괴 신의 모임에 가 보지 않을래요?”
파괴 신의 모임……?
그건 뭐람.
나는 미야의 제안에 멍하니 서 있다가, 재빨리 머리 회전을 가속시켰다.
이건 그건가. 도를 아십니까의 신종 전파법.
이렇게 친구인 척 스며들어 있다가 천천히 야금야금 끌어들인다던데.
대충 눈치를 보니 미야는 이미 이 모임에 깊게 발을 들이고 있는 것 같았다. 함께 온 저 영애가 믿음이 가득한 눈으로 미야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걸 보면.
‘저번에 둘이서 대화를 나누고 있던 건 이 모임을 제안하고 있던 건가.’
미야와 저 영애, 둘 중 어느 쪽이 먼저 제안을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때 미야가 조심스레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진정 내게 도움을 주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함께 가요, 실리아.”
그리고 나는 그 손을 내려다보며 천천히 입술을 뗐다.
어쩐지. 저번에 여기 올 때도 왠지 감이 안 좋더라니. 내 불안의 근원은 여기였나?
대충 눈치를 봤을 때. 파괴 신이라면 분명 루벤을 말하는 게 틀림없었다. 그럼 미야가 안내하는 곳은 아마 루벤의 추종자들의 모임.
내 안전을 위해서라면 당연히 거절을 하는 게 맞지만.
“그래요. 같이 가요.”
나는 흔쾌히 초대에 응했다.
루벤의 추종자들의 모임이라고 하니, 문득 스쳐 지나간 생각이 있었던 것이다. 지금 거절했다간, 다시 이런 기회를 가질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럼 가 봐야지.
‘내 두 번째 여사친을 위해서라도.’
나는 내 승낙에 기쁜 듯 해맑게 웃고 있는 미야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