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other of the Soon-to-be Crazy Male Lead RAW novel - Chapter 12
곧 미치는 남주의 엄마입니다 12화 –
“어머, 벌써 떠난다고?”
“악숀맘이랑 정들어서 어떡해.”
“그러게요. 저도 엄청 아쉬워요.”
저마다 괭이를 꼬옥 쥔 채 맘카페 회원들이 눈물을 글썽였다. 그중 나이가 가장 많은 다소 무뚝뚝한 회원이 저 멀리를 내다보며 말했다.
“멀리 가는 거야?”
평소 무뚝뚝한 사람이 아쉬운 기색을 담으니 사뭇 그 파장이 크다.
회원들의 눈물이 더 굵어졌다. 훌쩍훌쩍.
나는 그들을 달래듯 말했다.
“으음, 멀리는 아니에요. 너무 아쉬워 마세요. 갔다가 금방 돌아올 거니까요! 하하. 그러고 보니 그 소식 들으셨죠? 에반로아르 자작가에서 공용 밭을 더 넓게 늘렸다는 거요.”
그러자 평소 분위기 메이커를 담당하고 있는 회원이 활발한 어조로 말했다.
“어머, 그럼! 자작 영애께서 어쩜 그렇게 마음씨가 고우신지! 지금껏 몰라봤지 뭐야.”
“크흠. 그러게 말이야. 매일 농사만 지으시고 우리한텐 별 관심이 없는 줄 알았는데. 그러고 보니 이번에 영애께서도 저택을 비우신다지?”
“어쩜, 악숀맘이랑 똑같이 자리를 비우시네. 아쉬워서 어떡해. 밭도 늘어나서 가지고 갈 수 있는 양도 늘어날 텐데. 어휴.”
나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괜찮아요. 어차피 가족은 아기랑 저 둘뿐이고. 먹는 양도 적잖아요.”
“그래도, 남은 건 내다 팔 수 있잖아.”
“하하.”
금세 활달한 본래의 분위기로 돌아간 맘카페 회원들 사이에서 나는 열심히 잡초나 뽑았다.
어차피 들어가기로 한 거, 시아스터 공작가에 당장 들어가야 했다.
벼농사를 지을 땅을 마련해야 했기 때문이다.
관개 작업도 해야 하고. 땅을 일궈 비료도 뿌려 둬야 했다.
물론 그 전에 비료 먼저 만들어야 하겠지만.
‘할 게 많아.’
다자르가 기한으로 정한 내년까지 쌀을 무사히 키워 내려면, 거기에 더불어 황실에서 보낼 사람들에게 벼농사를 교육하려면.
몸이 열 개라도 모자를 지경이었다.
‘어차피 매일 농사에 중독된 농덕의 삶…….’
평소와 같이 덕질을 하면서 돈도 벌 수 있고. 그 돈으로 악시온을 교육시키면서…….
더불어 바로 옆에 여주 바닐라가 있지 않겠나.
어렸을 때부터 사랑이 싹트는 소꿉친구 포지션을 차지할 수 있단 말씀!
흐흐.
그런 이유로, 나는 악시온, 칼과 함께 공작저로 잠시 거처를 옮기기로 했다.
“그럼, 전 이만 갈게요!”
“아휴, 그래. 그동안 수고 많았어! 돌아오면 꼭 여기 나와야 해!”
“네!”
나는 일을 마치고 맘카페 회원들과 눈물의 인사를 나눈 뒤, 저택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며칠 뒤 필요한 짐들을 미리 마차로 부치고 나서 에반로아르 자작저를 나섰다.
저택을 나서는 내 손에는 부집사 하일이 건네준 쪽지가 들려 있었다.
“잘 다녀오십시오.”
부집사 하일은 놀랍게도, 이 실리아 본체도 잘 기억하지 못하는 흐릿한 기억 속 저편의 인물이었다.
‘아니, 할아범. 우리한테 부집사가 있었다고?’
‘큼큼. 쑥스러움이 많아 평소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지만 착실히 업무를 보고 있답니다.’
‘뭐야. 무슨 그림자 무사야?’
뭐, 덕분에 집사인 칼까지 집사 일을 내팽개치고 저택을 나설 수 있었다.
칼이 저택을 두고 내 뒤를 따른 건 악시온 때문이 컸지만.
‘실베스타인이 돌아와서 한 소리 하는 거 아니겠지?’
이 몸의 오빠인 실베스타인이 조금 걸리긴 했지만. 이 몸이 해 온 업적들을 생각해 보면 워낙 특이한 행보를 보여 온 몸이었으니, 잠깐 자리를 비워도 크게 놀라진 않을 것 같았다.
‘연락책도 두고 가니까.’
부집사 하일에게 연락할 수 있는 소통망을 만들어 뒀으니, 어떻게든 되겠지 뭐.
속 편히 생각하기로 한 나는 재빨리 저택을 벗어났다.
* * *
시아스터 공저에서 앞으로 지낼 방을 안내받고 나서, 나는 악시온을 안고 다자르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둘의 첫 만남이 거지 같긴 했지만 그래도 장인어른인데 인사는 시켜야지 싶어서였다.
시종이 알려 준 곳으로 향했다.
“안 그래도 부르기 귀찮아서 미루고 있었는데.”
저번과는 달리 다자르는 공작저 뒤편에 있는 공터에 있었다.
공터는 노을을 받아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 붉은 바닥에 쭈그려 앉아 뭔가를 그리고 있던 그가 날 보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텔레파시라도 통했나?”
“그럴 리가요.”
“냉정하긴.”
다자르는 바지 주머니에 두 손을 집어넣고 불량한 자세로 걸어왔다.
답답한 듯 풀어헤친 셔츠에 자유롭게 흩날리는 검은 머리칼, 그 밑에 어딘가 광기가 느껴지는 황금빛 눈까지.
그 ‘기품 있고 예의 바른’ 다자르 공작이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못할 모습이다.
“절 부르려고 했다고요?”
“그래. 할 게 좀 있거든. 그거 말이야.”
그가 악시온을 기다란 검지로 가리켰다.
나는 몸을 틀어 악시온을 살짝 그에게서 안 보이게 하며 눈을 게슴츠레하게 떴다.
“귀여운 갓난아이한테 그거라니, 인성하고는. 쯧. 우리 악시온이 왜요?”
“아부.”
악시온이 제 이름을 부르는 걸 알고 내 뺨으로 찰떡같은 손을 올렸다.
내 뺨을 잡고 조물대는 악시온을 꼬옥 감싸 안고 악당을 보는 듯한 눈으로 그를 흘겼다.
내 앞에 여전히 주머니에 손을 넣고 삐딱하게 선 채로, 다자르가 입꼬리를 비틀었다.
“그래. 그거 심장에 있는 그거 말이야.”
“……드래곤 하트요?”
다자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엘스턴이 마법으로 살짝 흐려 놓긴 했는데, 마법은 원래 마기와 상통하는 힘이기 때문에 완벽히 가릴 순 없어. 신성 결계를 따라오진 못하지.”
“……?”
그 말은, 악시온의 심장에 신성 결계를 걸어 주겠다는 건가?
그가 따라오라는 듯 고개를 까닥였다.
나는 성큼성큼 걸어가는 그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대대로 ‘균열’을 지켜 온 그 시아스터가의 가주가 직접 결계를 쳐 주겠다니.
내가 얼떨떨한 얼굴로 다가가자 그가 흘러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마룡의 심장을 박은 인간 아이라니. 그거, 사살 대상 일 순위야.”
“!”
그를 따라 복잡한 도식 위에 올라온 나는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사살 대상 일 순위?
순간 목뒤가 서늘했다.
악시온을 바짝 끌어안고 여차하면 달릴 생각으로 발가락에 잔뜩 힘을 주었다.
그때 그가 주머니에서 손을 빼며 툭 말했다.
“걱정 마. 난 죽일 생각은 없으니까.”
경계를 풀지 않고 물었다.
“……왜요?”
그러자 그가 잠시 멈칫하더니, 눈동자를 도르륵 굴렸다.
“그야, 재밌잖아.”
“네?”
뭐래, 이 사람?
“재밌다고. 마룡의 심장으로 생을 연장한 인간이라니. 그런 거 듣도 보도 못 했어.”
“…….”
이 사람의 삶의 목적은 재미면 다인 게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스쳤지만, 물끄러미 다자르를 바라보고 있자니.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닌 것 같은데.’
뭔가 다른 이유가 있어 보였다.
어딘가 한층 깊어진 눈동자가 그리 말해 주고 있었다.
“뭐, 아쉽지만 나를 제외한 초월자들은 나처럼 생각하지 않을 거라서. 공저에 머물면 언젠가 우연이라도 마주치게 될 테니. 손은 써 둬야겠지.”
“아…….”
그러며 그가 엄지를 송곳니로 아득, 물었다.
순식간에 피가 바닥으로 뚝뚝 떨어져 내렸다.
그와 동시에 바닥에 그려져 있던 도식이 은은히 빛나기 시작했다.
“결(結).”
피가 뚝뚝 흘러내리는 손으로 작게 수식을 그리자 바닥에서 뻗어 나온 은은한 빛무리가 악시온의 심장 쪽으로 나풀대며 모여들었다.
“우아?”
악시온은 그 모습이 신기한지 손을 뻗어 빛무리를 잡으려 했지만 그저 통과하기만 했다.
점차 모여든 빛무리는 선명한 하얀색을 띠면서 악시온의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눈을 끔벅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기는 하지만 울진 않는 걸 보니 아프진 않은 모양이었다.
조금 가까이 다가와 악시온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다자르가 피 묻은 엄지를 혀끝으로 핥으며 말했다.
“끝.”
“어……. 가, 감사합니다?”
일단은 고맙다고 해야 하는 거겠지?
나름 뭔가 이유가 있는 것 같긴 하지만.
다자르 말대로라면, 초월자들에게 죽임을 당했을지도 모르니까.
‘하긴. 원작에서도 악시온이 어렸을 때 죽을 위기를 여러 번 넘었다고 했지.’
간략히 서술되기만 해서,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아마 다자르 말대로 초월자들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원작에서 악시온은 초월자들을 증오했으니까.’
다자르가 어색한 얼굴이 된 날 빤히 보더니 불현듯 불렀다.
“아, 그리고 그때 만든 그 하얀…….”
“네?”
그의 황금빛 눈이 잠시 가늘어졌다가 원래 크기로 돌아왔다. 고민이라도 하는 모양이었다.
그가 대굴 눈을 굴려 날 보더니, 크흠, 하며 고개를 돌렸다.
“아니다.”
“?”
어쩐지 기분이 나빠지는 건 일부러 날 놀리는 걸로 해석이 되기 때문일까.
아니면 이 미친 사돈이 태생부터 썩 재수 없는 이중인격자라서 그런 걸까.
난 조금 고민을 하다가 그냥 그를 무시하기로 했다. 일단 은혜를 입긴 했으니까.
“일꾼들이 필요하다고 했지?”
“아, 네.”
바닥에 그린 도식을 삭삭 흙으로 덮던 그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고개를 들었다.
“저기 가 봐. 말은 해 뒀으니까.”
그가 가리킨 곳은 공터 건너편에 있는 커다란 건물이었다. 용맹한 검은 매가 날개를 펼치고 있는 문장이 커다랗게 새겨진 건물.
“쓰레기들이 있을 건데. 그중에 재활용할 만한 애들 적당히 꾸려 보든가.”
나는 기억 속을 뒤져 그 검은 매가 무얼 뜻하는지 기억해 냈다.
퀴젠 제국에서 그 위명을 모르는 사람들이 없는 시아스터 공작가의 기사단,
흑매였다.
“쓰레기……?”
내 공허한 중얼댐에 악시온이 정신 차리라는 듯 찰싹 내 뺨을 가볍게 때렸다.
“아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