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other of the Soon-to-be Crazy Male Lead RAW novel - Chapter 129
곧 미치는 남주의 엄마입니다 129화 –
보랏빛 눈은 작은 떨림을 담고 있었고, 그 떨림은 여리디여린 십 대의 마음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었다.
순간 화가 나 버럭 외쳤지만, 그 눈을 마주하니 조금 마음을 누그러뜨리게 된다.
‘으. 다그칠 일이 아닌데, 화를 내 버렸네. 지금의 모로카닐은 아직 성인도 되지 않았잖아.’
그래. 모로카닐은 과거 내가 마주했던 에인젤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마음속에 있던 화가 완전히 사라진 듯했다.
나는 차분해진 목소리로 모로카닐의 손을 다시 고쳐 잡았다. 내 온기가 전해지길 바라면서.
“당신 목숨이 그렇게 가치 있어요?”
“……예?”
앗. 아니, 이놈의 주둥이는 상냥한 말이라고는 꺼내지를 못하는군. 실리아도 그렇고, 원래의 나도 그렇고 살가운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 그런가.
흠흠. 나는 헛기침을 하고 좀 더 목소리에 따스함을 담아서 말했다.
“무슨 사정인지는 모르겠지만, 죄를 지었다고 해서 목숨으로 갚는다는 발상은 말이에요.”
가끔 사극 영화나 드라마에서 이런 캐릭터들이 등장하곤 했다. 죄를 목숨으로 갚는 인물. 그리고 나는 그때마다 그 인물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저는 아주 이기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죽긴 왜 죽어요?”
“이기적…… 이라, 고요?”
“네.”
나는 단호하게 말하면서 두 손에 조금 힘을 주었다. 내 말에 충격을 받은 모양인지, 모로카닐의 두 손에서 슬그머니 힘이 빠졌던 것이다.
지금이 기회였다.
“어머님은 당신의 그 선택을 원하실까요?”
“어머님께서는…….”
모로카닐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가 입술을 더듬거리다 작게 답했다.
“어머님께서는 원하지 않으실 겁니다.”
“그거 봐요. 그럼 당신 주변에 당신이 죄를 갚기 위해 죽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나요?”
“……아니요.”
말 잘 듣는 학생처럼 모로카닐이 고분고분 답했다. 그는 아까보다 조금 침착해져 있었다. 멍하던 눈빛에도 살짝이지만 총기가 보이는 듯했고.
나는 재빨리 말을 이었다.
“그럼 여기서 당신이 죽길 바라는 인물은 오직 한 명이네요.”
“……?”
모로카닐이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눈을 끔벅였다. 나는 단호하게 입을 열었다.
“여기 제 눈앞에 있잖아요. 바로 당신이요.”
“……!”
“그럼 당신은 다른 사람의 뜻은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아니, 죄를 갚아야 할 사람은 정작 원치 않는 일을…….”
나는 힘이 완전히 빠진 모로카닐의 두 손을 휙 걷어 냈다. 챙그랑! 검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동시에 말을 이었다.
“오직 당신이 원해서, 당신의 이기심으로 모두 내려놓으려고 하는 거 아닌가요? 그것만큼 배려 없고 독단적인 행동이 어디 있죠? 모로카닐.”
말이 끝나자 모로카닐의 몸이 스르륵 무너졌다. 힘이 빠진 건지, 그가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날 올려다보았다.
“그러니까 죽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에요. 모로카닐. 살아요.”
멍한 기색이 사라진 그의 눈은, 이제는 다른 것을 담고 있었다. 뭐랄까. 아주 대단한 존재를 바라보는 것 같은 눈?
내가 이런 눈빛을 받을 자격은…….
“크흠!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모로카닐은 현명하니까, 분명 그 답을 알 거라고 생각해요.”
……충분히 있지!
이렇게 붙잡고 진지하게 충고해 주는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 생판 남인 사람한테.
나는 그의 경외감이 담긴 눈빛을 대충 흘려 넘기고 재빨리 검을 뒤로 치웠다.
그러자 잠시 침묵하던 모로카닐이 답했다.
“어머님께서는 제가 충분히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실 겁니다. 그리고…… 그 바람을 들어드리는 게 제 죄를 갚는 것이겠지요.”
그래. 바로 그거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손을 덥석 잡고 당겼다.
“좋아요. 그럼 지금 당장 행복해지는 첫걸음을 떼러 가요.”
“예……?”
모로카닐이 당황하거나 말거나, 나는 그의 손을 잡은 채 복도로 나섰다. 다자르 아직 잘 버티고 있겠지?
늦은 게 아니라면 좋겠는데.
“당신이 맡은 임무를 충실히 끝내는 것. 그게 행복의 첫걸음 아니겠어요? 당연하고 사소하게 생각되겠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하찮은 게 아니랍니다.”
내가 생각해도 순 억지스러운 주장이었지만, 이미 내게 경외심을 가져 버린 어린 모로카닐에게는 퍽 통하는 이야기였던 모양이다.
모로카닐이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면.
“……그렇군요. 우선 제 맡은 바 책임을 다하는 것. 곧, 실존적인 존재로서 살아가는 것. 그 말씀을 하시는 거군요.”
그런 철학적인 이야기를 한 게 아닌데. 다소 떨떠름한 얼굴로 보았으나, 이미 모로카닐은 날 보고 있지 않았다. 그는 복도 끝을 바라보며 뭔가를 다짐한 듯한 얼굴을 했다.
그러다 이내 먼저 걷기 시작한 나를 보며 중얼댔다.
“감사합니다. 당신은 제 은인입니다. 이상한 힘에 붙들려 약해지려는 절 붙잡아 주었어요.”
“어…… 네, 뭐 별말씀을요.”
“당신의 이름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까요?”
“희아. 이희아예요.”
모로카닐이 잊지 않겠다는 듯 내 이름을 여러 번 읊조렸다.
“희아…… 예쁜 이름이군요.”
대화도 마무리되었겠다, 나는 모로카닐의 손을 붙잡고 뛰기 시작했다. 세드릭을 막아서고 있을 다자르를 향해서.
“헉. 허억…….”
얼마나 뛰었을까. 입에서 단내가 날쯤, 그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다자르!”
“……으윽.”
세드릭과 맞붙고 있던 그는 꼴이 말이 아니었다. 온몸이 붉다고 생각될 정도로 상처를 잔뜩 입은 채였다. 반면 그와 대치하고 있는 세드릭은 먼지 한 톨도 묻지 않은 듯 깨끗했다.
대신, 이전처럼 상냥한 미소를 띠고 있는 게 아닌, 비열한 웃음을 띤 채 어두운 기운을 잔뜩 흩뿌리고 있는 게 달랐다.
나는 황급히 다자르의 곁으로 뛰어가며 물었다.
“다자르, 괜찮아?”
“희아……. 하아, 난 괜찮아. 모로카닐은?”
뒤에서 모로카닐이 미안한 목소리로 입술을 뗐다.
“여기 있습니다. 미안합니다. 제가,”
“됐어. 지금 그런 이야기 하고 있을 시간 없으니까. 하아, 네 기운이나 쏟아!”
벽을 짚고 간신히 서 있는 듯했던 다자르가 모로카닐에게 외치며 세드릭에게로 달려들었다. 모로카닐도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다자르와 함께 움직였다.
둘에게서 온통 하얀 기운이 번쩍이며 뿜어져 나왔다.
“……둘이라니. 이건 좀 치사한 것 같은데요?”
여유가 넘치던 세드릭의 얼굴에 살짝 금이 가기 시작했다. 모로카닐이 합세하자 확실히 그 또한 초월자 둘을 동시에 상대하기에는 벅찬 듯했다.
‘앗. 위험! 휴우…….’
다자르와 모로카닐은 세드릭에게 충분히 위력을 가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제압할 수 있을 정도로 힘의 차이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가끔 위험한 순간이 올 때마다 내 심장이 내려앉다 보니, 슬슬 내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이러다가 다자르가 그녀를 만나지도 못하는…… 아, 아니지. 불길한 생각은 하는 게 아니야.’
고개를 도리도리 젓던 중, 정말 위험한 상황이 들이닥쳤다. 다자르와 모로카닐이 위험한 게 아니라……
“희아-! 피해!”
“이런! 희아 님!”
바보같이 멍하니 머리를 쥐어뜯던 내게 세드릭이 쏘아 낸 구체가 날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일부러 그런 게 분명했다.
날 바라보는 세드릭의 얼굴에 비열한 미소가 띄워져 있었으니까. 나는 피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날아오는 검은 칼을 바라보며 이를 갈았다.
‘세드릭 이 자식…….’
사람이 죽을 위기에 처하면 주마등이 스쳐 지나간다더니, 나는 두 번째인 이번에도 그런 건 없었다. 대신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만약 진짜 실리아로 되살아난다면, 넌 죽었다. 어린 시절을 트라우마로 간직할 만큼 괴롭혀 줄 거야.’
부드득. 이를 갈면서 곧 다가올 아픔에 대비했다. 젠장, 이까짓 거! 죽기라도 하겠냐!
눈을 꼭 감고 두 팔로 앞을 막아선 나는, 다가오지 않는 아픔에 천천히 한쪽 눈을 떴다.
대신 믿기지 않는다는 듯 중얼대는 세드릭의 목소리가 들렸다.
“뭐…… 지?”
그리고 두 눈을 모두 뜬 나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마주했다. 세드릭이 던진 칼이 내가 아닌, 그에게 꽂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내 몸에서 빛이 번쩍이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내 목걸이에서.
“이 목걸이는…….”
실베스타인이 주었던, 악시온을 위한 목걸이. 이 세계로 날아왔을 땐 사라져 보이지 않았는데. 왜 갑자기 나타난 거지?
그리고 왜 세드릭이 나 대신 칼을…….
“쿨럭! 제길, 저 여잔 뭐지? 아니, 이게 어떻게…… 내 힘이 빠져나가고 있잖아!”
그 순간 세드릭이 비명을 지르듯 외치는 소리가 귀에 꽂혔다. 깜짝 놀라 그쪽을 바라보니, 정말 놀랍게도 세드릭의 몸이 부서지는 모래성처럼 흩어져 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