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other of the Soon-to-be Crazy Male Lead RAW novel - Chapter 128
곧 미치는 남주의 엄마입니다 128화 –
다자르는 저를 노려보는 남자를 싸늘하게 내려다보았다. 한때 실리아의 소꿉친구이자 제국의 재상이었던 이는 비참한 모습으로 제가 만든 결계에 갇혀 있었다.
무릎을 굽힌 채 구부정하게 앉아 있던 남자가 난데없이 킥킥 웃음을 터트렸다.
“내 기운을 쏟아 내라고? 내가 왜 널 도와줘야 하지?”
그러자 다자르가 팔짱을 끼고 고개를 모로 세웠다. 그가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죽고 싶지 않으면 도와야 할 텐데.”
평온한 목소리로 내뱉기에는 퍽 살벌한 내용이었으나 듣는 상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하하, 크게 웃더니 어깨를 으쓱였다.
“결계에 가뒀다고 기고만장해졌구나. 실리아를 찾기 위해 내 힘을 필요로 하는 건 알겠지만, 전혀 돕고 싶지 않은걸. 왜냐하면…… 널 보면, 왠지 과거의 일들이 떠오른단 말이야. 썩 불쾌했던 그날의 일이. 실리아가 그 여자라는 걸 알게 되어서 그런가?”
그가 뜻 모를 소리를 하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고는 눈을 가늘게 뜨고 다자르를 빤히 응시했다.
“……아아, 그렇군. 그래. 맞아. 네가 그때 그 가증스러운 꼬맹이였구나. 왜 바로 생각해 내지 못했을까.”
“…….”
“아냐. 다른 세계의 초월자들은 흔하디흔했으니, 기억 못 할만도 하지. 게다가 그때의 넌 별 볼 일 없는 꼬맹이에 불과했거든.”
세드릭은 자문자답을 하며 연신 큭큭 댔다. 다자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눈썹을 까딱이자 그의 웃음이 더욱 짙어졌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겠지? 이해 못 할 만도 하지. 너는 기억하지 못할 테니까. 내 윤회는 그렇게 만들어져 있거든.”
“이상한 말로 날 현혹시킬 생각이라면 집어치워. 네 말은 전혀 믿지 않으니까.”
“믿지 않는다고? 믿으려야 믿을 수 없겠지.”
세드릭은 몸을 구부리고 연신 웃다가, 문득 고개를 휙 들었다. 핏줄이 선 눈동자가 희번덕 빛났다.
“이것도 나름 즐거운걸. 결국 내 뜻대로 실리아는 루벤을 떠났고, 루벤은 곧 각성을 이뤄 낼 거야. 게다가…… 그런 루벤을 감싸고 도는 초월자라니. 이것보다 흥미진진한 일이 어디 있을까?”
세드릭은 그렇게 말하며 비열한 웃음을 흘렸다. 과거 선하고 맹한 모습을 보이던 그는 온데간데없었다. 오직 순수한 악으로서 존재했다.
다자르는 그가 전혀 저를 도울 생각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그러자 뒤에서 세드릭이 외치는 소리가 귀에 꽂혔다.
“너는 어차피 날 죽이지 못해. 이미 반 영생을 얻은 몸이거든!”
하하하! 하하!
광기가 깃든 웃음소리를 뒤로하고 다자르는 결계를 빠져나왔다.
“역시나, 인가요?”
그가 결계에서 나오자 엘스턴이 조르륵 달려와 물었다. 그는 다자르가 세드릭에게서 도움을 얻겠다고 했을 때 가장 먼저 고개를 저었던 인물이었다.
이곳에 있는 그 누구보다도 세드릭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던 까닭이다.
“그래. 돕지 않겠다더군.”
“아쉽지만 예상은 했던 일이에요. 그가 우리를 도울 리 없죠. 그가 원하는 바는 이미 얻은 것이나 마찬가지니까요.”
다자르가 얼굴을 굳혔다. 그는 조금 전 세드릭에게 기운을 제 결계에 가둬 전달해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저 저와 싸울 때 흩뿌렸던 힘을 쓰기만 하면 되는, 아주 쉬운 일이었으나 그는 거절했다.
‘실리아가 사라졌을 때 충돌했던 힘들을 쫓으면…….’
그녀를 확실히 이곳으로 데려올 수 있을 거라고, 분명 실베스타인이 이야기했다. 이전 날 목걸이의 흔적을 쫓았을 때 제 과거로 이동했던 실리아를 찾지 않았던가.
‘그녀가 내 곁을 떠나기 전에, 그 전에 데리고 와야 해.’
다자르가 이를 악물었다. 그녀가 제 과거에 있다면…… 다자르는 그녀의 끝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녀는 언젠가 정말로, 완전히 제 앞에서 사라져 버릴 것이다.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끝이 죽음이라는 것을 다자르는 이미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그녀가 그 과거를 반복하지 않도록……
“제발…….”
다자르는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제 적에게 도움을 청할 정도로 말이다.
어떻게든 그녀를 이곳으로 데려올 방안을 찾기 위해 실베스타인이 있는 방으로 향하던 다자르가 우뚝 걸음을 멈췄다.
익숙한 기운이, 루벤의 섬에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전생에서부터 질기게 제 뒤를 따라오던 기운.
다자르는 복도 창문 턱을 짚고 바깥으로 뛰어내렸다.
“다자르 님?”
난데없이 자리를 박찬 다자르를 보며 엘스턴이 황망한 어조로 부르는 게 들려왔지만, 다자르는 무어라 설명할 시간이 없었다.
이 익숙하고도, 재수 없는 기운을 지금 당장 루벤의 섬에서 내쫓아야 했기 때문이다.
“모로카닐. 너, 정말 날 너무 좋아하는군.”
“……하. 그 말도 지겹군요.”
루벤의 섬에 제힘을 써 몰래 숨어들어 온 것은 모로카닐이었다. 그는 루벤의 추종자들의 소굴을 소탕할 때 흑매들과 남아 뒷일을 처리한 뒤, 황궁으로 보고를 위해 떠났었다.
저와 실리아의 뒤를 쫓아오려 했지만, 난데없이 사라져 버린 탓에 그러지 못했지. 이를 갈며 어쩔 수 없이 황궁으로 향했다고 흑매들에게 전해 들었다.
분명 그 앙금 때문일 것이다. 지금 저를 산산조각 내고 싶다는 듯한 눈빛을 하고 있는 것은.
“하다못해, 이제는 이 세계의 루벤도 당신의 품에 품기로 한 겁니까? 어디서 찾았죠? 이미 그 존재를 알고 있었군요.”
“루벤? 그게 무슨 소리지?”
다자르가 어깨를 으쓱이며 모른 척하자, 모로카닐이 이를 아득 물었다.
“당신도 알고 있을 텐데요. 루벤의 기운이 온 제국에 뻗어 나오고 있다는 것을요! 시아스터인 당신이 모를 리가 없습니다. 에이슈와 코라도 이쪽으로 향하고 있으니까요.”
“오랜만에 초월자들이 한곳에서 모이겠군.”
모로카닐이 다자르의 태평한 말에 이를 갈았다.
“당신은 정말 예나 지금이나…… 존재 자체가 해가 됩니다.”
“너도 마찬가지야. 너, 실리아가 ‘그녀’인 걸 알고 있었지?”
“……!”
다자르의 말에 모로카닐이 눈을 크게 떴다.
“그러니까 네가 실리아에게 이제껏 추근거렸던 거겠지. 음침한 자식. 내가 희아를 알아보지 못하는 걸 틈타서 말이야.”
“…….”
모로카닐이 꾹 입을 다물었다. 그 말은 곧 제 주장이 사실이라는 뜻이라고, 다자르는 해석했다. 이번에는 그가 이를 아득 물었다. 속 깊은 곳에서 모로카닐에 대한 분노가 일었다.
알아챘을 때 바로 언질만 해 주었더라면 이런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모로카닐이 이 세계에 함께 환생하지 않았더라면.
아니, 그보다도…….
“그때 그 마을에서 네 녀석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분명 그날이다. 희아를 다시 만나고 곧바로 임무 수행을 위해 나섰던 작은 시골 마을. 바로 그곳에서 이 녀석이 희아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때에는 신경도 쓰지 않을 정도로 사소한 호감. 그 호감이 이토록 커져 저와 희아의 사이를 방해할 줄은, 꿈에도 알지 못했다.
* * *
“모로카닐! 당신 미쳤어요? 지금 뭐 하는 거예요?”
나는 황급히 달려가 그의 손을 붙잡았다. 거기엔 기다란 장검이 들려 있었고, 그 끝이 그의 목을 향해 있었다.
그랬다. 모로카닐은 자결을 하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으악. 이게 대체 뭐 하는 거야!’
모로카닐이 진짜 미쳐서 이런 일을 저지르는 것은 아닐 테고, 아마 세드릭의 소행일 것이다. 마음이 급해져 무작정 두 손으로 그의 손을 붙잡고 끌어 내렸다.
“으으. 모로카닐, 정신 좀 차려 봐요. 네? 지금 당신이 싫어하는 다자르가 당신의 도움을 기다리고 있단 말이에요!”
“……죽음으로써 제 죄를 갚아야 합니다.”
“죄요? 무슨 죄요?”
아주 작게, 간신히 들릴 정도로 중얼대는 목소리는 힘이 잔뜩 빠져 있었지만 느낄 수 있었다. 그가 깊게 절망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제 어머니를 살해한 죄.”
“……네?”
아니, 이 집안은 또 무슨 사정이 있는 거야? 모로카닐을 가까스로 막느라 힘을 잔뜩 주고 있어 눈앞이 핑 도는 것 같았다.
지금 그쪽 집안 일을 미주알고주알 들어 줄 여력이 없다고!
그때 뚝, 소리와 함께 붉은 액체가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내 손에 모로카닐의 손톱이 박혀 피가 흐르고 있었다.
젠장, 얼마나 힘을 주고 있으면 손톱이 박혀! 피를 보고 나니 마음속에서 열불이 솟았다. 지금 죄를 지었으니 죽음으로 갚겠다 이거야? 무슨 자기가 일본 장수야, 뭐야?
나도 모르게 버럭 외쳤다.
“그렇게 잘못했으면 죽음으로는 안 되죠!”
그 말에 모로카닐의 손에서 잠깐이지만 힘이 빠졌다.
“방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자수정빛의 눈동자가 나를 직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