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other of the Soon-to-be Crazy Male Lead RAW novel - Chapter 134
곧 미치는 남주의 엄마입니다 134화 –
결 좋은 검은 머리카락이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고, 황금빛 눈동자가 간절함을 안고 날 바라보고 있었다.
방금, 다자르가 내게 무어라 했지?
“……약혼?”
다자르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 가벼운 셔츠 차림으로 서 있는 그는 이젠 완연한 어른이 되어 있었다. 이전 세계에서 마주했던 다자르와 비슷한 나이일 것이다. 이렇게 똑같이 생긴 걸 보면 말이다.
다만 그와 다른 점은 두 뺨에 수줍게 홍조가 피어 있다는 것과 한 손에 흐드러지게 핀 장미 꽃다발을 들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그 이후로 답이 없자 다자르가 살짝 입술을 물고 나지막이 말했다.
“너와 남은 시간을 함께하고 싶어. 네 곁에 있으면 난 누구에게서도 느낄 수 없는 감정을 느껴. 오직 너만이 날 살아 있게 만들어.”
그의 눈빛이 햇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났다. 다정하게 속삭이는 목소리와 찬란한 황금빛 눈동자를 바라보니, 하늘에 붕 뜬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연애 세포 따위 메마른 지 오래인데도 이렇게 심장이 콩닥콩닥 뛰는데, 젠장, 아니, 그것보다도 내가 다자르에게 이런 감정을 가져도 되는 거야?
“주제넘을지 모르지만, 희아 또한 나와 같은 마음이라고 생각해. 다만, 망설이고 있다는 걸 느껴.”
“……!”
다자르의 확신이 담긴 목소리에 눈을 깜박였다. 언제 다가온 건지 한 걸음 가까워진 그가 날 지그시 내려다보았다. 향기로운 장미 향이 코끝을 간지럽혔다.
“내가 희아보다 어려서 그런 거야?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어른이었잖아. 아니면…… 희아가 나이를 먹지 않는 특별한 존재라서 그런 거야?”
“아…….”
다자르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구나.
나 또한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는 부분이었다. 이곳에서 꽤나 오랜 시간을 보냈는데, 마치 나만 시간이 멈춘 것처럼 언제나 이 모습 그대로였으니까.
청소년이던 다자르가 어엿한 어른으로 성장할 때까지, 나는 나이를 먹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생체 시계가 아주 느리게 흐르고 있는 느낌이었다. 일주일만 지나도 손톱이 자라는 게 보이던 나였는데, 그동안은 한 번도 잘라 본 적이 없었다.
머리카락도 일부러 뽑지 않는 한 빠진 적이 없었고 말이다.
아주 이상한 일이었지만, 속으로는 혹시 내 세계의 시간 또한 아주 천천히 흐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그리고 한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러다 악시온이 나를 잊어버리게 되는 건 아닐까 걱정했으니까.
어쨌든, 다자르는 내가 망설이는 이유가 바로 이 차이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실제로는,
‘다자르에게는 미래의 그녀가…… 있는데.’
그에게 앞으로 나타날 ‘그녀’ 때문이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상해.’
그러나 요 근래 나는 조금 이상함을 느끼고 있었다. 분명 다자르의 곁을 지키다 보면 나타나리라고 생각했던 ‘그녀’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나타나질 않았던 것이다.
다자르는 내가 함께하지 않으면 시아스터가를 잘 벗어나려 하지 않기도 했지만, 혹여 홀로 어딘가를 다녀오더라도…… 다른 여자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떨어져 있는 동안 너무 보고 싶었어, 희아.’
오히려 떨어져 있는 기간이 길수록 더 내게 딱 달라붙어 있으려 했다. 그런 나날이 계속될수록 내 마음속에는 합리적인 의심이 싹트기 시작했다.
혹시 내가…… 정말 말도 안 되지만…….
‘그녀’가 아닐까, 하는 그런 의심이.
그리고 그 의심은 바로 지금, 고백을 받으면서 점차 확신으로 바뀌고 있었다.
‘맙소사. 정말 내가 다자르의 그녀란 말이야?’
깨달음이 잔잔했던 마음을 뒤흔들기 시작했다. 마음이 소란스럽게 속삭였다. 내가 ‘그녀’였어! 다자르가 사랑하는 이가, 바로 나였다니.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모든 것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이곳에 넘어오기 직전…… 그가 날 희아라고 불렀어.’
그때는 그가 어떻게 내 진짜 이름을 부른 건지 이해하지 못했는데…… 점차 기억이 돌아오고 있었으니 내 모습을 보고 이름을 떠올린 것일 테다.
그때 다자르가 답이 없는 내가 걱정이 되었는지 조심스레 불렀다.
“희아? 혹시…… 지금 바로 답이 어렵다면…….”
“아. 아니야. 다자르. 그게, 지금 이 상황이…… 조금 꿈 같아서.”
풀이 죽으려는 다자르를 달래며 그가 여태 들고 있던 꽃다발을 품에 안았다. 코를 파묻고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매혹적인 향이 머리를 아득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아니, 실제로 내 머릿속은 마치 꿈속을 유영하는 듯 몽롱했다. 너무, 지나치게 행복했던 까닭이다.
“그래. 하자. 우리, 약혼하자.”
나는 담담하게 인정했다. 나 또한 다자르를 마음에 품고 있다는 걸. 아마 이 감정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다.
간혹 그와 함께하며 마음이 흔들리던 때나, 깊어지던 때가 있었다. 악시온이 내 아이임을 밝혔을 때 힘이 되어 주던 때. 나를 지켜 주던 순간들.
가랑비에 옷이 젖듯 아주 천천히, 그에게 물들고 물들어 버렸다. 그러니 과거의 여물지 않은 여린 그와 마주치고 쉽게 곁을 뜨지 못한 것이겠지. 어떻게든 그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서.
나는 그를 사랑한다.
그 사실을 마침내 인정하고야 말았다.
“정말……? 정말, 정말이지? 희아.”
두 뺨이 잔뜩 상기된 다자르가 활짝 웃으며 나를 감싸 안았다. 그걸로도 모자라, 빙빙 돌기까지 했다.
“으앗! 다자르! 잠깐만……!”
“너무 행복해. 희아. 너와 앞으로를 함께할 수 있다니. 네 곁에서…… 네 남자로서 함께 말이야.”
하하! 소년처럼 웃는 다자르를 보며 나도 풋 웃음이 터져 나왔다. 행복하게 웃는 다자르를 보니 나 또한 마음이 따스해졌던 것이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살짝 두려움이 밀려왔다.
이곳에서 이렇게 행복한데. 내가 다자르의 곁을 떠나 돌아갈 수 있을까. 그런 두려움이 말이다.
* * *
“희아. 오늘은 지난번에 희아가 가고 싶다고 했던 야시장에 가 보자.”
“내일 보석 축제가 열린다던데. 같이 가 보지 않을래? 희아에게 어울리는 보석을 사 주고 싶어.”
“희아. 오늘은 기다리고 기다리던…… 우리 약혼식이에요. 너무 기뻐요.”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나는 다자르와 행복한 시간을 보냈고, 약혼을 기점으로 우리는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존칭을 쓰기 시작했다.
다자르는 진심으로 나를 사랑했고, 나 또한 그를 깊이 애정했다. 하지만 그런 우리를 질투한 건지, 세계가 혼란에 빠졌다. 루벤이 나타난 것이다.
“루벤이요……?”
“네. 이제껏 숨어 있었던 건지, 존재가 잡히질 않았는데 이제야 소재를 파악하게 되었어요. 조금 자리를 비워야 할 것 같아요. 희아.”
어느 날을 기점으로 다자르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 루벤이 미래에 다자르와 계약을 하고, 새의 모습으로 나와 마주치게 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다자르를 보내고 싶지 않았지만 받아들여야 했다. 결국 정해진 미래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곧, 나는 그의 곁을 떠나야 했다.
쿨럭! 쿨럭! 우욱.
“으으…….”
다자르를 보내고 홀로 맞이한 새벽, 나는 발작처럼 찾아온 기침과 함께 잠에서 깼다. 두 손으로 급히 입을 막았지만 흘러내리는 핏물은 막을 수 없었다.
뚝, 뚜욱.
손을 타고 팔뚝까지 흘러내리는 핏물은 검붉었다. 죽은 피였다.
“이런…….”
몇 달 전부터 갑작스레 찾아온 증상. 다자르가 걱정할까 싶어 몰래 진료를 받아 보았지만, 들은 대답은 ‘원인을 알 수 없다’였다.
아마 내가 이 세계로 넘어온 부작용인 게 아닐까, 생각만 했다.
“결국 이곳에서 끝을 맞이하는 건가?”
홀로 창밖을 바라보며 중얼댔다. 루벤이 활동을 시작한 후부터 하늘은 붉게 물들어 있어, 새벽에도 마치 초저녁같이 밝았다.
다자르는 ‘그녀’를 되살리기 위해 루벤과 계약을 했다고 했다. 그리고 그 ‘그녀’는 바로 나. 내 죽음은 어쩌면 정해진 것이었다.
다만, 억울했다.
“이렇게 허망하게 죽는 게 어딨어.”
불퉁하게 중얼대며 입가를 슥슥 닦았다. 제길. 신이라는 작자는 대체 무슨 생각인지. 나, 너무 기구한 운명만 살다 가는 거 아닌가?
“악시온도 결국 보지 못하고…….”
다자르와 함께한 그 순간부터 나는 내 원래 세계로 돌아갈 결계를 마주하지 못했다. 그때, 머뭇거리던 순간 깨지며 사라져 버린 결계 이후로 말이다.
그때 그 선택이 결국 이 끝을 맞이하게 한 것이다. 에휴, 내가 한 선택이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푸욱 한숨을 내쉬는데.
“희아……?”
들려서는 안 될 목소리가 들려왔다. 믿을 수 없다는 듯 가늘게 떨리고 있는 목소리는 분명, 다자르의 것이었다.
고개를 돌리니 한 손에 하얀 꽃을 쥔 채 서 있는 다자르가 보였다. 보아하니, 잠깐 짬을 내 내가 자는 사이 꽃을 두고 가려 한 모양이었다.
“이게, 이게 대체 무슨…… 당신, 아픈 거예요? 어디가…… 어디가 아픈…….”
“다자르…….”
잔뜩 겁에 질린 채 날 바라보고 있는 다자르의 눈동자에 물기가 차오르는 게 보였다. 이런. 벌써 들키면 안 되는데.
이걸…… 어떻게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