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other of the Soon-to-be Crazy Male Lead RAW novel - Chapter 22
곧 미치는 남주의 엄마입니다 22화 –
“앗. 절 아시나요?”
그렇게 내뱉고 나서 이마를 ‘탁’ 쳤다.
아까 무도회장에서의 반응을 생각하면 당연히 날 모를 리가 없지 않은가.
이 사람도 날 바퀴벌레 취급하며 저 멀리 멀어지겠군, 하고 있는데.
렛시는 오히려 호감을 표현했다.
“오. 에반로아르 영애라. 반갑군.”
“어…… 저도요.”
내가 실리아라는 걸 알고도 겁먹지 않는 용기에 나는 순수히 감탄했다.
배포가 아주 넓은 사람이구먼.
서로에게 호감을 느낀 우리는 순식간에 의기투합해 황궁 밖으로 함께 나가기로 했다.
“아니, 그런 미친놈이 있단 말이에요?”
“그래. 빌어먹을 이중인격자에다 사디스트지.”
“빌어먹을 이중인격자에다 사디스트라니. 제가 아는 사람하고 조금 비슷하네요. 세상엔 왜 이렇게 미친 자들이 많은 걸까요. 휴.”
렛시가 밖에 나가서 만나기로 한 인물에 관해 이야기를 꺼냈는데, 그 인물은 썩 재수 없는 놈이었다.
다자르 뺨치는 인물이군.
공통점이 생긴 우리는 서로에게 동지 의식을 느끼기 시작했다.
“얼굴만 봐도 소름이 돋는다니까. 어렸을 때부터 아주 악연이었지.”
“으으. 그런 사람이랑 소꿉친구라니. 끔찍해요.”
“넌 말이 통하는구나!”
우리는 서로를 짠하게 응시했다.
“렛시!”
“실리아!”
이런 게 바로 친구라는 걸까?
드디어 내게도 친구가 생긴 것 같았다.
“저 출구로 나가면 곧장 밖으로 나가는 개구멍이 나온다.”
“오오. 렛시는 황궁 지리를 잘 아네요. 대단해요.”
“크흠.”
렛시가 쑥스러운 듯 노란 보자기를 고쳐 썼다. 그녀와 함께 막 출구를 나서던 때였다.
“여기 계셨군요! 또 어디 가시는 겁니까!”
“하, 하엘 경!”
딱 봐도 나 잘났소, 라고 말하고 있는 외모의 기사가 숨을 몰아쉬며 갑자기 나타난 것이다!
“렛시? 아는 사람이에요?”
“크흠. 하엘 경이라고 하는데……. 무시하고 어서 가지!”
“그렇게는 못 합니다!”
하엘이라 불린 남자가 씩씩대며 우리에게 달려들었다.
깜짝 놀란 나는 엉겁결에 렛시를 밀치고 그의 정강이를 걷어차고 말았다!
다자르에게도 통했던 단단한 무쇠 다리는 그의 정강이를 아프게 걷어찼다.
퍽!
“으헉!”
“헉. 렛시, 이리 와요!”
정강이를 쥐고 쓰러진 그를 뒤로하고 우리는 전속력으로 달려 그에게서 벗어났다.
렛시가 말한 개구멍으로 황궁을 나와 계속해서 달렸다.
“헉…… 헉…….”
한참을 달려 구석진 골목길에 들어온 우리는 한참을 숨을 골랐다.
렛시가 땀을 닦으며 하하 웃었다.
“세상에! 하엘 경을 한 방에 제압한 사람은 처음 봤느니라. 힘이 장사구나!”
“그, 그래요?”
“아주 재미난 구경을 했다!”
퍽 즐겁다는 듯 낄낄대는 그녀를 두고 벽에 기대서 헤헤 웃었다.
그러다 코트 안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작은 보자기를 꺼냈다.
“그게 무엇이냐?”
“지금부터 체력이 아주 많이 필요할 거라서요. 체력 보충할 음식이요.”
“오호?”
보자기를 쓱쓱 풀어헤치니 가래떡 두 덩이가 보였다. 그중 한 덩이를 쓱 뜯어서 렛시에게 건넸다.
“먹어요. 처음 보는 음식이겠지만, 으음. 맛있을 거예요! 꿀을 살짝 발라서 구웠거든요.”
“정말 처음 보는 음식이구나.”
기계 장인을 만나 딜을 하기 위해선 체력이 매우 필요했다.
그 외에 다른 쇼핑도 겸사겸사할 생각이었으니까.
내가 먼저 가래떡을 뜯어 먹자, 렛시가 가만히 보더니 날 따라 가래떡을 한 입 물었다.
보자기와 안경에 가려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의 입이 호선을 그리는 게 보였다.
“맛있군.”
“그래요? 기쁘네요.”
“응! 아주 맛있는 음식이다!”
가래떡을 손에 쥔 채 렛시가 행복하게 웃었다.
시아스터 공작가에 들어간 후 이제껏 비정상인들만 만나 왔던 나는 그녀를 보며 살짝 감동받았다.
맙소사. 이런 정상인이라니!
“호, 혹시 저랑 같이 다니지 않을래요? 만약 렛시가 할 게 없다면요…….”
그래서 나는 수줍게 제안했다. 그녀와 함께 쇼핑하고 싶었다!
렛시가 놀란 듯 살짝 입을 동그랗게 벌리더니, 이내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하!
“아주 재밌군! 좋아, 함께하자!”
나는 날 듯이 기뻤다. 드디어 내게도 여자 사람 친구가 생긴 것이다!
“어디부터 가면 되지? 아틀리에? 카페? 드레스 숍?”
렛시가 귀족 여성들이 흔히 가는 상점들을 열거했다. 마치 그녀도 처음 가는 것처럼 신나 보였다.
나는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내가 갈 곳은 그런 곳들이 아니었다.
“아니요. 우리가 갈 곳은 ‘울끈불끈 근육 빵빵 당신도 만들 수 있어요, 그 기계’라는 가게예요.”
“!”
렛시가 걸음을 삐끗한 것 같은데, 잘못 본 거겠지?
‘울끈불끈 근육 빵빵 당신도 만들 수 있어요, 그 기계’라는 가게는 원작에도 등장한 곳이었다.
그 가게의 주인은 랄프라는 노인으로, 지금은 원작보다는 훨씬 과거였으니 중년 정도 되었을 것이다.
퀴젠 제국에 의해 멸망한 작은 부족 출신인 그는, 십 년 전까지 노예로 부려지다가 스칼렛 황제의 노예 해방 선언 덕에 제국의 백성이 된 자였다.
무엇보다 원작에서 악시온이 제국을 파괴할 때 거대한 방어 기계를 만들어 끝끝내 제국의 성벽을 지켰던 사람이기도 했다.
당시 악시온의 상태가 이만저만이 아니라 그냥 넘어간 것도 있지만.
어쨌든, 그는 매우 능력이 뛰어난 자였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이 거대한 근육질 아저씨 말이다.
“뭐요?”
“안녕하세요. 이 가게의 주인, 랄프 씨 맞으신가요?”
“그런데?”
까앙! 까앙!
공방은 숨이 막힐 듯한 열기와 철을 내려치는 소리로 가득했다.
웃통을 벗어 던진 남자들이 연신 땀을 흘리며 부지런히 일하고 있었다.
그 한가운데에 거대한 동상처럼 선 우락부락한 근육질 중년 남자가 나와 렛시를 아래위로 훑었다.
“가게를 잘못 찾아오셨나? 쥬얼리 숍은 저 건너편이요.”
그의 눈길을 따라 내 옷차림을 살펴보니, 아하. 이런. 무도회에 간다고 차려입은 터라, 옷차림이 너무 화려했다.
노란 보자기를 뒤집어쓴 렛시는 퍽 수상했고.
나는 고개를 휙휙 저었다.
“아뇨. 잘 찾아온 게 맞는데요.”
“여기에, 찾아온 게 맞다고 하셨수?”
“네.”
랄프가 손에 들고 있던 거대한 망치를 쿵, 바닥에 내려놓고 팔짱을 꼈다.
“무슨 일로 귀한 분들이 여기까지?”
퍽 좋은 감정이 담긴 목소리는 아니었다.
원작에서도 저를 노예 신분에서 구제해 준 스칼렛 황제를 제외하고 모든 귀족을 혐오한다고 소개되어 있었던 게 기억이 났다.
그가 우리를 바라보는 눈빛은 멸시와 혐오로 가득했지만…….
“제도에 이런 곳이 있다니, 매우 신기하군.”
“렛시. 너무 막 만지면 안 돼요. 그러다 다치면 어떡해요?”
우리 둘은 딱히 그런 것은 신경 쓰지 않았다.
나야 빙의 전과 후를 통틀어 저런 눈빛에 썩 익숙하기도 했고, 그의 과거를 이미 알고 있으니 그러려니 했다.
렛시는 쿵떡쿵떡 뭔가를 찧는 거대한 망치 기계에 한 눈이 팔려 있었다.
“이보쇼.”
“앗, 죄송해요. 그야 의뢰를 넣고 싶어서 왔죠.”
“의뢰? 댁들한테 그런 거 안 받으니 돌아가쇼.”
그가 코웃음을 쳤다.
“보나 마나 티타임용으로 쓸 자동 회전 테이블이나 무한 작동 부채 같은 걸 만들어 달라고 온 거겠지. 땀으로 화장이 번지지 않게 말이야.”
“!”
뭐지! 저 엄청나게 유용한 기계들은!
“내 작품들은 그런 용도로 쓰이는 것이 아니라고! 스칼렛 황제 폐하께 은혜를 갚기 위해서! 제국의 번영을 위해 쓰일 작품들이란 말이오!”
“오호?”
그러자 망치를 보며 눈을 빛내고 있던 렛시가 휙 그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나보다도 튀는 외양의 그녀는 그가 뱉은 말이 퍽 흥미로운 듯했다.
“그러니까 돌아가쇼.”
썩 애국적인 마인드를 지닌 랄프였지만, 뭐 딱히 내겐 그리 감명적이지 않았다.
나는 심드렁한 얼굴로 그와 나 사이에 있는 테이블을 툭툭 두드렸다.
“실망이네요. 당신 작품을 보고 남몰래 존경해 오고 있었는데, 실제로는 이렇게 외적인 걸로만 상대를 파악하는 사람이었다니.”
“뭐요?”
“재작년부터 방앗간에 보급된 미아르를 가루로 만드는 기계, 그거 당신 작품이죠?”
“그, 그걸 어떻게…….”
그야 저번에 들른 방앗간에서 본 기계에 당신의 시그니처가 있는 걸 봤으니까.
“방앗간에서 들이는 인력 품을 줄여서, 미아르 가루의 가격을 어떻게든 낮추려 한 거잖아요? 평민들을 위해서 말이에요.”
“……당신 뭐요?”
랄프가 눈을 가늘게 뜨고 날 빤히 보았다.
그의 얼굴에 경계심이 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