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other of the Soon-to-be Crazy Male Lead RAW novel - Chapter 23
곧 미치는 남주의 엄마입니다 23화 –
나는 턱 끝을 살짝 치켜세우고 도도하게 말했다.
“저는 스칼렛 황제 폐하께 중대한 임무를 받은 몸이에요.”
옆에 있는 렛시가 조금 걸리긴 하지만, 이따 슬쩍 둘러대면 되겠지.
“화, 황제 폐하께?”
중대한 임무. 약간의 과장이 조금 섞였지만, 대충 맞는 말이었다.
새로운 식량을 만들어 내는 아주 중대한 사명을 지니고 있지 않나?
내 이득을 위해서 하는 일이긴 했지만.
“네. 전 그 일환으로 랄프 씨에게 기계와 도구를 만드는 일을 의뢰하러 왔어요.”
“…….”
랄프가 조금 놀란 표정으로 날 보더니 그 흉악한 얼굴을 살짝 붉게 물들이고 물었다.
“호, 혹시 폐하께서 날 알고 계신 거요?”
그러자 왜인지 모르겠지만 렛시가 눈을 끔뻑이며 뒷머리를 긁었다.
난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뇨. 랄프 씨는 주변에 알리지 않고 그런 일을 해 오고 있었던 거잖아요? 돈이 될 일이 아닌데도, 성벽을 몰래 보수한다든가.”
“헛…….”
“폐하께서는 모르세요. 하지만 전 알고 있죠. 그리고 이 의뢰를 통해 랄프 씨의 능력을 전해드리고 싶어요.”
“!”
랄프가 살짝 몸을 떨었다.
후훗. 넘어왔군.
난 속으로 씨익 웃으며 그에게 코트 속에 넣어 두었던 도안을 꺼내 건넸다.
“여기요. 이것들을 만들고 싶어요.”
“크흠!”
랄프는 아까와는 사뭇 다른 태도로 황급히 도안을 받아 들고 테이블에 쫙 펼쳤다.
그가 눈을 가늘게 뜨고 한동안 도안을 훑더니, 흥미로운 얼굴로 날 보았다.
“이거…… 재미있구먼. 어디에 쓸 생각인 게요?”
“밥 짓는 데요.”
“응?”
“있어요. 그런 거. 알잖아요, 이런 종류의 일은 비밀 엄수가 필수라는 거.”
“그, 그렇지! 크흠.”
랄프가 잊을 뻔했다는 듯 제 이마를 쾅, 치고는 황급히 도안을 두꺼운 손으로 가렸다.
그러고는 주변을 잔뜩 경계하는 태세로 살피면서 도안을 돌돌 말았다.
“좋소. 이 의뢰, 접수하지.”
나는 싱긋 웃었다.
앞으로의 계획을 위한 완벽한 거래였다.
* * *
“아주 흥미진진한 협상 장면이었다. 2년 전 제국의 재상과 아드린 왕국의 대신이 티셴 강을 두고 벌였던 설전이 떠오르더군.”
“……?”
카페에 앉아 오렌지 주스를 빨대로 쪽 빨면서 나는 눈을 끔벅였다.
여기 귀족 영애들은 저렇게 정세에도 박식하구나. 난 시사 정치라면 질색이었는데.
뭐 어쨌든 칭찬이겠거니 하고 헤헤 웃었다.
“고마워요. 아, 그리고 아까 저기서 나눈 이야기는 비밀이에요. 사실 조금 거짓말한 것도 있거든요.”
“거짓말?”
렛시가 보자기를 고쳐 쓰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 말 어디에 거짓말이 있었느냐?”
“크흠. 제가 황제 폐하 이야기를 한 거요. 그건 조금 과장한 거니까 잊어 주세요.”
“으음.”
렛시는 어딘가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그런데, 누군가 우릴 보고 있는 것 같은 이 느낌은 뭐지?
난 살갗이 송송 뚫리는 듯한 느낌에 주변을 둘러보았다.
축제로 시끌벅적한 대로에는 신문을 파는 소년, 화려하게 치장한 귀부인들, 기품 있게 걸어가는 중년 신사들이 있었고, 딱히 특이한 건 없었다.
“그런데 렛시. 누가 자꾸 쳐다보는 느낌이 들지 않아요?”
“…….”
그러자 아까 길거리에서 산 빵을 신기한 듯 해체하고 있던 렛시가 우뚝 손을 멈췄다.
그러고는 의미심장한 말을 하며 벌떡 일어섰다.
“음. 생각보다 일찍 왔군. 그대와 함께 있으면 해가 될 수 있으니 이만 헤어지는 게 좋을 것 같다.”
“네?”
아앗. 아직 ‘3초만 주면 독살시켜 드림’ 가게는 들르지 못했는데!
해충 박멸을 위한 약 제조가 필요하단 말이야!
나는 호감이 무럭무럭 자란 친구 렛시를 보내기가 무척 아쉬웠다.
하지만 단호하게 자리를 뜨는 그녀를 보내지 않을 순 없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꼭 다시 봐요.”
“그렇게 될 것이다.”
렛시는 미래를 예언하듯 말하고는 쓱 사라졌다. 인적이 드문 골목길로 향하는 것 같았다.
난 그녀의 뒷모습을 아련히 바라보다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가 언제 벗어 둔 건지, 알이 커다란 안경을 놓고 갔다는 것을!
“앗!”
그래서 난 안경을 쥐고 그녀의 뒤를 쫓았다.
그런데, 어째서 이런 상황이 된 걸까?
“렛시! 이거 놓고 갔……!”
렛시를 찾아 들어선 골목길에는 웬 검은 복면인들이 수두룩했다.
그들은 렛시를 한가운데에 둔 채 칼을 빼 들고 있었다.
살벌한 검날이 어둠 속에서 번뜩였다.
안경을 번쩍 치켜든 채 골목길에 짠 하고 나타났던 나는 눈을 여러 번 깜박이며, 상황을 파악했다.
복면인 여럿과 그 한가운데에 위협받고 있는 사람 하나.
‘납치인가!’
상황 파악을 마친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저 살벌한 칼날이 무섭긴 했지만, 렛시를 붙잡고 대로로 달리면 어떻게든 살길은 있을 것 같았다.
위험에 빠진 내 여자 사람 친구를 구해야 했다!
“실리아……?”
렛시가 당황한 목소리로 부르는 걸 살포시 무시하고 그쪽으로 향했다. 복면인들이 렛시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가두듯 둘러싸고 있었지만, 그들도 당황하기는 한 모양이었다.
얼굴을 쪼그라든 풍선처럼 한껏 구긴 채로 껄렁껄렁 걸어 그 사이로 들어가는 동안 별다른 제지를 하지 않은 걸 보면 말이다.
고개를 45도 각도로 비틀어 올린 채 음산하게 말했다.
“어이어이, 여긴 내 구역이라고? 내 자리에서 삥을 뜯다니 용감한걸.”
“…….”
복면인들은 내 등장에 당황은 했지만, 헛소리에 말려들지는 않았다. 음. 잘 훈련된 녀석들인데.
보통 이 정도로 헛소리를 하면 이건 뭐 하는 놈인가 싶어서 목소리를 내기 마련인데, 이놈들은 그저 힐긋 나를 살피고 말았다.
속으로 땀을 삐질 흘리며, 슬쩍 렛시의 옆에 섰다. 그리고 그녀의 손목을 움켜잡았다.
“자릿세 대가로 이 녀석은 내가 데려가마.”
기대만큼은 아니지만, 잠깐의 틈은 벌었다.
한 걸음, 두 걸음 옮겨서 우리를 둘러싼 녀석들에게서 거의 렛시를 빼내었을 때쯤이었다.
타닥, 복면인들이 일제히 우리 쪽으로 몸을 트는 소리가 들렸다.
“달려요, 렛시!”
렛시를 잡은 손에 힘을 주고, 있는 힘껏 땅을 박찼다.
“헉, 헉…….”
“잠깐, 멈춰 보아라.”
“렛시, 정신 차려요! 위험한 상황이라고욧!”
후다닥 달려가면서 외쳤으나 렛시는 오히려 내 손목을 잡아당겼다.
“그게, 아니라……. 이미 앞은 막혔어.”
“히익?”
그녀의 말대로였다. 대로로 향하는 출구는 이미 복면인들이 막고 서 있었다.
끼익, 소리를 내며 멈춰 섰다. 왠지 여유롭게 쫓아온다 했더니 이런 상황이었다니!
뒤쫓은 복면인들을 황급히 돌아봤다.
그들은 헐떡이는 기색도 없이 천천히 우리에게로 다가왔다. 독 안에 든 쥐를 바라보는 듯, 느긋했다.
“순순히 따라와.”
그중에 대장 격으로 보이는 남자가 음산한 목소리로 그리 말했을 때였다.
“어라, 어라라.”
이곳에서 들릴 리가 없는, 익숙한 목소리가 위에서 들려왔다.
“누님이 왜 여기 계시죠?”
깜짝 놀라 고개를 휙 올리니, 검은 갑옷을 입은 사내들이 건물의 지붕에 쭈그려 앉아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치 까마귀들이 전신줄에 앉아서 여유로이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는 모양새랄까.
이 사람들은 분명…….
“치잇! 흑매인가!”
그들이 나타나자 복면인들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악스러운 손이 렛시를 향해 빠르게 뻗어 왔다.
“호엑!”
나는 렛시를 밀치면서 우리에게 몸을 날린 녀석의 얼굴을 주먹으로 퍽, 내리쳤다.
내 팔 힘이 웬만한 성인 남성 못지않다는 걸 난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으헉?!”
남자가 비틀대자, 위에 쭈그려 앉아 있던 녀석들이 바닥으로 뛰어내렸다.
높은 곳에서 떨어졌는데도 아주 안정적인 착지였다. 전신 갑옷을 걸쳤음에도 그 흔한 마찰음도 들리지 않았다.
그들은 바닥에 착지하자마자 복면인들을 제압하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가 내게 다가왔다. 매를 연상시키는 검은 투구를 쓰고 있어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아이고, 누님. 여기 계시면 저희가 주군에게 혼나는데.”
“……레온?”
“헤헤.”
‘미식의 길’이라는 수첩을 항시 들고 다니는, 양 꼬치를 잘 굽고, 먹는 게 참 조신한, 흑매의 단장 레온이었다.
그가 발을 휙 뻗어 복면인을 저 멀리 날리더니,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투구를 긁는 소리가 났다.
‘이 쓰레기들이 왜 여기에 있어?’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아 눈을 두어 번 끔벅였다.
렛시를 휙 보았지만, 놀란 기색이 없는 거로 보아 상황이 이렇게 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던 듯했다.
그저 흐트러진 노란 보자기를 고쳐 쓰며 으음, 하고 작게 고민하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흑매가 나타나자 상황은 빠르게 정리되었다.
기절한 복면인들은 수갑이 채워진 채 한쪽 구석에 차곡차곡 쌓였다.
내가 어벙하게 주변을 돌아보고 있는데, 골목길 입구에서 남자 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상에! 이런 일을 기획하실 거면 미리 말씀을 주셔야죠!”
“아니, 그러니까, 난 아무 권한이 없다니까 그러네. 나한테 따져서 뭐 해? 그쪽 주인한테나 따져.”
“그쪽 주인이라뇨! 폐하는 만인의 주인이십니다. 시아스터 공작!”
뭐? 시아스터 공작? 익숙한 이름과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휙 돌리니, 그곳에는 다자르가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아까 황궁에서 마주쳤던 하엘 경이라는 사람이 내게 까인 발을 절뚝대며 걸어오고 있었다.
“으잉?”
“……뭐야?”
내 앞에 있는 저 까만 놈은 분명 아까 전까지 무도회장에서 엄마 부대에 둘러싸여 있던 재수탱 사돈 녀석이었다.
“여기서 뭐 해요?”
“너야말로?”
우리는 싸늘한 눈으로 서로를 노려보며 대치했다.
그런 우리의 사이에 끼어든 것은, 흐트러진 노란 보자기를 고쳐 쓰고 내 손에 들린 안경을 살포시 빼내어 단정히 쓴 렛시였다.
“큼큼. 나, 나는 스칼렛 황제의 그림자 기사라오. 황제 폐하의 명을 받고 투입되었다네.”
“네?”
“화, 황제인 척하고 암살자들을 끌어들이는 역할을 맡았지!”
렛시는 필사적이었지만, 그녀의 연기력은 저 바닥에 지나가는 지렁이보다도 못했다.
어제 비가 왔던가. 웬 지렁이가…….
잠시 꾸물꾸물 지나가는 지렁이를 바라보며 나는 머릿속을 맹렬히 회전했다.
‘아하. 렛시가 스칼렛 황제?’
머릿속에서 폭죽이 터졌다. 정답이라는 사인이었다.
아하! 내가 감히 황제 폐하와 쇼핑을 하고 주스도 먹고 손목을 잡고 뛰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