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other of the Soon-to-be Crazy Male Lead RAW novel - Chapter 24
곧 미치는 남주의 엄마입니다 24화 –
제 발 저린 렛시가 내 눈치를 보며 안절부절못하는 게 보였다.
그런 그녀의 옆으로 하엘 경이 썩은 얼굴을 한 채 다가갔다.
어쩔 수 없이 제 주군의 장단에 맞춰 준다는 얼굴로 한숨을 쉬며 말했다.
“맞습니다. 이분은 퀴젠 제국의 황제, 스칼렛 님의 그림자 기사시지요. 오늘 중대한 사명을 띠고 이렇게 황궁 밖으로 나오셨습니다. 놀라게 해 드려 죄송하군요, 에반로아르 자작 영애.”
“어……. 그렇군요. 아니에요. 저야말로 죄송하죠. 아까 그, 저기, 정강이는 괜찮으세요?”
“…….”
하엘이 잠시 침묵했다. 그의 눈이 도르륵 굴러 하늘을 바라보았다가 천천히 바닥으로 향했다.
“아주 괜찮습니다. 전 이래 보여도 황제 폐하의 영광스러운 호위 기사니까요. 그, 그런 솜방망이 발길질 정도야. 하하.”
“다행이네요. 휴우. 아까 쉽게 일어나시질 못하는 걸 보고 조금 걱정이 되었거든요.”
“하. 하. 잘못 보셨나 보군요. 아주 쉽게 일어났습니다.”
아, 내가 잘못 봤나? 다행이다.
휴. 하마터면 황제의 호위 기사를 처리할 뻔했잖아.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마뜩잖은 눈으로 날 내려다보는 다자르를 흘겼다.
그는 우리가 나누는 대화를 코웃음 치며 듣고 있더니, 렛시…… 아니 황제의 앞에 서서 이렇게 말했다.
“그림자 기사 씨. 주인에게 그 막 나가는 것 좀 고쳐 달라고 전해 주십시오.”
“뭐라?”
“얌전히 황좌에 앉아 있을 것이지, 왜 일부러 미끼를 내보내는 건지. 쯧.”
“너도 알고 있지 않느냐.”
잠시 발끈했던 렛시는 이윽고 조금 가라앉은 목소리로 작게 말했다.
“그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 교단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
“정말로 루벤이 나타난 걸지도 몰라.”
내가 들으면 안 되는 이야기인 것 같지? 라고 생각하며 슬쩍 두어 걸음 물러서던 나는, 렛시의 입에서 나온 단어에 멈칫했다.
‘루벤.’
방금 루벤이라고 한 것 맞지?
그러자 다자르가 무심하게 툭 말했다.
“그렇다면 제가 모를 리가 없지 않겠습니까.”
“……그래. 확실히 그렇긴 하지. 자네는 시아스터니까.”
루벤이 나타나면, 다자르가 모를 리 없다는 소리였다.
루벤과 다자르는 무슨 관계인 거지?
좀 더 귀를 기울이려고 하는 그때, 렛시가 나를 의식한 듯 힐끔 보고는 더욱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대륙에서 갖가지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어. 갑자기 늘어난 암살자들이나 그대가 맡은 식량 문제도 마찬가지지. 그들이 그대가 진행하고 있는 일을 방해하려 할지도 몰라.”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전해 주시죠.”
“그래. 그럼, 이자들의 뒤에 누가 있는지는 심문으로 알아보겠네. 곧 ‘균열의 날’이지? 평소와 다른 게 있다면 바로 보고하도록.”
“아아.”
알았다는 듯 다자르가 고개를 끄덕이는데, 렛시가 덧붙였다.
“그리고 다른 초월자들과 제발 좀 협력해.”
다자르가 얼굴을 구겼다.
* * *
렛시와 헤어진 우리는 지나가는 마차를 잡아타고 황궁으로 향했다.
나를 보고 밝은 얼굴로 함께 황궁으로 돌아가자고 청했던 렛시는, 그사이에 껴든 다자르를 보고 뭐 씹은 얼굴을 했다.(노란 보자기에 가려 잘 보이진 않았지만, 일그러진 입술로 추측했다).
결국,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상태로 우리는 헤어졌다.
‘편지를 보낼 테니, 꼭 답장을 주었으면 좋겠다! 실리아!’
렛시는 수줍은 듯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고는 하엘 경과 휙 사라졌다.
‘어, 누님. 주군한테 말 좀 잘해 주세요. 헤헤.’
배경처럼 서 있던 흑매들은 날 보고 연신 머리를 긁적이다 사라졌다.
무슨 말을 잘해 달라는 건지 모르겠다.
레온은 떠나며 사탕 하나를 쥐여 주었다. 뇌물이라고 했다. 그 뇌물은 아까 바닥을 기던 지렁이에게 던져 주고 왔다.
그리고 나는…….
“잠깐 어디 좀 들렀다 가도 되죠?”
“뭐? 어딜?”
날 먼저 마차에 오르게 한 후, 뒤이어 오르던 다자르가 고개를 갸웃했다.
시아스터 공작가의 인장이 대문짝만하게 그려진 마차 안에서 나는 당당히 저 멀리 어딘가를 가리켰다.
“세계의 안위를 위협하는 존재를 해치우기 위해 준비해야 하거든요.”
“……뭐?”
내 앞에 마주 앉던 다자르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바위처럼 단단해진 입매와 서늘해진 눈이 제법 매서웠다.
아니, 농담 한 번 한 건데 왜 이렇게 진지해?
사람 어색해지게.
“건강한 쌀을 얻지 못하게 하는 최악의 악당 말이에요. 무시무시한 해충이라는 녀석들이죠.”
재빨리 덧붙인 말에 다자르의 얼굴이 느슨해졌다. 어이없다는 듯 픽 웃으며 중얼댔다.
“사람 놀라게 하는 데 아주 재능이 있어.”
“칭찬 고마워요.”
왜 그렇게 어이없게 쳐다봐?
식량난을 해결한 벼농사가 해충 때문에 실패하면 세계의 안위에 문제가 생기는 게 맞는데.
“그 해충이라는 게 벼의 성장을 막나 보지?”
“네. 그런데 여기엔 농약이라는 게 없어서…….”
“농약?”
그랬다.
내가 ‘3초만 주면 독살시켜 드림’이라는 엄청나게 무시무시한 이름을 지닌 가게에 가려는 이유. 이곳에는 농약이라고 부를 만한 게 없었다.
‘식량난이 일어난 게 이런 문제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다자르는 그 농약이라는 게 무엇인지 퍽 궁금한 듯했지만.
“있어요, 그런 거.”
하나하나 차근차근 설명해 주기 귀찮았으므로, 무시하고 얼른 그 가게가 있는 골목으로 향했다.
차게 식은 그의 얼굴은 머릿속에서 지우고.
‘자기도 숨기는 게 많으면서. 뭐 굳이 설명을 바란담.’
아까 슬쩍 렛시가 이야기한 루벤이 뭐냐고 물었더니, 입을 조개처럼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한마디 하긴 했지.
‘남 얘기 주워듣는 거 아니다.’
댁들이 다 들리게 이야기한 건 생각 안 하시나 봅니다.
대충 보니 이곳 황궁에 온 것도 모종의 이유가 있는 듯하던데. 대체 루벤이 무엇이길래 저런 반응인 거야.
나는 뚱한 얼굴로 팔짱을 낀 채 창밖을 보았다.
으슥한 골목길에 도착한 건 그로부터 삼십 분 정도의 시간이 지난 뒤.
여기저기 골목을 헤쳐 도착한 이곳은 무시무시한 이름을 지닌 가게가 위치한 곳답게, 매우 음침했다.
“그럼, 다녀올게요.”
“……혼자 다녀와도 되겠어?”
답지 않게 다자르가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도 이해 갈 정도로 말이다.
“설마 지금 저 걱정하는 거예요?”
“그럴 리가? 아, 그러고 보니 걱정이 되긴 하네. 네 그 무쇠 다리를 알아보지 못하고 달려들 불량배 녀석이.”
“…….”
“혹시 그렇게 되면 귀찮아지니까 내가 같이…….”
“됐어요.”
마차 문을 쾅 닫고 척척 걸었다.
살짝 고개를 내밀었던 다자르가 마차 문에 이마를 찧은 것 같은 쿵 소리가 들렸지만 내 착각이려니, 하고 열심히 걸어 가게를 찾아 들어갔다.
“계세요?”
거미줄이 잔뜩 달린 거무죽죽한 나무 문을 열고 들어선 가게는 겉보기와는 달리 꽤 정돈이 잘되어 있었다.
이름 모를 동물의 꼬리나 말린 가죽 같은 것들이 걸려 있어 역시나 음침한 분위기이긴 했지만 말이다.
코끝에 스치는 약 냄새에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손님이 있네?’
나보다 먼저 온 손님이 계산대로 보이는 너저분한 책상 앞에 서 있었다. 로브로 온몸을 꽁꽁 감싸고 있어 외양은 보이지 않았지만.
칠흑처럼 검은 로브가 음산한 분위기의 가게와 퍽 어울렸다.
‘주인은 물건을 준비하는 중인가 보네.’
계산대 옆에 작게 난 문 안에서 뭔가를 가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그 소리와 함께 멀거니 서서 기다리고 있는 손님이라면, 이 손님의 물건을 준비 중인 게 틀림없었다.
‘음.’
내가 원하는 건 해충을 제거하는 독약이면서, 식물에게는 되도록 영향을 미치지 않고, 그 식물을 먹어도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약이었다.
꽤 까다로운 조건이었기에 주인과의 대화가 필요했다.
‘일단 기다려 볼까.’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니, 대충 가게를 구경하며 기다리기로 했다.
가게 안에는 신기한 것들이 많았다.
가시처럼 생긴 가시 독수리의 깃털이라든가.
손가락처럼 생긴 버섯이라든가.
‘우와. 이건 뭐야?’
그러다 동그란 유리병 속에 들어 있는 걸 바라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외눈박이 거인의 눈?’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생긴, 커다란 눈이었다.
으웩. 어쩐지 속이 언짢아져 시선을 돌리는데.
‘헉. 방금 눈이 움직인 것 같은데?’
분명 방금, 마치 나를 보기 위해 초점을 맞추는 것처럼 동공이 수축했다가 확장되었다.
깜짝 놀라 뒷걸음친 내 등 뒤로 무언가가 툭 부딪혔다.
“엇, 죄송합니다.”
“…….”
나보다 먼저 도착해 있던 손님의 등이었다.
그러자 그가 탁, 탁 소리를 내며 뒤돌았다.
‘어?’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고 보니, 로브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던 스태프가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였다.
검은 로브와 깔 맞춤이라도 한 듯, 커다란 흑요석이 박힌 스태프는 한 눈으로 봐도 값비싸 보였다.
“괜찮으신가요?”
스태프에 시선을 빼앗겨 있는데, 위쪽에서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네. 저는 괜찮아요. 죄송합니다.”
꾸벅 고개를 숙이고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놀랐다.
‘와. 잘생겼네.’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이 스쳐 지나갈 정도로, 대단한 미남자가 눈앞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