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other of the Soon-to-be Crazy Male Lead RAW novel - Chapter 43
곧 미치는 남주의 엄마입니다 43화 –
“…….”
스윽…….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나무 뒤편에 뭔가 살짝 튀어나온 게 느껴진다.
휙! 재빨리 고개를 돌려 확인하면.
파밧! 황급히 그 인영이 숨어 버린다.
그리고 이 과정은 악시온과 함께 모래 놀이를 하기 위해 나온 직후부터 지금까지 반복되고 있었다.
스윽……. 휙! 파바밧! 쓱! 휙! 팟!
내 고갯짓이 빨라질수록 그 인영의 움직임도 빨라졌다. 움직임이 어찌나 빠른지, 어린아이의 몸짓이라고 짐작하지 못할 정도였다.
으음.
나는 한 손으로 악시온에게 모래를 밀어 주면서 다른 한 손으로 턱을 쥐었다.
“우아.”
“저 아이를 어떻게 하지.”
아직 어린아이이긴 한 건지, 나무 뒤에 완벽히 숨었다고 생각하는 듯했지만. 숨을 때마다 양 갈래 머리 한쪽이 삐죽 삐져나오는 바람에 나무 뒤에 숨은 이의 정체를 너무나도 잘 알게 되어버렸다.
이곳 시아스터가의 소중한 외동 따님이자 내 미래의 며느리, 바닐라였다.
스윽…….
바닐라가 다시 고개를 내민 게 느껴진다. 이쪽을 바라보는 눈빛이 어찌나 강렬한지, 살갗을 찌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번에는 가만히 있어 보자.’
반응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 보기로 했다. 바닐라의 눈빛을 모르는 척, 악시온이 고사리손으로 톡톡 두드리고 있는 모래더미를 같이 두드려 주었다.
그러자 어쩐지 눈빛이 더욱 강렬해진 것 같다.
악시온과 놀이를 할 때마다 눈빛에서 내뿜는 레이저가 더욱 강해지는 걸 보면, 바닐라는 분명 우리와 함께 놀고 싶은 게 분명하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도 여기서 마주쳤었지.’
이른 오전에 혼자 나와서 놀이를 하다가 머뭇대며 도망가던 게 떠올랐다. 혹시 바닐라는 외로운 게 아닐까?
다자르가 바닐라랑 놀아 주는 걸 본 적이 없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럼 같이 놀면 되지 않나.
“악시온, 우리 둘만 노니까 조금 심심하지 않아? 누구 한 명 더 같이 놀면 참! 좋을 텐데. 그렇지?”
“우웅?”
“악시온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우웅!”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한 게 분명했지만, 악시온은 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으으. 내 새끼지만 정말 귀엽구나.
악시온의 귀여움에 홀려 나도 모르게 헤벌쭉 웃으려던 걸 가까스로 막고 다음 대사를 얼른 뱉었다.
“같이 놀 사람이 누가 있을까~ 아! 맞다. 바닐라 누나 있잖아. 바닐라 누나랑 같이 놀면 더 재밌을 것 같지 않아?”
“웅아!”
흠칫.
나무 쪽을 힐끔 보자, 나무 뒤로 튀어나온 양 갈래 머리 한쪽이 흔들리는 게 보였다. 분명 내 말에 혹한 게 틀림없다!
나는 용기를 얻어 조금 큰 소리로 외쳤다.
“바닐라 누나~ 혹시 옆에 있으면 같이 놀아요~”
“우아아~”
하지만 내 시도가 다소 과했던 건지, 바닐라는 다가오기는커녕 오히려 후다닥 사라져 버렸다.
“앗…….”
“우우?”
“가 버렸네…….”
내가 아쉬운 얼굴을 하자 악시온이 날 보며 고개를 갸웃하더니 작은 손을 쏙 내밀어 내 뺨을 톡 건드렸다. 왜 그런 얼굴을 하냐는 듯이.
덕분에 푸흐흐 바보처럼 웃고 말았다.
“우리 악시온, 엄마가 걱정됐어요?”
“우웅!”
“아이, 귀여워. 바닐라 누나랑 같이 놀면 좋을 텐데. 누나는 아직 준비가 안 되었나 봐.”
“우웅…….”
작은 두 손으로 모래를 팡팡 두드리는 악시온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바닐라와 어떻게든 시간을 가져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 * *
“뭐? 바닐라가 좋아하는 게 뭐냐고?”
웬일로 집무실에서 서류를 뒤적이고 있던 다자르가 황당한 얼굴을 했다. 왜 저런 얼굴이람?
“네. 바닐라가 좋아하는 놀이나 장난감, 아니면 뭐 먹는 거라도 좋아요. 좀 알고 싶어서요.”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네?”
왜 황당한 얼굴을 하나 했는데. 그걸 자기가 알 리가 있냐는 메시지가 담긴 황당함이었나. 나는 게슴츠레한 눈으로 다자르를 물끄러미 보았다.
“당신, 바닐라 아빠잖아요?”
“……그렇긴 하지.”
다자르가 멈칫하더니 고개를 슥 돌렸다. 아. 생각해 보니 바닐라가 친딸이 아닌 건, 원작을 읽은 나만이 알고 있지.
친형의 딸이었으니까 다자르가 바닐라에 대해 잘 모르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긴 했다.
하지만 그래도 아이가 좋아하는 건 알고 있어야 하지 않나. 같이 지낸 지 이제 몇 달이 넘어가고 있는데.
그때 다자르가 약간 투덜대듯 중얼댔다.
“나도 나름 거리를 좁혀 보려고 했는데. 쉽지 않아. 그 녀석이 날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 그때 너도 봤잖아?”
보긴 봤지.
‘개새기에요.’
내가 한 번에 깨달은 듯한 얼굴을 하자, 다자르가 눈썹을 까딱였다.
“그래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라면 좀 나을까 해서 선생들을 여럿 고용했지. 하지만 그중 몇만 두고 거의 정리된 상태야.”
“어? 왜요?”
“……바닐라가 사람을 좀 가리더군.”
그러면서 다자르가 전한 이야기를 요약하면 대략 이러했다.
바닐라가 자신을 좋아하지 않자 다자르는 저 대신 바닐라를 돌봐 줄 선생을 여럿 고용했다. 하지만 바닐라는 심하게 사람을 가렸고, 바닐라가 그래도 거리를 두지 않는 선생 몇이 남았다. 그럼에도 썩 안정적인 관계는 아니었다.
“그나마 좀 편하게 대하는 게 엘스턴이었지. 아마 그 녀석이 부리는 마법이 신기했던 모양이야.”
“아하. 그래서 엘스턴이 바닐라의 교육 전반을 담당하게 된 거군요.”
“뭐, 그런 것도 있고.”
그 외에 다른 이유도 있다는 뉘앙스였지만 그걸 말해 줄 다자르는 아니었다.
흐음. 그렇다면 바닐라는 아직도 이 시아스터가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아닌가.
“뭐라도 좀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뭘 해?”
“바닐라 말이에요. 겉돌고 있는 것 같은데.”
“……그 녀석이 날 별로 안 좋아한다니까?”
다자르답지 않은, 작고 흐릿한 목소리였다. 한마디로 자신감이 없어 보였다.
아니, 그래도 아빠 된 사람이! 딸을 책임지고 행복하게 해 줘야지. 무어라 잔소리를 뱉으려다가 문득 스쳐 간 생각에 입을 다물었다.
‘바닐라의 친부…… 이자, 다자르의 형을 다자르가 직접 제거했다고 했지.’
혹시 바닐라도 이걸 알고 있나? 아니, 모르더라도 다자르 입장에서는 바닐라를 대하는 게 당연히 어려울 만했다.
다자르가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질렀다니. 지금도 믿기지는 않지만, 분명 어떤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지켜봐 온 다자르라면 그러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 그런 짓을 저질렀든지 간에, 바닐라의 친부를 자신이 제거한 건 변함없는 사실이다.
내가 생각이 짧았군.
다자르도 다자르 나름대로 바닐라와의 관계에 신경을 쓰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바닐라에게 선생을 여럿 붙이고, 마탑주까지 옆에 붙여 둔 걸 보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대로 그냥 두는 건 좀 아닌 것 같은데.’
원작에서 다자르가 등장하지 않았던 이유를 지금 조금 알 것도 같았다. 바닐라는 성인이 되자마자 시아스터가의 가주직을 이어받았고, 그때 다자르는 아마 시아스터가를 떠난 모양이었다.
누군가 전대 공작님은 잘 지내냐고 안부를 묻는 장면이 있었는데, 바닐라가 무표정하게 답했었다.
‘잘 지내겠죠. 그 사람이니까.’
부녀지간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매우 건조한 대답이다. 악시온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소설이었기에 바닐라의 다자르에 대한 깊은 심정까지는 다뤄지지 않기도 했고.
다만, 바닐라의 입에서 다자르 이야기가 나온 적은 딱 저 때뿐이었다. 아마도, 내 기억이 명확하다면 말이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이대로 가다간, 남보다도 못한 부녀지간이 될 것이란 소리였다.
그건 안 되는데.
내 며느리가 된다는 말은, 곧 또 하나의 가족이 된다는 소리였고. 나는 내 가족이자 며느리인 바닐라가 제 가족에 대해서 좋은 마음을 가졌으면 했다.
오지랖일 수는 있지만.
“……이건 나도 어쩔 수 없어.”
저 천하의 다자르가 풀이 죽은 듯한 목소리로 중얼대는 걸 보면.
‘우……. 바, 바닐라눈 대써요.’
얼굴이 벌게진 채로 그리 중얼대던 바닐라를 떠올리면.
이 둘을 이대로 둬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자꾸만 드는 것이다.
“으으. 일단 알겠어요. 그럼 제가 바닐라랑 좀 친해져 볼게요.”
“……뭐? 바닐라와?”
“네. 보니까 악시온과 함께 놀고 싶어 하는 낌새던데. 쉽게 다가오질 못하더라고요. 우선 그것부터 시작해 보겠어요.”
살짝 죽어있던 다자르의 눈에 한 줄기 빛이 스쳤다. 황금빛 눈이 반짝거리며 이런 메시지를 던졌다.
감히 바닐라와 놀 생각을 하다니 대단하군.
……대단하다는 뜻 맞겠지?
어쨌든, 나는 콧김을 흥 뱉으며 자리에서 척 일어섰다.
우선은 바닐라의 환심을 사 볼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