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other of the Soon-to-be Crazy Male Lead RAW novel - Chapter 99
곧 미치는 남주의 엄마입니다 99화 –
저택이 아주 엄청난걸……?
나는 눈앞에 보이는 커다란 저택을 응시했다. 내가 도착한 곳은 홀먼 백작가의 타운하우스. 실제 홀먼 백작이 기거하고 있는 백작령은 수도에서 꽤 거리가 있었다.
미야는 서신에서 수도의 레이디들과 이곳 타운하우스에서 자주 시간을 갖는다고 했다.
‘백작가의 본저가 아닌데도, 꽤 공을 들인 느낌이긴 한데.’
홀먼 백작은 공무로 바빠 백작령을 벗어나는 일이 없다고 들었다. 물론 이것도 미야에게 서신을 통해 들었지.
백작가의 금지옥엽인 미야가 수도에 자주 놀러 오니, 아예 그녀 취향으로 디자인된 듯한 저택이었다.
그러니까, 굉장히……
‘공주풍이네.’
여기저기에 분홍, 노랑, 연두 같은 파스텔 톤으로 꾸며진 담벼락이 보였고, 정문으로 향하는 길의 조경은 매우 샤랄라 했다.
내 두 번째 여사친은 취향이 굉장히 공주풍이구나. 뭐, 그렇다고 해서 내 첫 여사친이 황제인 것처럼 그녀가 실제 공주라 놀랄 일은 없었으니.
나는 조금 떨떠름한 기분으로 마차에서 내렸다.
“실리아! 어서 오세요! 기다리고 있었어요!”
내가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기쁨이 가득 담긴 목소리가 우렁차게 들려왔다. 아니, 사람 목소리가 이렇게 클 수가 있나.
기차 화통을 집어삼킨 것처럼 너무나도 커다란 목소리였다. 귀가 얼얼할 정도라 눈썹을 찌푸리고 고개를 옆으로 돌렸는데.
“어…… 미야? 우리 거리가 조금 지나치게 가까운 것 같은데요.”
“어멋.”
너무 시끄러워 이상하다 싶었다. 잔뜩 상기된 표정의 미야가 한 뼘도 되지 않을 거리에 서 있었다. 이 정도면 거의 내 귀에 입을 가져다 대고 소리친 정도인데……?
나는 아직도 얼얼한 귀를 후비며 어색하게 웃었다.
“죄송해요, 실리아. 제가 너무 반가운 마음에 귀족의 예의를 잊고…….”
그래. 실리아를 가르치다 도망친 예법 선생님이 한때 실리아에게 서로 거리를 지키는 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한 시간 내내 교육했던 게 얼핏 기억난다.
비록 실리아의 만행으로 도망가고 마셨지만…….
선생님, 제가 대신 그 가르침을 깊이 깨닫고 있답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여기서 계속 기다리고 있던 건 아니죠? 이제 봄이라지만, 아직 날이 좀 추운데.”
“헤헤…… 실리아가 온다고 하니까, 몸이 들썩여서 가만히 있을 수가 있어야죠.”
미야가 수줍은 얼굴로 몸을 살짝 꼬며 말했다. 영락없이 설렘과 기쁨이 가득한 소녀 감성 레이디의 모습이었다.
미야가 이렇게 나를 반겨 주니 나 또한 좋긴 했지만.
‘어, 으음.’
이 분홍빛 가득한 저택 안에서 이렇게 샤랄라 하게 차려입은 귀족 영애의 말랑말랑한 감정 표현은, 내겐 조금 낯선 것이었다.
아니, 낯선 것보다는 좀 더 괴로운 쪽에 가까운 감정이다.
으으. 나 이런 거 쥐약인데.
나는 다시 한번 미야에게 어색하게 웃어 주었다. 그러자 미야가 말갛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마치 기사가 레이디를 에스코트하듯 용맹히 내밀어진 손에는 하얀 장갑이 끼워져 있었다.
“자, 들어가요. 오늘 실리아가 온다는 소식에 다들 일찍 왔지 뭐예요. 모두 실리아만 기다리고 있어요.”
“네에……?”
티타임을 갖는다기에, 나 말고 다른 사람도 있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다들 날 기다리고 있다니 그거참 너무 부담스럽구먼.
그래도 내 두 번째 여사친이 마련한 자리이니, 기쁜 마음으로 참가할 수 있었다.
나는 미야의 손에 내 손을 올렸다.
그녀의 안내를 받고 걸음을 옮긴 곳은, 정원이 내다보이는 테라스였다. 이곳 또한 공주님 감성으로 꾸며져 있어 왠지 살갗에 오스스 닭살이 돋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모두 이쪽을 봐 주세요. 오늘의 주인공, 실리아 에반로아르 영애께서 도착하셨어요.”
“안녕하세요, 영애.”
“반가워요.”
테라스에는 순백의 테이블이 기다랗게 놓여 있었고, 그 주변에 각자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귀족 영애들이 줄지어 앉아 있었다.
모두 반짝반짝 빛나는 눈빛이다. 왠지 부담스러운 눈빛들인데.
“안녕하세요. 에반로아르 자작가의 실리아라고 합니다. 모두 반가워요.”
내가 인사하자, 영애 여럿이 왠지 엉덩이를 들썩거린다. 마치 어서 제 옆으로 와서 앉아 달라는, 그런 제스처로 보이는 건 왜일까.
그녀들의 바람이 무색하게, 나는 미야와 함께 상석에 앉게 되었다.
“정말 뵙고 싶었어요, 실리아 영애.”
“어, 네에.”
이상하다. 왜 나한테 이렇게까지 호감을 표현하는 거지?
지난날 귀족들이 날 보자마자 해일이 갈라지듯 쓰윽 멀어지던 게 아직도 내 뇌리에 박혀 있다.
마지막으로 내가 귀족들을 마주한 게 ‘안식의 장’인데 그때도 그들은 나를 피하는 기색이었다.
이 몸이 워낙 악명을 펼쳤던 것도 있지만, 악시온을 내 아이로 발표하면서 다들 나에게 접근하는 걸 꺼렸었지. 시비를 걸려고 접근한 자들을 제외하고.
“미야 영애께 말씀 많이 들었어요. 이제껏 저, 아니, 많은 귀족들이 영애에 대해 큰 오해를 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네?”
오해라니, 그게 무슨 소리람.
내가 눈을 두어 번 끔벅이며 고개를 갸웃하자, 내게 말을 건넨 영애가 내 시선을 받아 부끄러운 듯 살짝 뺨을 감싸 쥐며 말했다.
“이제껏 영애께서 농사라는 천박한 일에 미쳐 혼기도 놓치고 하루 종일 동물의 변만 모으고 다닌다는 소문이 돌았는데.”
“…….”
소문이 아니라 사실인데요.
“사실 알고 보니 위대한 존재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빠져, 그를 위해 일부러 농사를 짓고……”
“……?”
네?
위대한 존재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요? 제가요?
나는 눈을 여러 차례 깜박이다가, 휙휙 주변을 살폈다. 다른 영애들이 모두 살짝 눈물을 머금고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아니, 저기……
내가 무어라 딴지를 걸기도 전에, 아까 이야기를 꺼낸 영애는 계속해서 말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기에, 그를 떠나보내는 대신 마음으로 생명을 잉태하여 악시온이라는 아이를 낳으셨다고…….”
“흐윽, 너무 감동적이에요.”
이 여자들이 지금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나는 슬쩍 뺨을 긁었다.
왜 갑자기 나에 대한 호감이 싹 텄나 했더니, 그들의 감성을 자극할 만한 엄청난 헛소문이 퍼진 모양이다.
위대한 존재……? 대체 어떤 존재기에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는 거지. 거기다 마음으로 생명을 잉태하다니. 그게 가능한 일인가.
헛된 소문이니 정정을 해야겠다 싶어 입술을 떼려는데. 내 손을 살짝 잡아 오는 손이 있었다.
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왠지 안절부절못한 기색이던 미야였다.
“여러분. 이렇게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면 실리아가 조금 난감하지 않겠어요? 이제 이 이야기는 그만하도록 해요.”
“어머. 죄송해요, 실리아 영애. 제가 너무 주제넘었죠. 영애께는 마음 아픈 일일 텐데……”
“어, 으음. 아니에요. 괜찮아요.”
다른 영애들이 이 이야기를 꺼낸 영애에게 눈치를 주는 게 보였다. 그러면서 내게 무한 따스한 눈빛을 쏘아 주는데……
그 눈빛이 참,
‘좋은데?’
하도 멸시와 혐오가 섞인 시선을 받다 보니, 아무리 나라도 마음에 조금 상처가 났었는데. 이렇게 따뜻한 시선이라니.
‘이 상황은 미야의 작품인 건가?’
옆에서 미야가 연신 내 눈치를 살피는 게 느껴졌다. 아마, 내 허락 없이 입을 놀렸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딱히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의 상황이 마음에 들었다.
‘악시온이 미래에 에반로아르의 대표로 사교계에 나설 때, 안 좋은 소문 속에서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보다는 낫지.’
사실 나야 사람들의 악평을 팅팅 튕겨 낼 수 있다지만, 악시온은 모르는 일이었다. 사랑스러운 내 아이에게 그런 아픔을 주고 싶은 엄마는 없을 것이었고.
나는 그들의 말이 맞다는 듯 살짝 눈썹을 누그러뜨리고 처연하게 미소 지었다.
“고마워요, 다들.”
“흐읍.”
내 감사 인사가 그들의 무엇을 자극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영애 몇 명이 숨을 참으며 고개를 돌렸다.
뭐지. 그냥 가만히 앉아 있었는데, 나에 대한 평이 좋아졌다?
그거참 개꿀이군.
* * *
꿀꺽, 다자르가 눈앞에 있는 간장계란밥을 내려다보며 침을 삼켰다.
에반로아르 자작가의 집사가 가지고 온 그것은 윤기가 반지르르하게 흐르고 있어, 정말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고맙군. 물러가게.”
“흠흠. 네, 알겠습니다.”
집사가 어쩐지 자부심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물러난 뒤, 다자르는 경건한 마음으로 스푼을 들었다.
과거 실리아가 먹던 방식대로 간장계란밥을 모두 해치운 그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소파에 등을 기댔다.
‘역시, 맛있어.’
과거 ‘그녀’에 대한 기억을 잊어버리면서, 다자르는 맛에 대한 기억도 잊었다. 정확히는 ‘맛있음’이라는 게 무언지 잊었다고 하는 게 맞았다.
그런데 이 음식…… 아니, 실리아가 해 주는 음식은 달랐다. 그 음식들은 모두 ‘맛’이 있었다.
아마 이 쌀이라는 게 정말 대단한 식재료여서 그런 거겠지. 대륙에 보급되기 시작하면 밀은 금방 주식에서 밀려나게 될 것이었다.
배가 부르니 살짝 졸음이 오는 듯했다.
다자르의 황금빛 눈이 천천히 감겼다.
‘……그녀다.’
다자르는 꿈을 꾸었다.
이번 생에 와서 한 번도 꾸지 못한 꿈.
‘그녀’에 대한 꿈이었다.
‘뭐지……?’
꿈속의 다자르는 마치 깨어 있는 것처럼 의식이 있었다. 그걸 깨닫자, 그는 제 앞에 앉아 있는 하얀 원피스의 여인을 똑바로 보기 위해 노력했다.
‘그녀’와 그는 마주 보고 있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아래로 내려간 시선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들어 올렸다.
조금만 더 올리면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있다. 그가 저주로 잊어버린 제 약혼자의 얼굴을.
그녀의 가늘고 하얀 손끝에서부터 천천히 시선이 올라가 목 부근까지 닿았다. 곧, 달싹거리는 입술이 보였다.
그녀는 무어라 말하고 있었다.
‘나를, 나를 기억해요. 나는…… 당신의 가까이에…….’
“……헉!”
나의 가까이에……?
다자르는 눈을 번쩍 떴다.
“허억, 허억…….”
“방금 뭐였지? 다자르. 이상한 힘이…….”
파드득! 그가 깨자마자 눈앞에 보인 건 저번 생의 루벤, 붉은 새였다. 붉은 새가 눈을 형형하게 빛내며 중얼댔다.
“이상한 힘이 내 고리를 끊어 냈다. 너도 느끼지 않았나?”
“…….”
붉은 새는 다급해 보였지만, 다자르는 그에 답해줄 기력이 없었다.
방금 전, 그는 ‘그녀’를 조금이나마 보았다. 저주로 잊어버린 그녀를. 조금이나마…… 조금이나마 기억해 냈다.
다자르는 이 사실을 붉은 새에게 공유할 생각이 없었다. 그는 입을 꾹 다물고 천천히 머리를 쓸어올렸다.
“……이상한 힘은 무슨. 너 때문에 악몽을 꿨잖아. 비켜.”
손을 휘젓자 붉은 새가 불만스러워하더니 퍼드덕거리며 멀리 날아갔다. 그는 여전히 불안한 낯이었다.
‘……방금 뭔가가 루벤이 건 저주를 끊어 냈어.’
아니, 그에 멈추지 않고 더 나아가 ‘그녀’가 직접 제 존재를 알리고 있었다.
마른세수를 하는 다자르의 황금빛 눈이 가늘게 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