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Only One With Genius DNA RAW novel - Chapter 299
297화.
“도와달라고요?”
류영준이 히시지마를 쳐다보며 물었다.
“원전이 폭발이라도 했습니까?”
“아닙니다. 아직 아니에요. 하지만 상당히 위험하답니다. 저희가 현지 기술자들의 소견을 추가로 수집했습니다. 이미 한 달 전에 중지했어야 하는 원자로라고 합니다.”
히시지마가 말했다.
“아타베 총리가 강경해서 제 힘으로 그걸 중지시킬 수가 없습니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야 합니다. 류 대표님. 지금 일본에 셀리제너의 연구원들이 방사능 제거 기술을 연구하러 들어와있습니다. 송지현 박사한테도 이미 연락을 취했습니다. 근데 혹시…….”
히시지마는 간절한 표정으로 류영준의 손을 잡았다.
“혹시, 정말 만약에라도, 류 대표님이라면, 방사능이 유출되거나 피폭 환자가 나왔을 때 그 환자를 치료할 방법이 있지는 않습니까……?”
***
로잘린은 호텔 방에 혼자 오도카니 앉아있었다.
그녀는 류영준이 혼자 일본으로 갔을 때보다 훨씬 강렬한 불안감과 우울감, 그리고 잔잔한 분노에 휩싸여 있었다.
그리고 그 격정이 낯설었다.
본래 로잘린에게는 감정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았다.
지금도 그녀는 좀처럼 놀라거나 화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때.
짐을 싸서 나가던 류영준이 경시청 경찰들에게 체포되던 그 순간에는 ‘화’가 났다.
분노라는 게 무엇인지 처음으로 이해할 것만 같았다.
“괜찮아! 로잘린. 진정해!”
류영준의 그 말이 아니었으면 그 경찰들을 공격했을지도 모른다.
몹시 혼란스럽고 속이 뒤집어지는 기분이었지만 류영준의 말대로 참았다.
하지만 그의 손목에 수갑이 채워지는 장면은 로잘린의 정신에 깊이 박혔다.
‘편도체에 남을 것 같아.’
로잘린은 침대에 앉아서 생각했다.
류영준의 막내 동생 류새이의 트라우마가 저장되었던, 대뇌 변연계의 아몬드 모양 조직 말이다.
트라우마는 그곳에 남는다.
로잘린은 류영준이 체포되던 장면이 그곳에 각인되려 하는 것을 느꼈다.
재빨리 뉴런을 정리했지만 이 흥분과 화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잠깐만 다녀올게. 미안해. 로잘린. 그리고 준태 씨. 우리 애 좀 지켜주세요. 호텔에 며칠만 숙박을 연장해주시고요.”
류영준은 백준태에게 그렇게 부탁하고 경찰들을 따라갔다.
그리고 로잘린은 다시 호텔 방에 혼자 남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
생각할수록 속이 끓는 기분이다.
약 1년 반 전의 일이 떠올랐다.
류영준은 지광만이 사주한 깡패들에게 습격을 당한 적 있었다.
그때는 류영준이 차에 치여서 날아가고 피를 콸콸 쏟기까지 했다.
그런데도 당시에 로잘린은 ‘화’가 나진 않았다.
류영준이 만약 그 싸움에서 팔다리를 하나 잃었어도 로잘린은 분노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로잘린은 자신이 너무 많이 달라졌다는 걸 깨달았다.
“후우…….”
그녀는 흔들리는 감정을 다스리려고 심호흡을 했다.
‘이젠 만약 누가 그 정도로 류영준을 다치게 하면 내가 어떻게 할지 모르겠어…….’
자신의 행동에 대해 확신할 수 없다는 사실과, 통제 불가능한 격한 감정들.
그게 더욱 힘들었다.
그녀는 떨리는 손을 모으고 마음을 추스르려고 애썼다.
그때였다.
문밖에서 소란이 일었다.
백준태가 뭐라고 목소리를 높여서 말하는 게 들렸다.
로잘린은 피부 끝에서 세포 몇 개를 문밖으로 날려 보냈다.
그리고 그곳에는 아주 뜻밖의 인물이 서있었다.
‘야세르!’
로잘린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녀는 복도에서 야세르와 백준태가 나누는 대화에 집중했다.
“아, 안 된다니까요. 누구신지 모르겠지만 들여보낼 수 없습니다. 가십쇼!”
백준태가 위협적으로 눈을 부라렸다.
“당신한테 얘기하는 게 아닙니다.”
야세르가 말했다.
“나는 지금 로잘린한테 말하고 있습니다. 로잘린. 저는 야세르입니다. 옛날에 차세대 병원에서 한번 본 적 있습니다. 기억하시죠? 저는 류영준을 구출하기 위해서 여기에 왔습니다. 그 안에 있죠? 여기 체크인한 걸로 아는데요.”
“뭔 개소립니까? 류 대표님의 따님이랑 무슨 사이시기에 여기서 찾으세요?”
백준태가 야세르의 어깨를 밀어냈다. 하지만 야세르는 여전히 이쪽 방을 향해서 말하고 있었다.
“잠깐이면 됩니다. 로잘린. 네덜란드에서 테러범들 제압한 것도 당신이죠? 한번만 부탁드립니다.”
“이보세요. 혼자 허공에 대고 헛소리 그만하시고 가시…….”
백준태의 말이 멈추었다.
그는 눈앞이 하얘지는 것을 느꼈다. 머릿속이 찡, 하고 울리더니 다리에 힘이 빠졌다.
풀썩.
그가 주저앉은 다음, 방문은 부드럽게 열렸다.
“들어오세요.”
로잘린이 말했다.
그 순간 야세르는 눈앞에 있는 게 어떤 것인지 새삼 깨달았다.
류영준의 옆에서 헤실거리며 아이스크림을 빨아먹던 그 천진난만한 어린애가 아니었다.
얼음처럼 차갑게 얼어있는 표정이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저도 이렇게 화가 난 적이 처음이라서 이 감정을 어떻게 조절해야 하는지 모르겠군요.”
로잘린은 야세르를 방 안으로 들이면서 말했다.
“이번 일에 전 세계가 모두 화가 나있는데, 당신이라면 더하겠죠.”
야세르가 말했다.
“그래서 류영준을 어떻게 구출할 거죠?”
로잘린이 물었다.
“…….그걸 얘기하기 전에 로잘린. 당신 생각을 알고 싶습니다.”
“무슨 생각이요?”
“류영준은 그동안 세상을 구하기 위해서 2년간 분투했고, 당신의 힘을 공익을 위해서 써왔지만 그 결과는 경시청의 창살 안입니다. 이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로잘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야세르는 침대 옆의 의자에 앉았다.
“류영준 박사 옆에서 그동안 많은 것을 보셨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류영준과 에이바이오의 성장을 꺾기 위해 환자의 눈에다 종양을 만들려고 했던 슈마틱스라든지, 에이즈 치료제의 개발에 맹목적으로 반대하는 백신 반대론자라든지, 탄저균과 에볼라를 생물 무기로 쓰려는 테러범이라든지. 사람을 잡아다 강제로 장기를 적출하는 권력자들이라든지. 또는.”
야세르가 말했다.
“원전 폭발을 예고하는 류영준 박사를 체포해서 구금해버리는 정경유착 세력이라든지.”
“…….”
“모든 걸 봐줄 수 있다고 해도, 은혜도 모르고 류영준을 체포해서 구금하는 이 멍청이들까지 용서하실 수 있습니까? 당신처럼 위대한 지성을 가진 분이 말입니다. 그 어리석음이 답답하지 않으세요?”
야세르가 물었다.
“로잘린, 당신의 정말 솔직한 심경을 듣고 싶습니다. 싫으시다면 저는 깨끗하게 포기하겠습니다. 하지만 과학이라는 게 정말 인간이, 평범한 과학자들이 공부해서 가져도 되는 것인가요? 과학 그 자체인 당신이 보시기엔 어떻습니까?”
“이사야 프랭클린도 저한테 똑같은 걸 물었어요. 저는 과학을 지배하는 데 관심 없다고 했고요.”
“지금도 그렇습니까?”
“……. 류영준을 어떻게 구할 건지 말해보세요.”
로잘린의 말에 야세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건 간단하죠. 저는 도호쿠 원전이 폭발하게 할 수 있습니다. 기술자로 위장하고 들어가서 제어봉 몇 개만 만지면 되죠. 그럼 류영준은 곧바로 나올 겁니다.”
“그건 안 돼요.”
“안 되나요? 그럼 이런 생각을 하는 저 같은 과학자가 원전을 폭파시킬 만한 지식을 갖고 있는 것은 어떻습니까? 제가 만약 류영준을 구출하기 위해 원전을 터뜨리러 간다면 막으실 겁니까?”
“…….”
“로잘린. 과학이 만들어내는 모든 부작용을 류영준이 다 막지는 못합니다.”
야세르가 말했다.
“그 사람이 그리는 이상적인 세계를 만들어내는 지름길은 따로 있습니다. 저랑 같이 갑시다.”
“안 돼.”
방문에서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야세르는 화들짝 놀라면서 고개를 돌렸다.
“송 박사님?”
그의 눈이 가늘어졌다.
송지현이 그곳에 선 채로 야세르를 쏘아보고 있었다.
“지금 애한테 무슨 소릴 하는 겁니까? 누구랑 같이 가요? 당신 유괴범이에요?”
“아니…….”
“경시청에서 류 대표님이 저한테 여기로 가달라고 하시더군요. 로잘린이 걱정된다고. 야세르가 와서 꾀어내려고 할지도 모른다고. 근데 정말이었네요.”
송지현의 말에 야세르는 피식 웃었다.
“류 박사님이 송 박사님한테 로잘린이 어떤 존재인지도 알려주시던가요?”
“아니요.”
“저는 압니다. 이사야와 아주 오래 같이 일했으니까요. 엘시에 대해서도 꽤 알고요. 로잘린의 수상쩍은 출현 과정이나 갑작스런 입양 배경, 네덜란드 호프도르프 호텔에서 일어난 일 같은 걸 보면 알 수 있죠. 로잘린은…….”
“됐습니다.”
송지현이 말을 끊었다.
“로잘린은 로잘린이에요. 류영준 박사님의 딸. 코코아를 좋아하고 TV에서 아무거나 보고 외워서 줄줄 말하는 똑똑하고 예쁜 아홉 살 어린이입니다.”
그녀가 이쪽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아직도 그렇게 생각한다고요? 진심으로?”
야세르가 웃으며 물었다.
“저는 그렇게 알고 있어요. 만약 제가 더 알아야 할 게 있다면, 그리고 알아도 된다면, 류 박사님이나 로잘린이 직접 얘기해줄 거예요. 그러니 당신 도움은 필요 없습니다.”
송지현은 야세르와 로잘린 사이로 들어가서 로잘린을 자기 등 뒤에 두고는 팔짱을 꼈다.
“보호자 없는 틈타서 어린애 꾀어낼 생각하지 마세요. 류 박사님이 나오실 때까지 제가 보호할 테니까. 이건 류 박사님 부탁입니다.”
“…….”
송지현은 야세르와 잠깐 서로를 쏘아보며 대치했다.
그 짧은 적막을 깬 것은 로잘린이었다.
“류영준은 혼자서 나올 거예요.”
그녀가 말했다.
“원전은 당신이 건드리지 않아도 혼자 터질 거고요.”
“정말입니까?”
“정말?”
야세르와 송지현이 동시에 놀라서 로잘린을 쳐다보았다.
“네. 야세르가 류영준을 어떻게 구출한다고 할지 궁금해서 물어본 거예요. 사실 야세르의 도움은 필요 없어요.”
로잘린이 말했다.
“……. 그렇군요. 근데 제가 질문 드렸던 것, 아직 답을 듣지 못했는데요.”
야세르가 말했다.
“생각해볼 테니 그만 가세요.”
“알겠습니다.”
야세르는 로잘린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바깥으로 나갔다.
그가 완전히 나가는 것을 확인한 다음 송지현은 로잘린에게 고개를 돌렸다.
“괜찮니? 어디 다친 데 없고?”
“아니요……. 괜찮아요.”
로잘린이 말했다.
그리고는 우울한 표정으로 송지현의 품에 얼굴을 파묻었다.
***
“자, 이상이다. 우리 대표님이 여태 시킨 것 중에서 가장 압도적으로 미친 작업. 방사능 피폭 치료.”
천지명이 말했다.
생명창조 팀원인 배선미와 박동현, 정해림, 고순열은 너무 어이가 없어서 웃음만 지었다.
“그러니까, 그 미친 작업의 전임상을 다음 주까지 끝내라, 이 말이죠?”
“그렇다. 셀리제너의 최연호 대표님이 박테리아를 아침에 직접 들고 오셨다.”
“그쪽도 상황이 시급한 거 아시니까…….”
배선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셀리제너 진짜 많이 컸어요. 이젠 에이젠바이오한테 프로젝트를 주기까지 하다니.”
박동현이 말했다.
“원래 과학계가 다 그런 거죠.”
정해림이 말했다.
“아무튼, 부장님. 그러니까 저게 지금, 데이노코쿠스 래디오듀런스의 친척되는 종이라는 거죠?”
박동현이 물었다.
“그래. 체르노빌에서 유명해진 종이랑 유연관계에 있는 박테리아야. 그리고 우리 대표님의 마법 같은 뇌피셜로 짚어주신, 우리가 PCR을 떠야하는 표적 위치는 여기다.”
천지명이 A, T, G, C가 나열된 유전체 데이터에서 하나의 ORF (Open Reading Frame)을 가리켰다.
“약 1,000 머(mer) 정도 되는 크기의 DNA다. 이 안에는 조각난 DNA를 짜 맞추는 놀라운 능력을 지닌 효소의 정보가 들어있다고 해.”
“대표님 말로는 그렇다는 거죠?”
박동현이 물었다.
“문제는 우리가 이걸 전신의 세포로 보낼 수 있어야 한다는 거야.”
“…….”
“대표님이 그 부분은 아이디어를 안 주셨나요?”
배선미가 물었다.
“거기서 경찰들이 조사한다고 전화를 끊으라고 했어.”
“…….”
“다시 연락할 방법은 없나요?”
정해림이 물었다.
“전화를 걸었지만 연결이 안 됐어.”
“계속 해볼까요?”
정해림이 휴대폰을 들었다. 박동현이 머리를 긁적였다.
“현지 상황을 모르니까 답답하군요.”
“둘 다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천지명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다들 잊어버린 것 같은데, 원래 과학은 이런 거였어. 우리가 대표님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풋내기들인가? 평범한 과학자들한텐 평범한 방식이 있어.”
“그럼 옛날 방식으로 돌아가서, 브레인스톰 좀 해볼까요?”
배선미가 말했다.
“저는 개인적으로 치료제를 전신의 모든 세포로 보낼 필요는 없다고 생각되는데.”
고순열이 시작했다.
“그럼?”
“방사능 피폭 치료니까, 방사능에 피해를 본 세포들한테만 보낼 수 있으면 되죠.”
“어떻게 그럴 수 있지?”
“글쎄요?”
“방사능에 DNA가 손상되면 에이팝토시스 (Apoptosis, 세포 자살)가 유도되겠죠.”
박동현이 말했다.
“에이팝토시스가 진행될 때 세포에서 발생하는 싸이토카인 (Cytokine)들이 있습니다. 그걸 쫓아가도록 항체를 제작해서 붙여요.”
“안 돼. 항체를 생산하고 붙이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려.”
정해림이 지적했다.
“이런 방법도 있습니다. 에이팝토시스가 일어나면 캐스페이즈(Caspase)가 분출될 테니, 거기에 반응해서 잘리면 작동하도록 만든 다음 고농도로 투여하면…….”
배선미가 말했다.
“면역 반응이 일어날 수도 있어요.”
고순열이 지적했다.
“면역 억제제와 같이 쓰면 되지.”
“아니면 골수이식법으로 이 단백질을 투여하는 건 어떻습니까? 에이팝토시스가 일어나면 그쪽으로 면역 세포들이 유도될 겁니다. 거기다 실어서 같이 보내는 거죠.”
박동현이 다른 아이디어를 냈다.
“그건 너무 오래 걸려. 방사능 피폭 농도가 높은 환자면 새로 면역 세포들이 만들어지기 전에 사망할 가능성이 높아.”
천지명이 말했다.
똑똑.
누군가 미팅룸을 두드렸다.
고순열이 문을 열어주었다.
“안녕하십니까. 고생들 많으십니다.”
제7 연구소의 연구소장, 카펜티어 박사가 안으로 들어왔다.
“소장님?”
“지금 여기가 류영준 구출팀의 주역 중 하나라고 소문이 자자하던데, 거기에 연구소장을 좀 끼워줄 생각 없어요?”
카펜티어가 물었다.
“소장님이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시는 겁니까?”
박동현이 물었다.
“나 뿐만 아니라, 일곱 개 연구소 전부 다. 필요한 실험은 뭐든지 의뢰하시면 됩니다. 이사회에서 아침에 결정된 사안입니다.”
카펜티어가 말했다.
“그럼 지금 나온 아이디어들을 그냥 전부 다 해보죠. 우리 지금 시간이 없습니다.”
천지명이 말했다.
“좋아요. 이번에는 우리가 류 대표님을 뒤에서 지원해주는 겁니다.”
카펜티어가 라텍스 장갑을 끼면서 말했다.
***
방호과장 히데오는 도호쿠 원전에 출근하면서 이상한 것을 느꼈다.
방사능 수치가 어제보다 이례적으로 높았던 것이다.
“뭐야?”
그는 눈을 비비면서 휴대용 측정기를 다시 확인했다.
0.7 밀리시버트 (mSv).
하룻밤 사이에 두 배로 값이 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