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only S-class summon RAW novel - Chapter 75
나 혼자 S급 소환수 75화
정령계 깊은 곳 (4)
“유리아.”
“응, 제프리.”
“마스터가 썬더 브레스를 준비 중이다. 미궁에서 봤던 것보다 출력은 약하군.”
“오케이, 대비할게! 저 귀찮은 늑대는?”
“적당히 상대해.”
진도윤은 동료들의 대화를 들으며 인상을 구겼다.
빌어먹게도 잘 구현해 놓은 환영이었다.
목소리나 말투, 그리고 능력까지.
저 존재들은 누가 컨트롤하는 걸까?
정말로 자신의 내면에서 나오는 걸까?
“준비됐어요?”
앙다문 입술을 떨며 버티던 유아린이 다급하게 외쳤다.
이미 펜-리르의 몸 곳곳에는 혈선이 흩날리고 있었다.
“잠깐만.”
진도윤은 마지막까지 기운을 짜냈다.
1단계에서 훈련한 덕분인지, 예전보다 괴롭지는 않았다.
“크르르르…….”
낮은 울음소리와 함께 데몰리션의 입이 열렸다.
“이제 간다!”
“네!”
타이밍에 맞추어 펜-리르가 옆으로 슬쩍 빠졌고-
[파괴룡 ‘데몰리션’(★★★)이 썬더 브레스를 사용합니다.]파즈즈즉!
강력한 뇌전을 담은 벼락의 폭풍이 동료들을 향해 쏘아졌다.
“유리아!”
“문제없다고!”
제프리의 외침에 유리아가 당당하게 나서 브레스를 막았다.
다시 한번 선보이는 미카엘의 성스러운 방패였다.
그러나-
“으읏……?”
예상보다 강력했음일까?
한참 여유롭던 유리아에 입가에 미소가 지워졌다.
성스러운 방패를 든 미카엘의 신형이 뒤로 밀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 찰나의 순간.
브레스에 정신 팔린 제프리에게 빈틈이 보였다.
수많은 전투를 치르며 쌓아온 감각의 발현이었다.
‘지금이야!’
그 기회를 놓칠 진도윤이 아니었다.
숨결을 다 뱉어낸 데몰리션이 곧바로 질주했다.
방향은 미카엘이 아닌, 뱀파이어 로드 진조.
일단 녀석들의 눈부터 제거해야 한다.
“헛! 유리아, 이쪽에!”
당황한 제프리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이미 늦었다.
애초부터 질주를 준비했던 데몰리션의 속도는 생각보다 훨씬 빨랐으니까.
서걱!
단 한 번의 움직임이었다.
가속도를 이용한 과감한 일격!
제프리는 미처 컨트롤하지 못한 채, 진조의 목을 내어주고 말았다.
과감하고 즉각적인 판단이 아니었다면 절대로 얻어내지 못했을 회심의 한 수였다.
“……이런!”
낭패 어린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리는 제프리.
데몰리션의 발톱에 진조의 걸쭉한 피가 흘렀다.
진도윤은 그 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쯧, 방어, 디버프, 힐링, 정찰, 분석……. 그래, 다 좋다 이 말이야…….”
데몰리션이 연이어 꼬리를 휘둘렀다.
뒤늦게 파악한 악마와 태초의 마녀가 뒤늦게 방어했지만 느려빠졌다.
후우웅! 쾅! 콰앙!
미처 방어하지도 못한 채, 치명타를 내어주는 녀석들.
“근데 전투는 분석으로 하는 게 아니거든. 감각으로 하는 거지.”
“시끄럽다, 마스터.”
“아직도 모르겠어?”
슈우웅! 쾅!
잠깐 피해 있던 펜-리르도 재빠르게 합류했다.
공기를 찢는 소리와 함께 엄청난 속도로 발톱을 휘둘러댔다.
“너희들이 더욱 빛났던 이유는 내가 함께였기 때문이란 걸.”
“닥쳐!”
한 번 수세에 몰리자, 녀석들의 탄탄한 진형이 그대로 무너졌다.
원래 고수들끼리의 싸움은 찰나의 순간으로 갈리는 법이다.
“제프리, 이 멍청아! 정신 차려! 멘탈을 건들려는 거잖아!”
하지만 과연 동료들은 동료들일까.
유리아의 눈이 번뜩임과 동시에 거센 바람이 불어왔다.
‘계절풍이로군!’
그녀가 가진 묘인족, 아묘(兒猫)의 회피 기술.
거센 바람을 통해 상대를 사방으로 밀어내며, 아군을 회복시키는 사기적인 스킬이다.
‘달라붙는 적을 밀어낼 때도 쓰이지만, 상대 진영을 붕괴시킬 때도 쓸 수 있는 매력적인 스킬이지.’
유리아의 계절풍을 통해 위기를 벗어났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진도윤이 그 기술을 누구보다 잘 안다는 것.
후우웅!
묘인족의 몸에서 바람이 불어올 찰나.
데몰리션의 발톱이 악마족 ‘네비로스’의 몸을 꿰었다.
“이런!”
제프리가 눈살을 찌푸렸지만, 이미 스킬은 발현됐다.
거센 바람과 함께 진도윤 쪽으로 밀려오는 데몰리션.
그리고 녀석의 손에는 악마족, 네비로스가 걸려 있었다.
계절풍과 함께 딸려온 것이다.
“고맙게 페널티까지 주는 거야?”
서걱!
유리아의 방어를 받지 못한 악마가 단숨에 썰려 나갔다.
제대로 된 저항도 못 한 채 움찔거리며 쓰러지는 네비로스.
이제 남은 소환수는 네 마리뿐이다.
“유리아, 그 상황에 계절풍을 쓰면 어떡하나.”
“미안, 나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잊지 마라. 마스터도 우리의 기술을 다 알고 있다는 걸.”
“쏴리.”
서로 피드백하는 모습까지 완벽히 똑같다.
‘그런데…….’
동료들과 분명히 다른 점이 있었다.
특히, 제프리의 모습.
‘아무리 녀석이 냉철하다지만…… 자기 소환수가 죽었는데도 침착한 녀석은 아니거든.’
그 모습에 오히려 안도했다.
아무리 환영이라는 것을 안다 해도 기분이 좋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을 기점으로 일말의 죄책감마저 털어냈다.
소환수를 아끼지 않는 녀석들은 진짜가 아니니까.
‘잠깐……?’
그 순간, 문득 위화감이 들었다.
‘녀석이 소환수를 아끼지 않는다면……?’
벌어질 최악의 시나리오가 머릿속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유리아가 가진 버퍼, 요정족 ‘페어리킹’의 특수 기술.
생각할 찰나.
그녀 앞, 페어리킹의 육체에서 빛이 발아하기 시작했다.
‘역시……!’
특수 기술 ‘즉사’.
페어리킹의 목숨을 담보로 자신보다 낮은 등급의 몬스터를 무조건 소멸시키는 사기기술이었다.
본래의 유리아라면 절대 쓰지 않을 기술.
“정말 갈 데까지 갔구나, 유리아.”
“흐응, 그걸 이제 안 거야? 마스터? 네가 날 버렸을 때부터 옛날의 나는 죽었어.”
“버리긴 개뿔.”
진도윤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미 페어리킹에게서 뻗어 나온 빛이 데몰리션에 닿았다.
데몰리션은 아직 3성(★★★).
페어리킹은 6성(★★★★★★)이기에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저 기술은 피할 방도가 없다.
한 가지 방법이 있다면, 데몰리션 대신에 다른 몬스터를 희생시키는 것.
그렇다고 펜-리르에게 맞아달라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펜-리르도 유아린의 소중한 소환수니까.
“그럼 잘 가라고, 마스터. 아, 우리 마스터는 소환수 잃는 거 엄청나게 싫어했었지 아마?”
“아…….”
진도윤의 얼굴이 난처한 빛을 띠었다.
투웅!
포탄 터지는 소리와 함께 꿀렁이는 하얀 빛.
그 순간.
“아!”
잊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과거 던전, 여명의 속삭임에서 테이밍했던 C급 몬스터.
‘구울 백인장’(★)의 존재가.
‘원래 C급 서머너로 등록하려고 남겨뒀던 건데. 까먹고 있었네.’
진도윤은 즉각적으로 컨트롤했다.
[‘구울 백인장’(★)을 소환합니다.] [현재 소환수와의 친밀도가 0입니다.]“그어어어!”
진도윤은 소름 끼치는 구울의 괴성이 이토록 아름답게 느껴질 날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파스슥!
빛을 향해 불나방처럼 뛰어드는 구울.
쏘아지는 즉사를 몸으로 받아낸 구울이 형체도 남기지 않고 아스러졌다.
[‘구울 백인장’(★)이 소멸합니다.]그와 동시에, 유리아의 페어리킹도 함께 사라졌다.
스킬 사용의 대가로 소멸한 것이다.
“뭐야, 이딴…… 소환수도 들고 있었어?”
유리아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진도윤은 답하지 않았다.
오히려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
상당히 열 받은 것이다.
‘더는 동료들을 모욕하게 둘 수 없다.’
이제 남은 몬스터는 셋뿐이다.
제프리의 마녀, 린다.
유리아의 미카엘과 아묘(兒猫).
충분히 컨트롤로 밀어붙일 수 있을 수준이었다.
녀석들은 전투에 특화된 소환수가 아니니까.
후우웅! 콰아앙!
데몰리션의 발톱이 미카엘의 방패에 내다 꽂혔다.
“크윽……!”
꽤나 충격이 있는지, 유리아의 입에서 붉은 피가 쏟아져 흘렀다.
쾅! 쾅! 쾅!
데몰리션은 멈추지 않았다.
피가 흐른다는 것은 공격이 먹힌다는 것.
계속해서 공격을 가했다.
그 모습을 본 제프리가 신속하게 공격하려 했지만, 펜-리르의 공격에 막혔다.
유아린 역시 이제 감응력 130을 넘긴 괴물.
장기인 스피드를 내세워 적진 이곳저곳을 들쑤셨다.
물론, 데몰리션과 펜-리르도 무사하진 못했다.
미카엘의 검에 날개가 찢겼으며, 아묘(兒猫)의 발톱에 전신이 베이고 찢겼다.
하지만, 승세는 분명히 진도윤과 유아린에게 있었다.
“미카엘부터 집중 공격해!”
“알겠어요!”
번쩍!
뒤에서 싸우던 펜-리르가 순간적으로 방향을 틀었다.
섬광과 같은 속도로 미카엘의 뒤를 습격했다.
아묘(兒猫)의 힐링이 지속해서 미카엘을 감쌌지만, 회복보다 딜이 훨씬 빨랐다.
“끄르륵.”
지속적인 공격에 결국 미카엘이 방패를 놓쳤다.
진도윤은 눈에 힘을 꽉 주고 집중했다.
‘지금!’
데몰리션의 발톱이 아름다운 궤도를 그리며 그어졌다.
방향은 미카엘의 목.
콰드득!
목을 지탱하는 피부와 근육이 갈라졌고.
“끼아아아!”
고통스러운 비명과 동시에 미카엘의 목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푸확!
절단면에서 분수처럼 솟구치는 피가 바닥과 날개를 적셨다.
결국, 미카엘마저 데몰리션의 손에 박살 난 것이다.
“……역시 마스터는 마스터네.”
“분석이 먹히지 않는 실력이군.”
체념한 동료들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미카엘이 쓰러지자 남은 소환수들을 정리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아묘(兒猫)의 심장이 펜-리르에게 뚫렸으며-
태초의 마녀, 린다의 육체가 데몰리션에게 짓밟혔다.
2:6의 불리한 전투를 기어코 승리로 끌어낸 것이다.
‘유아린이 없었다면…… 못 깰 시련이었어.’
진도윤은 허망한 눈빛으로 무릎을 꿇은 두 동료를 바라봤다.
“…….”
이미 죽음을 예상한 듯,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 환영들.
그래도 이런 점은 깔끔했다.
마지막까지 이빨을 털었으면 정말 기분 상할 뻔했는데.
“기다려라, 친구들아. 곧 구해줄 테니까.”
그들을 내려치는 데몰리션의 손길은 과감했다.
피를 흘리며 사라져 가는 동료들을 바라보는 진도윤의 눈빛도 흔들림이 없었다.
서걱! 스걱!
깔끔하게 베어진 목과 동시에 사라지는 환영들.
주변에 흩어져 있던 피도, 소환수들의 시체도 모조리 사라졌다.
“괜찮으세요?”
“응, 별 감흥 없어. 이 또한 동료를 구하는 길이니까.”
진도윤이 심드렁한 목소리로 내뱉었다.
기분이 나쁘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예상했던 일이었으니까.
“그나저나 진짜 힘드네요.”
“동감이야. 토할 것 같다.”
환영들은 사라졌다지만, 소환수의 상태는 정상이 아니었다.
진도윤 역시 내부에 많은 충격을 입었는지 속이 울렁거리고 거북했다.
그가 대자로 엎어졌다.
유아린 역시 따라 누웠다.
피로가 온몸을 감쌌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할 정도로 기력이 빨렸다.
“후우…….”
깊은 한숨을 내쉬는 진도윤.
그래도 모든 시련을 끝마쳤다는 것에서 오는 후련함은 있었다.
“정령왕의 돌이나 내놓으라고. 새끼들아.”
천장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띠링!] [축하합니다.] [내면의 공포를 견뎌내셨습니다.] [모든 시련을 마쳤습니다.]진도윤에게 대꾸하듯 루이스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파앗!
방 전체에 백색의 섬광이 터졌다.
스스슷!
그와 동시에 튀어나온 것은 투명한 유령의 모습을 한 루이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