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RAW novel - Chapter 117
117 그자를 찾았느냐?
황성의 심처, 황금과 보석으로 이루어진 화려한 대전.
거대한 태사의에 곤룡포를 입은 삼십대 장년의 남자가 턱에 손을 괸 채로 생각에 잠겨 있었다.
잘 정돈된 짧은 턱수염을 기른 그는 보기 드문 미남이었고, 전신에서는 장중한 기품이 흘러나왔다.
그는 제국에서 가장 존귀한 자인 황제 신무제였다.
미동도 없어 마치 석상처럼 보이던 그의 눈꺼풀이 천천히 위로 올라갔다.
그와 함께 내전 중앙에 칠흑처럼 검은 장포를 입은 장대한 체구의 중년인이 나타나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고개를 숙였다.
신무제가 입을 열었다.
“무상(武相), 그자를 찾았느냐?”
“죄송합니다.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폐하.”
무상이라 불린 중년인은 더 깊이 고개를 숙였다.
신무제의 입에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흐음…….”
신무제가 턱에서 손을 떼며 상체를 세웠다.
그의 눈에서 가공할 신광이 이글거리며 흘러나왔다.
그것은 그가 무공을 익혔으며, 그 경지가 절대 낮지 않다는 분명한 증거였다.
그가 중얼거렸다.
“선황께서는 병이 깊고 심약하셔서 그자의 별호를 언급하는 것조차 꺼리셨지만, 짐은 다르다.”
그의 음성에는 끝없는 분노와 한이 서려 있었다.
“짐은 좌절된 할바마마의 원대한 꿈을 한시도 잊어본 적이 없다. 황조의 뿌리를 흔들고 황권을 위협하는 무림의 잡배들을 완벽하게 멸하겠다는 꿈을.”
무상이 조심스럽게 신무제에게 물었다.
“폐하, 송구하오나 소신의 의견을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하라.”
“소신은 지난 이십 년 동안 천하를 이 잡듯이 뒤지며 그자의 흔적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살았는지 죽었는지는커녕, 그자의 이름조차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신무제의 눈이 깊어졌다.
무상은 긴장한 기색으로 말을 이었다.
“소신은 그자가 과연 실존했던 것인지 확신이 가지 않습니다.”
“고금팔대고수 중 가장 마지막에 등장했던 자, 암천광무존(暗天狂武尊)의 실존이 의심스럽다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대혼돈 시대 당시에도 그자에 대한 소문은 무성했지만 실제로 그를 직접 만났다고 말한 자는 한 명도 나온 적이 없었습니다. 그저 막후에서 천하 정세를 조종하고 고황제 폐하의 뜻을 좌절시켰다는 황당무계한 전설만이 전할 뿐입니다. 그가 실존하는 자였다면 어떻게 개벽대전 때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생사평 대회전 때 그자가 모습을 드러냈다는 이야기가 있었지 않은가?”
“삼정의 수뇌부에서 그런 이야기가 흘러나왔다는 말이 있었지만, 누가 그런 말을 했는지는 아직까지도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폐하.”
“공야승추에게 들으면 되지 않나?”
“그러기 위해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그를 고문하였으나 그자는 모른다는 말만을 계속 반복할 뿐입니다.”
신무제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래서 무상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가?”
“폐하께서 키운 본 련(聯)의 힘은 욱일승천의 기세를 품고 그것을 폭발시킬 시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미 무림의 거대 세력들이 우리에게 협조하고 있습니다. 무림맹이 홀로 고고한 척하고 있으나 그들 단독으로 련을 상대할 수는 없습니다.”
“개파를 하고 무림 정복에 나서고 싶다는 뜻이더냐?”
“그렇습니다, 폐하. 대혼돈 시대에 당했던 황조의 굴욕이 여전히 이야깃거리로 인구에 회자되고 있으며, 황권의 일부를 무림에 이양해야만 했던 무한협약의 치욕이 계속되는 상황을 소신은 더 이상 참기 어렵습니다.”
신무제의 눈빛이 한층 더 강렬해졌다.
“무상, 짐은 황조에 대한 그대의 충성심을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련의 개파는 허락할 수 없다.”
그의 어조는 단호했다.
입술을 질끈 깨문 무상이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다.
그가 말을 이었다.
“무상, 그자는 실존한다. 그에 대해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으니 잡념을 가질 필요조차 없다. 그대는 그자를 찾는 일에만 전념하라. 그와 같은 절대초강자가 벌써 사망했을 리는 없으니.”
황제가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어떻게 토를 달까.
무상은 고개를 숙였다.
“예, 폐하.”
무상이 고개 숙여 예를 표하고 환상처럼 사라졌다.
홀로 남은 신무제가 중얼거렸다.
“암천광무존은 대혼돈 시대의 마지막 대회전이었던 개벽대전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니 무상이 그의 실존을 의심하는 건 당연하다고 할 수 있겠지…….”
그의 눈에서 불같은 신광이 흘러나왔다.
“그런데 왜 그자가 그곳에 나타나지 않았는지 아는가. 그때 그자는 황궁에 있었기 때문일세. 은밀하게 난입한 그자의 손에 할바마마께서 처참하게 최후를 맞으셨지……. 으드득.”
그는 이를 갈았다.
고황제가 일개 무림 낭인의 손에 처참하게 죽어간 이 사건은 황제만이 아는 절대의 비밀이었다.
황실의 최대 치욕이라 할 수 있는 대사건이니 어찌 그렇지 않을 수 있겠는가.
신무제는 태사의에 등을 묻었다.
“그자의 죽음이 분명하게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움직이는 건 위험해. 좌절되었던 할바마마의 꿈, 이제는 짐의 것이 된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지금은 은인자중해야 할 때다. 인내의 끝은 그자를 찾아 숨통을 끊어놓는 날이 될 것이고.”
잠시 생각에 잠겼던 그가 소리쳤다.
“문상, 거기 있는가?”
“예, 폐하.”
나직한 대답과 함께 푸른색 유삼을 입은 중년인이 유령처럼 나타나 한쪽 무릎을 꿇었다.
“무상이 하는 말을 들었는가?”
“예.”
“그대의 생각은 어떠한가?”
“이미 폐하께서 결론을 내신 일. 소신은 그저 따를 뿐이옵니다.”
“그대는 늘 내 마음에 드는 대답만을 하는군.”
“폐하께서 늘 현명한 결정을 내리셨기 때문이옵니다.”
“훗, 무상의 충성심은 의심할 바 없지만, 그의 인내심이 한계에 이른 것처럼 보인다. 그대는 그가 내 허락 없이 움직이는 일이 없도록 늘 지켜보도록.”
“예, 폐하.”
“사라진 파천혈신륜과 환우지약은 아직도 찾지 못했는가?”
“죄송합니다, 폐하. 수하들이 이수의 바닥까지 훑고 있지만, 아직 발견하지는 못하였사옵니다.”
문상의 대답에 신무제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빨리 찾게. 십 년이 넘게 준비한 일이거늘……. 그것들이 있어야만 무림에 대혼란을 만들어낼 수 있다.”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조만간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옵니다, 폐하.”
“환무경과 흡철령을 이수에 던져 버린 자의 정체가 무엇인지 파악되었는가?”
“죄송합니다. 찾고 있는 중입니다만, 관련된 자들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그자에 대해서는 모두 함구하고 있는 상태라… 장공주(황제의 여자형제) 마마는 그자의 정체를 알고 계신 듯하지만 이야기를 해주지 않으시옵니다.”
신무제가 물었다.
“영원 공주가 아직도 낙양에 있는 건가?”
“예, 폐하. 얼마 전 환우지약에 대한 것도 여쭤볼 겸 사람을 보냈는데 장공주 마마는 그곳을 떠날 마음이 없다고 하였사옵니다.”
신무제가 혀를 찼다.
“쯧쯧, 그 나이가 되어도 철이 들지 않으니… 하오밀문의 문주가 누군지 아직도 알아낸 것이 없더냐?”
“그렇사옵니다, 폐하. 그자의 정체는 철저하게 비밀에 휩싸여 있어, 무림의 잡배들도 누군지 아는 자가 없사옵니다.”
“영원이는 여전히 하오밀문주에 대해 말하려 하지 않고?”
“예, 폐하. 마마를 가르친 사부이니 앞으로도 그 뜻을 꺾지 않을 것이라 생각되옵니다.”
“고집 센 녀석.”
혀를 찬 그가 연이어 물었다.
“태귀비께서는 무엇을 하고 계신가? 혹여 또 여행을 가려 하시는 기색은 없나?”
“태귀비 마마께서 다른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는 말씀은 듣지 못하였고, 그런 움직임도 없사옵니다, 폐하.”
“인사를 드린 지 며칠 되었으니 태후전에 가보아야겠구나. 그대는 파천혈신륜과 환우지약에 대해 변동사항이 생기면 즉시 보고하라.”
“예, 폐하.”
문상이 고개를 숙여 절을 하고 사라지자 신무제가 소리쳤다.
“상선은 게 있는가?”
“예, 폐하.”
“태후전에 가겠다. 준비하거라.”
“예, 폐하!”
* * *
같은 시각.
수향루, 난향의 거처.
언제나처럼 장죽을 입에 물고 있던 난향은 찌뿌둥한 얼굴로 들어서는 진무앙을 보고 물었다.
“왜 왔어? 표정은 또 왜 그러고? 오다가 개똥이라도 밟고 넘어지기라도 한 것 같은 얼굴인데?”
의자에 앉은 진무앙이 투덜거리며 대답했다.
“그런 거면 차라리 속이 편하겠다.”
“무슨 소리야?”
“난향, 혹시 최근 수향루 안에서 살기 같은 거 못 느꼈어?”
난향이 눈썹을 찡그리며 되물었다.
“살기라니? 뜬금없이 그게 무슨 말이야? 내 집에서 그런 걸 뿜어대는 놈이 있었으면 벌써 목을 꺾어놨지.”
“그렇지?”
진무앙은 고개를 갸웃하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몸이 찌뿌둥할까?”
“몸이 찌뿌둥? 당신이?”
“그렇다니까.”
“그렇게 이상하면 와룡천망이라도 펼쳐서 원인을 찾아보던가.”
“여긴 난향이 딱 버티고 있는데 내가 그런 귀찮은 짓을 왜 해?”
“그렇게 계속 게으르게 살면 웅묘(판다) 돼.”
“그럼 난향이 후원에 대나무를 잔뜩 심어주겠지.”
“당신… 세상 정말 편하게 살아.”
“부러우면 나처럼 살라니까 그러네.”
“사양할게. 체질에 맞지 않아.”
연기로 동그라미를 몇 개 만든 난향이 물었다.
“무앙, 여기 온 진짜 용건이 뭐야?”
진무앙은 그녀의 눈치를 살살 보며 말했다.
“혹시 의뢰 들어온 거 없어?”
“왜? 또 돈 떨어졌어?”
“응.”
“백지가 가고 난 후에 따로 안전 보호비를 떼지도 않았는데 벌써 다 썼어?”
“석초하고 소혜가 붙어 다니는 거 보니까 속에서 열불이 나서 그거 좀 식히려고 술을 아주 쪼오오오금 마셨더니…….”
난향이 바로 코웃음을 쳤다.
“조금이라고? 흥! 동이째 들이켰겠지.”
진무앙이 우울한 얼굴로 말을 받았다.
“동이째… 까지는 아니었다고…….”
“아무튼 아직 의뢰 들어온 건 없어. 있으면 말해줄게.”
“알았어.”
힘없이 대답한 진무앙이 일어나려 하자 난향이 그에게 말했다.
“차라도 마시고 가. 기운이 좀 날 거야. 당신이 좋아하는 야관문이거든. 계피도 섞어서 달달한 게 맛이 괜찮아.”
진무앙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을 받았다.
“야관문? 가뜩이나 석초하고 소혜 때문에 잠 설치는데 아예 잠을 못 자게 하려는 거야?”
“싫으면 말고.”
“끙…….”
못 이기는 척 앉은 진무앙은 야관문 차를 벌컥벌컥 마셔댔다.
그런 그를 바라보던 난향이 입을 열었다.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뭘?”
“강마팔단공의 허점이란 게 뭐야? 당신이 만든 거니 잘 알 거잖아.”
한 가지를 제외하고 진무앙은 난향에게 비밀이 없다.
그는 바로 대답했다.
“구결을 모르는 한, 자력으로는 강마팔단공의 다음 단계로 올라갈 수 없다는 거 알지?”
“응. 그 한계를 이용해서 집마부주가 수하들을 통제하는 거잖아. 충성도 높은 자들에게만 다음 단계 구결을 알려주면서.”
“맞아. 그런데 내가 그걸 만들 때 모든 단계에 동일한 심결을 하나 심어뒀어.”
난향이 눈을 크게 떴다.
“그런 짓을 했다고? 왜?”
“심심해서.”
황당무계한 대답이었지만 난향은 진무앙의 말이 진담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는 충분히 그런 짓을 하고도 남을 남자였다.
“하아… 그 심결이라는 게 어떤 역할을 하는 건데?”
“그걸 알아내면 팔단공 전체를 일기관통할 수 있어.”
난향의 눈이 커졌다.
“그러면… 그 심결만 알면 일단공만 배운 사람도 팔단공에 이를 수 있다는 거야?”
“맞아. 대성을 할 수 있지.”
“당신… 미쳤어?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몰라? 강마팔단공을 대성한 자들이 무더기로 나오면 마도 천하가 될 수도 있다고!”
“새삼스럽긴. 내가 언제는 제정신이었어? 그리고 강마팔단공을 대성한 자들이 무더기로 나와도 마도 천하가 되는 일은 없어. 자기들끼리 집마부주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싸우다 자멸하는 게 더 빠를 테니까. 그걸 잘 아니까 공야승추의 제자라는 놈이 곽 씨 부자를 그렇게 잡아 죽이려 했던 거고.”
심드렁하게 대답한 진무앙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갈게.”
너무 어이가 없어서 난향은 대꾸도 하지 못했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