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RAW novel - Chapter 155
155 어떤 새끼가 세상을 멸망시켜?
대전 중앙에 자리잡은 넓은 탁자.
남궁경은 그곳에 정말 다리가 휘어질까 걱정될 정도의 산해진미를 차려놓았다.
“우걱우걱, 와작와작, 꿀꺽꿀꺽…….”
진무앙의 양손과 입은 한시도 쉬지 않았다.
그는 의자에 앉자마자 죽립도 벗지 않은 채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음식을 흡입했다.
사람들은 그런 그의 기세에 질려서 멍하게 그를 볼 뿐, 음식에 손도 대지 못했다.
유코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누가 쫓아오기라도 해? 천천히 먹어. 그러다 석초 되겠어.”
“우물우물, 그런 말할 시간 있으면 너도 먹어. 꿀꺽꿀꺽, 남궁가에서 사 주는 음식을 먹고 싶다고 한 건 너였잖아.”
남궁경이 그의 말을 받아 유코와 유가흔에게 말했다.
“두 분도 드시죠. 아무래도 이야기는 진 대가의 식사가 끝나야 가능할 것 같습니다.”
두 여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죽립을 벗었다.
세월이 비껴간 그녀들의 젊고 아름다운 얼굴이 드러나자 남궁경의 얼굴이 무거워졌다.
그는 진무앙의 여자들이 영원한 젊음을 누린다는 걸 아는 남자였다. 그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누이 또한 그러했기에.
하지만 남궁진과 남궁화는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유코와 유가흔이 범상치 않은 여자들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젊고 아름다울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남궁진이 남궁화를 돌아보며 말했다.
“드디어 오늘 네 높은 코가 낮아지는 걸 보겠군. 천하에 너보다 더 아름다운 분들이 계실 줄이야…….”
남궁화는 대답 없이 면사를 벗었다.
유코와 유가흔에 뒤지지 않는 절세의 미모가 드러났다.
그리고 눈꼬리가 올라가서 고양이를 연상시키는 유코와 달리 남궁화는 눈끝이 살짝 쳐져서 순하고 부드러운 인상이었다.
남궁경이 진무앙에게 물었다.
“진 대가, 제 조카 예쁘죠? 외모만큼이나 심성도 고운 녀석입니다.”
진무앙은 음식에 파묻고 있던 고개도 들지 않은 채 대꾸했다.
“우물우물, 네 딸도 아니고 조카 자랑? 와작와작, 어릴 때는 안 그러더니 나이 들어서 팔불출이 된 거냐?”
“화아 자랑이 팔불출이라면 기꺼이 감수하겠습니다. 가주 형님도 저 아이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애지중지합니다.”
“꿀꺽꿀꺽, 팔불출에 딸바보라… 우물우물… 형제 맞네.”
“예, 형제 맞습니다, 하하하.”
남궁경은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남궁진과 남궁화는 끼어들지도 못하고 반쯤 넋이 나갔다.
남궁경이 진무앙을 대하는 자세는 그들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상대는 가주인 남궁록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하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남궁경은 화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즐거워하고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 쌓인 세월과 인연을 알지 못하는 그들이 어떻게 그것을 이해할 수 있을까.
수저를 놀리던 유가흔이 진무앙에게 말했다.
“무앙, 보는 사람 답답하게 그 죽립 계속 쓰고 있을 거야?”
진무앙은 한 손으로 닭다리를 뜯으면서 빈손으로 죽립을 벗었다.
신이 공들여 빗은 듯한 그의 얼굴이 드러나자 남궁경의 눈빛이 아련해졌다.
낙양에서는 진무앙이 인피면구를 벗지 않아 남궁경은 그의 본 얼굴을 보지 못했다.
아련함을 넘어 습기가 차오르려는 그의 눈을 본 진무앙이 젓가락을 똑바로 겨누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 눈빛 뭐냐? 내가 사내자식이 우는 거 얼마나 싫어하는지 알지? 이상한 눈치 보이면 맞을 줄 알아.”
깊은 심호흡으로 격정을 가라앉힌 남궁경이 말했다.
“걱정 마십시오, 진 대가. 아이들 앞에서 눈물을 보일 만큼 수양이 얕지 않습니다.”
진무앙이 투덜거렸다.
“지금 내 앞에서 나이 먹었다고 자랑하는 거냐? 네 나이에 수양은 개뿔이.”
실수를 깨달은 남궁경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주제넘었습니다.”
“여전히 예의 발라. 역시 넌 재미없는 녀석이야.”
“사람이 변하면 죽을 때가 된 거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시는 분이 진 대가 아니십니까.”
“오호, 그래도 몇 살 더 먹었다고 이제는 되치기를 할 줄도 아네!”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되치기 한 번 하고 본래 모습으로 돌아갔네, 재미없게.”
진무앙의 얼굴을 보고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던 남궁진과 남궁화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점점 더 머리가 아파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진무앙의 정체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남궁경조차 말조심하는 사람에게 대놓고 물어보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진무앙이 눈에 보이는 것과 달리 굉장히 나이가 많을 뿐만 아니라 범상치 않은 신분의 소유자라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남궁경이 저처럼 극존칭을 사용할 이유가 없으니까.
그러자 진무앙과 처음 만났을 때 그가 보인 태도가 이상해졌다.
저런 남자가 왜 자신들에게 존대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진무앙이 남궁경에게 물었다.
“너도 구화산에 나타날 거라는 보물 때문에 온 거냐?”
“그렇습니다. 안휘에서 벌어지는 대형 사건인데 본가에서 모른 척할 수는 없으니까요.”
이번에는 남궁경이 물었다.
“진 대가는 무슨 일로 이곳에 오신 겁니까? 보물 때문에 오신 건 아닐 테고요.”
“일이 있어서 왔지, 낙양에서 이 먼 곳까지 놀러 왔겠냐? 그리고 나는 보물에 관심을 가지면 안 된다는 법이라도 있냐?”
남궁경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을 받았다.
“그런 법은 없지만 천하에 진 대가의 관심을 끌 만한 보물이 존재할 것 같지가 않습니다.”
“그거 네 견식이 일천해서 그래. 천하는 넓고 보물은 많아.”
“진 대가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면 그런 거죠. 하하하”
“재미없는 자식. 그런데 너하고 쟤들만 여기 온 거냐?”
“형님이 창궁검대 무인 스물을 내주셔서 데리고 왔습니다.”
진무앙이 눈살을 찌푸렸다.
“창궁검대 이십 명? 이번 사건이 그 정도 무게가 있는 거냐?”
“형님은 더 많은 무사를 보내고 싶어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경호에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어서 대신 저를 합류하게 하셨습니다. 진아와 화아는 이 기회에 강호 경험을 쌓게 해주고 싶어서 데리고 온 것이고요.”
창궁검대는 대대로 남궁세가주와 직계 가족들의 경호를 맡고 있는 곳이다.
그곳에 소속된 무인의 숫자는 오십 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들만으로 어지간한 중견 문파를 하루 이내에 쓸어버릴 수 있다고 알려진 세가 최강의 무력 집단이다.
경호라는 업무의 특성상 그들이 세가를 벗어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데 남궁록은 구화산에 남궁경과 자식들은 물론이고 창궁검대의 무사를 이십 명까지 보낸 것이다.
그가 사안을 얼마나 중대하게 여기고 있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조치였다.
남궁경을 보는 진무앙의 눈에서 차갑고 강렬한 빛이 흘러나왔다.
방안의 공기가 서늘해졌다.
“경아.”
대답하는 남궁경의 안색이 진중해졌다.
“예, 진 대가.”
“내가 예전에 말했던 것을 잊은 거냐?”
“무엇을 말입니까?”
“신외지물에 욕심내지 말라고 했잖냐.”
남궁경이 고개를 숙이며 말을 받았다.
“오해를 하신 것 같습니다. 저희는 보물에 욕심이 나서 이곳에 온 것이 아닙니다, 진 대가.”
“그럼?”
“무저불회곡에 대해 아십니까?”
남궁경의 질문에 진무앙은 물론이고 말없이 음식을 먹고 있던 유코와 유가흔의 수저가 뚝 멈췄다.
“이름은 들어봤다.”
“저와 창궁검대는 서기가 일어나는 곳이 무저불회곡이기 때문에 온 것입니다.”
방안의 서늘한 기운이 사라졌다.
기세를 거둔 진무앙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확실하냐? 사람들은 십왕봉에서 서기가 일어나고 있다고 하던데?”
“그건 그들이 서기의 근원을 아직 찾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헛소문입니다. 서기가 일어나는 곳은 십왕봉이 아니라 그 뒤쪽에 있는 무저불회곡입니다. 이미 조사도 마쳤습니다.”
남궁경이 말을 이었다.
“보물이 문제가 아니라 서기의 근원이 무저불회곡이기 때문에 형님이 저와 창궁검대를 이곳으로 보낸 것입니다.”
진무앙은 미간을 찡그렸다.
“네 말을 들으니까 남궁세가는 무저불회곡에 대해서 남들이 모르는 걸 알고 있다는 것처럼 들리는구나.”
“예, 진 대가.”
“흠…….”
남궁경을 보는 진무앙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무림엔 무저불회곡의 위치는커녕 이름조차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들어갔다가 나온 사람이 한 명도 없어서 두려움을 느낀 사람들이 쉬쉬하며 말문을 닫은 때문이었다.
그러니 무저불회곡의 연원이나 내부에 대해 아는 사람을 찾는 건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는 것보다 더 어려웠다.
그곳에 대해 모르는 건 진무앙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그가 한 번이라도 그곳에 관심을 가졌었다면 문제는 달랐겠지만.
“말해봐라. 네가 알고 있다는 게 뭔지 궁금하다.”
“이십여 년쯤 전에 귀수신의가 본가에 들른 적이 있습니다.”
“신의가?”
“예. 형님이 그분과 교분이 두텁습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이야기여서 진무앙과 두 여자의 귀가 쫑긋 섰다.
남궁경의 말이 이어졌다.
“그때 신의는 가주 형님에게 무저불회곡으로 갈 예정이라면서 그곳의 위치를 알려줌과 함께, 한 가지 부탁을 했습니다.”
“그래서 네가 그곳의 위치를 아는 거구나.”
“그렇습니다.”
“그가 했던 부탁이라는 게 뭐냐?”
“그분의 부탁은, 무저불회곡에서 심상찮은 일이 벌어지면 그날로부터 보름이 되는 날까지 자신이 나오는 걸 기다려 달라고 했습니다.”
“나오지 않으면?”
“그때는 그곳에서 나오는 게 사람이든 짐승이든 무조건 죽여야 하고, 동시에 그곳도 파괴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 또한 예상하지 못한 이야기여서 진무앙은 어리둥절해졌다.
“그런 짓을 왜 하라는 건데?”
남궁경은 대답하지 못하고 잠시 머뭇거렸다.
“너, 뭐하냐? 이유가 뭐기에 말을 못해?”
“그게 이십 년이 지나도록 형님과 저도 이해하지 못하는 내용이라서…….”
“내가 너냐? 단숨에 이해할 테니까 말해봐.”
“신의는 보름이 지난 후 그곳에서 나오는 게 무엇이든 절대 세상으로 내보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곡 밖으로 나가면 천하를 멸망시킬 거라면서요.”
진무앙은 움찔했다.
자신만만했는데 그도 이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게… 뭔 개… 소리냐……? 거기서 나오는 게 뭐기에 세상이 멸망해?”
눈을 껌벅이는 그의 멍한 얼굴을 보며 남궁경은 입술을 지그시 물었다.
그렇지 않으면 이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도 웃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간신히 속으로 웃음을 삼킨 남궁경이 말했다.
“진 대가, 대답을 드리고 싶습니다만 죄송하게도 저 또한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합니다.”
진무앙은 혀를 찼다.
“쳇, 스무고개 하는 것도 아니고… 아무튼 그거 개소리가 맞아. 내가 여기 이렇게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어떤 새끼가 세상을 멸망시켜? 먼저 구화산이나 살아서 내려가야 할 거다.”
유코와 유가흔, 남궁경은 당연히 그 말을 수긍했다.
하지만 남궁진과 남궁화는 진무앙이 혹시 미친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황당무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진무앙이 말을 이었다.
“내가 옛날에 엄청난 홍수로 쫄딱 망한 세상에서 살아봐서 아는데, 진짜 재미없었거든. 새소리 물소리만 들리고 대화 나눌 상대도 없고, 살아 있는 사람 얼굴이나 한번 보려고 세상 끝까지 갔었다니까. 진짜 미치지 않고 버틴 게 용한 세월이었지. 그러니 세상을 그렇게 만들려는 놈들은 무조건 내 적이야.”
유코, 유가흔, 남궁경은 마음이 든든해졌다.
그들은 진무앙한테 찍힌(?) 적의 운명은 하나뿐이라는 걸 아는 사람들이다.
적은 무조건 발본색원, 삭초제근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니까.
남궁경이 싱긋 웃으며 말을 받았다.
“오늘이 서기가 출현한 지 정확히 보름이 되는 날입니다. 그래서 무저불회곡으로 가려던 참인데, 함께 가시겠습니까?”
“그래, 같이 가자. 어차피 너를 거들면 내가 하려던 일도 마무리지을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세상을 멸망시킬 거라는 ‘그것’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그걸로 결론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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