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RAW novel - Chapter 272
272 편애하는 남자야
지붕 위의 단옥상도 넋을 잃었다.
작은 물건도 아니고 세 사람을 허공섭물로 움직일 수 있는 고수라니.
그것은 절정이니 초절정이니 하는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니었다.
몽지림이 공회 등과 함께 지붕 위에 내려섰다.
진무앙이 단옥상에게 말했다.
“단 낭자, 저들은 관부와 점창파에서 보낸 자들입니다. 어떻게 처리하고 싶습니까?”
말을 이해하지 못한 단옥상이 그녀답지 않게 맹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저들을 살려 보낼 것인지, 아니면 여기서 몰살시킬 건지 빨리 마음을 정하라는 말입니다.”
“아…….”
단옥상의 눈이 커졌다.
진무앙은 백수십 명이나 되는 복면인들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는 것처럼 말했다.
다른 사람이 그런 말을 했다면 미쳤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단옥상은 이미 진무앙과 두 여인의 무공을 본 터라 그의 말을 흘려들을 수가 없었다.
안색이 굳어진 그녀가 주변을 돌아보았다.
약 삼십여 명의 복면인이 그녀의 집을 에워쌌고, 그들을 마을 사람 백여 명이 포위하고 있었다.
그런 마을 사람들의 포위 대형 뒤에 백여 명의 복면인들이 빙 둘러쌌다.
태원동과 두 명의 복면인은 진무앙과 오청연에게 저항도 못 하고 제압당했다.
그 광경을 똑똑히 본 터라 복면인들의 사기는 바닥을 기고 있었다.
진무앙이 말을 이었다.
“저들이 무사히 돌아간다면 마을 사람들이 무사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지시를 내린 자는 주민들이 당신을 숨겨주었다고 생각할 테니 보복을 할 겁니다.”
복면인들을 보는 단옥상의 눈에 진한 갈등의 기색이 떠올랐다.
그녀가 내리는 결정에 따라 백수십 명의 생사가 갈릴 터였다.
아무 인연이 없는 자들이라 해도 쉽지 않을 결정이었다.
그런데 복면인들 중 상당수는 오랫동안 대리왕국의 복국 활동에 함께 힘을 보태온 점창파의 무인들이었다.
그러니 그녀가 어떻게 갈등하지 않을 수가 있겠나.
하지만 갈등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그녀에게 결정을 강요한 건 다름 아닌 복면인들이었다.
상황이 여의치 않다는 것을 깨달은 복면인들이 탈출을 위해 마을 사람들을 공격했기 때문이다.
챙- 챙- 챙-
“으악!”
“커흑!”
여기저기서 병장기 부딪치는 소음과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복면인들과 마을 사람들은 단숨에 혼전에 돌입했다.
단옥상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었다.
싸움이 시작되자마자 사망자가 속출했는데 그들 대부분은 무공이 약한 마을 사람들이었다.
십여 명의 주민이 피를 뿌리며 쓰러지자 단옥상이 입술을 질끈 깨물며 진무앙에게 말했다.
“대협, 도와주세요.”
진무앙은 기다렸다는 듯 시원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오청연을 불렀다.
“청연.”
“예.”
“복면인들을 모두 죽여라.”
오청연은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내가요?”
“그럼 내가 할까?”
“검후를 시키면 되잖아요?”
“임아는 불문의 제자야. 피할 수 없는 경우가 아니면 그녀에게는 살생을 시키지 않을 거다.”
“너무 편애하는 거 아니에요?”
“몰랐냐? 나, 원래 편애하는 남자야.”
말을 하며 진무앙은 오청연의 손목을 잡아 혼전이 벌어지고 있는 싸움판으로 집어 던졌다.
오청연은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하지만 진무앙의 지시(?)를 거부하지는 않았다.
싸움판에 날아내린 그녀의 손에서 자색의 섬광이 신기루처럼 피어올랐다.
자색의 섬광은 다섯 자 길이의 고풍스러운 장검, 자전신룡검이었다.
오청연은 움직이며 복면인들을 베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쥐고 있던 자전신룡검의 손잡이를 놓았다.
그녀의 손을 떠났는데도 자전신룡검은 바닥에 떨어지지 않았다.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둥둥 떠 있던 자전신룡검이 가공할 속도로 허공을 부유하기 시작했다.
촤롸롸롸롸롸롸-
동시에 소름 끼치는 파육음과 함께 사방에서 합창하듯 비명이 터져 나왔다.
서걱- 서걱- 서걱…….
“으악!”
“아악!”
“으윽!”
피보라가 분수처럼 치솟고 잘려 나간 사지가 여기저기 널브러졌다.
복면인들과 마을 사람들 간의 싸움은 바로 정지되었다.
허공을 부유하는 자색의 검은 살아 있는 것처럼 날아다니며 복면인들을 베어버렸다.
그 속도가 너무나 빨라서 피하는 건 불가능했다.
무기를 들어서 막으려는 복면인도 있었지만 부질없는 짓이었다.
자전신룡검은 앞을 막는 무기가 무엇이든 두부처럼 잘라 버린 후 그것의 주인까지 무자비하게 양단했다.
그런 상황인데 한가하게 마을 사람들을 공격하는 복면인이 있을 리가 없는 것이다.
복면인 중 누군가의 입에서 공포에 질린 한마디가 흘러나왔다.
“이기… 어검?”
전설에나 나오는 검공의 최후 경지가 그들의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찰나지간 오십여 명의 복면인이 싸늘한 주검으로 변해 바닥에 널브러졌다.
전율과 공포가 그들의 마음을 가득 채웠다.
어느 순간, 그들 중 누군가가 비명처럼 악을 썼다.
“도망쳐!”
이제는 마을 사람들과의 싸움이 문제가 아니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절대초강고수가 그들의 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상황이 아닌가.
이 자리에 계속 있다가는 목숨을 잃을 게 뻔하니 그들은 도망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복면인들은 꼬리에 불이 붙은 망아지처럼 미친 듯이 도주했다.
수십 명이 주검으로 변한 뒤인데도 아직도 그들의 수는 칠팔십 명에 달했다.
그것을 본 오청연의 시선이 자전신룡검을 향했다.
마치 그 눈길에 호응이라도 하듯 자전신룡검이 하늘로 십여 장을 솟구쳤다.
그리고 검끝을 지면으로 향하더니 움직임을 멈췄다.
하지만 자전신룡검이 멈춘 것처럼 보인 건 착시에 불과했다.
스스스스스-
나비의 날갯짓과도 같은 미세한 소음과 함께 자전신룡검의 숫자가 순식간에 수십여 자루로 불어났다.
그렇게 불어난 검이 회전하는가 싶더니 도주하는 복면인들의 머리 위로 벼락처럼 내리꽂혔다.
퍼퍼퍼퍼퍼퍼퍼퍼퍽-
“으악!”
“켁!”
“끄악!”
소름 끼치는 비명이 줄에 꿴 듯 터져 나오며 자전신룡검에 머리나 등이 관통당한 복면인들이 시체가 되어 나뒹굴었다.
도주에 성공한 복면인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아악!”
마지막 단말마의 비명을 끝으로 장내가 무거운 침묵에 휩싸였다.
자전신룡검이 신기루처럼 흐릿해지더니 홀연히 사라졌다. 그리고 오청연은 다시 지붕 위로 올라와 진무앙의 옆에 섰다.
그녀가 싸움판으로 뛰어내리고 스물을 셀 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백수십 명이나 되는 복면인들이 모두 죽었다.
마을 사람들은 떨리는 눈으로 지붕 위를 올려다보았다.
그들 대부분은 난데없는 비명 소리에 놀라 뛰어나왔다. 그래서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복면인들이 왜 석 달 전 마을에 정착한 여인을 공격했는지, 또 그녀 옆에 있는 죽립을 쓴 일남이녀는 누구인지 전혀 모르는 상태인 것이다.
그때 마을 사람들 사이에 길이 나며 반백의 머리카락을 가진 초로의 남자가 걸어나왔다.
그는 이 마을의 촌장인 신도일이었다.
단옥상이 경공을 펼쳐 신도일의 앞으로 뛰어내렸다.
진무앙과 오청연이 그녀의 뒤를 따랐다. 늘 그렇듯 몽지림은 다시 허공에 몸을 감추었고.
단옥상이 침울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신 숙부님…….”
신도일이 고개를 저어 그녀의 말을 막았다. 그리고 진무앙을 향해 포권을 했다.
“대협, 저는 이 마을의 촌장인 신도일입니다. 질녀와 우리 마을을 구해주신 은혜를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실례가 아니라면 뉘신지 별호를 알 수 있겠습니까?”
어촌 마을의 촌장답지 않은, 정중함과 예의를 갖춘 말투였다.
진무앙은 고개를 저었다.
“쓸데없는 호기심은 명을 단축시킬 뿐입니다. 당신은 내가 단 낭자에게 해가 되지 않을 사람이라는 것만 알면 됩니다.”
“대협의 말을 믿어도 되겠습니까?”
“내가 단 낭자에게 해를 끼칠 마음을 먹었다면 당신은 지금 이렇게 나와 대화를 나눌 수도 없었을 겁니다. 이것으로 대답이 되겠습니까?”
진무앙의 말을 부정할 수 없다는 걸 아는 터라 신도일은 무거운 표정으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그가 말을 이었다.
“대협, 질녀를 계속 지켜주실 수 있으십니까?”
“그럴 생각이 아니었다면 여기 오지도 않았을 겁니다.”
진무앙의 말에 신도일은 결심을 한 듯 단옥상에게 말했다.
“상아, 여기 일은 내가 수습할 테니 너는 신경쓰지 말고 대협과 함께 떠나거라.”
“숙부님…….”
“너와 얘기나 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너도 알겠지만 복면인들은 정창파와 관부의 인물들이다. 이들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사람을 보내 상황을 파악하려 할 것이다. 그전에 시신을 치우고 흔적을 지워야 한다.”
그의 말을 듣고 있던 진무앙이 말했다.
“시신의 수가 많아서 완벽하게 마무리하기 쉽지 않을 겁니다.”
신도일이 물었다.
“다른 생각이라도 있으신지요?”
“시체들을 전부 마을 광장에 모아 주십시오.”
“어떻게 하시려고……?”
“보면 압니다.”
진무앙의 심드렁한 대답에 신도일은 더는 묻지 못하고 마을 사람들과 함께 복면인들의 시신을 마을 광장에 모았다.
백삼십여 구나 되는 시신이 탑처럼 쌓인 광경은 참혹하기 이를 데 없었다.
시신탑 앞에 선 진무앙은 오른손을 들어올렸다.
그의 장심에서 찬란한 노을빛과 함께 용암처럼 뜨거운 열기가 흘러나왔다.
화르르르르르-
굉염열화파멸강이었다.
눈 몇 번 깜박이기도 전에 시신의 탑은 잿더미로 변했다.
뒤이어 진무앙의 장심에서 강력한 바람의 소용돌이가 일어나 잿더미를 허공으로 말아 올렸다.
혈우팔법의 하나인 흡룡와류폭 중 흡룡와의 기법이었다.
허공에서 바람결을 따라 안개처럼 흩어지는 잿가루를 보며 마을 사람들은 넋을 잃었다.
진무앙이 펼친 건 그들이 알고 있는 무공의 영역을 아득히 넘어서는 것이어서, 이야기 속의 도술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진무앙이 신도일에게 말했다.
“나머지는 촌장님에게 맡겨도 되겠죠?”
신도일은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대협.”
“수하라는 저 꼬마도 챙겨주십시오. 아이를 데리고 다닐 수 없는 상황이니까요.”
“염려하지 마십시오. 수하는 질녀의 식솔인데 제가 소홀할 리 있겠습니까.”
진무앙이 공회를 돌아보았다.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할멈에게 돌아가 보고해도 됩니다.”
공회가 허리를 직각으로 꺾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받았다.
“감당할 수 없는 말씀이십니다요. 제가 한 일이 뭐가 있다고요.”
진무앙이 단옥상을 보며 물었다.
“단 낭자, 이제 갈까요?”
“어디로…….”
“일단 이 마을은 떠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뒷일은 천천히 생각해도 될 겁니다. 먼저 단 낭자에게 할 이야기도 있고 말입니다.”
“예? 저와 무슨 이야기를……?”
“낭자의 아버님에 대한 이야깁니다.”
단옥상의 안색이 확 변했다.
“아버님의 행방을 아세요?”
진무앙은 고개를 끄덕였다.
“압니다.”
그의 대답에 단옥상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진무앙이 걸음을 옮기자 단옥상이 끌리듯 그의 뒤를 따랐다.
공회와 엄탁, 수하, 그리고 신도일과 마을 사람들은 넋이 나간 얼굴로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은 마치 한바탕 꿈을 꾼 듯한 기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이 겪은 일이 너무 현실감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진무앙 일행은 곧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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