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RAW novel - Chapter 90
090 여기서 그게 왜 나옵니까?
진무앙은 산책이라도 나온 사람처럼 한가로운 표정이었다. 하지만 연적하와 섭소천의 얼굴에는 긴장한 기색이 뚜렷했다.
휘리리리릭-
무서운 속도로 허공을 가로지르는 그들의 뒤로 옷자락이 나부끼는 소리가 났다.
연적하는 감격에 몸을 떨었다.
살아생전 용소구천술의 기법을 펼치는 날이 오다니.
그가 평생 꿈에서도 바라던 순간이 아닌가.
그는 검을 조종하고 있지 않았다, 그것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있었을 뿐.
그런데도 보천검은 누가 조종이라도 하는 것처럼 어둠에 잠긴 난약사의 뒤편 숲으로 날아갔다.
검이 가진 신기(神氣)는 천살귀문진의 사기에 반응하며 그 중심부인 귀문관을 알아서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날아가던 검이 무언가에 막히기라도 한 것처럼 조금씩 느려졌다.
그것을 알아차린 연적하가 진무앙에게 전음을 날렸다.
[사백, 귀문관이 가까워진 것 같습니다!] [네가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으니까 전음으로 악쓰지 마! 귀청 떨어져.]연적하가 멋쩍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당연히… 그러시겠죠.”
섭소천이 고개를 갸웃하며 그런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그들의 대화는 전음과 말소리가 뒤섞여 있어서 그녀가 맥락을 헤아리는 건 쉽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안개가 자욱하게 낀 것처럼 전방의 숲이 흐릿해졌다.
색이 푸르스름한 것이 안개는 아닌 듯했다.
그 너머로 엄청나게 큰 나무의 그림자가 보였다.
연적하가 굳은 음성으로 말했다.
소리 지르지 말라고 타박을 받은 터라 그의 목소리는 별로 높지 않았다.
이제는 보천검의 움직임이 확연하게 느려졌다.
진무앙이 싱긋 웃으며 말을 받았다.
[귀문관… 임아가 생각나네.]오래전 그와 검후는 함께 천살귀문진을 박살냈었다.
연적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분이 계셨다면 벌써 이곳은 박살이 났겠죠.] [아, 참, 그녀가 가르쳐 준 보타암의 항마금강진언을 전진비전과 섞어서 쓰지 말라고 내가 그렇게 강조했었는데, 왜 말을 안 듣냐?]연적하가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사백, 제가 아는 항마금강진언은 검후님이 펼치는 걸 어깨 너머로 배운 것이라 완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단독으로는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진무앙이 눈을 크게 떴다.
[왜 아까 말하지 않았냐? 그랬으면 내가 그것도 완성시켜 주었을 텐데.]연적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사백, 검후님의 법술도 아십니까?]진무앙이 대답을 하려고 할 때 섭소천의 떨리는 목소리가 두 사람의 귀를 파고들었다.
“진 소협, 도착했어요.”
보천검은 검신을 부르르 떨기만 할 뿐, 더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허공에 떠 있었다.
섭소천은 두려운 듯 진무앙의 가슴에 얼굴을 묻으면서도 귀문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걱정하지 마시오, 그대 옆에는 내가 있으니. 유명전의 마두들은 그대의 머리카락 한 올 건드릴 수 없을 것이오.”
진무앙이 힘있게 그녀의 허리를 안았다.
진무앙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항상 준비(?)되어 있는 남자다. 그리고 섭소천은 백의 나삼 안에 아무것도 입고 있지 않았다.
두 사람의 하체가 아교를 붙여놓은 것처럼 착 달라붙었다.
볼이 능금처럼 붉게 달아오른 섭소천의 입술 사이로 달뜬 신음이 미약하게 흘러나왔다.
“하아아…….”
평생 여자와는 손도 잡아본 적이 없는 연적하가 섭소천을 보며 물었다.
“어디 아프냐?”
섭소천의 머리 위 진무앙이 험악하게 인상을 썼다.
[죽을래?]흠칫한 연적하가 재빨리 말을 이었다.
“…냐… 요, 소저?”
“아니에요. 아픈 곳 없어요, 연 대협.”
섭소천의 말을 들은 연적하의 얼굴에 미소가 확 피어오르며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으하하하하하!”
웃음소리에 묘한 여운이 담긴 것을 느낀 진무앙이 물었다.
[너, 왜 웃냐?] [저 소저가 사백한테는 소협, 저한테는 대협이라고 하잖습니까.] [대협 소리 들으니까 좋냐? 좋아?]타박하는 진무앙의 말투에 날이 울퉁불퉁하게 섰다.
연적하의 얼굴에서 미소가 싸악 사라졌다.
“험… 험…….”
그는 진무앙의 눈을 피해 먼 산 보는 시늉을 하며 헛기침을 했다.
혀를 찬 진무앙이 그에게 전음으로 말했다.
[헛소리 그만하고 저거나 뚫어, 자식아!] [넵, 사백!]어색함을 모면할 수 있다는 생각에 힘차게 대답한 연적하가 양손으로 수인을 짚으며 외쳤다.
“신검복요!”
보천검이 눈부신 황금광에 휩싸이는가 싶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백여 개로 불어났다.
그러고는 줄에 꿰인 구슬처럼 줄지어 귀문관의 중심을 둘러싸고 있는 무형의 사기로 이루어진 장막에 부딪쳐 갔다.
검과 장막이 충돌한 지점에서 눈을 뜨기 힘들 정도로 엄청난 빛과 굉음이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콰콰콰콰콰콰쾅!
“아아!”
탄성을 토하는 섭소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소리를 들은 연적하의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진무앙이 그를 째려보며 섭소천에게 말했다.
“섭 낭자, 눈에 보이는 것만큼 대단한 거 아니니까 그렇게 감탄할 거 없소.”
이미 진무앙이 사슴을 말이라고 해도 믿을 지경이 된 섭소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연적하의 입술이 부루퉁하게 튀어나왔다. 하지만 진무앙에게 감히 불만을 토로하지는 못했다.
그 순간, 안개가 몸부림을 치기라도 하는 것처럼 출렁이며 일행의 앞에 맑은 밤하늘처럼 깨끗한 구멍이 나타났다.
그것을 본 섭소천이 눈을 반짝이며 소리쳤다.
“진 소협, 길이 생겼어요!”
그들을 태운 보천검이 구멍 안으로 날아들었다.
장막의 내부는 중앙에 한 그루의 거대한 나무가 서 있는, 끝이 보이지 않는 숲이었다.
일행은 보천검에서 뛰어내렸다.
연적하는 황금빛 광채가 사라지며 하나로 합쳐진 검을 꽉 움켜잡았다.
그리고 섭소천이 아직도 늘어져 있는 영채신을 잡아 일으키려 했다.
그걸 보고만 있을 진무앙이 아니다.
그가 섭소천을 제지하며 말했다.
“영 공자는 내가 챙길 테니 걱정 마시오.”
그는 들어 올린 영채신을 옆구리에 턱 끼었다.
그때 연적하가 목소리에 공력을 가득 실어 소리쳤다.
“취도사가 왔다! 나와라, 유명전의 마졸들아!”
우수수수수-
태풍에 휘말린 것처럼 나뭇잎들이 떨어져 휘날렸다.
하지만 숲은 조용했다.
연적하가 눈살을 찌푸리며 진무앙을 돌아보았다.
“도망칠 시간은 없었을 텐데… 반응이 없군요.”
진무앙이 피식 웃으며 말을 받았다.
“음양반인귀를 나를 알아봤다. 바로 음혼마군에게도 이야기했을 거고. 그러니 감히 나올 생각도 하지 못할 거다.”
진무앙이 손가락을 들어 중앙의 거대한 나무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아도 갈 수가 없는 신세다.”
계속 말을 하는 그의 눈에서 천천히 웃음기가 가셨다. 대신 떠오른 것은 삼엄한 예기였다.
“흠… 사내들의 양기를 취해서 파괴된 단전을 복구했다고 하기엔 음양반인귀의 상태가 너무 좋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상황을 너무 단순하게 생각했구나.”
연적하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진무앙이 전음으로 대답했다.
[저 거대한 나무와 이 숲의 나무 대부분은 환영이다.]연적하도 전음으로 말을 받았다.
[알고 있습니다, 사백. 이 모든 건 천살귀문진의 사기가 만들어낸 환영 이잖습니까.] [법력이 낮은 네 눈에는 그렇게 보이겠지만… 귀문진의 사기만으로는 이런 대규모의 환영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예? 그럼 이것들을 뭐가 만들어냈다는 겁니까?] [나무 아래에 환우지약의 조각 중 하나가 있는 거 같다.]대경실색한 연적하의 안색이 확 변했다.
[……환우지약… 이라니요? 사백, 설마… 환우십병의 그 환우지약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갑자기 여기서 그게 왜 나옵니까?]얼마나 놀랐는지 그의 목소리는 세차게 떨리고 있었다.
진무앙이 혀를 차며 그를 타박했다.
[여기서 그게 나온 건 나올 만하니까 나온 거겠지. 내가 그 속사정까지 어떻게 알겠냐!] […네…….]진무앙이 말을 이었다.
[이렇게 대규모의 환영을 만들어낼 수 있는 사기를 품은 환우지약이라면, 삼신기는 당연히 아닐 거고, 아마도 상위 서열의 칠마병 중 하나의 열쇠 조각일 거다.]그제야 연적하는 진무앙이 유명전의 마두들이 왜 도망을 가지 못한다고 했는지 이해했다.
그가 말했다.
[환우지약에 대한 욕심도 욕심이지만, 이곳을 떠나면 그자들은 능력을 잃게 되는 겁니까?]진무앙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는 이류 무인 정도의 실력을 발휘하기도 쉽지 않을 거다. 사술과 환술은 전혀 쓰지 못할 것이고.]그가 연적하를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유명전의 떨거지들도 그곳에 있을 것이다. 이곳은 천살귀문진의 유일한 생문이니 만약 그들이 나를 피해 도주하면 이곳으로 올 거다. 너는 그놈들을 맡아라.] [예, 사백.]진무앙이 눈으로 섭소천과 영채신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섭 낭자는 나와 함께 움직인다. 가기 전에 영채신을 깨울 테니 너는 그를 챙겨라.] [저 꼬마가 깨어나면 사백과 섭 소저를 찾을 텐데, 뭐라고 해야 합니까?] [여긴 요괴들의 소굴이고, 우리는 그 중심부에 들어가서 싸우고 있다고 둘러대.]연적하가 눈을 끔벅이며 되물었다.
[사백, 그건 좀… 요새는 애들도 요재지이에서나 읽을 수 있는 그런 황당한 이야긴 안 믿습니다.]요재지이는 요괴와 귀신이 무더기로 나오는 환상 소설이다.
[그럴싸하게 살을 붙여서 이야기를 만들어봐. 저 녀석은 순진해서 믿고도 남는다.] […예…….]거짓말에는 소질이 없는 연적하의 대답엔 힘이 없었다.
진무앙이 혀를 차며 그를 구박했다.
[대혼돈시대에 무공이 초절정을 뛰어넘는 기인괴걸과 절세고수들이 발에 채일 만큼 많았던 거 알지?] [예.] [네 스승, 철우의 무공이 간신히 절정의 초입에서 비비적거리던 수준이었다는 것도 알지?] [그보다는 좀 더 위…….] [너보다 내가 철우를 더 잘 알아, 임마!]연적하가 눈을 내리깔았다.
수긍한 건 아니었지만 토를 달았다가는 진무앙에게 뒤통수를 얻어맞을 게 분명해서 더는 입을 열 수 없었다.
진무앙이 그를 째려보며 말을 이었다.
[철우가 전진을 무당에 버금가는 도가 명문으로 키울 수 있었던 건 무공이 아니라 그의 엄청난 말빨 덕분이었어. 그런 스승을 둔 녀석이 세상 물정도 모르는 백면서생 하나 구워삶지 못하겠다는 거냐?]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는 안 돼. 잘해야지. 저 녀석이 나중에 이상한 소리 하면 네 수염을 다 뜯어버릴 거다. 알았냐?]진무앙이 으름장을 놓자 바짝 긴장한 연적하가 힘차게 대답했다.
[넵, 사백!]진무앙은 영채신의 수혈을 풀어 그를 깨웠다.
무공을 모르는 사람은 수혈을 짚혔다가 풀리면 정신을 차리는데 시간이 조금 걸린다.
영채신은 초점이 흐릿한 눈으로 진무앙과 연적하를 보고 섭소천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의 눈에 초점이 확 살아났다.
“섭… 낭자…….”
그때 진무앙이 그에게 말했다.
“채신아, 여기는 요괴들의 근거지인 귀문관이다. 나와 섭 낭자는 안으로 들어가 사기의 근원을 파괴할 거다. 너는 연 대협과 함께 이곳에서 요괴들을 잡아라.”
영채신은 멍한 얼굴이 되었다.
수혈이 짚혀 잠만 자던 그가 진무앙이 하는 말을 알아듣는 건 무리였다.
연적하를 돌아본 그가 두려운 표정으로 소리쳤다.
“저 사람은 수배된 살인범인데…….”
“네가 잘못 본 거야. 그는 무림오괴의 한 사람인 취도사 연적하 대협이다.”
진무앙은 영채신의 어깨를 한 번 두드려 주고는 섭소천의 손을 잡고 바람처럼 몸을 날렸다.
영채신은 말 한 마디 제대로 하지 못하고 두 사람이 사라지는 걸 보기만 해야 했다.
연적하가 그에게 말했다.
“영 공자, 준비하시오.”
“예? 뭐를……?”
되묻던 영채신의 눈이 쟁반만 하게 커졌다.
우지직, 우지지지직-
중앙의 거대한 나무와 주변의 아름드리나무들의 나뭇가지들이 모조리 일어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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