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e 17th century, he became the king of Taiwan RAW novel - Chapter 124
124화
“정부의 신용이 나쁘지 않은 모양이야. 이렇게 많은 이들이 돈을 맡기려 하는 것을 보면 말이지.”
요한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은행을 설립할 때 가장 걱정했던 것이 백성을 설득하는 일이었다.
21세기에서도 은행에 돈을 맡기는 걸 상당히 불안하게 여기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대만엔 애초에 은행이란 기관이 존재하지도 않았었다.
불신하는 태도를 보인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는 뜻.
하지만 뜻밖에도 은행을 설립하자, 상당히 많은 이가 은행을 이용하였다.
특히 돈을 맡기러 온 이들이 적지 않았는데, 그들이 맡긴 돈을 은자로 바꾸면 거의 90만 냥에 육박하였다.
“정부의 신용보다는 국왕 전하를 향한 신뢰가 아닐까 싶습니다.”
“아부하기는.”
“관료로서 이런 말 하기는 뭐하지만, 백성이 정부를 믿으면 얼마나 믿겠습니까? 백성이 믿는 것은 오직 국왕 전하뿐입니다.”
요한은 어깨를 으쓱하였다.
겸손함과는 거리가 먼 성격을 가진 그였다.
그 역시 정은봉이 마냥 아부하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 큰 부담감과 책임감을 느꼈다.
“백성이 보내주는 신뢰에 보답하려면 은행 운영에 차질이 생겨서는 안 돼. 상인들에게 돈을 빌려줄 때도 확실한 보장이 있을 때만 빌려주도록.”
은행 설립 목적 중에 가장 중요한 목적이 국내 상인들을 키우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은행 자산이 요한의 개인 자금만 있는 것이 아닌데 마냥 상인들에게 퍼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사기꾼도 넘쳐날 것이기에 최대한 엄선해서 자금을 투자할 필요가 있었다.
이왕이면 확실한 담보가 있는 이들로 말이다.
“명심하겠습니다.”
“은행장에게도 확실히 전하도록.”
“예, 알겠습니다. 그런데 전하. 유구 상인들이 대출을 신청하였는데,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요한은 정은봉의 말에 턱 끝을 쓰다듬었다.
상인들의 행동력이 남다르다는 사실은 그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은행을 만들자마자 설마 타국의 상인까지 대출을 신청할 줄은 그도 예상 못 하였다.
‘뭐, 유구 상인이라면 타국의 상인이라고 볼 수 없으려나?’
남명이나 일본, 심지어 조선 상인이라 해도 돈을 빌려줄 생각이 없는 요한이었다.
하지만 유구 상인이라면?
확실한 담보가 있다면 구태여 차별할 이유가 없을 거 같았다.
“시민증은 소지하고 있다던가?”
“대부분 소지하였습니다.”
“담보는?”
“담보라기보다는 유구 각지의 사탕수수 농장과의 계약서를 가지고 왔습니다.”
계약서라면 나름 신용할 수 있는 담보가 될 것이다.
물론 농장과 직접 대면하여 계약서의 사실관계에 관해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하기는 하겠지만 말이다.
“국내 상인들과 똑같이 처리하도록. 유구라면 거리가 가깝고 우리의 영향력이 강하니, 목적물을 쉽게 확인할 수 있을 테니 말이야.”
“알겠습니다.”
정은봉은 그게 마지막 용건이었는지 고개를 숙이고는 요한의 집무실에서 물러났다.
‘어쩌면 은행을 이용해서 유구 상인들을 대두국의 백성으로 만들 수 있겠는데?’
딱히 계획했던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요한은 처음 세웠던 계획에 매몰되는 인물이 아니었다.
새로운 구상이 떠오르면 언제든 기존 계획에 반영할 수 있는 인물이었던 것.
이번 일도 마찬가지였다.
유구를 대두국과 합병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유구의 경제력을 좌지우지하는 것이 중요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은행은 유구의 경제력을 장악할 첨병으로 가장 적당할 것처럼 보였다.
‘이참에 유구 상인들도 키워주자고. 국내 상인과 유구 상인, 그리고 필리핀을 장악한 뒤, 필리핀의 경제력까지 신장시킨다면 언젠가 화교 자본에 맞설 수 있는 자본력을 갖지 않겠어?’
단기에는 당연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천재지변이 일어나 화교 자본에 막대한 타격을 주지 않는 한 말이다.
***
“쿨럭!”
도르곤은 업무를 보던 중,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기침이 계속해서 나왔기 때문이다.
한참을 기침하던 그가 가까스로 기침을 멈추고 양손을 다시 의자의 팔걸이로 옮겼다.
“저, 전하.”
“무슨 일이냐.”
“옥체를 보중하시옵소서.”
환관이 그의 양손을 눈으로 가리키며 조심스럽게 권유하였다.
도르곤의 손은 붉게 얼룩져있었다.
그가 입에서 쏟아낸 피였다.
만주족 전사로 늘 강건한 모습을 보여왔던 도르곤은 이렇게 환관 앞에서도 병세를 감추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3년 전, 양주 반란을 진압할 때 입었던 상처가 아직도 그를 괴롭히고 있었던 것이다.
“별거 아닌 일이다. 신경 쓰지 마라.”
도르곤은 자신의 병세를 숨기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굴었다.
아직 그는 37살밖에 안 되는 젊은 나이였다.
이까짓 병세는 언제든 회복할 수 있으리라.
그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였다.
‘이까짓 부상에 죽는다면 하늘이 청조를 버린 것이겠지. 하지만 하늘이 청조를 버릴 리 없다.’
만주족은 천하를 점령하는 것이 하늘이 점지한 만주족의 운명이라 생각하였다.
즉, 천명이라는 것인데, 도르곤은 바로 그 천명을 이끌 자가 자기 자신이라고 여겼다.
자신이 있어야지만, 청나라가 천하를 차지할 수 있다고 여긴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걱정하지 않았다.
하늘이 청나라를 버리지 않았다면 그 역시 허망하게 목숨을 잃을 리 없을 테니 말이다.
***
천명을 이끌 자는 오직 자신밖에 없다 여기는 도르곤은 병색이 완연한 상태에서도 쉬지 않고 업무를 봤다.
“남만의 상인이 나를 찾는다고?”
도르곤이 국정 현안을 살필 때 가장 신경 쓰는 것이 남만 즉, 남명의 일이었다.
청나라가 천하를 차지하려면 반드시 남명을 토벌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방 멸망할 것처럼 보였던 남명은 끈질기게 버티고 있었다.
아마 그의 병세가 나아지지 않고 더 심해지는 것도 바로 이런 남명의 발악이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어쨌든, 남명을 가장 신경 쓰는 그였기에 남명의 일이라면 모든 민감하게 받아들였다.
“정성원이라는 거상인데, 이주(대만)의 조선인 수괴와 남만의 정씨 일파에게 배신을 당하여 둘 모두에게 강한 원한을 품고 있다 합니다.”
“본인도 정씨 일족의 일원이면서 정씨 일족에게 원한을 품고 있다고?”
“예, 그렇습니다.”
만약 청나라가 절대 유리한 상황이었다면 이런 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꽤 명성 높은 거상이라지만, 그래 봤자 도르곤에겐 일개 상인일 뿐이었다.
심지어 남명과 대두국에서 전 재산을 잃고 쫓기는 신세라고 하니 더 보잘것없게 느껴졌다.
하지만 현재 청나라는 상황이 그리 좋지 않았다.
엄청난 자원을 소모하여 남명을 향해 총공세를 퍼부었지만, 그 같은 공세는 모두 실패로 끝이 났다.
이제 청나라는 공격을 이어나갈 여력이 없어졌다.
공격을 이어나가기는커녕 후방의 반란을 걱정해야 할 상황이 되었던 것.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도르곤으로선 위기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옛 금나라가 그러했던 것처럼 자신들이 세운 청나라도 강북을 차지한 것으로 만족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 말이다.
그렇기에 도르곤은 정성원이란 상인을 한 번 만나보기로 하였다.
지금 청나라는 새로운 전략을 세워야 할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의 수하들은 뻔한 전략밖에 제시하지 않았고, 도르곤은 지나가는 나그네에게라도 조언을 구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런데 마침 남명의 정씨 일족과 대두국의 요한에게 강한 원한을 가졌다는 상인이 나타났으니 의견 정도 들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부디 참신한 조언을 해줬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
요한에게는 죽기 직전이 되어서야 절하는 시늉을 했던 정성원이었다.
하지만 우습게도 북방 오랑캐로 취급했던 청나라, 그것도 황제가 아닌 일개 섭정왕에 불과한 도르곤에게 극진한 예를 다하였다.
정작 도르곤은 이런 사실을 모르고 당연하게 받아들였지만 말이다.
“바로 본론을 묻겠다. 네가 생각하기에, 두 도적을 몰락시킬 방법이 무엇이냐?”
도르곤은 직설적인 사내였다.
어차피 정성원의 정체는 심복에게 모두 들은 상태.
하여 그는 정성원의 사연과 관련해서 한마디도 묻지 않았다.
정확히 어떤 이유로 요한과 원수 관계가 되었는지 그로선 전혀 궁금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르곤이 궁금한 것은 오직 하나.
요한을, 그리고 남명의 정씨 일족을 몰락시킬 방법이었다.
하지만 정성원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침묵하자, 도르곤은 그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이같이 말하였다.
“난 신상필벌이 확실한 사람이다. 그러니 보상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소인이 원하는 보상은 고려방쯔의 확실한 몰락입니다.”
정성원의 그 같은 말을 듣고 도르곤은 눈을 크게 떴다.
상인 출신이니 당연히 금전적인 보상을 요구할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런데 설마 이런 보상을 요구할 줄이야.
잠시 놀란 표정을 짓던 도르곤은 이내 호쾌하게 웃었다.
“하하하하하!”
금전적인 보상을 포기할 정도로 요한의 몰락을 원한다니!
이 정도의 원한이라면 그가 제시할 전략을 기대해봐도 될 거 같았다.
“그 조선 놈을 싫어하는 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다. 남명을 정리한 뒤에는 반드시 그놈의 목을 노릴 것이니, 너의 조언이 확실하게 통한다면 그놈의 몰락은 정해진 결과나 다를 것이 없다!”
“믿겠습니다. 어떤 순간이 와도 절대 고려방쯔의 손을 잡지 말아주십시오.”
“이미 놈은 내 제안을 거절하였는데, 내가 자존심이 있지, 또 회유를 시도하겠느냐?”
물론 그는 국익을 위해서는 언제든 자존심을 놓을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정성원 앞에서는 자존심에 목숨 거는 사람처럼 연기하였다.
그가 만주족이라서 그런지, 이런 그의 연기는 언제나 잘 통했다.
정성원도 마찬가지라서 그는 이내 안심하고 요한과 정씨 일족 모두를 몰락시킬 방법을 도르곤에게 알려주었다.
“바다를 비우십시오. 철저하게 해금 정책을 펼친다면 무역에 의존하는 정씨 일파나 도이 놈들은 몰락을 피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도르곤은 그런 정성원의 말에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전략을 기대했던 그였다.
그런데 이미 명나라에서도 몇 번 시행한 적이 있는 해금 정책을 이야기하니,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해금 정책을 펼치면 그들의 경제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걸 누가 모르느냐? 하지만 우리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큰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천하를 차지하려면, 그 정도 타격은 감수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해금 정책을 펼치는 것만으로 천하를 차지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면, 경제 타격이야 도르곤으로선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기껏 해금 정책을 펼쳤는데 적에게 큰 타격을 주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해금 정책을 펼쳐 조정에서 무역을 틀어막는다고 남만의 상인이 강북으로 못 올 거 같으냐? 나는 관리라는 족속들을 믿지 않아. 그것이 만주족 관료든, 한족 관료든 둘 다 마찬가지다.”
강남과 강북의 무역은 두 정부가 막으려고 해서 쉽게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백, 수천 척의 배가 강남과 강북을 오고 갔다.
만약 청나라 조정에서 이를 막으려 한다면 상인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밀무역을 시도할 것이다.
그리고 이를 감독해야 할 관리들은 상인들이 뿌리는 뇌물에 홀려 밀무역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도 보지 못한 척 외면할 것이고 말이다.
“관료들까지 저 멀리 쫓아내면 되는 거 아닙니까? 물론 백성들 역시 해안으로의 접근을 완전히 막아버리고 말입니다.”
“···백성과 관료를 해안에서 쫓아내자고? 진심으로 하는 말인가?”
“해안에 거주하는 백성이야 조금 불만을 품겠지만, 나라를 위한 일인데 그들도 알아서 불만을 다스리지 않겠습니까?”
실로 파격적인 전략이었다.
단순한 해금 정책을 넘어, 해안으로의 접근을 차단하는 정책이라니.
안 그래도 청나라를 향한 불만이 작지 않은 청나라 백성인데, 살던 집을 철거하고 강제로 내지로 쫓아내기까지 한다면 적어도 연해 백성의 민심은 폭발할 것이 분명하였다.
‘하지만 그 대가로 밀무역은 확실하게 차단할 수 있을 것이다. 애초에 연해로 접근조차 못 할 테니 말이야.’
강남과의 무역이 완전히 차단된다면 청나라도 물론 피해를 보겠지만, 남명 상인들은 그 이상의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그리고 정성원의 말처럼 무역에 의존하는 대두국 역시 엄청난 타격을 입게 될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