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e 17th century, he became the king of Taiwan RAW novel - Chapter 126
126화
요한이 대만에 와서 내정을 집중해서 살핀 것도 벌써 반년이 지났다.
그 사이 대두국엔 여러 혁신적인 변화가 있었다.
가장 큰 변화는 역시 은행의 설립이었다.
은행은 아직 안평에만 지어진 상태였으나, 안평을 넘어 대만 전체 심지어 유구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한해 농사를 망친 농부들은 은행이 설립되자 열렬한 환호를 보냈는데, 이들은 땅이라는 확실한 담보가 있었기에 이자율도 비교적 낮았다.
20%에 불과한 이자만 내고 필요한 생활비를 모두 빌릴 수 있었던 것이다.
기후가 좋아 1년에 벼를 두 번 수확하는 대만에서 금리 20%는 상당히 낮은 이자였다.
만약 은행이 없었다면 1년 20%가 아닌, 반년에 40% 이상의 이자를 내야 했을 정도였다.
반대로 농사가 잘된 이들도 은행 덕에 돈을 놀려두지 않아서 좋았다.
비록 10%밖에 안 되는 이자여도 은행 금고에서 안전하게 보관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절대 적은 금액이 아니었다.
부농이라 할 수 있는 농부들도 생기는 시점이었기에 농부들의 반응은 더욱 긍정적이었다.
그리고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상인들의 분위기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화교 자본과 비교하면 영세하기 그지없었으나, 대두국 상인들도 급격히 부를 키우고 있는 시점이었다.
대두국에는 여전히 사업을 확장할 여지가 넘쳐났고, 자본이 없어 사업 규모를 키우지 못한 이들에겐 은행은 굉장히 이롭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은행 하나만으로도 대두국에 엄청난 변화가 생겨났다.
하지만 요한이 대만에 와서 벌인 일은 은행 설립 말고도 여러 가지가 있었다.
시민증을 개혁하여 진짜 백성이 될 자와 단순히 무역만 원하는 자를 구분하였다.
당연히 대두국의 백성이 된 이들은 여러 혜택을 받는 대신, 몇 가지 의무와 책임이 생기는 식이었다.
화교 상인들은 의무와 책임을 지는 것을 원하지 않아 무역 허가증만 얻었고 유구 상인들은 그 반대였다.
뜻밖에 일본 상인들 몇몇이 대두국 백성이 되는 걸 선택하기도 하였다.
이 밖에 요한은 더 많은 학교를 신설하기도 했고, 법률과 제도를 개혁하기도 했다.
물론 사람들은 잘 모르는 일이지만, 군 내부도 감독해서 살짝 풀어진 장병의 기강을 단단히 무장시키기도 하였다.
“대만 각지를 연결하겠다. 특히 대북으로 향하는 길은 크고 넓어야 한다.”
최근에는 도로 공사를 시작하였다.
이는 대두국 전체에 상당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안 그래도 인력이 적은 대두국이었다.
그런데 전국적인 공사를 펼치니 여기저기서 인력난을 호소하였다.
하여 요한은 남명에서 인부를 불러왔는데 그 규모가 엄청났다.
1만 명이 넘는 인부를 남명에서 데리고 왔던 것.
대만의 인구가 그동안 늘어났어도 여전히 20만 정도에 불과하였다.
당연히 1만이란 숫자는 대두국 전체에 상당한 파급력을 가져다줄 수밖에 없었다.
경제 면에서는 특히 그러했다.
그들을 먹이고 재우는 것만으로도 그 지역 상인 전체가 돈벼락을 맞을 정도니까.
하지만 도로 공사로 말미암은 파장은 이 정도로 그칠 만한 일이 아니었다.
대만 각지를 연결하는 것은 천도 계획의 첫 시작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지금은 식견 있는 자들만이 이 원대한 계획을 눈치 채고 있었다.
아무튼, 이렇게 대두국 전체가 엄청난 변화를 맞이하고 있을 때, 청나라가 천계령을 내렸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
“농산물 가격이 대폭 하락하면서 농부들 사이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는 사실은 들었을 거다.”
강남에서 생산되는 쌀이 갈 길을 잃고 대만에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대만의 쌀값은 대폭 하락하였다.
은 1냥에 쌀을 6석이나 살 수 있을 정도였다.
이렇게 쌀값이 내려가자 좋아하는 것은 안평 시민, 그리고 조선 이민자들뿐이었다.
사농공상 중에 상업이 가장 발달한 대두국이었으나, 인구 비율로 보면 대두국도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농부가 가장 많았다.
농산물 가격 하락은 농부들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주었다.
“누구 덕에 부농이 되었는데 겨우 이 정도 일로 불만을 품다니. 실로 배은망덕한 자들이 아닙니까?”
위주조가 깐깐한 목소리로 그리 말하자, 정은봉이 이를 거들었다.
“쌀이 넘쳐서 문제라고 하니, 그동안 논의만 했던 전세(논밭에 부과되는 세금)를 신설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소신도 재무부 장관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조선인 유학자들이 대거 합류한 지금이라면 전세를 걷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참신한 해결 방법이었다.
넘쳐나는 쌀을 강제로 걷어 줄여주자는 것이니.
요한은 잠깐 혹하는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려움을 호소하는 농부들을 보듬어주지 못할망정, 오히려 가혹하게 대한다면 앞으로 누가 농사를 지으려 하겠어?”
안 그래도 대만 각지에서 인력난을 호소하는 상황이었다.
몇몇 농부들은 자기 농지도 버려둔 채 인부로 일하고 있었다.
농사로 버는 돈보다 인부로 일할 때 버는 돈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전세를 만들어 새로이 세금까지 걷는다면 농부의 수가 확연히 줄어들 것이다.
“전세는 내후년부터 걷기로 하지. 그리고 넘쳐나는 쌀은 정부에서 비싸게 수매하도록 해. 물론 국내 농부들이 생산한 쌀들만 수매하는 거 명심하고.”
“역시 전하께서는 성군이십니다.”
전세를 걷기는 해야 했다.
슬슬 대두국에서도 천석꾼 이상의 대지주가 나타날 조짐이 나오고 있었으니.
하지만 지금은 너무 일렀다.
조선에서 온 이민자들을 보다 중요한 곳에 써먹을 필요가 있기도 했고 말이다.
“농산물 가격은 하락했지만, 다른 것들은 오히려 올랐다지?”
“예, 차와 생사 그리고 철의 가격이 크게 올랐습니다.”
“철의 가격이 오른 게 특히 치명적이겠어.”
요한은 그렇게 말하다가 속으로 혀를 찼다.
대외 무역에 의존하는 국가다 보니, 다른 나라의 정책에 너무 많은 영향을 받았다.
‘아무리 그래도 적성국인 청나라와 교역이 끊긴 것으로 이 정도 파장이라니.’
강북과의 무역이 막힌 것만으로도 이렇게 큰 영향을 받는다면 강남과의 무역이 막힐 때는 얼마나 큰 영향을 받을까?
일단 세수부터 눈에 띄게 줄 것이다.
물가도 폭등이라 불러야 할 수준으로 치솟을 테고.
‘그런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서는 역시 체급을 키우는 것밖에 방법이 없단 말이지.’
체급이 커진다면 설령 남명과의 교역이 막힌다 해도 버틸 수 있었다.
그리고 나라의 체급을 단기간에 키우려면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정복.
다른 나라를 정복하여 영토 자체를 늘리는 것이었다.
‘천도는 역시 필리핀을 완전히 점령한 뒤에 하는 것이 좋겠어.’
천계령으로 나라 전체가 어수선한 상황에서 요한은 뜬금없이 필리핀 정복을 계획하였다.
***
이절은 뒷짐을 지며 시전 거리를 걸었다.
그가 관복을 입고 있어서일까?
사람들은 그와 눈이 마주치면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였다.
“관리 나리, 여기 망고 좀 드세요.”
장사 가게 하는 장사치는 어설픈 조선어로 말을 걸기도 했다.
“고맙네.”
“맛있죠?”
이절이 엄지를 들어 올리자 장사치가 기분 좋게 웃었다.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마치 그를 보좌하듯, 그의 뒤를 졸졸 따라오던 사내가 이절에게 말을 걸었다.
“무엇이 놀랍다는 것이냐.”
“조선에서는 주상 전하만 드실 수 있는 귀한 과일들을 이곳에선 너무도 쉽게 먹을 수 있지 않습니까?”
사내는 이절과 같은 조선 출신이었다.
다만 대만에 온 시기는 조금 달랐다.
이절은 작년 겨울에 왔고 사내는 몇 달 전, 봄이 끝날 때쯤 왔으니까.
그래서일까?
여전히 대만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는 했다.
이절이 작년에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뭐, 여전히 적응하기 어려운 일이긴 하다만.’
생전 먹어보지 못했던 과일을 실컷 먹었더니 이가 다 아플 정도였다.
물론 이가 아픈 이유는 과일보단 설탕의 영향이 더 컸다.
조선에서는 왕도 쉽게 구하기 어려운 설탕을 대만에서는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었으니까.
“더 놀라운 사실은 이 동전 하나로 쌀 한 가마니를 살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조선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 아닙니까?”
“원래도 쌌는데 더 싸졌지. 우리가 받는 급료라면 1년에 150석 정도 살 수 있을 테니까.”
과일과 설탕도 물론 충격적이었지만, 조선에서 온 이들이 가장 충격을 받은 것은 역시 쌀의 가격이었다.
대만에서는 같은 돈으로 5배, 요즘엔 최대 6배 많은 쌀을 살 수 있었다.
급료는 높은데 쌀의 가격까지 낮으니 더욱 체감이 크게 됐다.
이민자 중에 대부분은 첫 급료를 받은 다음 날, 체해서 하루 병가를 냈다.
말 그대로 배가 터질 정도로 밥을 실컷 먹었기 때문이다.
“다만 쌀이 이리 싸니, 땅을 살 이유가 없을 거 같습니다. 농사를 지어 봐야 손해일 테니 말입니다.”
뭐든 일장일단이 있는 법이었다.
쌀이 저렴하면 도시 사람은 좋을 수 있어도 막상 그 쌀을 생산하는 농부들은 엄청난 손해를 보게 된다.
조선 양반들처럼 여윳돈이 생길 때마다 땅을 실컷 사서 대지주 노릇 하는 이들이라면 더 큰 손해를 보게 될 것이고.
땅에 대한 욕심이 유난히 큰 조선 사람들로선 아쉬울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 이야기 못 들었나? 전하께서 쌀을 적정가에 수매해준다더군.”
“쌀을 수매한다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손해를 감수하고 비싼 값에 쌀을 사준다는 말일세. 그래야 농부들의 피해를 줄일 수 있으니 말이야.”
“허어! 농부들을 위해 국왕 전하께서 내탕금을 연다니. 전하께서는 정말 성군이십니다.”
사내의 말에 이절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암. 성군이시지.”
작년 겨울, 처음 대만에 상륙했을 때만 해도 그는 요한을 교육하여 임금으로서 가져야 할 학문적 지식과 도덕적 자질을 갖추게끔 도와주겠다는 다짐을 하였었다.
소학조차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다는 요한의 말에 그만큼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유학의 기초조차 배우지 않은 요한은 유학자로 대성했던 조선의 전대 왕들과 비교해도 흠이 없었다.
임금이 지녀야 할 자질만 따지면 요한을 능가할 왕이 그리 많지 않을 것이리라.
‘전하는 나 같은 범인이 가르칠 수 있는 분이 아니다. 이미 완성된 군주나 다를 게 없는 분이니 말이야.’
***
요한은 내정이 어느 정도 안정되었다는 판단이 서자 다시 원정을 준비하기 시작하였다.
‘필리핀 원정을 더 미룰 수는 없다. 스페인과 네덜란드가 평화 협정을 맺는다면 그때는 지금보다 몇 배는 더 어려워질 테니.’
네덜란드는 여전히 스페인을 괴롭히는 데 혈안인 상태였다.
스페인이 사신을 보내면서까지 요한을 달래려 했던 것도 그들이 요한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요한의 기억이 정확하다면, 두 나라가 평화 협정을 맺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물론 나비효과로 미래가 달라졌을 수도 있겠으나, 아무리 나비효과라도 유럽의 역사까지 크게 달라질 리는 없을 것이다.
두 나라가 전쟁을 중단하는 건 예정된 결과라고 봐야 했다.
빠르면 수개월, 늦으면 1년 정도.
그 안에 두 나라의 전쟁이 멈출 거고 그때가 되면 스페인령 필리핀 총독부도 네덜란드가 아닌, 요한을 주적으로 삼을 가능성이 컸다.
당연히 필리핀에 주둔할 육군 병력도 많이 늘어날 터.
하여 요한은 두 나라의 전쟁이 멈추기 전에 필리핀 정복을 마무리하기로 하였다.
“1대대와 2대대가 안평으로 복귀하면 본부 여단부터 필리핀으로 이동할 것이다. 철저하게 준비하도록.”
“예!”
필리핀 원정을 시작하기에 앞서 요한은 타국에 파견을 가 있던 부대들부터 대두국으로 불러들였다.
유구를 지키던 본부 여단은 물론이고, 중국에 가 있던 1대대와 2대대를 안평으로 불러들인 것이다.
‘양쪽 모두 흑기군 병력을 강하게 원하는 걸 보면 남명의 상황도 확실히 좋아 보이지만은 않는단 말이지.’
융무제 쪽이든, 정지룡 쪽이든 흑기군의 복귀를 강하게 반대하였다.
두 사람 모두 1대대와 2대대 병력을 자신의 편이라고 착각하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아마 두 개의 대대를 지휘하는 정성공이 줄타기를 그만큼 잘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물론 정지룡은 그런 정성공조차 의심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말이다.
‘이왕이면 필리핀 원정이 끝나기 전까지는 중국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