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e 17th century, he became the king of Taiwan RAW novel - Chapter 169
169화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아 보이는 이들이긴 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은자 100만 냥의 가치보다 낮지 않을 거라니.
“내 장인 밑에서 무슨 일을 했지?”
요한은 내심 코웃음 치면서도 하국상의 말을 가볍게 흘려듣지는 않았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남중국해의 지배자라 불리던 정지룡이었다.
그런 정지룡이 은혜를 갚겠다고 사람을 보냈는데 아무 사람이나 보냈을 리가 없었다.
“소장부터 말씀해드리죠. 하하하, 소장은 장국계란 사람입니다. 복건왕께서 무장 선단을 처음 조직했을 때, 그 선단을 이끌었던 것이 바로 소장입니다! 서반아 무역 선단을 약탈하여 7척의 배를 나포한 적도 있습니다!”
“장국계라, 들어본 적이 있는 이름이군.”
자신을 장국계라 밝힌 40대 중년인은 생긴 것만 봐도 무장처럼 보였다.
거구에다 수염은 덥수룩하였고 인상이 강렬하였다.
실제로 요한은 장국계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었다.
정지룡이 이끄는 대규모 함대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지휘관이었던 것.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정지룡이 처음 해적 일을 시작할 때부터 선단을 지휘하였다고 한다.
20년 이상 선단을 이끌었다는 뜻인데, 정지룡의 과거를 생각하면 아마 산전수전을 다 겪었을 거 같았다.
당연하면 당연한 것이, 일개 상인이었던 정지룡이 남중국해의 지배자가 되기까지 바다에서 무수한 도전을 겪었었다.
같은 명나라 상인 겸 해적부터 명나라 조정에 네덜란드와 스페인, 일본의 해적들까지.
‘안 그래도 해군 지휘관이 필요하긴 했는데 말이야.’
요한은 내심 반색하였다.
청나라를 상대로 무적과도 같았던 대두국 해군이지만, 사실 인적 자원이 훌륭하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일단 절대적인 수부터 너무 적었는데, 지금껏 패전이 없어서 다행이지, 만약 큰 패배를 당했다면 인재풀이 없다시피 하여 원래 규모로 복구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선원의 자질도 여러모로 부족했고 특히 부족한 것이 실전 경험을 가진 함장이었다.
물론 청나라를 상대로 상당한 경험을 축적하긴 했으나, 사실 그 경험이 앞으로 있을 서양 세력과의 전쟁에서 큰 도움이 될 거 같지는 않았다.
심지어 이는 참모총장인 시랑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시랑은 정씨 일족 내에서도 어디까지나 유망한 선장이었을 뿐이지, 다른 세력과의 전쟁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것은 아니니까.
그런 의미에서 서양 세력과의 전쟁 경험이 많은 숙장의 합류는 여러모로 이익일 수밖에 없었다.
“근데 말이야. 자네 정도 되는 실력자를 합류시키려면 꽤 많은 것을 양보해야 할 거 같은데. 어지간한 자리로는 만족하지 않을 거 아닌가?”
다만 요한이 걱정하는 건 바로 이것이었다.
장국계는 거물 중의 거물이었다.
특히 정씨 일족 내에서 해상 무력을 책임지던 인물이었는데, 그런 거물을 일개 위관급 장교에 앉힐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런 공을 세우지 않는 이를 영관급에 앉힐 수도 없는 노릇.
요한으로선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하하! 당연한 거 아닙니까? 대두국 해군에서 제독이라 불리는 이들은 소장이 다 안면이 있는데, 소장에게는 애송이 중의 애송이들입니다. 그런 애송이들보다 낮은 자리를 받아서야 소장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습니다!”
“최소 영관급 자리는 줘야 만족한단 말이로군.”
대놓고 자신이 높은 자리를 원한다고 말하니, 요한으로선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자네가 대두국에서 어떤 공도 세우지 못했다는 점이야. 물론 여에게 능력을 증명하지도 못했고 말이지.”
“그럼 소장에게 배 몇 척만 지원해주십시오. 바로 공을 세워 소장의 능력을 증명하겠습니다.”
“배만 지원하면 되는 건가?”
“물론입니다. 소장을 따르는 이가 상당히 많아서 배를 운용할 인력을 구하는 건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기회만 달라.
그럼 능력을 증명하겠다.
자신감 넘치는 그의 모습에 요한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공만 세운다면 요한도 영관급 자리를 주는 것을 반대할 생각이 없었다.
“좋다. 공을 세울 기회를 주지. 복선도 서른 척 지원해주마.”
“호오! 서른 척이라! 통이 크십니다!”
“상대가 상대라서 그 정도는 지원해줘야 한다. 여가 원하는 것은 서반아와 화란의 배를 나포하는 것이니까.”
인력이 부족해서 문제지, 배의 수만큼은 적다고 볼 수 없는 나라가 대두국이었다.
물론 다른 배도 아니고, 복선 수십 척은 대두국에도 상당히 귀중한 전력이었지만 말이다.
“흐흐, 남만을 상대하는 건 제 특기입니다. 두 나라 모두 몇 번이고 상대한 경험이 있습니다. 나포하는 일도 맡겨주십시오. 서른 척을 지원해주셨으니, 남만의 배를 최소 서른 척 이상 나포해오겠습니다.”
정크선 30척으로 범선 30척을 나포해오겠다니.
터무니없는 자신감이 아닐 수 없었다.
설령 나포해와도 30척이나 되는 범선을 운용할 인력은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요한은 그렇게 하라고 덤덤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배야 많을수록 좋았다.
인력이 부족해서 배를 못 끌 거 같으면 왕실 상단에 팔면 될 일이다.
정씨 일족 내에서 요한을 따르기로 한 상인이 많으니 그들에게 팔아도 될 것이고 말이다.
***
장국계에게 사략 임무를 내서 능력을 시험하기로 한 요한은 나머지 두 명을 바라보았다.
중앙에 앉은 사내, 하국상은 전형적인 문사처럼 보였다.
다만 우측에 앉은 사내는 도무지 종잡을 수 없었다.
체구가 크지 않아서 문사처럼 보이면서도 칼처럼 날카로운 인상을 보면 무관처럼 보이기도 했다.
일단 요한은 하국상부터 상대하기로 하였다.
“자네는 복건왕 밑에서 어떤 일을 했었지?”
“하하, 이자는 복건왕의 지낭이라 불렸습니다. 복건왕 전하께서 고민이 생길 때마다 이자를 불렀었죠.”
하국상 대신 장국계가 대답하였다.
말투를 보고 언뜻 느꼈지만, 꽤 오지랖이 넓은 거 같았다.
“과분한 이야기입니다. 소인은 그저 잔꾀를 조금 부릴 줄 아는 사람일 뿐, 복건왕의 지낭이라던가, 장자방(장량)이라던가, 제갈공명이라던가, 그 정도로 대단한 이는 절대 아닙니다.”
“…장자방 이야기는 아무도 하지 않았던 거 같은데 말이야.”
“그리고 소인은 욕심이 없어서 높은 자리 같은 건 원하지 않습니다. 장관이란 직책이 한 부서의 최고 자리라 들었는데, 소인은 그다음으로 높은 자리면 만족할 사람입니다.”
장관 다음으로 높은 자리라면 차관을 달라는 뜻이었다.
‘이놈, 제정신인가?’
장국계도 뭔가 정신이 이상하게 느껴지기는 했었다.
하지만 해적 출신이라 생각하면 대수로이 여길 일은 아니었다.
원래 해적 같은 이들은 입만 열면 거짓말이고, 허세였다.
그래서 사실 요한도 장국계의 호언장담을 반쯤 흘려들었다.
범선 30척은커녕 10척만 나포해도 그를 중히 쓸 생각이었던 것.
아무튼, 해적 출신인 장국계야 그렇다 치자.
하국상은 해적 출신도 아니면서 되지도 않는 요구를 하였다.
자신을 무슨 장자방 정도의 인재로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조선어를 할 줄 아나? 대두국에서 조선어를 할 줄 모르는 이는 관직에 오를 수 없어서 말이야.”
요한은 완곡하게 거절하였다.
하국상이 아무리 뛰어난 책사라도 당장 관직에 임용할 생각은 없었다.
애초에 책사라면 고위 관직에 앉히는 것보단 그의 곁에 두는 것이 훨씬 유용하였다.
일종의 비서로 말이다.
“허허, 이런 우연이. 마침 소인이 취미로 조선어를 배웠는데, 운이 좋았습니다.”
“…언어에 소질이 있는 모양이야. 눈 감고 들으면 조선인처럼 들려.”
“알고 보면 소인의 조상이 고려인일 수도 있습니다. 소인의 현고(고조부)께서 장강 이북 출신입니다.”
조상이 장강 이북 출신인 것과 조상이 고려인일 수 있다는 게 도대체 무슨 상관일까?
아무리 봐도 요한과 동질감을 가지기 위해 헛소리하는 것으로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뭐, 그런 건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지금 중요한 건 하국상이 조선어를 쓸 줄 아는 인재라는 것.
오직 그것만이 중요할 따름이었다.
‘원래 조선어를 배웠던 것은 아닐 테고, 내가 이름을 떨친 뒤에 뒤늦게 배운 것이겠지? 그런데 벌써 이 정도 실력이라면 언어 능력만큼은 범상치 않긴 한 모양이야.’
요한은 하국상을 다시 볼 수밖에 없었다.
정지룡의 책사였던 그가 조선어까지 할 줄 아니, 뭔가 더 비범하게 느껴졌다.
물론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첩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정지룡이야 은혜를 갚는다는 명목으로 사람을 보냈다지만, 그의 본심을 요한이 어찌 안단 말인가.
그에게 다른 흑심이 있어 요한을 상대로 수작을 부리는 것일지도 몰랐다.
조선어를 할 줄 아는 이라면 대두국에서 첩자로 활약하기 어렵지 않을 터.
요한으로선 의심이 될 수밖에 없었다.
“자네도 능력을 보여줘야 그에 맞는 관직에 앉힐 수 있을 거 같은데.”
하여 요한은 일단 능력부터 보이라고 하였다.
능력만 좋다면 설령 그가 정지룡의 첩자여도 일단 써먹을 생각이었다.
정지룡은 장남인 정성공에게도 배신당한 인물이었다.
일개 측근일 뿐이라면 요한의 사람으로 만들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전하께서는 전후에 있을 논공행상에서 어떤 포상을 바라고 계십니까?”
“포상이라. 이미 얻을 것은 다 얻어서 더 바랄 것은 크게 없다만.”
능력을 보여달라 하니 그는 대뜸 논공행상을 이야기하였다.
안 그래도 요즘 남명에서 논공행상이 화제였다.
정씨 일족 인사들이 괜히 서신으로 논공행상 이야기를 꺼낸 것이 아니었던 것.
하지만 요한은 논공행상에서 바라는 것이 없다는 듯, 욕심 없는 태도를 보여주었다.
실제로 그는 남명 정부로부터 선금으로 받은 것이 워낙 많아서 더 바랄 것이 없기도 했다.
말이 승전이지, 남명도 이번 전쟁에서 얻은 것이 거의 없었으니 논공행상을 크게 할 거 같지도 않았고 말이다.
“그래서야 되겠습니까? 이번 전쟁의 주역은 바로 전하셨는데 말입니다.”
뭐 틀린 말은 아니었다.
요한도 당연히 입 다물고 얌전히 있을 생각은 없었다.
만약 포상이 적다면 어떤 식으로든 불만을 제기할 생각이었다.
마침 정씨 일족에서 요한을 지지한다고 하기도 했고 말이다.
“그런데 그 이야기는 왜 꺼낸 거지?”
“전하께서 남명 정부로부터 원하시는 것이 있으면 소인이 돕겠습니다.”
“마치 자네가 나서면 어떤 포상이든 얻어낼 수 있다고 말하는 거 같군.”
“허어, 소인은 그렇게 오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아무리 그래도 황좌까지 얻어낼 수는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그 말을 듣고 요한은 혀를 내둘렀다.
황좌만 아니라면 요한이 원하는 무엇이든 얻어줄 거라는 말처럼 들렸다.
“그러면 자네는 여가 무엇을 얻어내는 게 국익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하나?”
요한은 그에게 어떤 포상을 받는 게 가장 좋을지를 물어보았다.
“약득일적국! 예로부터 인재를 얻는 건 나라를 얻는 것만큼 이익이 크다고 하였습니다. 남명의 인재를 초재진용(초나라의 인재를 진나라에서 씀)하여, 대두국의 인재로 이용하십시오.”
“인재라.”
논공행상에서 어떤 포상을 얻을지 논의하는데 사람을 얻으라 하니 조금 뜬금없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는 곧 요한이 잊고 있던 친왕 작위를 언급하였다.
“전하께서는 대두국의 왕이면서 남명의 친왕이기도 하십니다. 친왕으로서 자신의 신하로 삼는다고 한다면 조정의 인재를 빼돌려도 남명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겁니다. 그러니 소인의 소견으로는 황상에게 인재를 요구하는 것이 최선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일리 있는 말처럼 느껴졌다.
영토를 더 달라 할 수도 없고, 그렇다 해서 다른 이권을 챙기기도 어려웠다.
이미 친왕이니 작위를 올릴 수도 없는 상황.
그렇담 남은 건 돈 아니면 인재뿐이었다.
‘남명에 인재가 많긴 하지. 논공행상을 명분으로 몇 데려오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이왕이면 기술자를 데려오고 싶었다.
지금 시대 기준으로 남명은 상당한 기술력을 가진 나라였고 남명의 기술자를 여럿 데려온다면 요한이 머릿속으로 구상하고 있는 여러 기술을 현실로 구현할 수 있을 거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