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e 17th century, he became the king of Taiwan RAW novel - Chapter 191
#191화
요한은 마긴다나오 술탄국의 전권 대사를 돌려보냈다.
물론 따로 협상한 것은 없었다.
그들이 원하는 건 불가침 조약일 게 뻔하지만, 요한이 그들의 요구를 들어줄 이유는 없었기 때문이다.
마긴다나오 술탄국의 사절을 돌려보낸 요한은 마닐라의 한 초등학교를 찾았다.
시간이 시간인 터라, 아이들이 한창 수업 중이었는데, 요한은 아무 반이나 한 곳 들어갔다.
“저, 전하!”
“나는 신경 쓰지 말고 계속 수업하게.”
신경 쓰지 말라고 하였으나, 선생으로선 신경이 쓰이지 않을 리가 없었다.
요한도 요한이지만 그의 뒤에는 삼엄한 인상의 근위대 병사는 물론이고, 학교의 교장에 심지어 여송 총독까지 서 있었으니 말이다.
‘분필을 잘 사용하고 있군.’
선생이 당황하던, 말던 요한은 그의 수업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반의 환경은 미래의 초등학교와 크게 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물론 요한의 세대는 아이들 건강에 안 좋다는 이유로 칠판과 분필이 화이트보드와 마크로 바뀐 세대라 그 점이 다르기는 했다.
하지만 그것 말고는 미래의 초등학교와 비교해도 크게 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마흔 명 정도 되는 학생들이 의자에 앉은 채, 칠판을 바라보며 선생의 수업을 들었던 것.
뭐, 세세히 따지고 보면 아이들 책상에 교과서가 없다는 점이나, 마치 다문화 국제학교처럼 아이들 피부색이 가지각색이란 점도 차이점이라면 차이점이겠지만 말이다.
짝짝짝.
요한은 수업을 열심히 듣다가, 선생의 강의가 만족스럽다는 듯, 손뼉 쳐주었다.
그러자 선생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교장의 얼굴에는 웃음이 한껏 번졌다.
“학생은 이름이 뭐지?”
“파, 팔카온이예요.”
수업이 끝이 나자, 요한은 칠판 앞으로 가서는 한 아이를 지목하였다.
그러고는 다시 등을 돌려 칠판에다 뭐라고 적기 시작하였다.
“이 글은 뭐라고 읽느냐?”
“오늘 배운 것은 내일의 힘이 된다.”
“그럼, 이 말의 뜻은?”
“마, 말 그대로 지금 배우는 것들이 나중에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뜻 아닐까요?”
또박또박.
어린 학생은 요한의 질문에 유창하게 대답하였다.
더 대단한 것은 요한이 조선어로 말했는데도 그 의미를 알아들었다는 점이었다.
“잘했다.”
“헤헤.”
학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요한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사탕을 주자 학생은 싱글벙글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
요한은 교장실로 가서는 가장 먼저 선생과 교장을 치하하였다.
학생들의 수준이 여러모로 만족스러웠기 때문이었다.
“총독이 교육에 힘을 쓰긴 했나 봐. 아이들이 전부 한글에 능숙한 것을 보면.”
여송 총독인 카마찻 말로에를 치하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교장과 선생이 카마찻 말로에에게로 공을 돌렸기 때문이다.
요한의 치하에 카마찻 말로에는 겸손하게 대꾸하였다.
“전임 총독이 시작한 사업을 열심히 유지하였을 뿐입니다. 또한 교육에 성과를 본 것은 성당의 역할이 컸습니다.”
“성당이라. 보고는 들었다. 아이들의 부모를 설득하였다고?”
“예, 그렇습니다. 아마 그들의 협조가 아니라면 학생을 모으는 것에 차질이 생겼을 겁니다.”
그 말을 듣고 요한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처음에는 요한의 통치에 저항하는 모습을 보였던 가톨릭 세력은 어느 순간부터 요한의 통치에 순응하기 시작하였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필리핀을 안정하는 것에 대단히 큰 역할을 해주고 있었다.
카마찻 말로에야 단순히 부모를 설득한 것을 이야기하였으나, 사실 가톨릭 세력은 그보다 훨씬 많은 역할을 하였다.
심지어 학교를 세우기도 하였는데, 대만에 비교하면 필리핀의 학교 수는 터무니없이 부족하였기에, 이런 성당의 역할은 더 크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가톨릭 사제들에게는 내가 따로 포상하도록 하지.”
요한은 그리 이야기하다가, 이번에는 아쉬운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마닐라의 교육은 잘 된 거 같아 만족스럽다. 그런데 지방의 교육 상황은 조금 아쉽더군.”
“…송구하옵니다.”
마닐라는 대만의 어느 곳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을 정도로 교육 수준이 대단히 높았다.
하지만 마닐라에서 조금만 멀어져도 처참하기 그지없는 교육 수준을 보여주었다.
특히 루손 섬 남부나 비사야 제도의 경우, 조선어는커녕 한글을 읽고 쓸 줄 모르는 이들이 태반이었다.
한글의 경우 조선어를 알지 못해도 누구나 쉽게 익힐 수 문자였는데도 그랬다.
‘이대로라면 조선어는 공용어가 아닌, 지배층의 언어로만 남게 될 수도 있다.’
요한이 괜히 교육에 엄청난 예산을 쏟아붓는 것이 아니었다.
교육 문제를 소홀히 다루었다간, 언어의 통합은 영영 멀어지게 될 것이다.
열강이라 불리던 오스트리아가 1차 세계대전에서 추태를 보인 것도 다 언어 때문이란 것을 생각하면 언어의 통합은 반드시 이루어야 했다.
“목욕탕과 화장실도 아주 미흡하던데.”
교육 말고도 요한이 신경 쓰는 것이 하나 있었으니, 그건 바로 위생이었다.
원래 인구를 늘리기 위해선 위생만큼 중요한 것이 없었다.
특히 세계 여러 지역에서 이민자를 받는 대두국의 경우, 전염병에 취약한 상태였다.
요한이 비싼 돈을 들여서 곳곳에 목욕탕을 만드는 것도 다 위생을 생각한 조치였다.
하지만 목욕탕 역시도 학교와 똑같이, 마닐라만 벗어나면 거의 없다시피 하였다.
필리핀에 도시가 마닐라만 있는 것은 아니었기에 이는 대단히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송구할 따름입니다. 앞으로 지방의 교육과 위생 개선에 더욱 힘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어떤 식으로 힘을 쓸 생각이지? 그냥 예산만 들인다고 될 거 같지는 않은데 말이야.”
돈으로 안 되는 것은 웬만해서 찾아보기 어려웠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정도로 요한이 돈이 많은 것은 아니었다.
필리핀의 모든 백성이 조선어와 한글을 익히게 하려면 예산을 투입하는 것 말고도 다른 방법을 추가로 써야 한다는 뜻이다.
“부족장들의 영향력을 이용하는 것이 최선일 거 같습니다.”
“정확히 어떻게 하겠다는 거지?”
“담당 구역을 나눈 뒤, 1년 정도의 기간을 주고 그 동안 최대한 많은 백성에게 우리 글과 우리 말을 가르치라고 지시할 것입니다. 우리 말과 우리 글을 깨치지 못한 백성이 많은 구역의 부족장에게 벌을 주고 그 반대라면 상을 주는 식으로 한다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거 같습니다.”
확실히, 현지의 권위자를 이용한다면 중앙에서 일방적으로 명령하는 것보다 훨씬 잘 먹힐 거 같기는 했다.
부족 간에 서로 경쟁하게 만든다면 더 열심히 목욕탕과 학교를 지으려 할 테지.
다만 이 경우에는 부족장에게 내릴 상과 벌을 어느 수준으로 할지가 중요하였다.
벌이 너무 강해도 문제고, 너무 약해도 문제였다.
물론 상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고 말이다.
“벌이야 내가 따로 정하면 될 거 같고, 상은 무엇으로 하면 좋을 거 같은가.”
“부족장들이 원하는 것은 오직 하나입니다.”
“설마 관직인가?”
“그렇습니다.”
요한은 미간을 좁혔다.
“대만에서 내가 처음 했던 방식과 유사한 방식이군.”
그는 대만을 처음 점령하였을 때, 현지 부족의 마음을 사기 위해 각 부족의 우두머리를 지방 수령으로 삼았다.
조금 비약해서 보자면, 그들을 일종의 영주로 삼은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방 호족이 그 지방의 모든 권한을 독점한 셈이니, 봉건제의 영주가 아니면 뭐겠는가.
하지만 그런 조치도 한시뿐이었다.
지금은 중앙 관료의 수가 충분해졌기에, 구태여 교육받지 않은 부족장이나 제사장 같은 이들을 마을의 수령으로 삼지 않았다.
대만에서도 그들의 자질 부족으로 인해 온갖 행정 문제가 발생하였으니, 요한으로선 같은 상황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당연히 필리핀에서도 그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관직의 상당 부분을 중국계나 조선계가 장악한 상태였다.
“적어도 여송에서는 그 방식이 더 유용할 거 같습니다. 물론 가톨릭 세력을 이용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고 말입니다.”
“가톨릭도 비슷한 방식으로 써먹자는 말이지?”
“그렇습니다.”
요한은 고민하였다.
현지 부족을 관직으로 회유하는 게 과연 좋은 수일지 그로선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일장일단은 있지만, 이 경우에는 장점이 더 클 거 같기는 해.’
어쨌든 지금 중요한 것은 필리핀의 백성들을 진정한 그의 백성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가 원하는 성과만 이룰 수 있다면 부족장들에게 관직 몇 자리 내주는 정도야 손해라고 할 수도 없으리라.
***
잠시 마닐라에 머물던 요한은 직접 두 눈으로 필리핀의 사정을 파악하기 위해 루손 섬 곳곳을 시찰하기 시작하였다.
“도로는 잘 닦여 있구나.”
“저희 관리들이 가장 중점으로 삼았던 것이 도로를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이절이라는 관료의 설명에 요한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도로를 닦을 때, 어려운 점은 없었느냐?”
요한이 그리 묻자, 이절이 답하기를, 현지 부족의 저항이 가장 큰 문제라고 하였다.
폐쇄적인 성향이 짙은 부족들은 외부와 길을 연결하는 것에 거부감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아니면 도로를 만들려는 장소가 종교적인 가치를 지닌 곳이라서 반발하는 경우도 있었고 말이다.
‘그나마 인부나 자금이 부족한 건 아니라서 다행이야.’
물론 현지 부족의 반발도 무시할 수 없는 문제였다.
스페인이 하듯, 총칼로 모든 반발을 찍어 누를 수는 없었으니까.
“여기서 길이 끊긴 것도 이 근방의 부족이 반발해서 그런 것인가?”
“예, 그렇사옵니다.”
“부족의 이름이 뭐지?”
“마가파야라는 부족인데, 외부인에게 대단히 배타적입니다. 세리도 이곳에서 꽤 고생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세금을 내기는 냈나 보다.
하긴, 몇 년이나 세금을 면제해 줬는데도 세금을 안 내면 그때는 예외없었다.
요한이 아무리 스페인보다 정의(?)롭다 해도 세금을 안 내면 무력을 쓸 수밖에 없었던 것.
“안내해라. 마가파야의 사람들을 만나봐야겠다.”
이왕 루손 남부로 온 김에 확실하게 그의 얼굴을 알릴 필요가 있었다.
얼굴을 알려야 자기 왕이 누구인지 기억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루손 남부뿐만이 아니라, 루손 중부, 루손 북부 그리고 비사야 제도까지.
필리핀에서 대부족이라 칭할 거대 세력들은 이미 그를 왕으로 인정하고 있었다.
요한에게 딸을 보낸 부족장도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군소 부족은 여전히 요한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를 싫어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냥 몰라서 그랬다.
매일 같이 얼굴을 비추며 명령을 내리는 수령이나 부족장을 왕이라 생각하는 이들이 대다수였다.
하여 요한은 마가파야 부족을 시작으로 여러 부족을 돌기로 하였다.
‘물론 그냥 얼굴만 비추고 끝나면 민심을 얻기 어려울 테지.’
군주로서의 위엄도 보여야 했고, 덕도 보여야 했다.
위엄이야 근위대로 충분했으며, 덕은 그를 따르는 수십 대의 수레로 충분할 것이다.
진정한 덕은 쌀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요한은 여기서 더해 종교적인 영향력도 얻고자 하였다.
“마가파야의 사람들은 독수리를 반타얀이라 부르며 신적인 존재로 추앙한다지?”
“예, 제가 알기로 그렇습니다. 반타얀은 하늘의 인도자로, 태풍이 올 때마다 반타얀에게 제물을 바치는 의식이 있다고 합니다.”
제물이란 말을 듣고 요한은 미간을 좁혔다가 이내 고개를 주억거렸다.
사람을 바치는, 인신 공양은 절대 아닐 것이다.
인신 공양하는 부족을 마투스가 가만히 내버려 뒀을 리가 없었으니까.
“내가 독수리를 잡아 오면 마가파야의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겠군.”
필리핀의 주요 부족들은 이미 가톨릭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은 지 오래였다.
하지만 애니미즘 신앙은 여전히 그 비율이 낮지 않았고, 요한은 이런 종교를 이용해 자기 영향력을 키우기로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