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e 17th century, he became the king of Taiwan RAW novel - Chapter 195
#195화
처음 융무제의 첩자를 숨겨주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요한은 진정의 진의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남명의 사람이니, 뒤늦게 융무제에 대한 충성심이 생겼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진상을 파악하니 의외로 대수롭지 않은 헤프닝이었다.
내무부 장관인 신정호가 제대로 된 증거도 없이 다짜고짜 한족 부호의 저택을 수색하려 하자, 진정은 이를 정치적 공격으로 여기고 수색을 막았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장관들끼리 몸싸움이 일어났고, 사이 좋게 얼굴에 멍이 든 처지가 되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무슨 잘못만 저지르면 죽을죄를 지었다며 사죄를 정하는군.”
“송구하옵니다.”
요한은 고개 숙인 진정의 모습을 보며 혀를 찼다.
사실 진정의 잘못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신정호가 아무런 근거 없이 몰아붙인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물론 결국에는, 그가 검거하려던 대상이 남명의 세작이 맞다고 밝혀지기는 했지만 말이다.
“혹시 엉뚱한 생각을 하는 건 아니겠지?”
“엉뚱한 생각이라 하시면?”
“내가 너희를 팽할 수도 있다는 그런 생각을 말이야.”
“……!”
요한의 말을 들은 진정은 정곡을 찔린 듯, 눈을 부릅떴다.
그런 진정의 모습에 요한은 실소를 흘렸다.
“다시금 말하지만, 나는 조선계 관료라고 편애할 생각은 없다. 물론 다른 출신도 마찬가지고.”
필리핀으로 떠나기 직전, 요한은 새로운 부서를 만들었다.
비대해진 관료 조직을 개편하기 위함인데, 새로 만들어진 부서는 농림부, 산업부, 교통부 이렇게 세 개의 부서였다.
그리고 이 세 개 부서의 장관은 모두 비한족 출신이었다.
농림부는 유구 출신의 하시몬이라는 자가, 나머지 두 개 부서는 각각 네덜란드인과 번족(대만 원주민)이 차지하였다.
당연히 이 같은 조직 개편으로 진정의 파벌에 해당하는 한족 세력은 그 영향력이 크게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이었으니 한족 출신 관료들이 위기감을 느끼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심지어 막강한 힘을 가진 부서 중 하나인 재무부의 장관도 일본인으로 바뀌지 않았던가.
이번 일도 그런 위기감에서 비롯된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신정호가 내무부의 경찰청을 동원하여 한족을 견제하는 거 같은 행동을 보이자, 자세한 사정도 파악하지 않은 채 무작정 막으려 들었던 것이다.
“내가 이렇게 말해줘도 너희는 믿지 않겠지. 하지만 이를 명심해 줬으면 좋겠어. 앞으로 출신을 두고 파벌을 가르고 싸움을 일으킨다면 나는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
“명심하겠나이다.”
요한은 차갑게 경고하고는 진정을 돌려보냈다.
그리고 신정호 역시 접견실로 불러와서는 진정에게 했던 경고를 똑같이 해주었다.
사실 이런 경고를 한다고 해서 파벌이 사라질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겉으로는 조심스럽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
대두국에서 요한의 영향력은 그만큼 대단했기 때문이다.
요한이 원하는 것도 바로 그 정도였다.
어차피 요한은 특정 민족을 편애할 생각이 없었다.
오직 능력과 청결함, 그리고 그에 대한 충성심만 볼 생각이었다.
인사권을 쥔 그가 출신에 따라 차별을 하지 않았으니, 관료들도 곧 출신에 따라 무리를 짓는 게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알게 될 터였다.
실제로 흑기군의 경우 피부색 따윈 보지도 않았다.
다만 어떤 훈련소 출신인지, 또 어떤 전투에 참전했는지를 두고 서로 구별하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지만 말이다.
***
‘그나저나 요즘 들어 융무제의 세작이 많이 늘어났군.’
처음 세작이 발견되었다는 보고를 들었을 때는 당연히 청의 세작일 것으로 생각했었다.
청나라는 요한에게 암살을 시도한 나라인 만큼, 세작을 보내는 것에도 진심이었다.
요한이 정보부에 이어, 정지룡이 추천한 인재인 조신길을 통해 또 하나의 정보 조직을 만든 것도 그만큼 정보전이 치열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같은 정보전에 새로운 플레이어가 참여하였으니, 남명의 황제인 융무제가 바로 그 플레이어였다.
“남명의 분위기는 어떠한가?”
대두국에서 남명 전문가는 역시 외교부에 있었다.
외교부 안에서도 장관보다는 차관인 하국상이 남명의 사정에 밝았다.
하여 요한은 하국상을 불러 남명의 분위기를 물었다.
“겉으로만 보면 상당히 좋아 보입니다. 지난 전쟁에서 입은 피해도 복구하였고, 정통성 있는 황자도 태어났으니 말입니다.”
“겉으로만 그렇다는 것이 의미심장하게 들리는군.”
“하하, 아무래도 후계자가 바뀔 상황이 되었으니 황태제를 밀던 사람들의 사정이 조금 더 복잡해지지 않았겠습니까. 이것 참, 소신 같았으면 딸만 네 명 낳은 거 보고 황자가 머지않아 태어날 것도 예상하여 애먼 짓을 하지 않았을 텐데.”
남명의 정계는 그 어느 때보다 크게 요동칠 것처럼 보였다.
주율오를 황태제로 밀던 사람은 의외로 많았고, 그들은 얌전히 차기 권력을 포기할 생각이 없을 테니까.
반대로 융무제 입장에서도 아들의 미래에 방해가 될 이른바 ‘황태제 파벌’을 가만히 둘 이유가 없었다.
“황상이 나에 대해 더 경계하기 시작한 것도 황자의 탄생이 아예 무관하지 않겠어.”
“아무래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황상은 권신에게 휘둘리는 걸 끔찍하게 생각하는데, 황자의 미래를 보면 전하에게 휘둘릴 수밖에 없을 테니 말입니다.”
요한은 그 말에 부정하지 않았다.
사실 예정된 결과라고 볼 수 있었다.
지천명이 된 융무제의 남은 수명이 길어봐야 얼마나 되겠는가.
길어야 20년일 것이었다.
영조처럼 왕의 몸으로 80년 넘게 사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으니까.
황제라면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을 것이고, 심지어 융무제는 옥살이도 여러 번 했었다.
이미 그의 몸 상태가 안 좋다는 보고도 끊임없이 올라오고 있으니 20년도 사실 많이 쳐준 것이었다.
그리고 만약 융무제가 20년은커녕 10년도 안 돼서 붕어한다면?
요한에겐 엄청난 기회일 수밖에 없었다.
현재 그의 신분은 대두국 왕이자, 유구 왕, 거기에 ‘양왕’이라는 명실상부 남명의 친왕이었다.
남명 내부에 왕부가 있었으니, 이 왕부를 기반으로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마치 정지룡이 그랬던 것처럼 절대 권력을 쥔 권신이 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였다.
청나라도 그렇고 일본도 그렇고 최근 트렌드가 ‘섭정 정치’였으니 트렌드에 따라주는 것도 나쁘지 않았고 말이다.
“쯧, 남명이 전쟁 피해를 너무 빨리 복구했어.”
요한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융무제가 그를 경계하는 것은 어찌 보면 필연적인 결과였다.
하지만 전쟁으로 입은 피해를 복구하지 않았다면, 속으로 요한을 경계할지언정, 겉으로 표현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괜히 요한과 대립각을 세워서 좋을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명은 전쟁 피해를 빠르게 복구하였고, 지금은 전쟁 이전의 국력을 거의 회복한 상태였다.
반면 이를 견제할 청나라는 여전히 골골거리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융무제가 자신감을 드러내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황상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청과 교류를 시작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청과 교류를? 과연 그들이 우리와 교류를 하고 싶어 할까?”
이미 청은 요한에게 몇 번이고 손을 내민 적이 있었다.
왕작도 주고 땅과 돈도 줄 테니 자신들의 편에 서달라고 애걸복걸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요한은 이 같은 청의 제안을 모조리 무시하였다.
역으로 남명과 힘을 합쳐 청을 공격하였으니, 청은 지금쯤 남명보다 대두국을 더 싫어하지 않을까 싶었다.
“워낙 청의 상황이 안 좋지 않습니까? 아마 식량이 절실하게 필요할 겁니다.”
청나라의 운명을 걸고 시작한 도르곤의 도박은 실패로 끝이 났다.
60만 대군을 동원하였으나, 한 뼘의 땅도 얻지 못하고 전쟁에 패하였던 것.
그리고 청나라는 여전히 그 후폭풍에 시달리고 있었다.
요한도 자세히는 알지 못하지만, 지금껏 잠잠한 것만 봐도 청나라의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가 사신을 보내면 저들도 교류에 응할 거라는 건가.”
“아무래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식량도 식량이지만, 솔직히 설탕을 어떻게 끊겠습니까. 하하.”
“그것도 그렇군.”
하국상의 말에 요한은 픽 웃고는 청나라와의 교류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일단 대두국 입장에선 나쁠 것이 없었다.
남명만큼은 아니지만, 청나라 역시도 무척 물산이 풍부한 나라였다.
사고팔 것이 많다는 뜻인데, 유통을 거의 독점하는 상황에서 이만큼 좋은 것도 없었다.
더군다나 청나라를 통해 남명을 견제하는 것도 가능하였다.
청나라가 강해질수록 남명은 대두국을 중히 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청나라가 곧 위기를 겪긴 하겠어. 그야말로 사방이 적으로 가득하니 말이야.’
동쪽으로는 조선이 있었다.
아마 조선이 힘을 키우고 있다는 사실 정도는 청나라의 위정자들도 이미 눈치채고 있을 터였다.
서쪽으로는 준가르가 있는데, 이들 역시 청나라엔 대단히 위협적인 세력이었다.
불과 1세기도 안 돼서 이른바 ‘제노사이드’를 당해 청나라에 의해 인구 90% 이상이 학살당하게 될 나라였으나, 청나라가 그렇게까지 피를 봤던 건 그만큼 준가르가 무시할 수 없는 나라라서 그랬다.
그러니 서쪽도 안심할 수 없었는데, 남쪽이야 말할 것도 없었다.
심지어 북방도 안전하지 않았다.
청나라의 북쪽엔 몽골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껏 아시아에 등장하지 않았던 새로운 세력이 곧 청나라의 영토에 등장할 것이다.
물론 그 세력은 러시아였다.
사방이 적으로 가득한데 내부 사정도 그리 좋지 않았으니, 청나라가 위기에 빠지는 것도 시간문제였다.
‘슬슬 청나라로 갈아탈 때인가?’
요한은 중국이 하나의 세력으로 통일되는 걸 원하지 않았다.
청나라가 남명을 정복하려 할 때 악착같이 막은 것도 바로 그런 이유였다.
하지만 이제 상황은 역전되었고 청나라에 의한 통일이 아닌, 남명에 의한 통일을 걱정해야 할 때였다.
“교역 정도는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물론 당장 청나라와 동맹할 수는 없는 노릇.
하여 교역부터 시작하기로 하였다.
세간의 눈이 있으니 대놓고 수교하지는 못할 테지만, 밀무역 정도야 요한이 가진 해상 세력을 생각하면 어려울 것이 없었던 것이다.
***
“벌써 고향이 그리워요.”
한 젊은 여성이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슬픈 눈으로 중얼거렸다.
“저도 마찬가지예요. 마을의 축제가 있을 때마다 모두가 모여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었는데…. 이제 그런 건 꿈도 못 꾸겠죠?”
“나는 우리 농장의 밀밭을 잊을 수가 없어요. 바람에 일렁이는 밀밭은 마치 금빛 바다처럼 아름답거든요.”
젊은 여성뿐만이 아니라, 남성과 노인, 그리고 어린아이까지.
모두가 떠나 온 고향을 떠올리며 그리워하였다.
“전쟁만 아니었으면….”
그들이 고향을 떠나는 이유.
그건 바로 유럽에서 있었던 30년 전쟁의 여파였다.
30년 전쟁은 유럽 전체에, 특히 독일 지역에 엄청난 피해를 강요하였다.
어떤 도시의 경우, 황제가 고용한 용병들의 약탈과 파괴로 전체 인구 3만 명에서 2만 5천 명이 죽기도 하였다.
전쟁의 여파는 약탈과 파괴뿐만이 아니라, 전염병까지 돌게 하였고, 곳곳에 도적이 나타나 치안을 악화하기도 하였다.
평범한 사람은 도저히 살 수 없는 지옥 같은 땅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머나먼 동쪽의 나라로 향하는 배에 올라탄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우리가 가게 될 미다그란 나라는 과연 어떤 나라일까요?”
“…기대는 하지 말죠. 종교의 자유를 준다는 것. 오직 그거 하나만 보고 가는 게 좋을 거 같아요.”
한 사내의 말에 사람들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들은 굶어 죽을 걱정만 하지 않아도 다행인 처지였다.
그런데 종교의 자유까지 준다고 하니, 여기서 무언가를 더 바라는 건 사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