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e 17th century, he became the king of Taiwan RAW novel - Chapter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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팡가시난 족.
정성공과 함께 기병대 참모로서 회의에 참석한 감휘는 요한의 말을 듣고 내심 감탄하였다.
‘무조건 더 많은 영토를 노릴 줄 알았는데, 이렇게 이성적으로 행동할 줄이야.’
그는 요한이 항우와도 같은 자라고 생각하였다.
일신의 무력이 뛰어나고 군재 역시 그 누구 못지않게 훌륭하지만, 성격이 급하고 욕심이 지나치게 많았던 바로 그 항우 말이다.
실제로 요한의 행보를 보면 항우가 연상되었다.
군웅으로 성장한 나이대도 비슷하였고 ‘역발산기개세’ 같은 힘도 거의 비슷하게 느껴졌으니까.
하지만 의외로 요한은 패기와 오만으로 대업을 그르쳤던 항우와는 다른 성격을 가진 듯 보였다.
‘더 이상한 것은 아무도 반대하지 않는다는 거다.’
흑기군은 하나같이 군공에 대한 욕심이 가득하였다.
포상금 때문이든, 사명심 때문이든, 모두가 군공을 탐하였던 것.
그런데도 루손 섬 북부를 점령하는 것으로 만족하겠다는 요한의 말에 흑기군 장교 중 누구도 반대하지 않았다.
‘그만큼 군 장악력이 대단하다는 의미겠지? 후우, 걱정이군. 과연 국성야(정성공)께서 이들을 회유하여 국성야의 사람으로 만드실 수 있을까?’
감휘는 힐끔 자신의 옆을 바라보았다.
정성공은 아무런 걱정이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요한을 따라 필리핀에 온 진짜 목적을 잊은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러자 감휘의 입에서 작게 한숨이 흘러나왔다.
친우로 지낼 때부터 군신 관계가 된 지금까지 그를 단 한 번도 실망하게 한 적이 없는 정성공이었다.
그는 늘 기대 이상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사실 필리핀에 온 뒤로도 정성공은 그를 실망하게 한 적이 없었다.
첫 실전에서도 정성공은 군사 지휘관으로서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하지만 정성공의 비교 대상이 요한이란 점을 생각하면 감휘의 입에서는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요한은 그야말로 괴물이었다.
네덜란드와의 전투에서 보여주었던 그 압도적인 모습.
그때 감휘는 성인이 되고 처음으로 전율이란 것을 느꼈다.
이후에 보여준 행보도 놀라웠다.
중국에서는 그저 오랑캐로 취급하고 말았을 토착 원주민의 장정들을 요한은 하나의 군대로 만들었다.
1,500명에 달하는 엄청난 수의 장정을 흑기군 병사로 받아들인 것인데, 놀랍게도 지금까지 큰 사고라 부를 만한 일이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는 와중에 각 지역을 장악하며 토착 원주민을 자신의 백성으로 삼기도 하였으니 그의 능력은 실로 놀라웠다.
‘흑기군이 국성야의 군대가 될 것을 기대할 게 아니라, 국성야의 사람들이 총병관의 밑으로 들어가는 것을 걱정해야 할 수도···.’
요한의 행보를 보면 그런 걱정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의 주군인 정성공조차 요한을 존경하는 모습을 보일 정도였으니까.
***
콧수염이 인상적인 백인 사내가 요한이 집무실로 사용하는 원주민 저택으로 들어왔다.
‘상당히 놀란 표정인데? 아주 보기 좋아.’
마을 외곽에는 흑기군의 주둔지가 넓게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그 주둔지에 주둔한 흑기군 병력은 무려 3,000명이었다.
아마 이 주둔지만 봐도 스페인의 입장에선 두렵게만 느껴질 것이다.
지금의 스페인군으로선 절대 감당할 수 없는 숫자였으니.
“나는 명나라의 무관직 중 가장 높은 직책인 총병관이자 그와 동시에 대두국의 섭정 자리를 맡은 김요한이라고 한다.”
요한은 일부러 자신이 ‘Ming(명나라)’의 고위 관료라는 사실을 강조하였다.
명나라야 이미 망하고 난 이후지만, 남명이 존재하는 터라, 유럽인들은 요한의 위치를 가벼이 여길 수 없었다.
영국 상인들은 명나라의 고위 관료와 인사 한 번 나누기 위해 정지룡에게 만 냥에 가까운 은자를 뇌물로 준 적이 있었다.
그만큼 명나라 고위 관료는 유럽인들에게 상당한 인정을 받았다.
“···저는 파블라 이그나시오 데 멘도사라고 합니다. 현재 스페인령 필리핀 도독령(총독부)의 고문으로 있습니다.”
파블로라 이름을 밝힌 사내는 요한이 스페인어를 사용한다는 사실에 놀란 듯 보였다.
하기야, 중국의 고위 관료가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건 흔한 일이 아니었다.
아니, 어쩌면 처음이 아닐까?
잠시 놀란 표정을 짓던 파블로가 자신의 일행도 소개하였다.
“반갑다.”
요한은 그들의 인사를 받아주고는 테이블을 가리켰다.
마치 서양의 군주들이 타국 대사를 상대하듯 그는 자연스럽게 테이블을 두고 마주 앉았다.
정성공을 비롯하여 다른 중국 출신의 장교들은 이런 요한을 이상하게 바라봤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홍차는 좋아하나?”
“싫어하지는 않습니다. 각하, 그런데 이 도자기는 이름이 무엇입니까? 이렇게 아름다운 도자기는 처음 보는 거 같습니다.”
커피잔 세트를 보고 감탄하는 그를 보며 요한은 별거 아닌 척하면서도 은근하게 자신의 도자기를 자랑하였다.
“이런 자기를 채색 자기라 하는데, 원래는 명나라 황실에서 사용하는 자기일세. 나는 황제 폐하의 신임을 받는 덕에 이런 자기를 쉽게 구할 수 있지.”
“황실에서만 사용하는 자기라니! 허어!”
“선물로 하나 정도는 줄 수 있네.”
파블로는 크게 기뻐하였다.
그 역시 영국 상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채색 자기의 가치를 한눈에 알아본 것이다.
그렇게 요한과 파블로 사이에는 훈훈한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하지만 그런 훈훈한 분위기는 그리 오래가지 못하였다.
“각하, 스페인과 미다그(대두국) 왕국은 동맹이 아닙니까?”
그는 마치 추궁하듯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동맹이지. 그래서 내가 친히 군사를 이끌고 너희를 돕고 있지 않으냐?”
“···스페인 사람들은 모두 각하의 도움을 감사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파블로는 요한의 말을 인정하는가 싶더니, 이내 차가운 목소리로 말하였다.
“다만 저희는 한 가지 우려를 지울 수 없습니다. 각하께서 다른 의도를 품고 있을 수 있다는 우려를 말입니다.”
요한은 속으로 헛웃음을 지었다.
‘외교관답지 않은 화법인데? 돌려 말하는 법이 없네.’
이게 이 시대의 외교일까?
아니면 스페인의 외교관이기에 가능한 화법일 수도 있었다.
지금이야 약해지긴 했지만, 불과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유럽의 지배자로 불렸던 스페인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세계 열강 중 하나로 꼽혔으니 외교관의 태도가 오만한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였다.
“다른 의도라면 무엇을 말하는 거지?”
“각하께서 필리핀에 온 이유가 영토를 노리기 위함이라는 우려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네덜란드를 향한 공격을 멈출 이유가 있습니까?”
무척 공격적이었다.
요한은 그런 파블로를 보자, 스페인의 의도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강한 척 굴겠다 이거지?’
예상치 못한 일은 아니었다.
원래 외교의 기본은 당당함이었다.
스페인의 상황이 좋지 않은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더 당당하게 굴 수밖에 없었던 것.
어쩌면 요한이 스페인의 정보를 잘 모를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었고 말이다.
“이상한 오해를 하는군. 나는 공격을 멈춘 것이 아니야. 이 지역에 아직 네덜란드의 잔당이 남아있어서 잔당 소탕에 주력하고 있을 뿐이지.”
요한의 말을 들은 파블로가 인상을 찡그렸다.
말도 안 되는 변명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요한은 파블로가 무슨 생각을 하든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런데 말이야. 내가 진짜 영토를, 필리핀 전체를 노린다면 너희가 뭘 할 수 있지?”
강VS강의 대결이라면 요한도 피할 생각이 없었다.
애초에 요한의 목적도 스페인을 압박하여 영토를 포기하게 하는 것이었으니 더더욱 그러했다.
“···스페인과 적대하겠다는 의사로 받아들여도 되겠습니까?”
“적대국이 하나 더 늘어난다고 두려울 건 없지. 너희가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은 기껏 해야 일천 정도가 전부일 텐데 말이야.”
“일천이라니! 스페인을 무시하는 겁니까! 필리핀 전체가 스페인의 것입니다. 당장에라도 수만의 군대를 징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곧 부왕령(누에바에스파냐 )에서 지원군이 올 텐데, 저희를 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
꽤 위협적인 말이었다.
원주민으로 이루어진 군대라도 그 숫자가 수만이나 된다면 흑기군의 전력으로도 상대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요한은 코웃음 치며 말했다.
“수만의 군대라. 원주민들이 대대적으로 반란을 일으킨 게 불과 몇 년 전이라고 들었는데, 수만의 군대를 징집하겠다고? 또, 누에바에스파냐의 지원군이라니. 나를 너무 무시하는군. 자네가 말한 지원군은 마리벨리스 입구에서 모두 네덜란드군에 당했잖아?”
“······!”
파블로는 마치 ‘당신이 그 사실을 어떻게!’라고 외치는 거 같은 표정을 지었다.
요한은 외교관답지 않은 실수를 저지른 그를 보며 픽 웃었다.
네덜란드 포로들은 스페인에 관한 건 묻지 않은 정보도 알아서 넘겨주었다.
정작 포로로 삼은 건 요한인데 그들은 오직 스페인을 향한 적개심으로 가득하였다.
어쨌든 그들 덕에 요한은 이런저런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었다.
물론 그 정보 중에는 스페인의 내부 상황에 대한 것도 있었는데, 필리핀 총독부의 상황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게 보였다.
필리핀 주둔군의 전체 병력은 수천 명에 달할 테지만, 그 병력은 기존의 영토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요한이 이야기한 것처럼, 스페인이 루손 섬 북부로 원정을 보낼 수 있는 병력은 많아 봐야 1,000명이 최대였다.
“그런데 너무 진지하게 가는군. 나는 어디까지나 농담한 것인데 말이야. 하하하!”
실컷 파블로를 압박하던 요한은 갑자기 웃는 얼굴로 너스레를 떨었다.
파블로는 그런 요한을 보고는 식은땀을 흘리며 어찌할 바를 몰라 하였다.
***
“그자는 어떻게 우리의 속사정을 그렇게 자세히 아는 겁니까?”
“나라고 어찌 알겠나.”
미란다 대위의 물음에 파블로는 오히려 자신이 더 궁금하다는 얼굴로 그렇게 대꾸하였다.
요한과의 협상은 완전히 실패로 끝이 났다.
그들은 어떤 것도 얻지 못하였다.
무언가를 얻기는커녕 오히려 협박만 들었을 뿐이었다.
아니, 얻은 게 한 가지 있다면 바로 요한의 정보력이었다.
‘대위의 말처럼 그자는 우리의 속사정을 완전히 꿰뚫어보고 있다.’
지원군의 유무부터 군사는 몇 명이고 가진 함선은 몇 척인지.
심지어 어떤 부족이 스페인에 적대적인지까지 빠삭하게 알았다.
“그자가 왜 나에게 그런 말을 했다고 생각하나?”
“···필리핀을 넘기라고 경고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역시 대위도 그렇게 느꼈나.”
파블로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요한은 농담이라고 하였지만, 누가 봐도 농담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그 말은 즉, 요한은 필리핀 전체를 노리고 있다고 봐야 했다.
“우리가 더 강하게 압박하면 어떻게 될 거 같나?”
아직 협상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오늘은 어디까지나 서로 탐색전을 치렀을 뿐.
본격적인 협상은 내일부터였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파블로의 생각이었지만 말이다.
“저들은 우리의 사정을 너무 자세히 알고 있습니다. 압박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을 거 같습니다.”
“그게 문제란 말이지.”
파블로는 한숨을 내쉬었다.
요한은 중국에서 온 자였다.
당연히 스페인의 상황을 잘 몰라야 정상이었다.
그런데 요한은 마치 모든 걸 아는 것처럼 보였다.
누에바에스파냐(멕시코)에서 온 지원군이 마리벨레스 입구에서 네덜란드군에 의해 크게 당한 정보까지 알고 있었을 정도였다.
‘나이도 젊어 보이는데 도대체 저런 실력을 어떻게 쌓은 걸까. 황제의 아들이라도 되나? 그쯤 되어야 말이 될 거 같은데 말이지.’
네덜란드야 이미 두 번이나 겪었기에 요한이 어떤 존재인지 잘 알았다.
요한의 성공은 어디까지나 요한의 개인 능력에서 비롯된 사실이란 걸 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스페인은 요한에 대해 자세히 아는 바가 없었다.
그래서일까?
파블로는 요한의 혈통이 명나라 황실에 있다고 강하게 의심하였다.
수천 명의 군대, 수백 척의 함선, 그 엄청난 규모의 군대를 먹여 살리는 재력, 심지어 필리핀 총독부의 속사정을 파악하는 그 정보력까지.
막강한 뒷배가 있는 게 아니라면, 요한이 가진 모든 것은 도무지 설명되지 않았다.
“저길 보십시오.”
그때였다.
미란다 대위가 한쪽을 가리켰다.
“저들도 일로코 족인가?”
“···머리나 옷을 보면 팡가시난 족처럼 보입니다.”
“팡가시난? 그들이 왜 여기에···?”
파블로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일로코 족이 요한을 따르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그도 알고 있었다.
사실 그것도 충격적인 일이긴 했다.
이미 요한은 필리핀의 영토 일부를 자신의 것으로 만든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하지만 팡가시난 족을 보자 그는 뒤늦게 깨달았다.
요한의 세력에 합류하는 것은 일로코 족뿐만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서, 설마 군대를 주둔하고 가만히 있던 이유가 이것 때문인가? 단순히 우리가 네덜란드와 싸우는 걸 기다린 게 아니라, 원주민 부족을 회유할 시간을 벌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