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evitably Levelled up RAW novel - chapter (175)
175화. 마지막 결단 (3)
시스템 메시지를 확인한 이안은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씨발! 하필 이때……!’
이안은 이상한 타이밍에 눈치 없이 끼어든 메시지를 무시하고 싶었지만, 종족 명칭까지 설정해야 진화가 완전히 완료된다는 걸 알았다.
결국 마음이 급해진 그는 아델라와 동료들에게 향하는 공격을 맞받아치며 외쳤다.
“한국인!”
[새로운 종족 〈한국인〉으로 진화했습니다.] [종족의 기본 유형은 당신의 특성을 기준으로 합니다.] [종족 〈한국인〉의 정보가 당신의 유전자에 입력되었습니다.]전투에 집중하려고 해도 자꾸만 이안의 시선을 강탈하는 메시지가 이어졌다.
‘젠장, 별생각 없이 한국인이라고 해 버렸더니 왠지 이상하잖아.’
이미 한국인의 정체성을 갖고 있긴 했지만, 빼도 박도 못하게 한국인 인증이 박힌 느낌이었다.
어쨌든 무사히 진화를 거쳐서 새로운 한국인 종족으로 거듭난 이안은 동료들을 보호하며 연이어 날아오는 모든 공격을 막아 냈다.
그 순간 이안은 이때까지와 전혀 다르단 걸 알아차렸다.
조금 전 고전했던 게 신기할 만큼 가볍게 공격을 튕겨 낸 것이다.
“큭, 어떻게 갑자기……!”
그런 이안의 변화를 모두가 눈치채는 건 오래 걸리지 않았다.
특히 직접적으로 힘을 겨루는 중인 과거의 이안은 민감하게 그 변화를 알아챘다.
“이런 건 있을 수 없어……! 왜, 저 자식만……!”
전세가 역전되었다.
그렇게 거침없던 공세가 사그라든 순간 이안은 곧바로 반격에 나섰다.
“인생은 원래 불공평한 거야!”
이안은 검은 안개를 밀어내며 접근조차 할 수 없었던 그에게 다가붙었다.
처음으로 두려운 표정을 지은 과거의 이안은 서둘러 피하고자 움직였으나 이미 새하얀 빛에 둘러싸여 옴짝달싹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윽, 이거 놔! 으윽!”
“너 같으면 놔주겠냐? 누구보다 잘 알만한 녀석이 그러네.”
붙잡힌 상태에서도 한참을 벗어나려 발버둥 치던 과거의 이안은 이내 벗어날 수 없단 걸 깨닫자 체념 섞인 울분을 터트렸다.
“어째서……? 어째서 내가 아니라 네놈인 거지? 같은 이안인데, 나도 선택받았는데… 왜 나만 모든 희생을 감수해야 했던 거야?”
“…….”
“너도 알잖아. 어?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넌 알아야 하는 거잖아. 정말 엿 같다는 거.”
“…그래. 나도 알아.”
“하핫, 거짓말하긴.”
이안은 자기 자신이기에 이해하고, 동정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눈앞에 있는 건 자신이 도달한 또 다른 가능성이었으니까.
두 사람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관계였다.
“고마워. 그리고 고생했어. 이제 모든 걸 내려놓고 쉬도록 해.”
이안은 위로하듯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실은 너도 그걸 바라잖아?”
대답은 없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겪었던 수많은 일과 절망을 생각하면 쉽게 인정할 수 없는 건 당연했다.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당한 끝에 멸망한 세계와 함께 버려진 결말이라니.
너무나 불합리했다.
“…나의 희생으로 그녀를, 하다못해 나의 세계라도 구할 수 있었다면, 그랬다면 조금은 기뻤을까.”
“글쎄. 그건 그런 결말에 도달한 ‘나’만이 알겠지.”
이안은 냉정하게 대답했지만, 속으로 생각했다.
아무것도 구하지 못한 것보단 나았을 것이라고.
“너는 너의 희생을 무의미하게 여길지 몰라도, 나와 나의 세계에 속한 사람들에겐 아니야. 네 덕에 구할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너한테도 그렇게 무의미한 일은 아닐 거야.”
“어째서지? 너의 세계는 나와 아무런 상관도 없는…….”
“김윤희. 그녀가 살아 있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어.”
그 얘길 들은 과거의 이안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뭐라고 형언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한 감정에 시선이 흔들리던 그는 이내 미약한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았다.
“그런가. 그거면 충분할까.”
이안은 그의 머리를 쓰다듬던 손에 조금씩 힘을 주었다.
코어 핵의 위치는 진즉에 파악했다.
그런데도 자기 자신을 죽이는 건 망설여져서, 조금이라도 대화를 길게 이어 가고 싶었다.
하지만 대화는 끝났고, 이제 코어 핵을 파괴해야 할 시간이었다.
“…잘 가라.”
콰직!
코어 핵을 파괴한 이안의 곁으로 동료들이 모였다.
그들은 복잡한 심경으로 바닥에 쓰러진 과거의 이안을 보았다.
몇 명은 그들의 종교 관습을 따라 애도를 표했다.
“이안, 괜찮아요?”
“괜찮아요. 제가 마무리 지어야 할 일이었어요.”
오히려 이 정도는 과거의 자신이 치렀던 대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며 이안은 씁쓸하게 웃었다.
“그럼 이제 다 끝난 걸까요?”
“아뇨,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에엑? 브라더! 끝난 거 아니었어요?”
“무엇이든 마무리가 가장 중요한 법이야.”
아니나 다를까, 이안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세계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단순히 충격에 의한 진동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시공간이 뒤틀리면서 일어나는 기현상이었다.
“벌써 시작됐나. 조금도 유예를 주지 않는군.”
“무슨 말입니까? 지금부터 뭘 하려는…….”
윌리엄은 끝까지 말을 잇지 못했다.
이안이 새로운 코어 핵을 꺼냈기 때문이다.
코어 핵은 특유의 강한 에너지를 흘리기 때문에 동료들도 그 정체를 알아보는 건 어렵지 않았다.
“간단합니다. 지금부터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합니다.”
간결한 이안의 설명에 동료들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동요했다.
“잠깐, 이제야 겨우 코어 핵을 부수고 시스템을 파괴했는데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겠다고요?”
“몽환사의 능력이나 꿈 안개가 가져온 발전을 생각하면 아까운 건 당연하지만 그래도…….”
“또 검은 안개가 나타나지 말란 법은 없잖은가.”
“아무리 좋은 기술이어도 그것을 통제할 방법이 없다면 없애는 게 낫습니다.”
동료들의 반발에 이안이 설명을 이었다.
“너무 많은 세계가 시스템의 통제하에 묶여 있었습니다. 시스템이 사라진다면 균형을 잃고 전부 붕괴할 겁니다. 물론, 우리의 세계도.”
“읏, 그, 그런……!”
시스템으로 발생한 검은 안개 때문에 수많은 세계가 사라졌는데, 정작 이 모든 원흉인 시스템이 없어지면 유지할 수 없다니.
모순도 이런 모순이 없었다.
이안은 불안해하는 동료들을 안심시키려 활짝 웃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통제할 방법이라면 있으니까.”
“그런 게 있다고요?”
“아니, 지금 우리가 가진 기술력으론 무리일 텐데요.”
그때 통제할 방법이 무엇인지 깨달은 듯 아델라의 얼굴이 사색으로 변했다.
“이안, 설마… 자신을 희생하려는 건 아니죠?”
아델라의 입에서 나온 희생이란 단어에 동료들은 깜짝 놀라며 이안을 쳐다보았다.
설명을 재촉하는 걱정과 불안이 담긴 눈빛에 이안은 선뜻 입을 열지 못했다.
그러자 마찬가지로 어떤 방법인지 깨달은 라티 샤키라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신 입을 열었다.
“우리 모두 직접 봤잖아요? 코어 핵을 어떻게 파괴했는지.”
“아니, 아니, 전혀 이해가 안 되는데요? 그, 그거랑 브라더가 희생하는 게 무슨 상관이에요?”
크리스는 믿기 싫은 현실을 부정하려는 것처럼 모르쇠로 밀어붙였다.
평소라면 그런 크리스에게 핀잔을 던졌을 리아도 창백한 얼굴로 동조했다.
“그, 그래요! 애초에 이만큼 방대한 시스템의 코어 핵이란 거 인간이 품을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괴물로 변한 커즌은 검은 안개에 동화되다시피 해서 가능한 거 아니에요?”
리아의 변론을 시작으로 하나둘씩 황급하게 의견을 내놓았다.
“그렇습니다! 시스템이 있어야 세계가 유지된다면, 그냥 코어 핵을 여기에 두고 새로운 시스템이란 거 구축한 다음 떠나죠?”
“맞습니다. 꼭 누가 희생할 필요는 없죠. 만약 새로운 시스템에 문제가 생겨도 우리가 해결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예, 한 번 해결했는데 두 번이라고 못할 거 없습니다. 그렇게 합시다.”
혹시라도 이안의 입에서 다른 의견이 나올세라 동료들은 필사적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이안은 진심으로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정말 축복받은 삶이었구나. 그래, 이 모습만으로도 희생할 가치는 충분하겠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정말 어쩔 수 없이, 하필이면 선택을 받아서 어쩔 수 없이 노력한 것이라고.
세상의 종말이라든가, 인류의 멸망이라든가, 어딘가 조금 떨어져서 서늘한 시선으로 보게 되는 자신이 있었다.
순순히 죽고 싶지 않으니까. 죽지 않으려면 어찌 됐든 종말은 피해야 하니까.
그래서 노력한 거라고 말이다.
조금이라도 손해 보는 일이나 희생 같은 건 하고 싶지 않았고, 그럴 마음도 없었다.
그러니까 이 모든 건 ‘어쩔 수 없이’하는 것뿐이었다.
그랬을 터였다.
“여러분,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여러분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마치 작별 인사 같은 이안의 말에 동료들은 얼어붙었다.
이윽고 아델라가 힘겹게 입술을 뗐다.
“잠…깐. 그런 말 하지 마요. 꼭 헤어지려는 사람 같잖아.”
“그러고 보니 모든 게 끝나면 정식으로 대답한다고 했던가요. 지금 대답할게요.”
“아니요! 아직 끝난 게 아니니까 듣지 않겠어요. 거기에 수지 씨에게도 약속했잖아요. 그러니 약속을 지켜요. 직접 만나서 대답하라고요.”
필사적으로 이안의 대답을 듣길 거부하는 아델라에게선 처절함까지 묻어났다.
이안은 그런 그녀를 안쓰러운 듯, 미안해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다 고개를 숙였다.
“미안해요. 더 좋은 사람 만나서 행복하길 바랄게요. 수지 씨에게도 그렇게 전해 줘요.”
끝내 대답하는 이안의 멱살을 잡은 건 아델라가 아닌 크리스였다.
온통 눈물로 범벅된 크리스가 이안을 붙잡고 소리쳤다.
“왜, 왜 브라더가 희생해요? 이거 다 브라더가 해낸 거잖아요. 나, 난 아무런 도움도 못 되고 쓸모없었으니까 내가 할게요. 어떻게 하면 돼요? 가르쳐 주면 확실하게 해낼게요!”
“아니, 그런 거라면 내가 하지. 저런 쓸모없는 꼬맹이보단 1위 랭커인 내가 낫지 않겠나.”
“후, 랭킹으로는 블라디미르 님께 밀릴지 몰라도 저도 제법 강하답니다? 제가 하겠습니다. 블라디미르 님과 달리 남겨질 여인도 없으니까요.”
윌리엄은 예의 상큼한 미소를 지으며 블라디미르와 라티 샤키라에게 윙크를 날렸다.
그렇게 너도나도 대신 희생하겠다며 나섰다.
그때 침묵하던 자비드가 이안에게 매달려 있던 크리스를 치우며 이안 앞에 서서 말했다.
“내가 한다. 업보. 받아들인다. 죽음도. 소멸도. 익숙한 것. 두렵지 않다.”
살기까지 풍길 만큼 자비드의 단호한 태도에 이안을 포함한 모두가 움찔했다.
하지만 이안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자신이 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아까 리아도 말했잖습니까? 방대한 시스템이 담긴 코어 핵을 인간이 품을 수 있을 리 없다고요. 그러니까 저밖에 없습니다.”
“커즌도 인간이잖아!”
“아니, 나는 ‘한국인’이라는 새로운 종족으로 진화했어.”
이안은 자신이 말해 놓고도 말 같지 않은 농담처럼 느껴진다며 혼자 웃음을 터트렸다.
정말 종족 명칭을 잘못 설정한 것 같단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이안이 그렇게 생각할 정도니 그 얘기를 들은 다른 동료들은 이런 상황에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건가 싶었다.
“의지의 한국인이란 게 그 정도였어요……?”
“크리스! 커즌의 헛소리에 넘어가지 마!”
이번만큼은 그냥 넘어갈 수 없었는지 리아는 분위기 파악하라며 크리스의 등짝을 후려쳤다.
기어이 폭소가 터진 이안은 배를 부여잡고 눈물이 맺힐 때까지 웃어 댔다.
“아하하, 하… 마지막까지 크게 웃으며 헤어질 수 있어서 다행이야. 그렇게 항상 서로 의지하고 즐겁게 지내도록 해.”
이안은 그렇게 말하고 코어 핵을 움켜쥐었다.
그를 만류하려던 동료들은 이윽고 몸이 움직이지 않는단 걸 깨달았다.
어느새 이안이 그들을 마력으로 묶어 둔 것이다.
이윽고 이안은 기억에 새기려는 듯 모두의 얼굴을 하나하나 눈에 담으며 마지막 작별 인사를 전했다.
“모두 안녕히.”
그리고 망설임 없이 코어 핵을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