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ectious Disease Survival RAW novel - Chapter 92
92화 농업용수 (4)
수도 배관, 열선, 전선을 나란히 겹친 후 중간중간을 케이블 타이로 묶어 단단히 고정한 다음, 지하수를 발견한 비닐하우스부터 요새까지 수도 배관을 연결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수도 배관은 지하수를 공급하는 용도였고, 열선은 수도 배관의 동파를 방지하는 용도였으며, 전선은 수중 펌프에 전원을 공급하는 용도였다.
이들을 한데 묶은 후, 외부 충격과 오염으로부터 방어할 목적으로 은박 보온재를 두르고 양수기용 비닐 호스를 씌웠다.
철민 아저씨가 도로 맞은편 맨홀로 들어가 배관을 넣어 주길 기다리는 사이.
나는 비닐하우스 근처의 맨홀로 들어가 하수관에 수도 배관을 집어넣었다.
민수와 일권 아저씨는 각각 나와 철민 아저씨를 보조하기 위해 지상에 있었다.
왕복 4차선 국도 지하를 가로지르는 하수관의 지름은 어린아이가 지나갈 수 있을 정도.
그럼에도 하수관 지름보다 한참 작은 수도 배관 뭉치가 뜻대로 들어가지 않았다.
[치직- 태경아, 배관을 좀 더 깊숙하게 넣어 봐라. 한 20cm 정도 더. 오버-] [치지직- 중간에 뭐가 걸렸는지 잘 안 들어가요. 다시 한번 힘껏 밀어 보겠습니다. 오버.]스윽- 툭- 스윽- 툭-
꾸욱- 투툭- 쑤욱-
하수관으로 집어넣던 수도 배관을 몇 차례 당겼다 밀기를 반복한 후 있는 힘껏 밀어 넣은 결과.
얇은 막이 뚫리는 감각과 함께 수도 배관이 매끄럽게 들어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뭔가가 배관을 막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치지직- 오케이. 들어왔다. 잡아당길 테니까 계속 넣어 주면 된다. 오버.] [치직- 알겠습니다. 오버-]지상에서는 민수가 둥그렇게 말려 있는 수도 배관을 일자로 펴는 작업을 했다.
그리고 하수관 맞은편 맨홀에서는 철민 아저씨가 열심히 수도 배관을 당겼다.
스윽- 쑤욱- 스윽- 쑤욱-
그렇게 한참을 밀어 넣고, 당기기를 반복하다 보니 오피스텔 건설현장까지 수도 배관 연결이 끝났다.
배관 연결을 끝낸 후, 수도 배관의 양 끄트머리를 각각 지하수 수중 펌프와 오피스텔 건설현장 수도꼭지에 연결했다.
지하수가 나오는 비닐하우스에서 맨홀까지 이어진 수도 배관은 흙바닥을 파내 땅속에 묻었다.
그리고 맨홀 밑 하수관을 통해 오피스텔 건설현장으로 향한 수도 배관은 식량을 재배 중인 비닐하우스까지 연결했다.
[치직- 철민 아저씨, 펌프에 연결 끝났으니까 물 한번 틀어 보세요. 오버-] [치지직- 그래, 수도꼭지 열어 볼 테니까 펌프 제대로 돌아가는지 확인 좀 부탁한다. 오버.]꿀럭- 꿀럭- 위이이잉-
잠시 후, 지하수 구멍 아래의 수중 모터가 물을 빨아들이는 소리를 내는 것과 동시에 펌프 터빈이 힘차게 회전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맑고 시원한 지하수가 수도 배관을 타고 요새까지 공급되는 순간.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는 순간이었다.
철민 아저씨가 배관의 이음새 부분을 특히나 신경 썼기 때문에 어딘가에서 물이 샐 걱정은 없었다.
하지만, 수중 펌프의 압력으로 수백 미터나 되는 수도 배관을 따라 요새까지 물을 공급할 수 있을지가 걱정이었다.
대략 20~30초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 즈음, 애타게 기다리던 무전이 왔다.
[치직- 지하수 공급 확인. 아주 콸콸콸 잘 나온다. 오버-] [치지직- 수중 펌프도 정상적으로 잘 동작합니다. 그럼 저희는 요새로 복귀하겠습니다. 오버.] [치직- 알았다. 조심히 복귀하라. 오버-]결국,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였던 물 공급 문제도 통쾌하게 해결이 된 상황이다.
농업용수로 사용할 수 있었고, 정수 필터를 거친다면 생활용수로 쓰거나 식수로 쓰기에도 충분했다.
지하수를 공급하는 비닐하우스는 굉장히 중요한 시설이 되어 버렸다.
비닐하우스 자체는 별다른 가치가 없었지만, 비닐하우스 아래 파묻혀 있는 작은 콘크리트 구조물은 앞으로 요새의 젖줄이 될 주요 생존 시설이었다.
“민수야, 이쪽에 흙 좀 더 덮자. 거기 수도꼭지랑 배관은 더 이상 쓸 일 없으니까 땅속에 묻어 버려.”
“알겠습니다.”
팍- 휘익-
콱- 콱- 푸욱- 휙-
지하수를 퍼 올리는 콘크리트 구조물과 맨홀로 이어지는 수도 배관을 모두 땅속으로 묻어 버렸기 때문에 지하수 공급 라인 중에 지상으로 노출되는 부분은 한 군데도 없었다.
수중 펌프가 설치된 콘크리트 구조물과 수도 배관이 지나가는 자리에 다시 한번 흙을 덮고, 평탄하게 고른 후 단단하게 다지는 것으로 작업을 끝냈다.
쉴 새 없이 삽질 한 탓에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었지만, 홀가분하면서도 든든한 감정이 드는 게 상당히 기분이 좋았다.
씨익-
민수 역시 나와 같은 심정이었는지 이빨을 드러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이 정도면 감쪽같지? 누가 비닐하우스에 들어와도 땅을 파 볼 생각은 못 할 거야.”
“맞아요. 시간 좀 지나면, 저희가 땅 팠던 흔적도 안 남을걸요?”
“그래, 이 정도면 충분하지. 요새로 돌아가자.”
“넵.”
* * *
식량을 재배하는 비닐하우스는 상당히 복작복작한 상태였다.
희윤 누나와 수연 아주머니는 커다란 물통들을 가져와 지하수를 받고 있었고, 꼬마들은 서로 강아지를 만져보겠다고 옥신각신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철민 아저씨와 일권 아저씨는 비닐하우스 3동에 물을 공급할 수 있는 시설을 구상하느라 분주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하루하루 발전하는 요새, 그 안에서 삶을 이어 가는 이들은 안전한 주거환경 속에서 더욱 나은 내일을 도모했다.
요새에 나날이 활기가 샘솟는 것은 생존에 있어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었다.
돌이켜 보면, 여러 가족이 모인 요새에는 항상 발전이 있었다.
전기, 수도, 가스가 끊기고, 거리에는 감염자들이 돌아다니는 상황에서 시멘트와 철근으로 지어진 건물들은 감옥과 다를 것이 없었다.
농업이나 수렵에 생소한 현대인들이 생존에 도태되는 것은 당연했다.
나 역시 혼자 생존해야 했다면, 원룸 건물에 갇힌 채 절망과 좌절을 느끼며 조금씩 생존의 의지를 포기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이런 증상은 비단 나뿐만 아니라 여기 모인 다른 가족들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었다.
사람은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명확했기 때문에 여러 사람이 사회를 이루어 더 나은 생활환경을 만드는 것이 당연했다.
어떻게 보면 이러한 선택들은 수만 년에 걸쳐 ‘생존 본능’이라는 유전적 요인에 조금씩 각인된 것이 아닌가 싶었다.
여러 특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각자의 장점을 살리고, 서로가 부족한 부분을 채워 주었기에 이러한 발전이 가능했다.
수십 세기에 걸쳐 이룩한 인간의 문명과 인프라들이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하지만, 요새에 모인 사람들은 개개인의 경험과 지식을 모아 다시 전기를 만들어 냈고, 보금자리를 더욱 안전하게 만들었으며, 안정적인 물 공급원도 찾아냈다.
과거 군인들이 민간인 구출 작전을 펼치던 순간, 지훈이와 지연이가 엄마를 기다리기 위해 남겠다는 결정에 따라 함께 남은 것을 선택한 게 이런 결과가 될 줄은 몰랐다.
‘그땐, 그저 조그만 정의감 하나로 선택한 경솔한 선택인 줄 알았는데……. 설마 이런 게 나비효과?’
작은 선택 하나가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모른다는 것을 체감하는 순간, 앞으로는 나의 행동 하나하나가 초래할 가능성에 대해 신중히 고민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이런저런 생각에 대한 정리가 대충 끝나갈 무렵 희윤 누나가 나와 민수를 불렀다.
“태경아, 애들 좀 말려 봐. 저러다 강아지 몸살 나겠다! 민수는 이리 와서 물통 좀 잡아 주고!”
“알겠습니다!”
민수는 희윤 누나를 도우러 가고, 나는 강아지를 두고 옥신각신하느라 정신없는 꼬마들을 중재하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어허! 이 녀석들. 강아지는 내가 데려왔는데, 왜 너희들이 강아지를 두고 싸워?”
“지현이가 자기 차례 끝났는데도 강아지랑 계속 있고 싶다고 떼 써요!”
“아니야, 주누 오빠가 자기 대신에 데리고 놀아도 된다고 해써!”
“준우 형아 차례는 제일 마지막이거든? 그러니까 나랑 서연이 누나가 강아지랑 놀고 나서 놀아야지! 빨리 강아지 줘!”
역시 아이들이 서로 아옹다옹하는 것이 아니라, 예상대로 지현이랑 지훈이가 옥신각신 다투는 것이었다.
오히려 서연이랑 준우가 지훈이와 지현이를 중재하는 중이었다.
“어허! 이 녀석들아. 지금 강아지가 무서워서 벌벌 떠는 거 안 보여? 강아지가 이렇게 무서워하는데도 싸울 거야? 강아지한테 미안하지도 않아?”
내가 꾸짖는 소리에 지현이랑 지훈이가 강아지를 살피기 시작했다.
지현이 품속에 한껏 찌그러져 있는 강아지는 바들바들 떤다기보다는 굉장히 불편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다만, 처음 발견했을 때부터 한 번도 짖지 않은 걸 보아 굉장히 순한 녀석이거나 애초에 짖지 못하는 녀석이 아닌가 추측할 뿐이었다.
“강아지 좀 이리 줘 봐.”
휘익-
지훈이에게 강아지를 뺏기지 않기 위해 힘껏 강아지를 안고 있던 지연이가 잠시 팔에서 힘을 푼 틈을 타 냉큼 강아지를 뺏어 들었다.
지현이 역시 중재자 역할을 맡은 나에게는 쉽게 강아지를 내어 줬다.
바들- 바들- 바들-
강아지의 겨드랑이에 두 손을 넣어 치켜든 채, 수전증에 걸린 환자처럼 열심히 손을 떨었다.
“봐봐. 강아지가 무서워서 떨고 있지?”
조금 전까지 지연이 품속에서 불편한 표정으로 있던 강아지의 몸을 바들바들 흔들기까지 하니, 누가 봐도 영락없이 겁에 질려 몸을 떠는 강아지가 되었다.
“강쥐야 미아내……. 흐엉…… 내가 잘못해써.”
“나도 미안해 강야지야……. 훌쩍…….”
지훈이와 지현이는 강아지를 두고 다툰 것이 미안했는지, 순식간에 눈물을 훌쩍이며 강아지에게 사과했다.
“강아지가 무서워하니까, 오늘은 내가 강아지를 데려갈 거야. 강아지랑은 내일 다시 놀게 해 줄게. 어때?”
“녜……. 강쥐야 미아내.”
“네, 내일은 지현이랑 안 싸울게요.”
그렇게 꼬마들의 다툼을 일단락시킨 후 강아지를 점퍼 품속에 넣었다.
따듯한 점퍼 안으로 들어간 강아지는 지현이의 품 안에 있던 것과 달리 편안한 표정으로 몸을 둥글게 말았다.
“희윤 누나, 저는 옥상에 가서 좀 쉴게요!”
“그래, 좀 쉬고 있어. 있다가 저녁 준비 다 되면 부를게.”
희윤 누나는 시끄러운 꼬마들을 성공적으로 중재시킨 나의 업적에 만족한 표정이었다.
저벅- 저벅-
원룸 건물에서 유일하게 나만의 공간인 옥탑방.
1층 편의점에 들려 강아지 간식을 챙긴 후, 서둘러 옥탑방으로 향했다.
다들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강아지랑 단둘이 놀 수 있다는 기대감에 가벼워진 발걸음을 애써 숨길 필요는 없었다.
어렸을 적 집에서 강아지를 키우고 싶었지만, 어머님의 반대로 무산되었던 나의 어릴 적 소망을 뜻하지 않게 이루게 된 셈이다.
옥탑방에 도착하여 방 안에 강아지를 풀어 놓았다.
낯선 공간에 도착한 강아지는 모든 것이 신기한 모양이었는지, 방 안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복슬복슬하고 귀여운 강아지가 방 안을 돌아다니는 것은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
“흐흐. 귀여운 녀석.”
쓰담- 쓰담-
강아지를 혼자 살펴볼 생각으로 반쯤은 강제로 뺏어 왔다는 것은 아이들에게는 비밀이었다.
‘이름을 무엇으로 해야 좋을까? 털이 하얗고 북극곰 새끼처럼 생겼으니까, 북극이?’
1층 편의점에서 챙겨온 간식을 내밀었더니 쪼르르 달려와서는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북극아, 앞으로 잘 지내보자.”
눈앞의 하얗고 복슬복슬한 강아지는 내가 내미는 간식들을 순식간에 해치운 뒤, 내 품 안으로 들어와 몸을 눕혔다.
내가 책임져야 할 생명체 하나가 늘어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