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growth into SSS-class safety zone RAW novel - Chapter 15
15화. 홈 스위트 홈 (5)
* * *
“후아! 이걸로 끝!”
오늘의 일일 퀘스트는 비교적 쉬웠다.
[일일 퀘스트 달성!텃밭을 확장하였습니다. 텃밭 내 작물 생산량이 2배 증가합니다.]
장갑을 벗은 뒤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아냈다. 오후 12시에 일일 퀘스트를 받은 후 5시간 동안 쉬지 않고 텃밭을 일궜다. 확장된 집에는 목장갑과 호미가 있었다. 덕분에 당분간 식량 걱정은 없을 만큼 고구마를 여기저기 심었다. 내일이 기대된다. 이게 바로 농부의 마음일까.
“곧 있으면 해가 질 테니 서두르자.”
어젯밤. 수확 가능한 자원을 늘리기 위한 묘수가 떠올랐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시도라도 해볼 생각이었다. 돈 드는 것도 아니니까.
“자. 우리집 설정에서 현금을 현물로 바꾸고. 덩굴을 회수해보자.”
지도상의 덩굴 마크를 누르자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덩굴 뭉텅이가 나타났다. 수십 미터는 족히 돼 보이는 덩굴들이 수십 개였다.
“좋아, 아주 좋아. 털실 때와 달리 마음이 든든하네.”
덩굴 끝을 서로 연결한 뒤 울타리에 묶었다.
안전지대를 연장할 덩굴들을 둘둘 말아 어깨에 메고 울타리 밖으로 향했다. 상당한 무게였지만 견딜만했다.
울타리에서 200m 정도 떨어진 곳에 멈췄다. 넓고 평평한 땅으로 주변에는 몬스터도, 수확할만한 식물도 없었다. 나는 덩굴을 나선 모양으로 바닥에 늘어뜨려 원 형태의 안전지대를 만들었다.
“될지 안 될지 모르지만. 일단 해보자.”
주머니에서 고구마를 꺼냈다. 호미를 들고 구멍을 판 뒤 고구마를 심었다. 나선 형태의 덩굴들 사이로 고구마를 심고 흙을 덮어 발로 밟았다.
그러고는 덩굴을 회수하지 않고 그대로 안전지대를 따라 집으로 돌아왔다. 휴대폰 맵을 켜니 우리집을 기점으로 하늘색 안전지대가 막대 사탕 모양으로 늘어났다. 막대 부분은 덩굴이고, 사탕 부분은 내가 고구마를 심은 나선 부분이었다.
그리고나서 다른 쪽 울타리에 여분의 덩굴을 묶은 뒤 다른 방향으로 걸었다. 그 끝에 똑같이 나선 모양으로 고구마를 심었다.
우리집 어플을 켰다. 첫 번째로 심은 고구마 밭과 방금 전 심은 고구마 밭은 멀지 않았다. 여분의 덩굴을 들고 첫 번째 고구마 밭을 향해 걸었다.
“보인다!”
어둠이 내려앉은 던전 안에 은은한 하늘색이 빛났다. 아까 전에 심어둔 고구마밭으로 만든 안전지대였다. 첫번째 밭에 도착해 덩굴 끝을 서로 묶었다.
어플을 켜 지도를 확인했다. 우리집 울타리를 중심으로 삼각형 모양으로 안전지대가 만들어졌다. 물론 삼각형 안은 여전히 검은색이었다.
“안에 몬스터들도 있을 텐데. 어떻게 되려나?”
다음날도 저대로 안전지대가 유지될까? 그렇다면 덩굴과 고구마를 이용해 집 주변으로 안전지대를 계속 확장할 수 있을 텐데.
내일은 마고리타 열매를 심어봐야지. 고구마만큼 빨리 자라지는 않겠지만, 나무가 자라면 안전지대도 더욱 튼튼해질 테고.
“이게 다 무슨 소용이라고.”
하늘 끄트머리로 사라져가는 노을자락이 보였다. 현실 세계도 던전 안도 해 질 녘은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이렇게 보면 몬스터가 나오는 것 빼고는 살기 참 쾌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가 현실세계면 참 좋을 텐데.”
요즘 들어 자꾸 이런 생각이 든다.
이런 걸 미운 정이라 부르는 건가. 얼마 뒤면 헤어질 여친처럼 왜 이렇게 신경이 쓰이는지. 적적한 마음을 달랠 겸 D급 마정석을 잡수신 비상식량이를 꼬옥 껴안고 침대에 누웠다.
다음 날 아침.
시스템 알림이 울렸다.
―꼬익!
자는데 시끄러운지 품 안에 안겨있던 비상식량이가 짧은 앞발로 휴대폰을 툭툭 쳤다.
“으음. 뭐야? 벌써 12시야?”
졸린 눈을 비비며 휴대폰을 켜자 오전 7시 30분이었다. 정오도 아닌데 왠 시스템 알림이람?
[던전 내 지분율이 12%가 되었습니다. 서부 지역의 몬스터들로부터 동맹 요청이 도착하였습니다.]이게 무슨 소리지. 동맹 요청이라니.
[우리집의 영향력이 커지며 몬스터들의 거주지역이 좁아지고 있습니다. 서부 지역의 몬스터들이 집주인의 안전지대 공유와 독점 자원의 접근을 요청하였습니다.] [상세 내용을 확인해보시겠습니까?]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되지 않아 ‘우리집’ 어플을 실행시켰다.
화면에 뜬 자원 마크 주변을 확대해보니 하늘색 띠가 둘러져 있었다. 우리집과 연결되지 않았는데도 안전지대가 생성되어 있었다. 해당 식량을 주식으로 삼는 몬스터들이 주변을 맴도는 게 보였다.
“아무래도 식량화한 자원은 나만 먹을 수 있나 보네?”
게다가 울타리 근처에 삼각형 모양으로 펼쳐놓은 안전지대도 그대로였다. 삼각지대 안은 여전히 캄캄했는데, 그 주변부를 돌아다니는 빨간 점들이 방향 감각을 상실한 벌처럼 우왕좌왕 거렸다.
“가둬 죽일 생각은 아니었는데.”
몬스터를 박멸할 생각은 없었는데. 몬스터지만 하나하나가 다 돈덩어리니까.
“일단 동맹 조건이나 들어보자.”
동족의 목숨이 달렸으니 맨입으로 친하게 지내자고 하지는 않겠지.
[동맹 조건―서부 지역에서 집주인과 손님의 안전 보장
―서부 지역에서 생산되는 모든 자원의 10% 제공]
자원의 10%라니. 그러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저절로 골드가 들어온다는 소리 아닌가.
“서부 지역이 정확히 어디지?”
말이 내뱉기가 무섭게 서부 지역 몬스터들의 구역이 지도 위로 표시되었다. 지도상으로 6시부터 9시 구역까지, 지도의 약 사 분의 일에 해당하는 규모였다.
“어? 9시 방향이면 게이트 출구잖아.”
지도를 확대하자 동맹 지역 내에 게이트가 포함되어 있었다.
갑자기 목 뒤로 소름이 돋았다.
“……던전을 나갔다 들어와도 안전지대는 물론이고 우리집 어플을 계속 사용할 수 있다면?”
방금 전까지만 해도 던전에서 벗어나는 게 간절했는데.
언제든지 돌아와서 자원을 회수하고 영역을 넓힐 수 있다면 다른 이야기지 않는가. 손쉽게 얻은 던전 부산물을 현실 세계에서 팔며 돈을 벌 수도 있었다.
내 사업.
퍼뜩 앞으로 뭐 해 먹고 살아야 할지가 떠올랐다.
공사장 아르바이트나 청소부가 아니라, 던전 부산물 판매자. 헌터에게서 구입해 중개수수료를 받는 게 아니라 내 집, 내 땅에서 수확한 것으로 판매한다. 원가가 없으니 판매가 전부가 이윤으로 잡힐 터였다. 만약 돌아오지 못하더라도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었다.
동맹 요청을 수락했다.
“더불어 사는 세상이잖아. 몬스터면 뭐 어때.”
[우리집은 서부 지역과 동맹을 맺었습니다. 동맹 지역에 맵이 오픈됩니다.] [우리집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은 동맹 지역의 주민들이 자유로이 오갈 수 있습니다.]동맹 지역이 밝아지며 지형과 그 안을 돌아다니는 몬스터들이 훤히 보였다.
지역 내 수많은 자원들이 앞으로 현금으로 들어온다.
이제는 나가는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어떻게 하면 다시 들어올 수 있을지, 그걸 고민해야 했다.
* * *
진호는 일주일 전 형로부터 온 마지막 문자를 본 뒤 한숨을 내쉬었다.
“진호 군. 내일 던전 토벌이 걱정되어요? 베테랑 헌터들이 동행할 테니 걱정말아요.”
“걱정 안 돼요.”
진호가 창밖에 시선을 고정한 채 대답했다. 흰 눈이 내리고 있었다.
“……우리 형 아직 못 찾았죠?”
“네. 최선을 다하고는 있습니다만…….”
박해인 질문에 한애라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벌써 이 대답을 몇 번이나 반복했더라.
국내 굴지의 길드, 명성길드. 헌터 중에서도 얼마 안 되는 특수 스킬을 가진 A급 헌터 한애라는 각성 전에는 변호사였다.
명문대를 나와 대형 로펌에 취업했고, 심지어 A급 헌터로 각성까지 한 한애라의 인생은 말 그대로 탄탄대로를 달렸다.
맡겨진 일은 늘 기대 이상으로 해냈고, 사전에 실패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 그녀의 완벽한 성적표에 얼룩이 지기 시작했다. 최고의 정보팀을 꾸렸으니 걱정 말라고 호언장담을 했건만, 열흘이 넘도록 박해인의 머리카락 하나 찾을 수 없었다.
‘최선을 다하고는 있습니다만.’
무능한 직원들이나 한다고 생각했던 말을 제 입으로 내뱉으니 부끄러워 죽을 것 같았다.
쿵덕거리는 한애라의 심장 소리가 거슬렸지만 진호는 내색하지 않았다. 이 귀찮은 여자가 빨리 제 방을 나가줬으면 했다.
이 추운 겨울, 어딘가에서 제 형이 살아있을지 죽어있을지 모르는 판국에. 누군가의 관심 따위 필요 없었다.
진호는 마지막으로 형에게서 온 문자를 떠올렸다.
[꺼져 사기꾼아 ― 형 ―]제기랄. 속으로 욕지거리가 나왔다.
그 뒤로도 계속 문자를 보냈지만 답장이 없다. 차단을 한 것 같다.
이제는 확신했다. 형은 자신이 헌터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아주 가끔 문자만 보낼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딜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원양어선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용역업체에서 잘리고, 이사 갈 집을 알아봐야 한다는 부담감에 새우잡이건 참치잡이건 급한 대로 올라탔겠지.
“실장님. 아무래도 원양어선 쪽을…….”
바다를 찾아보자고 진호가 말을 하던 때였다.
띵동. 벨이 울렸다. 인터폰을 확인해보니 예상치 못한 손님이 서 있었다.
“한애라 실장이 와 있는 줄 몰랐군.”
큰 키에 떡 벌어진 어깨. 한국 최고의 길드를 이끄는 수장답게 카리스마를 풀풀 풍기며 금주한이 들어왔다.
“대표님? 여기는 어쩐 일이세요?”
“곧 던전 토벌 나간다길래 들렸지. 그때 이후로 따로 인사를 못 한 것 같아서 말이야.”
금주한이 박진호를 바라보았다. 180cm가 넘는 진호도 작은 키는 아니었지만 금주한은 그보다 한 뼘이나 더 컸다.
“오랜만이군, 박진호 군. 나를 기억하나?”
“……명성길드 길드장님 이잖아요. TV에서 많이 봤습니다.”
“그날 우리 길드 건물을 찾아와 여기저기 태우고 부순 건 기억을 못 하나 보군.”
“……나중에 돈 벌면 변상하겠습니다.”
진호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사실 기억하고 있었다. 다만 잊고 싶은 기억이니 모르는 척했다.
“흐음.”
금주한이 아래턱을 매만지며 박진호를 살폈다. 그 유능한 한애라가 꽤나 고생하고 있다길래 궁금해서 들렀다. 그런데 막상 보니 평범한 고등학생이었다. 야무진 한애라가 무슨 이유로 그렇게 애를 먹었을까.
“형을 찾고 있다지? 이야기는 대충 들었어.”
금주한은 거실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집주인처럼 소파 한가운데에 자리를 잡은 그가 창가에 쭈뼛거리며 서 있는 진호를 향해 미소 지었다.
“알다시피 우리뿐만 아니라 모두가 눈에 불을 켜고 박해인을 찾고 있어. 헌터협회는 개인정보 보호법 위반도 서슴지 않으며 정보국을 들들 볶고 있지.”
“정보국을 끌어들이다니요!? 그건 너무 치사하잖아요!”
한애라가 소리치며 끼어들었다. 흥분한 한애라의 모습에 금주한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한애라처럼 인생을 쉽게 살아온 자들은 정공법을 선호했었지. 아무래도 그녀에게 이번 일은 어려울 수밖에 없었을 것 같았다.
“그렇게 해서라도 찾을 수 있다면 나도 진즉에 했겠지. 그게 무슨 뜻인지 박진호 군은 알 텐데?”
금주한이 고개를 돌려 박진호를 쳐다봤다. 진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때로는 세상을 냉정히 볼 줄도 알아야 해.”
금주한이 자리에서 일어서 박진호 앞으로 걸어갔다. 금주한의 황금색 눈동자가 진호를 내려다봤다. 포식자의 눈이 조용히 타올랐다.
“만약 자네 형이 죽었다면 어떻게 할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