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growth into SSS-class safety zone RAW novel - Chapter 77
77화. 일본 출장 (4)
* * *
금주한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금주한, 진서율 그리고 한가람. 이 셋은 1세대 각성자이기도 했지만 특별한 경험을 공유한 사이였다.
시간 도둑.
그들은 던전 안의 던전, 히든 던전에서 만난 그자를 그렇게 불렀다.
[이 곳까지 들어온 인간은 너희가 두 번째다. 선물을 주도록 하지.]인간의 말을 할 줄 아나, 인간이 아니던 그 존재가 금주한을 비롯한 일행에게 ‘선물’이라는 이름의 ‘저주’를 걸었다.
[너희는 앞으로 시간의 굴레와 상관없는 삶을 살 수 있다. 그러나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은 아니지.]그 날을 기점으로 금주한을 비롯해 진서율과 한가람은 늙지 않았다.
처음에는 정말 ‘축복’이라 생각했지만, 그 히든 던전에서 10년을 보내는 동안 생각이 바뀌었다.
그리고 던전에서 나와 또 다시 수 년을 보내며 이것은 ‘축복’이 아닌 ‘저주’라는 것을 깨달았다.
“씨발, 평생을 이딴 애새끼로 살아야 한다니.”
제일 억울해 하던 것은 진서율이었다.
영영 중학생의 모습으로 살아야 했다.
30대가 되었음에도 변하지 않는 외모 때문에 연애 한 번 제대로 못해보고, 애 취급 받기 일수였다.
그날 이후로 진서율은 미친듯이 이레귤러 던전이 나타나면 뛰어들었다. 자신에게 저주를 건 ‘그자’를 다시 만나기 위해.
“그 놈과 무슨 연관이 있는 게 틀림없어.”
상대방의 능력의 흐름, ‘회로’를 볼 수 있는 능력 ‘백안.’
체내에 흐르는 에너지의 양과 방향을 나타내는 회로도는 오직 백안을 개안해야만 볼 수 있었다.
진서율은 단 한 번 본 그자의 회로도를 아직까지 잊을 수 없었다.
지금 눈앞에 그자와 흡사한 회로도를 가진 인간의 형체를 한 누군가 나타났다.
금주한 일행을 제외한 인간이 있어서는 안 되는 이 S급 던전에.
“잘됐어. 언젠가는 만날 줄 알았다고!”
진서율이 힘을 끌어모았다. 그의 갈색 머리카락이 허공에 넘실댔다.
눈앞에 있는 소녀의 심장 쪽에서 거대한 기운이 움직이는 게 보였다.
“온다!”
진서율이 외치자마자 소녀의 전신에서 보이지 않는 기운이 폭발하듯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찰나의 순간 거대한 파동이 공기 중을 가르며 진서율을 향했다.
화르륵. 검은 흑염 기둥 수십 개가 땅에서 솟아올랐다. 금주한의 흑염 기둥이었다.
“뭔지 모르지만 불길한 예감이 드는군. 이럴 때는 원천 차단이 답이지.”
금주한의 흑염 기둥 사이로 박진호가 앞으로 튀어나갔다.
그의 양손에 배구공만 한 푸른 불꽃이 들려있었다.
“진호 군! 아직 상대방에 대한 파악이 끝나지 않았네! 섣불리 공격해서는 안 돼!”
금주한이 박진호를 말렸다.
“선수필승이라고요! 상대가 인간이 아니라면 더욱 그래야죠!”
박진호가 손에 들린 푸른 불꽃 덩어리를 소녀를 향해 던졌다.
뱀여인은 다가오는 푸른 불꽃을 보며 피식 웃었다.
그녀는 그들을, 그들의 능력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저자들은 그녀를, 정확히는 인간의 탈을 쓴 뱀여인을 한 번 만난적이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뱀여인은 자신의 주군과 파동이 닮은 박진호를 바라보았다. 비슷한 파동이라면, 적어도 8군주 중 하나의 몸일 테니 망가트려서는 안 된다.
살려보내기 위해서는 적당히 상대해줘야 한다. 문제는 박진호는 망국의 힘, 파괴를 근원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상대하기가 까다로웠다.
‘저 아이의 불꽃은 공격력이 상당하지만 느리지. 닿지만 않는다면 상관없어.’
뱀여인이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푸른 불꽃을 여유롭게 피하려던 때였다. 근처까지 날아온 배구공만하던 푸른 불꽃이 갑자기 서너배 커졌다.
“으읏!”
뱀여인이 왼쪽 어깨와 오른쪽 허벅지를 향해 날아오던 푸른 불꽃을 간발의 차이로 피했다.
그녀를 스치고 지나간 불꽃이 뒤편의 바위에 부딪히더니 커다란 굉음을 내며 터졌다. 집채만한 바위가 순식간에 가루가 되었다.
시즈카가 눈을 부릅 떴다.
이전에는 분명 이런 공격은 없었다. 무언가 변한 게 틀림없다.
사방으로 푸른 불꽃 수십 채가 생겨났다. 방금 전까지 여유가 있던 시즈카가 불꽃을 예의주시했다. 어느 순간 커져 버릴지 몰랐다.
느릿느릿 허공을 떠다니던 불꽃 덩어리 하나를 향해 박진호가 달려갔다. 진호가 시즈카를 향해 불꽃을 찼다.
불꽃이 빠른 속도로 시즈카를 향해 날아갔다.
시즈카는 거대한 바위 위로 도망치듯 뛰어올랐다. 방금 전 시즈카가 있던 자리로 푸른 불꽃이 박히더니 지면이 갈라지고 흙먼지가 자욱이 일었다.
“이건 식량이가 차 줘야 제맛인데. 내가 차니 속도가 반으로 주네.”
박진호가 입맛을 다셨다.
우리집 던전에서 진호가 식량이와 함께 연계 공격으로 만들어낸 전략이었다.
“뭐야, 이 불꽃은? 파괴력이 장난 아니네?”
진서율이 다가오더니 커다랗게 파인 흙구덩이를 보며 휘파람을 불었다.
“특훈 효과가 상당한데? 겨우 한 달 만에 자신의 능력을 이만큼이나 이해하다니.”
금주한 역시 푸른 불꽃의 응용 방법에 놀란 눈치였다.
“신입한테만 맡겨둘 수는 없지.”
진서율이 시즈카를 향해 달려갔다. 왼쪽 눈은 백안을 개안한 상태였다. 진서율은 시즈카의 왼쪽 눈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크윽.”
시즈카가 급히 손을 들어 진서율의 주먹을 막았다. 묵직한 쇠뭉치가 내리 찍는 타격감에 시즈카의 잇새 사이로 비명이 절로 나왔다.
“너 왼쪽 눈 잘 안 보이지? 왼쪽 팔도 힘이 없고.”
진서율의 말에 시즈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녀의 본체 뱀여인의 왼쪽 눈은 인천공항에서 박해인에게 당해 보이지 않는 상태였다. 게다가 왼쪽 팔 역시 현신을 대가로 받치고 온 터라, 일상생활에는 지장이 없지만 능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진서율의 공격에 시즈카의 손목이 덜그덕거렸다. 시즈카는 내색하지 않고 그대로 스킬을 발동했다.
흐르는 독.
시즈카의 손바닥으로 꾸덕꾸덕한 검은 액체가 흘러나왔다.
“네 능력은 독이구나.”
진서율은 독이 닿기 직전 뒤로 물러섰다. 시즈카가 스킬을 시전하려고 생각한 동시에 그녀의 회로도에 흐르는 에너지가 시즈카의 손바닥으로 몰리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진서율은 발로 그녀의 옆구리를 찼다.
“커억.”
시즈카의 몸이 허공으로 날았다.
동시에 기다리고 있던 금주한의 흑염룡이 시즈카의 본체를 물었다. 활활 타오르는 검은 불꽃에 허리가 뚫리자 시즈카가서 검붉은 피를 토해냈다.
흑염룡이 시즈카의 몸을 쇠사슬처럼 휘감아 금주한 일행 앞으로 끌어왔다.
“뭐야, 이거 너무 약한데? 인간 모습을 하고 있길래 엄청 셀 줄 알았지.”
바닥에 쓰러진 시즈카의 머리를 진서율이 발로 툭툭 찼다.
시즈카가 우습다는 듯 어깨를 떨었다. 아무리 빙의한 몸이라지만 이렇게 얻어맞고 흙바닥을 뒹구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금주한과 진서율에게서도 상당한 힘이 느껴졌다.
고위급 간부가 들어올 몸이겠지만, 적당히 봐주며 싸웠다가는 자신이 먼저 죽게 생겼다.
“크크큭. 좋아.”
시즈카의 목소리에 금주한이 인상을 찌푸렸다.
“몬스터가 말을 해?”
“몬스터라니. 나를 그딴 하등한 생명체와 동급으로 취급하면 곤란한데?”
시즈카를 감싸던 흑염룡이 파스스 사라졌다.
“조심해! 회로도가 이상해!”
진서율의 외침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셋이 뒤로 물러섰다.
시즈카가 비척거리며 일어났다. 흰 팔다리 위로 검은색 비늘이 돋기 시작했다. 검은색 눈동자가 있어야 할 왼쪽은 구멍이 뻥 뚫렸고, 반대쪽 동공은 노란색으로 바뀌었다.
예쁘던 코가 납작해지더니 구멍만 두 개가 뚫려 뱀처럼 변했다.
가늘고 긴 입술 사이로 혓바닥을 낼름거린다.
“커억.”
갑자기 변한 외모에 정신이 팔려서일까, 박해인은 자신의 왼쪽 허벅지를 관통한 손에 비명을 내질렀다. 이어진 공격에 박해인의 양쪽 아킬레스 건이 잘려나갔다.
박진호의 몸이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졌다.
“이정도로 끝내는 걸 감사히 여겨라. 근원만 같지 않았으면 진즉에 죽였을 거야.”
목소리의 주인을 향해 고개를 들던 박진호가 흠칫했다.
익숙한 얼굴이었다. 두 달 전, 인천 공항에서 보았던 SS급 뱀인간이었다.
“쿨럭. 어, 어떻게…… 네가…….”
“오호라? 꽤나 모습이 바뀌었는 데도 기억하느냐?”
“왜 여기에…….”
“이렇게 만날 생각이 아니었는데 말이다. 아직 이 모습으로 돌아다니면 안 되어서 말이지.”
뱀여인이 그대로 박진호의 두 손을 발로 밟았다.
“으아아악!”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에 진호가 비명을 내질렀다.
두 팔과 다리를 못 쓰게 만들었으니 한동안 얌전하겠지.
뱀여인이 고개를 돌려 금주한과 진서율을 쳐다봤다.
“그때 공항에서 봤던 그 괴물이군. 진서율 조심해라. SS급이다.”
“SS그으으읍!?”
진서율이 백안으로 뱀여인을 쳐다봤다. 회로도는 그대로였고 그 안을 돌아다니는 에너지의 양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회로도를 꽉 채운 에너지 때문에 흐르는 힘의 방향을 구분하기 어려웠다.
금주한을 향해 뱀여인이 몸을 날렸다.
그녀의 오른팔이 금주한의 목을 틀어쥐었다. 금주한은 그녀의 공격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피할 수가 없었다.
금주한이 한 팔을 들어 자신의 반대쪽 팔뚝을 그으려던 때였다. 금주한의 오른팔을 뱀여인이 발로 찼다. 투각 하는 소리와 함께 팔이 기이한 각도로 꺾였다.
“그 요상한 불꽃을 일으키려는 거지? 또 그렇게 당할까봐?”
“크으윽.”
금주한이 망설이지 않고 그대로 혀를 물었다. 입술 사이로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혀, 혈여엄.”
입술 사이로 비집고 나온 피가 불꽃이 되어 눈앞의 뱀여인을 향해 날아갔다.
“쳇.”
뱀여인이 그대로 금주한의 목을 놓고 뒤로 물러섰다. 흑염과 달리 혈염은 성가시다. 맞은 곳의 상처 회복이 더뎠다.
뒤에서 진서율의 공격이 날아들었다. 근접전이 특기인지 진서율은 아까와 같이 맨주먹이었다. 그의 주먹이 뱀여인의 왼팔을 노렸다.
“네 놈도 짜증나는구나. 아까 내 눈을 노린 것도 그렇고. 이번에는 왼팔이라니.”
뱀여인이 진서율의 복부를 발로 찼다. 당연히 날아갈 거라 생각했는데 진서율이 뱀여인의 발을 양손으로 붙잡고 버텼다.
뱀여인이 한쪽 발을 진서율에 잡힌 채, 다른 발을 들어 올려 그의 머리를 가격했다.
진서율이 양손을 놓으며 발차기를 피하자, 뱀여인은 허공에서 몸을 한 바퀴 돌아 착지했다.
“그쪽은 외모가 변하더니 공격도 바뀌나? 분명 독을 사용하는 저주 계열 같았는데.”
“본체는 좀 다르지. 나도 근접전 타입이거든.”
뱀여인이 즐겁다는 듯 그대로 주먹을 내지르며 진서율을 몰아쳤다.
그 틈을 타 금주한이 박진호에게 다가갔다.
“진호 군. 괜찮나?”
“네. 팔다리를 쓰지 못하는 것 빼고는요. 저는 신경 쓰지 마시고 얼른 진서율 헌터님을 도우세요. 저 상태로는 오래 버티기 힘들 겁니다.”
금주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왼쪽 팔을 쓸 수 없게 된 금주한은 오른쪽 팔뚝을 입으로 물었다. 살을 찢고 붉은 피가 팔뚝을 타고 흘러내려가 오른손 끝에 맺혔다.
“혈염검.”
오른 손으로 검은 불꽃이 피를 머금고 붉게 타올랐다.
금주한이 혈염검을 들고 뱀여인을 향해 달려갔다.
“호호호. 그렇게 나온다면 여기도 진짜 실력을 보여줘야겠지?”
뱀여인이 그대로 허공에 떠오르더니 양손을 펼쳤다.
“금주한, 조심해라. 저 뱀자식의 양손으로 힘이 몰리기 시작했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뱀여인을 중심으로 바닥이 검게 물들기 시작했다. 물감이 물에 퍼지듯 확장된 검은 지형은 지름 100m정도의 구를 형성했다.
“제기랄…… 이건.”
“그때와 비슷하군.”
금주한과 진서율이 신음을 흘렸다.
바닥으로 잡아끄는 묵직한 느낌.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것 같은 느낌.
둘은 이전에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