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supply by myself! RAW novel - Chapter 107
나 혼자 무한 보급! 107화
그렇게 한바탕 격전을 끝낸 후.
검댕을 잔뜩 묻힌 민수 일행은 예 진 일행들과 함께 거점으로 돌아왔 다.
“인사 나눠요, 예진 씨. 여긴 남양 주에서 오신 배주성 사장님.”
“안녕하세요. 도예진입니다.”
“배주성입니다. 이렇게 된 거 잘 해봅시다.”
서로 마주 본 예진과 주성이 굳게 악수를 나눴다.
이걸로 민수 일행의 총 머릿수는 24명.
처음 본 사람들도 있고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도 있으니.
민수 또한 마지막 남은 보관함의 물자를 전부 풀어놓기로 했다.
“그래 봐야 뭐 탄산음료밖에 없긴 하지만……
“아니에요. 민수. 정말 고마워요.”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엘레나 가 대답했다.
참고로 지금 그녀의 손에 들려 있 는 건 1.5리터짜리 콜라 한 병.
누가 뺏어 먹는 것도 아닌데 그녀 는 시종일관 저걸 놓지 못하고 있었 다.
“그렇게 콜라 좋아하는 거 보니까 엘레나도 미국인 맞네요.”
“이, 이상해요? 하지만 예진이랑 있는 내내 계속 이거 생각이 나 서……
단숨에 쭈글쭈글해진 엘레나가 콜 라병에 꽂은 빨대를 조로록 빨았다.
이 와중에도 콜라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다니.
나랑 못 만났으면 대체 어찌 살았 을까 싶다.
“변명은 아니지만 다들 마찬가지에 요. 수찬과 미스터 류 같은 경우는 담배를 못 피워서 안달이었거든요.”
“아, 그러고 보니 내가 담배 한 보 루 줬었지. 다들 어디 갔어요?”
“저 뒤로 같이 나가더라고요. 아마 지금쯤 한창 피우고 있는 게 아닐 까……
살짝 손가락을 든 엘레나가 마을회 관 뒤편을 가리켰다.
그러고 보니 콜라 따위가 문제가 아니었구나.
이마를 딱 짚은 민수가 나직이 신 음했다.
“하아. 어디서 편의점 건물 하나라 도 뚝 떨어졌으면 원이 없겠네……
“오빠도 그 생각하고 있었네. 나도 요즘 슬슬 죽을 것 같아.”
“은비 넌 또 뭐가 문젠데?”
“챙겨놨던 거 다 떨어졌다고. 마지 막 비누는 벌써 일주일 전에 써버려 서.”
자연스럽게 끼어든 은비가 투덜대 며 민수의 옆에 앉았다.
그 와중에도 슬쩍 민수의 눈치를 살피는 은비.
속보이는 그녀의 행동에 피식 웃은 민수가 보관함에서 비누를 꺼냈다.
“진작 좀 말하지. 자. 비누.”
“얏호! 오빠 사랑해! 나랑 사귀 자!”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게 무슨. 더 안 나오니까 아껴 써라. 그게 마지 막 여유분 비누야.”
“여유분이라고 하는 거 보면 어쨌 든 더 있긴 하다는 거잖아?”
“최후의 비축물자지. 이건 진짜 함 부로 못 까는 거야.”
보관함에 온갖 걸 꽉꽉 채워 다니 긴 했지만.
평범한 보급고 지정 건물들이 다 사라졌다 보니 이젠 그것들도 슬슬 바닥을 보이고 있다.
정말 필요한 필수 보급품들.
예를 들어 초코바, 의약품, 성냥, 기초적인 위생 도구 정도만 남았다.
그리고 이건 정말 어지간한 비상사 태가 아니면 절대 함부로 풀 수 없 다.
“그러니까 그거 아껴서 잘 써. 나 도 지금은 한 장 이상 못 주니까.”
“칫
밉지 않게 입술을 비죽 내민 은비 가 시선을 돌렸다.
거창한 식사를 마치고 제각기 이야 기를 나누는 일행들.
광명시에서 있던 사람도 있고, 여 기서 처음 만난 사람도 있다.
어디서는 반갑게, 또 어디서는 어 색하게 서로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 다.
너무나도 이상하게 평온해 보이는 그 광경에 은비가 멍하니 중얼거렸 다.
“……이런 거 볼 때마다 느끼는 건 데.”
“ 음?” “이런 광경, 오빠가 있어야만 유지 되는 것 같아.”
온 세상이 ‘게임’이 되어버린 말세.
물자도 부족하고 먹을 것도 부족하 며.
다른 어떤 것보다, 넉넉한 마음이 부족하다.
항상 날이 서 있고, 서로를 견제하 고, 악전고투를 벌이는 플레이어들.
하지만 그런 이들도 민수의 곁에 있으면 거짓말처럼 얌전해진다.
“오빠가 있으면 풍요가 보장되고, 오빠가 있으면 싸우지 않아도 되지. 그럴 필요가 없어. 오빠는 세상이 이 모양이 되기 전의 모습을 보여주 고 있으니까.” “요즘은 그런 생각도 들어. 이 ‘게 임’에……
이 ‘게임’에 영웅이 존재할 수 있 을까.
이 ‘게임’에 구세주라는 게 존재하 기는 할까.
각자가 생각하는 건 다를 것이고.
어쩌면 스스로를 영웅이자 구세주 로 칭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적어도 은비가 생각하기에, 이 ‘게 임’에서 그리 불릴 수 있는 건 하나 브벋’
“왜 그래?”
“……아하하! 됐어. 됐어! 잊어버 려. 막 이래! 하하하!”
슬쩍 떠오른 생각을 얼버무리며 은 비가 유쾌하게 웃었다.
몬스터도 사람도 평등하게 쪼개버 리는 인간 믹서기.
하지만 그런 그녀도 이럴 때는 평 범하게 웃는 스무 살 여대생에 불과
했다.
“어우, 요즘 내가 좀 미쳤나 봐. 자꾸 이런 오글거리는 생각만 떠오 른다니까?”
“맨날 칼 차고 검기 뿌리고 다니니 까 자꾸 기분 내려는 거지. 스무 살 에 중2병 오면 그거 엄청 비참하다?”
“아, 진짜! 오빠 자꾸 그럴래? 나 다른 건 몰라도 그런 생각 한 번도 한 적 없……
“민수 씨.”
그때, 민수의 등 뒤에서 나직한 목 소리가 들려왔다.
화들짝 놀라 등 뒤를 돌아보는 민 수와 세 여자.
한결 가라앉은 얼굴로 민수를 바라 보던 예진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아, 미안해요. 좋은 분위기 망칠 생각은 없었는데.”
“조, 좋은 분위기는 무슨! 이 언니 는 오랜만에 보자마자 뭔 소리래?!”
“저도 좋다 말았어요. 갑자기 앵기 길래 뭔가 했더니 비누 삥 뜯으러 온 거였네.”
“오빠아!”
시뻘건 얼굴로 버럭 성을 내는 은 비.
한 마디도 못 알아들음에도 어째선 지 배를 잡고 웃는 엘레나.
이번 시나리오 들어 처음으로 돌아 온 평온한 일상.
거기 섞여서 한바탕 신명 나게 웃 길 잠시.
이윽고 표정을 가라앉힌 예진이 입 을 열었다.
“……민수 씨.” “네?”
“혹시 오늘 밤에 시간 되나요?” 순간 한참 신나게 웃던 은비의 얼 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 와중에 영문 모른 채 고개를 갸웃하는 엘레나.
그녀를 향해 한 번 부드럽게 웃어 준 예진이 민수를 향해 말했다.
“민수 씨한테 상의하고 싶은 게 있 어요.”
“상의…… 말이죠.”
표정만 봐도 보통 용건은 아닌 게 분명했다.
그리고 그날 밤.
자신의 방 안에 앉아 기다리고 있 자니, 나직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민수 씨? 있어요?”
“들어와요.”
끼익.
살그머니 열린 문틈으로 예진이 조 심스럽게 발을 들였다.
한결 깔끔해졌지만 그래도 피로가 뚝뚝 묻어나는 얼굴.
그간 그녀가 겪었을 마음고생이 그 것만으로도 보이는 것 같았다.
“무슨 일이에요? 갑자기 이런 시간 에 보자고 하고.” “……그냥 좀. 단둘이 할 얘기가 있어서.”
“보통 용건 아닌 건 알겠네요. 여 기 앉아요.”
가구라고 해봐야 침대에 작은 탁자 밖에 없는 방.
앉으라고 권할 곳은 침대뿐이었다.
민수의 손짓에 사양도 않고 침대에 걸터앉은 예진.
피곤한 얼굴로 주저앉아 작게 한숨 을 쉬는 그녀의 옆얼굴에 살짝 들뜨 려는 마음을 꽉 짓밟아대며 민수가 물었다.
“그래서 무슨 일이에요? 뭐 중요한 거라면 모두가 있는 앞에서 하는 게……
“••••••래요?”
메마른 입술에서 기어들어 가는 목 소리가 들려왔다.
뭐라 하는 건가 싶어 슬그머니 고 개를 기울이자.
머뭇거리던 그녀가 이윽고 살짝 큰 목소리로 다시금 중얼거렸다.
“안아…… 줄래요?”
“•…”네?”
“그냥 아무것도 묻지 말고. 안아줄 래요? 살짝이라도 좋으니까.”
……뭐야.
이 사람 갑자기 왜 이래?
예진 씨 이런 캐릭터 아니었는데?
‘뭔 일 있었나? 갑자기 무슨 소리 르……’
사람이 안 하던 짓을 하려면 죽을 징조라던가.
아니, 이게 뭔 재수 없는 소리람.
아무튼, 그녀가 먼저 말하기엔 너 무 충격적인 요청이었다.
누구보다 앞장서서 몬스터 뚝배기 부수고 다니던 이 전직 여경이.
지금 자기 입으로 날 좀 안아달라 고 한 거야?
“……무슨 일 있어요?”
“일이야 많죠. 너무 많아서……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부탁이에요. 정 힘들면 그냥 살짝 기대기라도 할게요. 잠깐이면 되니 까……
그렇게 대답한 예진이 허락도 안 받고는 슬쩍 몸을 기대왔다.
갑작스레 나서니 놀라긴 했지만 그 렇다고 뿌리칠 수도 없다.
놀란 눈을 끔뻑이며 기대오던 예진 을 내려다보길 잠시.
이윽고 조심스레 손을 든 민수가 그녀의 어깨를 살그머니 안았다.
가까이서 보니, 뜻밖에도 예진은 체구가 작았다.
어깨도 좁고, 키도 아담하진 않지 만 그렇다고 크지도 않고.
하얗게 뜬 얼굴은 이젠 병색이 다 완연할 지경이다.
몬스터 잡고 다니는 것도 전부 스 킬빨이 겠지.
이런 체구로 그런 철퇴를 휘두를 힘이 날 리 없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정말 난 그녀에게 몹쓸 부탁을 많이 한 셈이다.
“예진 씨. 무슨……?”
“가끔 이러고 싶을 때가 있어요.”
나직한 중얼거림이 들려올 때마다 심장 고동이 느껴졌다.
잠시 말문을 멈춘 민수가 예진의 이어지는 예진의 푸념을 경청했다.
“이 ‘게임’이 시작되기 전에도 가 끔. 살다 보면 힘든 일도 있으니까 요.”
“그렇죠.”
“하지만 어디에 기댈 데가 없었어 요. 지금은 부모님도 안 계시고, 이 상하게 연애도 못 했고. 언제나 혼 자였어요. 혼자서 어떻게든 하는 게 보통이었죠.”
평생 혼자서 발버둥 쳐왔다.
직장 동료들, 친구들, 인연들 사이 에 파묻혀서도 난 혼자였다.
역설적이게도, 사람과 교류하게 된 건 이 ‘게임’이 시작된 후부터였다.
세상이 망가지고 나서야.
사람이 귀해지고 나서야.
난 비로소 그 귀한 사람들과 뭔가 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이렇게 솔직하게 기대고 싶은 사람은 민수 씨가 처음이에요.”
“예진 씨. 그거……
“오해하지 마요. 딱히 그런 의미는 아니니까.”
거 참 딱 잘라서 선 그어주시네.
하지만 차라리 이렇게 먼저 말해주 는 게 더 편할 수도 있다. 괜한 오해는 면했다 싶어 민수가 한숨을 뱉었다.
“그냥…… 민수 씨가 있으면 든든 하고. 이 사람 있으면 질 것 같지가 않고. 무슨 일이든, 어떻게든 해결이 될 것 같고.”
“그래서 민수 씨가 너무도 보고 싶 었어요. 나 혼자서는 부담스러워서, 그래서……
나도 사람이라서.
가끔은 기대고 싶은 사람이라서.
믿을 구석을 찾고 싶어지는 약아빠 진 사람이라서.
“그래서 잠깐…… 민수 씨 좀 이용 한 것뿐이에요.”
“ 이용••••••
“그냥 그것뿐이에요.”
그렇게 말을 맺은 예진이 민수의 어깨에 얼굴을 비볐다.
화장기 없는 얼굴로 전해지는 뺨의 따스한 체온.
쑥스러운 기분으로 그녀에게 어깨 를 내주고 있길 잠시.
이윽고 기대 있던 그녀의 몸이 스 르르 멀어졌다.
고마워요.” “오히려 제가 더 고맙죠. 맘만 같 아선 사례라도 하고 싶은데.”
“하여튼 말이라도 못 하면 밉지나 않겠어.”
피식 웃은 예진이 그사이 흐트러졌 던 머리를 바로 했다.
불과 3분도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많은 게 변했다.
피곤에 절어 있던 얼굴에는 생기가 돌아왔고.
우울함만 빛나던 눈 또한 한결 맑 아져 있었다.
“미안해요. 내가 괜히 민수 씨 심 경만 복잡하게 만든 거 아닌가 모르 겠네요.”
“아무튼, 할 말 있다는 건 진짜예 요. 일단 그 가짜 보급관 작전 말인 데……
“관둘 겁니다.”
딱 자른 민수가 고개를 저었다.
다시금 밝아지나 싶던 예진의 표정 이 순간 굳어졌다.
“네?”
“오늘 보면서 생각했어요. 제 욕심 때문에 예진 씨한테 너무 큰 짐 지 운 게 아닌가 싶더라고요.” “무엇 하나 위험하지 않은 게 없는 데, 제 생각이 짧았어요.”
은비나 환일이라면 모를까, 그녀는 너무 위험하다.
마음가짐이 아니라 그녀가 지금 가 진 능력의 문제다.
현재 그녀의 직업은 가장 흔한 전사.
마땅한 퍼스트 킬 보상도 없는 알 몸뚱이나 마찬가지다.
“다른 방법을 찾아볼 거예요. 찾아 보면 뭐든 있지 않겠어요?”
“민수 씨.”
“정 뭣하면 환일 아저씨 일행 뚝 떼어다가 가짜 보급관 하나 더 만들 수도 있죠. 이렇게 된 거 작정하고 가짜를 양산해서 시선을 분산시키는 것도……
“민수 씨.”
더 이어지려던 말을 예진이 나서서 끊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갸웃하는 민수 앞에서.
바르르 떨리는 입술을 앙다문 예진 이 입을 열었다.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요.”
“뭐라고요?”
“지금 상태로도 필요한 목적은 다 달성했잖아요. 양측의 금화를 우리 둘이 독점했고, 플레이어들의 싸움 이 더 커지는 건 막았어요. 분명 성 공한 작전이라고요.”
만약 금화가 예정대로 플레이어들 에게 분배되었다면.
아마 강화된 거점 기능으로 강해진 플레이어들이 더 처절한 혈투를 벌 였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민수의 가짜 보급관 작전은 성공이다.
플레이어들이 싸울 동기 자체를 삭 초제근하는 것.
보급관인 그가 아니면 엄두도 낼 수 없는 계획이다.
“물론 그 와중에 황녀의 이목을 끌 긴 했지만, 그건 민수 씨가 어쩔 수 없는 사태였어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죠?”
“지금 와서 위험하단 이유로 포기 하기엔 너무 좋은 작전이라고요. 게 다가 이젠 너무 멀리 와버리기까지 했어요.”
물론 민수 말대로 이 작전은 위험 하다.
마땅한 보급선이 없는 두 황족은 이제 서로의 보급관을 노릴 것이다.
그리고 이미 그 최악의 가정은 현 실이 되었다.
황녀가 먼저 선수를 쳐 보급관 배 제를 시도했고, 조만간 황자 또한 민 수를 노리고 행동을 개시할 것이다.
“기호지세라고 했어요. 호랑이 등 에 탔으면 끝까지 가야죠.”
“그러다가 떨어져서 물려죽으면 어 쩌려고요?”
“죽는 건 민수 씨가 아니에요.” 누군가는 호랑이 등에 올라타야 한 다.
떨어지던, 끝까지 가던.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다.
“……민수 씨.”
하지만 그게 눈앞의 그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 유치한 말세를 끝내버릴 수 있 는 마지막 구원.
그는 절대 이런 위험을 감수해선 안 된다.
“오해 말고 들어줘요.”
그리고 그가 짊어져선 안 되는 짐 이라면.
누가 짊어져야 하는지는 명약관화 다.
“절 이용해 주세요.”
예진의 눈이 각오로 번쩍이기 시작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