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supply by myself! RAW novel - Chapter 50
나 혼자 무한 보급! 050화
이제는 기억하는 이도, 노래하는 이도 사라진.
아무래도 좋고 상관도 없는 아주 먼 옛날.
아직 나는 그 풍경을 기억하고 있 다.
“문을 닫아라. 꼭꼭 숨어라.”
“오늘도 만월이 땅을 비춘다.”
“땅을 적신다. 늑대의 울음소리.”
“오늘도 짐승의 밤이 밝았다.”
기억 속의 그 땅은 거칠지만 축복 받은 땅이었다.
걸음 내딛는 곳마다 살아 숨 쉬는 야성.
살찐 짐승들이 내 눈을 피해 무리 지어 도망 다니고.
평원의 백성들은 나를 두려워하며 집 안에 숨었지.
“그놈이 오늘도 양을 물어갔어. 그 빨간 웨어울프 말이야. 빌어먹을 놈!”
“양이면 차라리 낫지. 저어기 건넛 마을 페드로는 소를 물어갔다더라. 상상이 가? 그 살 통통한 암소를 그냥 덥석 낚아챘다던데.”
“무서워서 어디 살겠나. 어휴, 어디 서 사냥꾼이라도 고용해야 할 텐 데.”
모두가 나를 두려워하고.
모두가 나를 칭송하며.
모두가 나를 경외하면서.
모두가 나를 기억했다.
나는 이 넓은 평원의 왕.
뭇 짐승들을 다스리는 가장 아름다 운 짐승.
이 땅의 그 무엇도 나를 막지 못 하니.
이 땅의 모든 것은 나를 위해 존 재한다고.
이 땅의 치세는 앞으로도 영원하리 라고.
“그 악명 높은 웨어울프가 너로 군?”
그럴 거라 굳게 믿고 있었다.
보름달이 아름답던 어느 깊은 밤.
내 앞에 그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요즘 들어 아주 악명이 대단하시 던데.”
“양에, 염소에, 소, 닭, 말…… 그 와중에 사람은 또 안 물어갔고. 입 맛에 안 맞았나?”
“뭐, 내가 알 바는 아니지. 아무튼, 네가 제 세상처럼 날뛴 덕에 지금 내가 여기 있게 됐다.”
처음 본 그 남자의 첫인상은 퍽 괴상했다.
질 좋은 검은 가죽으로 만든 조끼.
허리춤에서 덜렁거리는 대여섯 개 의 칼.
손에 든 조그만 활. 등에 걸린 화 살집과 거기 꽂힌 화살들.
“허어. 이걸 또 알아보나? 영물은 영물이로군.”
그런 살벌한 차림새와는 달리, 너 무나도 아름다운 사내였다.
하얀 피부에 짙은 보랏빛의 머리카 락.
그리고 그 머리를 헤치고 돋아난 뿔 두 가닥.
“마족을 보는 건 처음인가? 하긴 괴상하긴 하겠지. 뿔 달린 사람이 흔한 것도 아니고.”
“한때 너희 웨어울프는 마족들의 사냥개였다고 하지. 뭐, 하긴 지금 와서 이런 얘기를 해서 뭐하나. 벌 써 천 년도 더 된 얘기인데.”
“주종관계는 옛날얘기고, 지금은 그냥 짐승과 사냥꾼일 뿐이야.”
돋아난 뿔을 매만지며 웃은 그는 활을 겨눴고.
그런 그 앞에서 나는 이빨을 드러 내며 으르렁거렸다.
태어나서 처음 만난 강대한 적을 앞둔 긴장감.
그래, 당신은 내가 처음 만난 호적 수였고.
이 평원의 왕좌를 다툴 수 있는 유일한 짐승이었다.
“덤벼라, 짐승! 그 털가죽이 얼마 나 비싸게 팔릴지 궁금하군!”
그렇게 시작된 싸움은 밤 깊은 시 간까지 이어졌다.
내 직감대로 그는 아주 강한 사냥 꾼이 었다.
생전 처음 만나는 호적수에 나 또 한 흥분했고.
그렇게 밤새도록, 우리는 사랑하듯 싸움을 주고받았다.
쏘고, 베고, 막고, 물고, 물리고.
흙바닥을 나뒹굴며 처절하게 투쟁 한 그 자리의 두 짐승.
평원의 밤을 피로 물들이며, 그렇 게 죽을 듯이 싸운 끝에.
“내가 운이 더 좋았군.”
말갛게 밝아오는 새벽하늘 아래, 결국 무릎 꿇은 건 나였다.
피에 젖은 숨을 헐떡이며 나는 눈 을 감았다.
패배한 짐승의 말로란 하나밖에 더 있겠는가.
나 또한 강자로서 약자들을 잡아먹 어 왔으니.
결국, 마찬가지로 강자에게 잡아먹 힐 수밖에.
“……이봐. 영물.”
하지만 그는, 어째선지 그러지 않 았다.
천천히 다가와서 내 머리에 손을 올린 사냥꾼.
빙긋 웃은 그는 지그시 눈을 감고, 노래하듯 주문을 읊었다.
“오래된 마족의 마법이다. 이젠 기 억하는 이들도 얼마 없지.”
“너희들의 진정한 모습을 일깨우는 주문이야.”
그의 손에서 시작된 빛이 나의 몸 을 뒤덮고.
얼마 안 가 검푸른 하늘 아래의 나는 낯선 모습이 되어 있었다.
털 한 줌 없는 가냘프고 하얀 팔 목.
날카로운 발톱도, 치명적인 송곳니 도 사라진 모습.
깜짝 놀란 순간 나는 인간 여자가 되어 있었다.
평원의 왕이 아닌, 새벽 공기에 추 위를 느끼는 연약한 여자가.
“이건 또 몰랐네. 설마 암놈이었 나?”
“하긴 성별이 대수인가? 냄새 잘
맡고 일 잘 하면 그만이지.”
벌거벗은 채 추위에 떠는 내 어깨 에 두꺼운 천 조각이 걸렸다.
천막을 펼쳐 내 알몸을 품위 있게 손수 가려주며.
그 마족 사냥꾼은 나의 떨리는 눈 을 향해 미소 지었다.
“원래대로라면 네 목을 베어가야 하지만 생각이 바뀌었다.”
“너처럼 아름다운 짐승은 죽이기에 너무 아깝거든.”
“하지만 어쨌든 내가 이겼으니, 앞 으로 내 사냥개로 일해 줘야겠다.” 아아, 지금 와서 돌이켜보자면.
그때 느꼈던 내 첫 감정은 치욕이 아니 었으리라.
평원의 왕으로서 야생의 들판을 헤 매면서도.
끝내 나를 만족스럽게 하지 못했던 무언가.
아주 깊은 곳에 가라앉았던 그 짙 은 아쉬움에.
나를 패배시킨 그가 직접 이름을 붙여주었으니.
“털 빛깔이 아주 곱구나.”
그 부드러운 시선.
그 아름다운 목소리.
그 치명적인 강함.
그 매혹적인 분위기.
아아, 맞아요. 당신을 기다리고 있 었어.
나를 패배시킬 당신을. 나를 쓰러 뜨릴 당신을.
나의 야성에 이름을 붙이고.
나의 아쉬움을 채워줄 당신을.
“이름은 &$@)&!로 할까?”
그 날, 나는 사냥개가 되었다.
불릴 이름과 섬길 주인님을 가진.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냥개가 되 었다.
[퀘스트 로그 재생 종료]
* * *
“민수 오빠!”
날카로운 은비의 외침에 퍼뜩 민수 가 정신을 차렸다.
눈앞에서 깜빡이는 조그만 메시지 창 몇 개.
얼른 시선을 돌린 민수가 그 내용 을 읽어 내렸다.
[도움말 – 퀘스트 로그를 발견하셨 습니다!] [도움말 – 퀘스트 로그는 시나리오 의 클리어 조건과 밀접한 관계가 있 습니다. 모든 퀘스트 로그를 찾아 시 나리오의 진짜 엔딩을 찾아내세요!] [플레이어 토큰 1000개가 지급되었 습니다.]진짜 엔딩.’ 생각도 못한 단어에 머릿속이 복잡 해졌다.
즉 이 퀘스트 로그는 시나리오의 진짜 엔딩을 발견하는 열쇠고.
이것들을 다 찾아내면 진짜 엔딩을 맞이할 수 있다는 건데.
‘이게 말이 되나? 이걸 다른 플레 이어가 찾을 수 있어?’
달성 조건이 가혹한 걸 넘어 불가 능하다.
마신의 수정탑을 발견해서 보급고 로 지정해야 얻을 수 있다니.
보급고 스킬이 없다면 애초에 달성 조차 할 수 없는 미션.
즉, 보급관 플레이어가 없다면 이 걸 놓칠 수밖에 없다.
‘ 게다가……
조금 전 본 퀘스트 로그 내용도 뒤숭숭하기 짝이 없다.
정황상 아마 그 마녀라는 존재의 시점으로 전개된 것 같은데.
그냥 설정이라고 치부하기엔 지나 치게 그 내용이 생생하다.
그냥 적당히 만들어낼 수 없는 생 동감이 담긴 로그.
게다가 감정까지 전달하는 이 의미 없는 설정.
어쩌면 이것들, 정말로……?
“어, 혀, 형님!”
「아카라트의 전사여! 수정탑이 무 너지고 있다!」
이어진 샤그룬의 외침에 번쩍 정신 이 들었다.
고개를 들자 보이는 건, 무너져가 는 검은 수정탑.
마치 파도에 쓸린 모래성이 무너져 가듯.
꼭대기부터 수정탑이 검은 먼지로 화하고 있었다.
“이, 이거 괜찮은 건가? 왜 갑자기 저 혼자 무너지고 난리래?”
“주변 경계해! 뭐 이상한 놈 튀어 나올지 모른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주변 플레이어 들의 움직임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얼른 무기를 거머쥔 채 골목을 주 시하는 플레이어들.
민수를 가로막으며 샤그룬과 오크 주술사들이 자리를 잡은 사이.
그 옆으로 슬쩍 다가온 은비가 칼 자루를 잡은 채 물었다.
“……오빠. 갑자기 왜 그래요?”
“뭐가?”
“표정 안 좋아서요. 꼭 못 볼 걸 본 사람처럼……
못 볼 거?
그래, 못 볼 거 보긴 했지.
그게 너무 끔찍한 거라 상상도 못 할 지경이니까.
복잡한 얼굴로 은비의 얼굴을 바라 보길 잠시, 이윽고 작게 탄식한 민 수가 입을 열었다.
“은비야.”
“네?”
“이 ‘게임’에서 진다는 건 어떤 의 미인 것 같아?”
“의, 의미요?”
이 판국에 왜 그런 걸 물어보는 걸까.
별스럽게 인상을 찡그린 은비가 이 윽고 가볍게 대답했다.
“……뭐 있겠어요? 죽는 거겠죠.”
“그렇게 생각하니?”
“달리 패배 조건 같은 게 없으니까 요. 진다고 하면 죽는 것뿐이죠. 그 리고 죽고 나선…… 아마 아무것도 없을 거고.”
종교 같은 걸 믿지 않는 은비에게 있어선 최선의 대답이었다.
그 모습을 우묵한 눈으로 바라보던 민수가 고개를 저었다.
“……아마 그런 게 아닐 거야.”
“아마 더…… 더 끔찍할지도 몰라. 죽는 거 이상으로.”
어째서인지 몬스터들과 함께 행동 하는 플레이어, 마녀.
그리고 퀘스트 로그를 통해 엿본, 아마 그녀의 것으로 추정되는 기억.
반복되는 시간을 암시하는 그녀의 발언과 행동.
너무 황당하고 끔찍한 거라 차마 확언할 수 없었지만.
그 모든 것들을 조합하면, 나오는 결론은 하나뿐.
‘시나리오는 누군가의 과거다.’
정규 시나리오 SSP-381735.
그 정체는 이 시나리오의 키 플레 이어, 마녀의 과거사다.
* * >1:
그렇게 수정탑 하나를 정리한 후. 어쨌든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온 민 수는 바로 계산을 시작했다.
“경매장. 여기 있는 것들을…… 채 지나 씨한테.”
[해당 물품들이 플레이어 채지나의 개인 간 거래창에 등록되었습니다.] [상대가 수락하였습니다. 거래가 성 사되었습니다.]대충 100여 개의 각종 식량에 생 리대 등의 필수품.
저쪽에서 요청한 각종 2급 무기류
40개.
거기에 첫 개시 기념으로 물티슈도 두 박스가량 얹어줬다.
설마 덤까지 얹어줄 줄은 몰랐는 지.
득달같이 채팅방으로 채지나의 감 사 인사가 돌아왔다.
‘합류하고 싶다는 얘기는 안 하네.’
물자 받고 나면 이쪽에 합류하겠다 는 얘기도 나올 것 같았는데.
그녀는 생각보다 더 쿨한 성격이었 다.
하긴 합류를 하겠다고 해도 그것대 로 문제다.
오크들까지 합세하면서 하안사거리 의 방어선은 거의 포화상태에 이르 렀다.
애당초 예상 이상으로 사망자나 부 상자가 나오지 않다 보니.
끊임없이 충원된 전력들이 목책 안 에 바글거리고 있었다.
‘여기서 더 늘리면 오히려 전투에 방해가 될 것 같으니……
일단 오늘 밤만 버티고 다시 생각 하자.
목책의 위치를 조정해서 방어선을 확장하고 그 틈에 다른 플레이어 집 단을 초대하는 식이면 어떻게든 되 겠지.
“……어라?”
“쟤들 왜 저래?”
하지만 막상 밤이 되니, 뜻밖의 사 태가 벌어졌다.
드디어 맞이한 7번째 웨이브의 밤.
목책 너머에서 빌빌거리는 늑대들 의 모습에 잔뜩 긴장해 있던 플레이 어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뭐 잘못 먹었나? 어제보다 힘을 못 쓴다?”
“게다가 머릿수도 좀 준 것 같 고……
의뭉스러운 분위기 가운데서도 다 들 긴장은 놓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엿새 동안 시달린 게 있다.
그렇게 간단하게 안심할 만큼 이들 도 단순하지 않았지만.
“깨갱깽!”
“어?”
막상 부딪쳐보니 더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병운의 월도에 간단하게 두 동강이 나는 블러드하운드.
자기가 해놓고도 믿어지지 않는 결 과에 병운이 눈을 부릅떴다.
“이거 설마…… “왜 그래?”
“……야! 다 달려들어! 이 새끼들 다 X밥이야! 지금 패면 다 찌발라 버릴 수 있어!”
허세 섞인 병운의 외침이 결정타였 다.
조금 전까지의 공포 섞인 침묵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목책 사면의 출입문을 박차며 플레이어들이 우르 르 뛰쳐나갔다.
“우와아아악! x발! 조져! 조져!”
“이 개X끼들! 니들 다 뒤졌다!”
“야! 안에서 비 플레이어들 나오라 고 해! 지금 아니면 각성 못 한다!”
엿새간 시달리는 와중에도 착실하 게 성장한 플레이어들.
거기에 오크들과 비 플레이어 전투 원까지 합세하니 더는 무서울 게 없 었다.
크림슨 하운드를 상대할 때 조금 주춤하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그뿐.
민수의 총구가 불을 뿜을 새도 없 이.
약 40분 만에 모든 늑대가 코인으 로 화해 사라졌다.
[7일 차 습격이 종료되었습니다.] [모든 플레이어에게 플레이어 토큰 1500개가 지급됩니다.]“와아아아아!”
“야, X발! 오늘처럼만 하면 다 X 밥이네, 그냥!”
신나서 함성을 지르는 인간들과 오 크들.
만세 삼창하는 인간들 사이에서 몇 몇 오크들은 아예 북까지 두들기기 시작했다.
rz rz = rz rz I
요란한 오크들의 북소리가 깊은 밤 을 울렸다.
차분한 눈으로 그 승전보의 현장을 바라보는 민수 옆에서.
철퇴를 어깨에 진 예진이 옅은 미 소와 함께 다가왔다.
“이제 좀 알 것 같네요.”
“ 뭘요?”
“수정탑 말이에요. 그걸 파괴하면 할수록 늑대들이 약해지는 게 분명 해요. 그렇게 늑대들을 꾸준히 약화 해가면서 15일을 버티는 게 진정한 공략법인 거죠.”
그게 아니고서야 오늘의 이 상황을 설명할 방법이 없다.
뿌듯한 눈으로 예진이 민수를 바라 봤다.
“민수 씨가 호언장담한 대로네요. 민수 씨가 생각한 것이야말로 진짜 공략법……
“ 아뇨.”
“ 네?”
“이게 다가 아니에요.”
그래. 예진이 한 말도 아마 맞을 거다.
수정탑을 파괴해서 늑대들의 힘을 계속 약화한다.
그렇게 15일을 버텨서 클리어하는 게 아마도 정석이겠지.
하지만 그것은 평범한 플레이어의 방식.
이 시나리오의 진짜 엔딩을 알게 된 자신은 이제 그런 평범한 방식을 선택해선 안 된다.
‘메리트가 있으면 디메리트가. 위 험이 있으면 그만한 보상이.’
이유는 모르겠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어째서인지 보급관인 자신에게만 진짜 엔딩의 힌트가 주워졌고.
오직 나만이 그 길을 걸을 수 있 다면.
“진엔딩 봐주는 게 인지상정이지.”
제대로 구경해 주마.
이 시나리오의 진짜 엔딩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