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supply by myself! RAW novel - Chapter 9
나 혼자 무한 보급! 009화
문고리를 잡은 채 잠시 고민했다.
마음만 같아선 다른 파출소로 가고 싶지만.
적어도 민수가 알기로 다른 파출소 는 여기서 동 하나는 넘어가야 있었 다.
‘별수 없나.’
아무래도 하루 동안 불편한 동거를 감수해야 할 것 같다.
각오를 마친 민수가 천천히 파출소 의 문을 열었다.
“어우, 씨.”
문을 열자마자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똥 냄새인지 오줌 냄새인지. 아무 튼, 화장실에서나 맡을 것 같은 악 취.
여기 사람이 있다는 걸 알려주는 가장 확실한 증거였다.
천천히 벽에 등을 기댄 민수가 칼 을 뽑아 든 채 외쳤다.
“안에 있는 거 다 알고 있습니다.”
대답은 없다. 하지만 알 바 아니다.
“사정이 있어서 여기서 하루 묵고 가야 합니다.”
“딱히 뭐 어떻게 해보려고 여기 온 거 아닙니다.”
“도둑질도 안 할 거고요. 아무리 세상이 이렇게 됐어도 미쳤다고 파 출소를 털겠어요?”
“피곤하게 이러지 말고 나옵시다.”
나름 친절하게 말했다고 생각했지 만 역시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얼마나 꽁꽁 숨었는지 몰라도, 쉽 게 나오진 않을 것 같다.
고민스럽게 주변을 살피던 민수가 문득 메고 있던 가방을 내려놨다.
“먹을 걸 좀 가지고 있어요.”
바스락.
책상 너머에서 인기척이 들린다.
옳지, 걸렸다. 민수의 입가에 웃음 이 걸렸다.
“조금 여유 있게 챙겨왔습니다.”
“일행분 계시면 같이 나눠 드셔도 돼요.”
가방에서 꺼낸 빵 봉투를 일부러 요란스럽게 흔들었다.
텅 빈 파줄소를 울리는 빵 봉투의 바스락거리는 소리.
그렇게 빵을 들어 올린 채 기다리 길 잠시.
“……시, 실례합니다.”
맞은편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모습 을 드러냈다.
산발이 된 머리. 푸석거리는 피부. 퀭한 두 눈.
거지꼴이 다 된 경찰 제복. 주체할 수 없이 떨리는 어깨.
“저, 정말…… 그거 주시는 거예 요?” 그리고 한계에 달한 허기로 얼룩진 눈동자.
여전히 칼을 겨눈 채 민수가 말했 다.
“괜한 짓만 안 하면요.”
* * *
도예진.
파출소 안에서 마주친 여경의 이름 이었다.
“쩝쩝…… 우물우물…… “체하겠네. 천천히 먹어요.”
걸신들린 것처럼 빵을 먹어치우는 예진에게 초콜릿도 하나 내밀었다.
그것까지 게 눈 감추듯 먹어치운 예진이 슬금슬금 민수의 배낭을 향 했다.
“저,저기…… 조금 더……
“여기까지예요. 저 먹을 것도 있어 야죠.”
“죄송합니다……
“그리고 갑자기 음식 들어가면 체 합니다. 며칠째 굶었어요?”
“닷새…… 아니, 엿새……?”
오래도 버텼네. 민수가 혀를 찼다.
“아무튼, 먹을 만큼 먹었으면 화장 실 가서 좀 씻고 와요. 물도 내리 고. 진짜 똥 냄새 어지간하네.”
“무, 물이요? 하지만 지금 수도 다 끊겼는데……
“지금은 나와요. 어째서 그런 건지 는 묻지 말고.”
민수의 단언에 반신반의하며 예진 이 화장실로 향했다.
그리고 잠시 후. 화장실 쪽에서 기 겁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나, 나온다! 물!”
어지간히도 놀라운 모양.
하긴 그럴 만도 하지만.
아무튼, 이렇게 된 김에 내부 정리 라도 좀 하기로 했다.
창문을 열고 탈의실에서 가져온 방 향제를 여기저기 뿌려대길 잠시.
어떻게 샤워까지 하고 온 건지, 한 결 보송보송해진 모습으로 예지가 나타났다.
“저, 전기도 들어온다…… 대체 어 떻게……?”
“궁금해할 거 없다니까요? 아무튼, 여기 앉아 봐요.”
“아, 예. ……앗?!”
철컥.
자리에 앉기 무섭게 민수가 무언가 를 꺼내 들었다.
그녀가 씻고 오는 사이 슬쩍해둔 수갑 한 개.
순식간에 예진의 손목에 수갑을 채 우고, 나머지 한쪽을 가까운 수도관 파이프에 채웠다.
“이, 이게 뭐 하는 짓……?!”
“미안해요. 당신을 통 믿을 수가 없어서.”
“뭐, 뭐라고요?”
“아니, 그렇잖아요? 만난 지 한 시 간도 안 지났는데 뭘 믿고 당신을 풀어놔요?”
좀 과한 게 아닌가 싶었지만, 민수 의 입장에선 최선이었다.
무기도 있고, 식량도 있다는 걸 이 미 저 여자가 알고 있는 상황이다.
24시간 동안 행여 꼬박 졸기라도 했을 때 자신에게 뭔 짓을 할지 알 수 없었다.
“여기서 하루만 머물렀다 갈 거예 요. 그때는 풀어줄 테니 좀만 참아 요.” “ 미쳤어……
“세상이 미쳐서 그렇죠. 화장실 가 고 싶으면 말해요.” 그렇게 멋대로 말을 맺은 민수가 예진의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물론 그 와중에도 손에 든 단검을 잘 보이도록 책상에 올려뒀다.
기대는 안 했지만, 생각보단 위협 이 잘 먹힌 건지, 움찔하던 예진이 고개를 숙였다.
잠시간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다.
눈도 마주치지 않으면서 끊임없이 상대를 의식하는 괴상한 침묵.
하긴 다짜고짜 수갑 채운 상대한테 살가운 반응을 기대하면 그쪽이 미 친놈일 것이다.
‘근데 진짜 답답해 죽겠네.’
차라리 혼자라면 늘어지게 낮잠이 라도 자고 말지.
사람이 앞에 있으니 그마저도 여의 치 않았다.
뭐 시간 때울 거라도 없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민수가 책상에 놓인 컴퓨터 본체를 만지작거릴 때 였다.
“•…”저기.” “음?”
“플레이어…… 맞죠?”
민수의 단검을 뚱하니 바라보던 예 진이 입을 열었다.
왼손에 든 단검을 살짝 들어본 민 수가 대답했다.
“이 판국에 이런 날붙이 들고 돌아 다니는 사람이 플레이어 말고 있겠 어요?”
“하긴 그렇죠……
“그러는 그, 예진 씨는요? 플레이 어라는 단어 알고 있는 거 보니까 마찬가지인 것 같은데.”
“마, 맞아요. 직업은 전사고 스킬은 근력 강화 1레벨……
“말 안 해도 돼요. 궁금하지도 않 고.”
단지 비로소 말동무라도 해줄 생각 이 든 게 다행일 뿐이었다.
그리고 예진에게 정말로 듣고 싶은 건 따로 있었다.
“안 그래도 예진 씨한테 묻고 싶은 게 있어요.”
“묻고 싶은 거요?”
“오늘까지 해서 보름 가까이 지났 는데, 경찰이고 군대고 코빼기도 안 보이잖아요. 상식적으로 사이렌 소 리 정도는 들려야 정상일 텐데.” 아무리 근무 태만에 군기 빠진 경 찰과 군대라고 해도.
이 사단이 나도록 한 명도 밖에 나오지 않는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무언가 곡절이 있던지, 아니면 어 떤 불가항력적인 사태가 작용했던 지.
그 대답을 알려줄 수 있는 건 눈 앞의 예진뿐이었다.
“게다가 경찰이면 총도 있을 텐데, 그거라면 저 괴물들 상대로 좀 해볼 만한 여지가……
“……없어요.”
“ 네?”
“없어졌어요. 그날 새벽에.”
이후 이어진 예진의 설명에 의하면 이렇다.
보름 전 새벽, 그녀는 이 파출소에 서 선배 둘과 함께 당직 근무를 서 고 있었다고 한다.
새벽 3시 가까이 됐을 때 갑자기 파출소 내의 전기와 수도가 끊어졌 고.
당황한 사이 파출소 안에 있던 총 기가 모조리 사라졌다고 한다.
“사라졌다고요? 그냥 증발?”
“네. 가장 먼저 제게 사라졌고, 선 배가 차고 있던 것까지 꼭 녹아버리 듯 사라졌어요.”
“허어.”
“뭐가 이상하다고 보고할 틈도 없 었어요. 전기는 다 끊어지고. 휴대전 화부터 무전까지 통신도 모조리 다 먹통이 되고. 나가서 뭘 할 겨를조 차도 없었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파출소에 앉 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식량은 없고, 바깥에는 고블린들이 활개 치는 상황.
하다못해 컵라면 몇 개라도 구해보 자는 생각에 세 경찰은 삽자루 하나 씩 들고서 밖으로 나섰고.
“플레이어가 됐겠네요.”
“네. 각자 고블린 한 마리씩 잡자 마자 각성했어요.”
그래도 거기까진 분위기가 좋았다 고 한다.
젊은 순경들이니 생소한 육탄전에 적응하는 것도 빨랐고, 관할구역의 지형지물이나 취약지점도 빠삭하게 꿰고 있었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 지만, 구조대가 올 때까지는 버텨야 한다. 그렇게 다들 의견을 모아서 몬스터를 잡아다가 코인을 벌기 시 작했어요.” “처음엔 그럭저럭 잘 풀릴 줄 알았 어요. 셋이 뭉쳐 다니니 오크도 상 대할 만했고, 누가 올리는 건지 모 르지만 경매장에 식량도 올라오고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거기서 갑자기 말을 멈춘 예진이 머리를 감싸 안았다.
“……사, 사람들이……
“사람?”
“저, 저희는 생존자라고 생각해서, 지켜주려 했는데…… 갑자기…… 알 만하군.
민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예진의 목 소리에 울음기가 섞이기 시작했다.
“그, 그럴 줄은 몰랐어요. 웃으면서 다가와서, 경찰이 그래도 일한다고 해서, 철석같이 믿고 있었는데……
“했는데‘?”
“가, 갑자기 뒤에서 세 명이 더 나 타나더니…… 같이 있던 선배를 므I, 찌르, 찌, 찌……
그쯤 말한 예진이 결국 입가를 가 린 채 몸을 말았다.
이렇게 힘들어하는데 굳이 더 들을 필요는 없다. 얼른 다가간 민수가 그녀의 어깨를 두들겼다.
“괜찮아요. 잊어버려요.”
“죄, 죄송합니다. 죄송, 합니다
“그냥 자요. 괜히 이상한 생각하면 자기만 힘들어져요. 자고, 일어날 때 는 싹 잊어버리는 거예요. 오케이?”
민수의 다독임에 울먹이던 예진이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머리를 감싸 안은 채 몸을 동그랗 게 만 그녀가 벽을 바라보고 돌아누 웠다.
“흐 〒으 方 OO으……”
—’I , “—I • –I • 죽은 게 누군지는 모른다.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본 적 없 다.
내가 오기 일주일도 더 전에 죽어 버린 사람들.
하지만 한 다리 건너 듣는 타인의 죽음도, 기분을 가라앉게 하기 충분 했다.
비록 나와 아무 상관도 없고, 앞으 로도 없을 죽음일 테지만.
“……하아아.” 답답한 한숨 한 번. 조용히 일어나 앉아 있던 의자로 돌아갔다.
애써 잊고 있던 잡념들이 연달아 떠올랐다.
문밖을 나서기 무섭게 눈앞에서 어 른거리는 죽음들.
과연 나는 이 미치광이 ‘게임’ 속 에서 그 죽음들을 피할 수 있을까.
‘잊자. 지금은 잊자.’
지금은 살아남는 것만이 최선이다.
다시 한번 각오를 다지며 민수가 눈을 질끈 감았다.
긴장이 풀린 건지, 아니면 울다 지 쳐 버린 건지.
한 번 잠든 예진은 꽤 오랫동안 일어나지 않았다.
벽을 마주한 채 모로 누운 그녀에 게서 들려오는 나직한 숨소리.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던 민수의 뇌리에 문득 잊고 있던 게 떠올랐 다.
“경매장. 보관함의 보상 꺼내봐.”
땡그랑!
경매장의 화면을 뚫고 동그란 뭔가 가 떨어졌다.
은빛 금속 여기저기에 금테를 두른 조그만 팔찌 한 세트.
그중 한 개를 집어 들자 그 옆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아공간 보관함 제어기]
[등급 : 무등급]
[아공간 보관함과 연결된 팔찌 1세 트. 셀만 왕국의 숙련된 인형사들은 자신이 만든 인형에 이 사치스러운 액세서리를 달아 은밀한 보물들을 숨 겨놓는 이동식 트렁크로 활용했다.]
[특이 사항 : 가로, 세로, 높이 각
2m의 아공간 보관함 제공』
[판매가 : 비매품]
‘아공간 보관함?’
고개를 갸웃하며 팔찌를 두 팔에 찼다.
놀이공원 자유 이용권처럼 손목에 짝 달라붙는 팔찌 두 개.
착용감조차 느껴지지 않는 가뿐함 에 감탄하는 사이 눈앞에 메시지창 이 떠올랐다.
‘그거네. 인벤토리.’
하긴 슬슬 이런 거 하나 정도 나 올 것 같았지.
혀를 내두른 민수가 시험을 위해 품에 넣어둔 권총을 꺼내 들었다.
‘아공간으로.’
속으로 짧게 중얼거리자 손에 든
권총이 빛과 함께 사라졌다.
꺼내는 방법 또한 그리 어렵지 않 았다.
조금 전 사라진 권총을 떠올리자 오른손에 빛을 뿜으며 권총이 나타 났다.
‘나쁘지 않아.’
이게 있다면 대량의 식량을 손상 없이 간편하게 운반하고 다닐 수 있 다.
거북이 등딱지 마냥 백 팩 매고 다니는 것도 슬슬 버거워지던 차.
게다가 눈에 띄지 않고 무언가를 휴대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메리트 였다.
‘혹시라도 내 가방을 노리는 놈들 이 있을 수 있으니.’
새로운 장비를 확인하자 우울했던 기분이 나아졌다.
무언가가 나아지고, 개선되고, 앞으 로 나아가는 성취감.
지금 같은 상황에서 민수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소일거리였다.
그렇게 잠깐 침울했던 마음을 다잡 은 민수가 고개를 들었을 때였다.
갑자기 신경이 팽팽하게 잡아 당겨 졌다.
맹렬하고 불쾌하게, 육감을 잡아 늘이는 것 같은 긴장감.
‘육감 스킬?’
여기 올 때까지 몇 번이고 목숨을 부지하게 해준 스킬이 지금 위협을 경고하고 있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민수가 조심 스럽게 창가 쪽으로 다가갔다.
‘X발.’
파출소 옆 빈 가게를 쑤석거리며 다가오는 몽둥이 든 괴한들.
당장 눈에 띄는 건 다섯. 가게 안 에서 움직이는 그림자도 몇 개.
그냥 생존자라고 생각하며 조용히 넘어갈 수 있었지만.
그러기엔 육감 스킬이 경고하는 적 대감이 너무나도 확연했다.
아주 짧은 고민 끝에, 마음을 정한 민수가 옆에 있던 예진을 깨웠다.
“예진 씨. 예진 씨.”
“으음…… 네, 네에?”
“조용히.”
나직한 목소리에 깜짝 놀란 예진이 얼른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눈물로 퉁퉁 부은 그녀의 눈을 들 여다보며 민수가 물었다.
“무기 뭐 써요?”
“무, 무기요?”
“뭐 쓰냐고요. 플레이어면 손에 익 는 무기는 있을 거잖아요.”
“모, 몽둥이 썼어요. 그게 그나마 제일 쓰기 편해서……
“경매장. 200코인 안에서 둔기 아 무거나 하나 사.”
철컹!
경매장 화면을 뚫고 묵직한 철퇴 한 자루가 떨어졌다.
스파이크가 뾰족뾰족 돋아나 있는 척 봐도 흉악한 둔기 한 자루.
그걸 얼른 그녀의 손에 쥐여준 민 수가 주머니에서 수갑 열쇠를 꺼냈 다.
“싸울 수 있죠? 자기 몸은 스스로 지켜요. 난 당신 책임 못 지니까.”
“대, 대체 왜 이래요? 지금 밖에 몬스터라도 있는……?”
“몬스터보다 더 안 좋은 놈들이에 요.”
밖으로 나온 이상, 한 번은 마주칠 수밖에 없는 자들.
예진의 수갑을 푼 민수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중얼거렸다.
“사람들이에요.”
채앵! 은빛 단검이 민수의 손에서 서늘하게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