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supply by myself! RAW novel - Chapter 94
나 혼자 무한 보급! 094화
그리 높지 않다고는 하지만, 어디 까지나 주변의 산봉우리와 비교해서 그렇다는 것뿐.
거기에 험한 산세까지 합쳐지니 제 법 넘어가기가 버거웠다.
여기는 해발로 따지면 대충 몇 미 터쯤 될까.
군대 시절 산악행군의 기억을 되새 기며 민수가 후욱 단내를 뿜었다.
“허억, 허억, 허억……
“오빠. 운동 좀 해야겠다.”
“거, 젊은 놈이 왜 이리 힘을 못 써? 별로 높지도 않은 산인데.”
“씨이익…… 누구랑 누굴 비교 해……
정상에 오르기 무섭게 대자로 뻗은 민수가 대놓고 투덜거렸다.
그 와중에 주변 사람들은 숨조차 거칠어지지 않은 상태.
땀 한 방울 안 흐르는 동료들의 얼굴에 질려버린 민수가 고개를 저 었다.
‘생각해 보니 화나네. 이게 비교될 거리인가?’
마교도인 은비. 기사인지 짐승인지 구분도 안 가는 환일.
아예 대놓고 인간조차 아닌 나브.
심지어 저 얌전한 영은조차도 일단 직업이 격투가다.
총원 5명 중 4명이 전투 계열인 극단적 육체파 파티이다.
아무리 강하니 어쩌니 해도, 일단 전투계 직업은 아닌 게 분명한 보급 관과 비교하면.
이런 육체 능력상의 차이는 어느 정도 생길 수밖에 없다.
‘그나마 근력 강화 찍어서 쫓아나 가는 거지. 그나마도 없었으면 진작 낙오했을 거야.’
빨리 플레이어 토큰 벌어서 근력 강화라도 올리든지 해야지.
불합리한 기분을 숨기며 생수병을 쭉 비운 민수가 빈 병을 휙 내던졌 다.
“자. 쉴 만큼 쉬었으니 슬슬 출발 들 합시다.”
“저거 봐, 저거 봐. 아줌마. 민수 오빠 또 센 척한다!”
“……이해해. 남자들은 가끔 그럴 때가 있어.”
“하하하! 민수야. 여기서 젤 힘든 게 너다! 허세 안 부려도 다 이해 해!”
“주인님. 뭣하면 내가 업어줄까? 주인님 정도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데……
“아, 꺼져!”
아무리 그래도 사나이 갑빠가 있 지.
인제 와서 남의 등에 업혀서 내려 갈 까보냐.
물론 이제부터 남은 길이 내리막길 뿐이라는 걸 모르는 이는 없었다. 다 이해한다는 조원들의 미묘한 눈 빛을 등진 채.
휘적휘적 앞으로 나선 민수가 내리 막길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자! 출발!”
다행스럽게도 내려가는 길은 별 탈 없이 지나갔다.
며칠간 환일이 주도한 비호 사냥으 로 주변의 몬스터들이 씨가 마르기 도 했고 유별난 장애물 또한 눈에 띄지 않았다.
그렇게 반쯤 뛰다시피 하며 비탈길 을 내려가기를 한참.
드디어 목표 지점에 다다른 민수가 수풀에 숨은 채 고개를 쑥 내밀었 다.
“나브야. 어때?”
“……아직 자는 것 같은데.”
허공에 대고 킁킁 냄새를 맡은 나 브가 대답했다.
어떻게 냄새만 맡아서 사람이 일어 나 있는지, 여부까지 알 수 있는 건 지 모르겠다.
그녀의 놀라운 후각에 새삼스레 감 탄하며 민수가 눈매를 좁혔다.
‘어디 보자.’ 산 밑의 평평한 반석 근처에 자리 잡은 집채 세 개.
오두막, 농장, 목장으로 이루어진 초기 거점 구성.
예상대로 금화 독점으로 시설 업그 레이드를 하지 못한 게 분명하다.
턱을 쓰다듬으며 견적을 내는 민수 옆에서 은비가 물었다.
“오빠. 어떡할 거야? 이대로 바로 돌입?”
“어떤 친구들인지 모르는데 일단 일어날 때까지는 기다려 보지?”
“거, 누군지는 몰라도 팔자 좋은 사람들이네. 이 시국에 늘어지게 늦 잠이나 자고…… 잠깐.”
마침 오두막 문이 열리며 여성 한 명이 비척비척 걸어 나왔다.
부스스한 긴 머리를 쓰다듬으며 늘 어지게 기지개를 켜는 여성.
그 모습을 숨어서 살펴보던 민수가 휘파람을 불었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안 기다리고 좋네. 바로 갈 거 지?”
“그래야지. 아, 혹시나 싶어서 말하 는데 칼 뽑지 마라. 말 통할 것 같 은 사람들이면 적당히 교섭도 해봐
야……
“수아야!” 그때, 지금껏 조용히 숨어 있던 환 일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깜짝 놀라 환일을 돌아보는 민수와 그 일행들.
하지만 말릴 틈도 없이, 수풀을 뛰 쳐나온 환일이 허둥지둥 비탈길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자, 잠깐! 아저씨! 환일 아저씨! 뭐 작전은 세워보고……?!”
“……민수 학생. 조금 전에 환일 씨, 수아라고 했죠?”
“그, 그랬던 것 같은데…… 아, 잠 깐. 수아?”
“제가 기억하는 게 맞다면 분명 환 일 씨의……
등 뒤에서 들려오는 이런저런 동료 들의 고함들.
하지만 지금, 그런 것 따윈 알 바 아니다.
굴러떨어지듯 비탈길을 타고 내려 가는 환일.
오두막을 향해 달려가는 환일의 심 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수아야. 틀림없어! 분명 수아야!’ 금천구에 떨어져 고립된 우리 딸.
엄마 없이도 씩씩하고 착하게 커준 우리 장한 딸.
까마득히 떨어진 거리였지만, 아빠 가 딸을 못 알아볼 리 있으랴.
저 외모, 저 몸짓, 저 버릇.
분명 수아다. 우리 딸 수아가 저기 에 있다!
“수, 수아야! 수아야! 아빠 왔다!”
다급하게 외쳐댈 때마다 눈가가 시 큰하게 붉어진다.
지금껏 뱃속에 담고 있던 응어리가 조금씩 녹아서 사라진다.
우리 딸, 역시 우리 딸이다.
세상이 ‘게임’이 되고, 온갖 지옥도 가 펼쳐지는 와중에도.
우리 딸은 훌륭하게 살아남아서 결 국 아빠 곁으로 돌아왔구나!
“수아야아아아아!”
한스럽게 외쳐대는 아버지의 목소 리가 메아리치고.
어느새 딸이 있는 오두막은 지척까 지 다가왔다.
어찌 된 영문인지 이쪽이 외쳐대는 걸 전혀 못 들은 모양.
하지만 그런 게 무슨 상관이랴.
앞으로 몇 발짝만 더 가면, 드디어 우리 딸을……!
“……어?”
그때, 잘 내려가던 환일의 걸음이 우뚝 멈췄다.
조금 전 수아가 나온 오두막에서 나온 얄쌍한 체구의 남성.
뻐근한 목을 몇 번 돌린 그가 징 그럽게 웃더니.
자연스럽게 수아의 허리에 그 팔을 둘렀다.
“어, 어, 어, 어……?”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저 남자는 누구고, 왜 수아가 있던 집에서 같이 나오는 거지?
그보다 수아야. 너 왜 그렇게 좋다 고 실실 웃고 있니?
외간 남자가 네 허리에 손 감고 있다고.
뿌리쳐야 하잖냐. 응? 아빤 너 그 렇게 안 가르쳤어!
“헥, 헥. 아저씨. 거, 말 좀 듣 고…… 아.”
“……맙소사.”
“세상에. 난 몰라……
그사이 가까스로 그를 뒤쫓아 내려 온 일행들.
곳곳에서 탄식이 터지는 가운데, 민수조차도 입을 쩍 벌리고 말았다.
“와. 이건 좀……
서로의 허리에 손을 감은 채 찐한 키스를 나누는 두 남녀.
그런 그들을 축복하듯 하늘에서 내 리쬐는 장엄한 아침 햇살.
참 쓸데없을 정도로 장엄한 풍경이 더욱 비극적이었다.
그렇게 모두가 할 말을 잃은 가운 데.
뒤통수에 철퇴라도 맞은 얼굴로 환
일이 멍하니 입을 열었다.
“……수아야?” “깜짝이야!”
깜짝 놀란 여성이 냅다 허리춤에 달려 있던 단검을 뽑아 들었다.
딸이 날붙이를 겨누고 있음에도 환 일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멍한 눈으로 딸을 바라보는 아빠의 충격적인 시선.
그리고 잠시 후, 천천히 단검을 내 린 그녀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아빠?” 참으로 비극적인 부녀상봉이었다.
조금 다른 의미로.
무려 한 달하고도 반이 지나 이루 어진 부녀상봉.
그들의 사정을 아는 모두가 찐하고 감동적인 광경을 기대했지만.
늘 그러하듯, 현실은 썩 아름답지 않았다.
“……그래. 이름이 뭐라고?”
“하, 한태준이라고 합니다.”
“한태준……. 그래, 한태준이.”
“네, 네.” 착잡한 얼굴을 한 환일 앞에 꿇어 앉은 두 남녀.
다 큰 남녀가 혼나는 어린애들처럼 기가 죽어 있으니 참 꼴이 말이 아 니다.
여자 쪽은 그 말로만 듣던 환일의 딸, 이수아.
그리고 남자 쪽은 한태준.
진부하기까지 한 과정을 거쳐 연애 의 현장을 들켜버린, 어떤 의미로는 불쌍한 청춘들이었다.
“……그래. 알아. 우리 수아도 다 컸지. 남자 만나 연애도 할 때고, 그거 가지고 뭐라고 하려는 게 아 냐.”
“그, 그렇습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좀 때와 장 소를 가리라는 거야. 아니, 이 시국 이 지금 연애나 할 때인가? 매일 같이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지 치열 하게 고민해야 하는데 말이야!”
우와. 아저씨 제대로 열 받았네.
하긴 저 심정 이해 안 가는 건 아 니다.
딸내미가 외간 남자랑 키스하는 걸 눈앞에서 떡하니 목격했는데.
어떤 아버지가 그걸 그냥 웃고 넘 어갈 수 있을까.
‘심지어 저 아저씨는 따님이 연애 한다는 거 모르고 있었던 것 같은 데……
그게 정말 몰랐던 걸까. 아니면 모 르는 척을 했던 걸까.
전후 사정 들은 순간 나도 바로 눈치챘는데.
어쨌든 그의 현실 인식이 어땠는지 는 지금 하등 중요하지 않다.
한 발짝 떨어진 채 저 무겁고 음 침한 광경을 구경하던 人?이. 슬슬 머리에서 열이 오른 환일의 언성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아니, 젊은 친구가 말이야! 응? 뭐가 중요한지 지금 상황파악이 안 되나? 주변에 사람 잡아먹는 날개 돋친 호랑이들이 돌아다닌다고! 그 러면 뭘 해야 해?”
“호, 호랑이 잡아야죠. 네. 비 호……”
“그걸 알면서도 아침부터 그러긴 가?! 하 참. 생긴 건 멀끔하게 잘 생겨가지고선 이 무슨……
“……잠깐. 아빠. 나도 말 좀 하 자.” 잠자코 듣고만 있던 수아가 기어코 입을 열었다.
홱 돌아간 그녀의 시선이 향한 곳 은 환일의 바로 옆.
조신하게 앉아 있는 은영을 노려보 는 수아의 눈빛이 슬슬 찌그러지기 시작했다.
“조금 전부터 엄청 신경 쓰였는 데…… 이 아주머니, 누구야?”
“어, 어? 아빠 동료야. 동료. 소개 했다시피 이름은 박은영……
“그냥 동료가 아니구만! 그 손! 손! 손은 왜 잡고 있어?!” 날 선 지적에 얼른 잡고 있던 손 을 놓아버리는 환일과 은영.
하지만 인제 와서 수습하기엔 너무 늦어버렸다.
환일과 은영을 번갈아 바라보는 수 아의 얼굴이 본격적으로 일그러졌 다.
“내가 보면 모를 줄 알아? 저 아 주머니, 아빠랑 어…… 그렇고 그런 거! 맞지?”
“얘, 얘가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누가 들으면 오해하겠다!”
“아빠! 나도 여자야. 여자 육감 무 시해? 지금 눈빛부터 행동까지 아주 대놓고 표를 내고 있구만! 아빠 그 거라고!” “……만나서 반가워. 수아야.”
“아줌마! 나 말 놓으라고 한 적 없…… 아아, 미치겠네!”
어쨌든 손윗사람인데 더는 언성 높 이기도 뭐하다.
부스스한 머리를 벅벅 긁은 수아가 바로 환일로 타깃을 바꿨다.
“그래. 아빠. 나도 이해해. 나 돌도 지나기 전에 엄마 돌아가시고, 나도 클 만큼 컸으니까 아빠도 아빠 인생 찾아야지. 나도 그거 반대 안 한다 니까?”
“그건 고맙다. 근데 수아야. 이 건……
“근데 나도 아빠 사정 이해해 주 면, 아빠도 내 남자 정도는 시원하 게 인정해 줘야지! 그깟 키스가 뭐 대수라고 이렇게 난리야? 애 낳아다 보여주면 아주 뒤로 넘어가겠네!”
“그게 문제가 아니잖냐! 너랑 네 아빠랑 입장이 같아?!”
“뭐가 다른지 전혀 모르겠거든! 다 큰 어른들이 자기 갈 길 찾아가는 건데!”
“야! 이수아!”
채 열 마디도 가기 전에 히트 업 하는 분위기.
마주 보고 앉은 부녀가 서로를 향 해 말 같지도 않은 괴성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생긴 건 둘째 치고, 하는 짓만 보면 의심의 여지가 없는 부녀지간이다.
어디까지 가나 한번 보자 하는 심 정으로 구경하고 있던 중.
슬그머니 민수 옆으로 다가온 그림 자들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실례합니다. 산 너머에서 오셨다 고요?” “아, 네. 그렇습니다.” “반갑습니다. 김나영이라고 해요. 여긴 저희 남편이랑 아들.”
“박은재입니다. 이것도 인연인데 잘 해봅시다.”
“박재영 입니다!”
중년 남녀에 중학생쯤 되는 아들 하나.
딱 봐도 견적 나오는 3인 가족이 다.
웃으며 손을 내민 민수가 그들과 악수를 나눴다.
“김민수입니다. 여긴 우리 팀원은 서은비. 그리고 저쪽은 나브.”
“어…… 외국인, 인가요? 그보다 꼬리에 귀가……?”
“그냥 그런 직업이니 신경 쓰지 마 세요. 다들 인사 나누시죠.”
그렇게 민수의 주선으로 박은재 가 족과 일행들이 인사를 나누는 사이.
슬쩍 옆으로 한 발 빠진 민수가 눈매를 좁혔다.
“야, 이수아! 너 아빠한테 그러면 안 된다. 응? 내가 너 어떻게 길렀는 지 알아? 똥 기저귀 갈아가면서 그 렇게 애써 키워놨더니 머리 좀 굵어 졌다고 아빠한테 바락바락 대들어!”
“그거랑 이게 무슨 상관이야? 내가 아빠 거야? 아빠 소유물이야? 나도 내 인생은 알아서 챙겨! 그리고 말 이야 바른 말이지, 딸한테 말도 안 하고 새엄마 데려오는 건 또 무슨 경우야?!”
“흠흠. 저기. 장모님……?”
“……아. 태준 씨.”
“아무래도 금방 끝날 것 같지 않은 데, 저희라도 좀 자리를 비켜서 “오빠! 그 사람 아직 우리 엄마 아 냐! 장모님은 무슨 장모님이야!”
“이런 싹퉁바가지 없는 놈을 봤나? 뭐어? 장모? 누가 누구 장모야, 이 자식아!”
이야, 완전 개판 났네.
생각을 비우고 보니 일단 흥미진진 하긴 하다.
이 맛에 다들 막장드라마 그렇게 챙겨 보시는 건가.
끌끌 혀를 차던 민수가 옆으로 다 가온 은비를 보고는 입을 열었다.
“은비야. 기연(奇緣)이라는 단어 아니?”
“기연?”
“무협지 보면 그런 거 나오거든. 뭔가 주인공한테 주어지는 막 엄청 신기한 우연 같은 거. 보통 무협지 주인공은 기연을 거쳐서 강해지는 거야.”
뭐, 나도 무협은 잘 모르니 더 할 말은 없고.
짧게 한숨을 뱉은 민수가 목을 우 득우득 풀었다.
“왜 우리는 기연을 만나도 이딴 기 연을 만나는 건지 모르겠다.”
“……그냥 냅둘 생각은 없지?”
“당연한 걸 왜 물어? 흡!”
보관함에서 꺼낸 봉지라면 두 개.
적당히 거리를 잰 민수가 그것들을 냅다 집어던졌다.
“ 헛?!”
“라, 라면?!”
한창 악을 쓰던 부녀 사이에 정확 히 떨어지는 라면 봉지들.
한 달 만에 다시 만난 라면에 수 아의 눈이 크게 벌어지고.
뻐근한 어깨를 휘휘 돌리며 민수가 크게 외쳤다.
“동작 그만! 밥 먹고 합시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다. 새 식구도 생겼으니 오늘 아침은 특식으로 정했다.
즉석에서 끓여 내놓은 라면 열 개.
아니나 다를까, 주변의 반응은 실 로 열광적이었다.
“세상에. 라면 이거 얼마 만에 먹 어보는 거야?”
“여보. 혹시 밥은 없어?”
“오빠, 오빠! 이것도 먹어. 내가 조 금 전에 계란 가져와서 풀었……
“크흠! 흠!” 열심히 라면 퍼먹던 와중 들려온 헛기침 소리.
대놓고 불편함을 과시하는 환일의 표정에 수아와 태준이 얼른 고개를 돌렸다.
‘금방은 해결 안 되겠네.’
솔직히 저렇게까지 해야 하는 이유 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남의 집 사정에 괜히 깊이 관여해 봤자 좋을 게 없다.
납득하건, 타협하건. 전부 그들 스 스로 할 일이지.
한숨을 쉰 민수가 먼저 나무젓가락 을 놓았다.
“그럼 전 먼저 일어나보겠습니다.”
“밥이라도 먹고 가지그래? 아주머 니가 밥 가지러 갔다는데.”
“시간 없어. 이제부터 기연을 만나 러 갈 거거든.”
“기연?”
“그럼. 기연.”
가볍게 손을 흔들며 식탁에서 멀어 지는 민수.
살짝 의아해하는 은비의 시선을 뒤 로 한 채.
가볍게 기지개를 켜며 민수가 가까 운 수풀로 들어갔다.
“어디 보자아……
부스럭부스럭 수풀을 헤치며 한참 이나 안으로 향했다.
어느새 거점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 는 숲까지 들어왔다.
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깊은 숲속까지 다다르고 나서야.
비로소 걸음을 멈춘 민수가 씨익 웃었다.
“이 정도면 되겠네.”
그리고 다음 순간, 잽싸게 몸을 돌 린 민수.
하얀 코트 자락이 눈부시게 나부끼 고.
빛과 함께 그 손안에서 길쭉한 무 언가가 나타났다.
느닷없는 행동에 터져 나오는 다급 하게 부스럭대는 소리.
하지만 그보다 민수의 총구가 훨씬 빨랐다.
“꼼짝 마.”
새하얀 소총. 그 끝에서 번뜩이는 푸른 단검.
교본 같이 완벽한 견착 자세로 등 뒤의 혹의인을 겨눈 채.
방아쇠에 슬쩍 손을 올린 민수가 물었다.
“조금 전부터 우리 하는 거 너무 재밌게 구경하시던데.”
“무슨 용건으로 우리 뒤를 밟으셨 나?”
이게 진짜 기연(奇緣)이겠지.
흑의인을 노려보는 민수의 눈에 살 기가 감돌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