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0
“함부로 던지지 마. 훼손시키면 나는 죽는다고.”
“난 그것도 마음에 안 들어. 사람 목숨보다 책이 중하다는 게 말이 돼? 설령 도서관을 불태운다고 해도 내가 지켜 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
“너만 가만히 있으면 절대 그럴 일 없으니까 제발 조심 좀 해.”
시로네의 입에서 낯간지러운 말이 나온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그게 시로네였다.
매사에 단호하고 엄격하지만, 차갑지는 않다.
리안은 그런 시로네가 좋았다.
“너랑 있는 건 재밌지만, 도서관에만 처박혀 있으니 답답해 죽겠다.”
“대체 왜 여기서 죽치고 있는 거야? 수련은?”
“기본 훈련만. 도서관에서 공부 좀 하고 싶다고 했거든.”
시로네는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럼 빨리 공부해야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야?”
“심심해! 심심해! 심심해!”
벌러덩 누운 리안이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며 어리광을 부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시로네는 외면하고 책상으로 갔다.
딱히 리안의 게으름이 걱정스럽지는 않았다.
시로네의 성향이 물이라면 리안은 불이었다. 한번 타오르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불.
‘계기가 필요한 거겠지.’
꿈을 향한 첫걸음(2)
역사책을 챙긴 시로네가 리안에게 돌아왔다.
“일어나서 책 가져와. 공부하게.”
“끄응, 요즘 들어 훈련이 너무 빡세다니까.”
라인을 떠밀다시피 서재로 내보낸 시로네는 자리에 앉아 역사책을 펼쳤다.
근래에는 서류 작업보다 현장 작업이 빨리 끝나서 시간이 여유로웠다.
일단 책에 집중하자 페이지가 순식간에 넘어갔다.
대부분의 내용이 아는 것들이었고, 심지어는 앞으로 어떤 내용이 나올지도 예측이 되었다.
이는 머릿속에 담긴 지식의 범주가 책의 범주를 뛰어넘었음을 뜻했다.
육백쉰 권의 역사책을 이해하면, 남은 이백 권 정도는 쉽게 소화가 되는 것이다.
“야, 시로네. 여기 재밌는 책 찾았다.”
읽을 책을 찾은 리안은 엄청난 속도로 책장을 넘기는 시로네를 발견하고 감탄했다.
일례로 자신은 한 페이지를 넘기는 데 10시간이 넘게 걸린 적도 있었다.
분명 책을 읽고 있었는데 눈을 떠 보니 아침이 되었기 때문이다.
방해하지 않기 위해 시로네의 옆자리에 조용히 앉은 리안은 책을 펼쳤다.
‘검사 대 마법사.’
이런 제목의 책이었다.
“서문. 당신은 한 번이라도 이런 질문을 던져 보았을 것이다. 검사와 마법사가 단독으로 맞붙는다면 누가 이길 것인가?”
리안이 소리를 내며 읽자 시로네의 손이 멈칫했다.
마법사 지망생에게도 흥미로운 주제였다.
“나는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세계 각지를 떠돌았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아른거린다. 해발 6천 미터의 아르투스나 산맥. 그곳에는 산새를 잡아먹는 육식나무…….”
리안은 책을 덮어 버렸다.
“더럽게 재미없네.”
“뭐? 난 재밌는데!”
갑자기 소리치는 말에 리안이 어깨를 들썩였다.
관심 없는 척하더니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던 모양이다.
“재밌긴 뭐가 재밌어? 그림도 없고 검술 얘기도 안 나오잖아.”
“한 페이지도 안 읽어 놓고 할 소리냐, 그게!”
“작가라는 사람이 독자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지. 시작은 재밌게, 끝은 감동적으로.”
“이건 소설이 아니잖아. 책 줘 봐. 그래서 누가 이긴다는 건데?”
“누가 이기면 뭐 해? 마법사와 검사가 미쳤다고 맞짱을 뜨겠냐? 유리하면 싸우고 불리하면 도망치는 거지.”
시로네는 ‘검사 대 마법사’의 중간 부분을 펼쳐 놓고 페이지를 뒤졌다.
“어쩔 수 없이 싸워야 할 경우도 있을지 모르잖아. 만약 그렇게 된다면 누가 이길까?”
“글쎄다. 대충 예상을 해 본다면…….”
그때 책장 너머에서 날 선 목소리가 들렸다.
“당연히 검사가 이긴다.”
이어서 싸늘한 인상의 남자가 나타났다.
리안처럼 우람하지는 않았지만 키는 훨씬 컸고 팔다리 또한 늘씬하게 길었다.
오젠트 가문의 차남, 오젠트 라이였다.
형제라도 분위기나 외모는 리안과 상당히 달랐다. 일단 머릿결이 칠흑 같은 검은색이었다.
오젠트 가문에는 희석되지 않는 두 가지 혈통이 내려오는데 가주인 비쇼프, 장남, 차남은 흑발을 물려받았고, 물색의 머릿결은 장녀와 막내 리안에게 이어졌다.
덧붙여 국가 공인 3급의 검사인 리안의 할아버지 또한 푸른색 계통이었다.
가문의 식구들은 끈끈한 유대감을 가지고 있지만 때로는 혈통에 따라 편을 가르기도 한다는 점이 재밌다.
어떤 혈통이 두각을 드러내는가는 세대에 따라 다른데, 이번에는 비쇼프와 라이로 이어지는 흑발이 대세였다.
“아! 안녕하세요.”
시로네는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리안과 친구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없었기에 조금 전 대화를 들었다면 치도곤을 당할 일이었다.
“검사가 이긴다고? 어떻게 확신하지? 형이 검사라서?”
리안도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비꼬는 말투로 라이의 신경을 붙잡아 두려고 했다.
“확신 같은 거창한 말을 붙일 필요가 있을까? 각 대륙의 마법사와 검사가 어떤 위치에 서 있는지만 알아도 드러나는 사실이니까.”
라이는 동생과 집사의 관계를 신경 쓰지 않는 듯했으나 시로네는 안심할 수 없었다.
도서관에 찾아올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생각을 읽기 어려운 남자였다.
“직위야 어쨌든 간에 이건 맞짱이라고. 설마 전쟁터에 나가서도 그런 소리를 하려는 건 아니겠지? 내가 너보다 높으니 물러나라, 이렇게 말이야.”
리안은 한 방 날렸다는 듯 통쾌하게 웃었다.
하지만 라이는 반응조차 보이지 않고 무심한 눈으로 시로네를 돌아보았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나, 꼬마?”
“음…… 최고 수준이라고 가정한다면, 마법은 위력이 엄청나니까 검사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겠죠. 하지만 검사들은 그 대신에 육체 능력이 뛰어나니까 마법을 쓰기 전에 덤벼들면…….”
“아니, 틀렸어. 마법사는 검사를 이길 수 없다.”
시로네는 울컥했다. 아직 지망생에 불과하지만 엄연히 마법사 지망생이었다.
리안도 친구가 무시당하자 덩달아 열이 받았다.
“형이 뭔데 그런 소리를 하는 거야? 자기가 무슨 검사 대표라도 되는 줄 알아?”
라이는 입매를 끌어 올렸다. 리안이 끔찍하게 싫어하는 비소였다.
“검사의 긍지는 아무나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하지만 마법사의 지식은 돈으로 살 수 있지.”
라이의 말에는 뼈가 있었다.
실제로 검사에게는 마법을 방어하는 방법이 있었는데, 일명 ‘안티매직’이라 불리는 아티팩트였다.
안티매직에 담긴 특수한 정신 파장은 마법사의 스피릿 존을 교란시킨다.
즉, 집중력이 떨어지게 한다는 뜻이었다.
아티팩트는 보통 수정구 형태로 가공되고 갑옷이나 방패, 심지어는 검에도 장착이 가능하다.
가격 또한 마력 파동을 발산하는 드래곤의 심장이 재료로 들어가기에 상당한 고가였다.
다만 효율 10퍼센트인 아티팩트를 10개 장착한다고 100퍼센트 방어가 되는 건 아니다.
이는 파동의 공명하는 성질 때문이었다.
안티매직의 파동에 새로운 파동을 더한다고 해도 중첩되는 부분은 발생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아티팩트를 여러 개 장착할수록 오히려 효율은 떨어지는 특징이 있었다.
현존하는 최고의 아티팩트라면 대마법사 야크라가 만든 ‘오신장의 갑옷 세트’였다.
투구, 갑옷, 건틀렛, 부츠, 방패에 아티팩트가 박혀 있으며 각각 단일 최대치인 20퍼센트의 효율을 갖는다.
오신장의 갑옷 세트를 전부 장착했을 때 얻을 수 있는 마법 억제력은 자그마치 65퍼센트.
파동의 중첩을 최대한 우회한 결과였고, 65퍼센트의 집중력 감소란 마법사에게 치명적이었다.
또 다른 껄끄러움이라면 ‘정령의 정수’가 있었다.
자연계에서 극소량만 결정되는 정수는 불, 물, 바람, 땅의 네 종류가 있으며, 장착하면 마법의 발동은 물론 해당 속성을 완벽하게 막아 낼 수 있다.
현재까지 밝혀진 정수의 개수는 전 세계를 통틀어 17개―불 2, 물 3, 바람 5, 흙 7―로 하나의 가치가 소규모 왕국의 예산을 초과했다.
시로네는 상상해 보았다.
오신장의 갑옷 세트에 네 종의 정수를 장착한 스키마의 고수가 검을 휘두른다면 어떤 마법사가 이길 수 있을까?
물론 이론상의 얘기였다.
오신장 세트는 세계 각지로 흩어져 출처가 불분명했고, 정령의 정수는 국가 단위가 아니고서는 구할 엄두도 내지 못한다.
안티매직을 여러 개 장착하는 것도 문제였다.
파동방정식의 대가인 야크라조차 오신장의 갑옷 세트를 조율하기 위해 10년을 쏟아부었다.
한마디로 어설프게 안티매직의 파동을 중첩시키다가는 돈만 꼬라박는 셈이었다.
파동식과 공명 주파수, 마력의 상호작용이 집대성되지 않으면 효율은 올라가지 않는다.
안티매직 1퍼센트 올리려다가 귀족 재산 절반이 날아간다는 말은 그냥 하는 농담이 아니었다.
검사의 딜레마는 여기서 시작된다.
막대한 돈을 투자해 안티매직을 올리느니, 차라리 안티매직 마법을 배운 마법사를 데리고 다니는 게 훨씬 싸게 먹히는 길이었다.
라이의 말에는 이런 내용이 함축되어 있었다.
마법사는 검사의 종속에 불과하며, 마법사의 지식은 얼마든지 돈으로 살 수 있다고.
실제로 안티매직을 아티팩트로 개발한 자는 검사가 아니라 마법사들이다.
지금도 수많은 마법사들이 드래곤의 마력이 스피릿 존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고 있다.
성과를 내기만 하면 엄청난 부와 명예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마법으로 먹고사는 마법사가 마법을 약화시키는 방법을 연구하는 아이러니.
라이는 그 비참함을 지적하고 있었다.
돈 따위에 팔려 다니는 마법사가 검사의 긍지를 이길 수는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어때? 역사책을 좋아하는 것 같던데, 세계에서 마법사가 어떤 위치인지는 알고 있겠지? 마법이야 돈으로 봉쇄해 버리면 그만이다. 하지만 마법사는 검사의 훈련을 절대로 흉내 낼 수 없지.”
지극히 검사 중심의 관점이지만 시로네는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을 이해했다.
“그게 바로 마법사입니다.”
“뭐라?”
라이의 한쪽 눈썹이 올라갔다.
마법을 좋아하는 소년이라면 발끈해야 하는 대목에서 오히려 인정을 하다니.
“마법사는 만물의 조화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마법을 억제하는 방법을 연구한다고 하여 이상할 일은 아니지요. 그들이 중요시하는 것은 싸워서 이기느냐 지느냐가 아니라, 그것을 아느냐 모르느냐이니까요. 결과적으로 아티팩트 또한 그 경계 없는 지성의 산물입니다. 단지 그런 이유로 검사의 우위를 주장하는 건 처음부터 전제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라이는 리안과 달리 상대를 이길 수 있다면 어떤 논리를 펼쳐서라도 제압하는 성격이었다.
그럼에도 입을 굳게 다물고 있는 이유는, 결국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리안은 애써 웃음을 참았다.
‘흐흐흐, 꼴좋다. 내 친구 말발 끝내주지? 혓바닥이 검이라면 세계 최고의 검사일 거라고.’
반박할 말을 계속 찾고 있던 라이의 표정이 점차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없던 생각이 떠오르지는 않았다.
“이상은 현실과 다르다. 어떤 의도를 가졌든 싸워서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
라이가 차갑게 돌아서서 도서관을 나가자 리안의 웃음살이 볼록해졌다.
‘현실과 다르다고? 고작 한다는 말이 그거냐? 어휴, 바보 냄새. 어서 가라. 빨리 가 버려.’
그러다가 마침내 문이 닫히자 시로네를 끌어당기며 폭소를 터트렸다.
“푸하하하! 시로네, 최고야! 형이 저런 표정 짓는 거 진짜 처음 봤다고!”
리안에게 끌려 휘청거리면서도 시로네의 시선은 라이가 나간 곳을 향하고 있었다.
‘검사 대 마법사.’
어쩌면 라이의 말대로 현실은 다를지 모르지만, 시로네는 믿고 있었다.
자신의 약점마저 거침없이 실험대에 올리는 마법사의 끝없는 탐구 정신.
그 차가운 의지야말로 이 세상에 지성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일 것이라고.
***
대도서관은 한기를 느낄 만큼 썰렁했다.
지식으로 물샐틈없던 책장은 텅 비었고 대낮처럼 안을 밝히던 야광등도 꺼져 있었다.
오직 4층 창문에서 쏟아지는 햇살 한 가닥만이 시로네를 비추고 있을 뿐이었다.
햇살 속에서 시로네는 책장을 넘겼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페이지가 끝나고 커버가 닫혔다.
시로네는 책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책을 뒤집는 건 쉬운 일이다.
하지만 수백 페이지의 골짜기를 지나 마침내 뒤집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팔백쉰 권의 역사.
시로네는 대도서관의 역사책을 전부 읽었다.
‘끝났구나. 이것이 내 지식의 척추.’
따스했다.
가슴속에서 빛이 차오르는 느낌이었다.
비록 사냥꾼의 자식이지만 이제 누구와 대화를 해도 세상 전반에 대해 논할 수 있었다.
‘1년 6개월.’
처음의 너무 느리다 싶을 정도의 진도는 가속에 가속을 거듭해 결국 6개월을 단축시켰다.
이제 언제든 집으로 돌아갈 수 있고 가족의 목숨이 위험한 상황도 없을 터였다.
‘꿈만 같다.’
수많은 일들이 꿈결처럼 뇌리를 스쳤다.
꿈을 향한 첫걸음(3)
“어이, 시로네! 작업 끝났다면서? 아직 여기 있냐?”
문을 열면서 피어오른 먼지에 리안이 손을 휘저으며 헛기침을 했다.
시로네는 그저 미소만 지었다.
“뭐야, 그 표정의 의미는? 무슨 좋은 일 있어?”
“리안, 나 너희 집 구경시켜 주라.”
“응? 뭐라고?”
리안의 눈이 충격으로 크게 뜨였다.
어떤 상황에서도 실수할 여지를 남기지 않는 시로네가 본가에 들어가겠다니.
그 순간 비로소 리안은 시로네의 옆에 놓여 있는 한 권의 책을 발견했다.
“너…… 끝냈구나?”
“응. 더 이상 읽을 것이 없어. 적어도 이 도서관에는.”
더 이상 읽을 것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