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03
“본때를 보여 주자고! 저 망나니들!”
300명 가까운 생도들에게 둘러싸인 파이거의 얼굴이 그대로 얼어붙었다.
제아무리 스키마로 근력을 높여도 이 숫자를 상대할 수는 없었다.
“뭐야, 너희들! 진짜 죽고 싶어?”
“죽일 수 있으면 죽여 봐, 개자식아!”
2그룹에서 힘 좀 쓰는 생도가 먼저 선공을 가했다.
턱이 돌아간 파이거가 인상을 쓰며 고개를 되돌리는 순간 수십 명이 그를 땅바닥에 패대기쳤다.
“잠, 잠깐! 알았어! 그만…… 컥!”
현실을 직시한 파이거가 소리쳤으나 생도들의 울분은 쉽사리 풀리지 않았다.
이곳저곳에서 1그룹에 있던 자들이 똑같이 얻어터지고 있었다. 그룹 외의 생도들까지 나서 주먹을 날리는 상황이었다.
‘이러다 죽겠어!’
죽일 생각으로 때리는 사람은 없어도, 수십 명에게 맞으면 골로 갈 터였다.
파이거가 꽥 하고 소리쳤다.
“사람 살려! 교관님! 교관님!”
리안은 그저 무심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 리안을 돌아보며 테스가 말했다.
“후후, 이거 미안하네. 남이 차려 놓은 음식에 포크만 꽂은 셈이라서.”
“됐어. 영웅 노릇은 질색이니까. 그래서 일부러 교관이 없는 곳으로 부른 거고.”
“응? 너 정말 모르는 거야?”
“뭐가?”
사실임을 깨달은 테스가 황당하게 말했다.
“너 바보니? 교관들이 우리를 자유롭게 놔둘 리가 없잖아. 지금도 어디선가 지켜보고 있을걸. 이 상황도 전부 보고되고 있을 테고.”
“…….”
테스의 예상은 정확했다.
골절상을 입은 파이거는 훈련 부적합으로 강제 퇴출되었고, 그와 동조한 1그룹 생도들도 높은 성적을 얻었음에도 입학 불가 통보를 받았다.
그리고 리안은, 지원자 300명 중 1등으로 카이젠 검술학교에 입학했다.
‘그랬었지.’
리안과의 첫 만남을 회상한 테스가 배시시 웃으며 리안을 가리켰다.
“그랬던 리안이이~ 지금은 꼴찌를 맴돌고 있지요.”
“시끄러. 지나간 일은 갑자기 왜 들먹여? 누가 1등 시켜 달라고 했나?”
“후후, 그래도 참 대단해. 나라면 자괴감에 빠졌을 텐데, 하루도 안 거르고 훈련하는 거 보면.”
“자괴감 같은 소리 하네. 그딴 건 졸업한 지 오래다.”
“그래도 걱정되지 않아? 어쨌든 입학했으니 졸업은 해야 하고, 검사로 이름도 알려야 하는데. 이대로 가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될 거 아냐?”
“……아주 기를 죽이려고 작정을 했구나.”
“무슨 소리! 진짜로 걱정되니까 하는 소리야. 답답하기도 하고. 너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뭐야?”
원동력이라.
따지고 보면 다른 생도들에 비해 리안은 속이 편한 입장이었다.
“졸업이니 명예니, 그런 건 상관없어. 나는 강해지기만 하면 되니까. 주군을 위해 말이야.”
“응? 주군?”
“아, 기사 서약을 했거든.”
테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평생에 한 번만 할 수 있는 맹약이기에 주군을 선택할 때는 미래와 장래성을 꼼꼼히 따지기 마련이었다.
“누군데? 나도 알고 있는 사람이야?”
분명 유명한 사람이리라.
전쟁 영웅, 왕성의 장관, 그도 아니라면 지방 영주.
아무래도 인생을 통째로 맡기려면 그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시로네.”
“시로네? 흠, 모르겠는데. 뭐 하는 분인데?”
“내 친구. 지금 고향에 있는 마법학교에 다니고 있어.”
“친, 친구?”
테스의 턱이 벌어졌다.
친구라니. 게다가 정식 마법사도 아닌 학생이라니.
“너 무슨 생각이야? 아무리 친하다고 해도 기사 서약을 할 필요는 없잖아. 어라, 설마?”
테스는 불안해졌다.
있었다, 유명하지도 않고 장래성도 없는데 기사 서약을 하는 경우가.
“시로네라는 아이…… 혹시 여자야?”
“미쳤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아무리 내가 재능이 없어도 그런 식으로 기사 서약을 하지는 않아.”
“그래? 흐음.”
테스는 남몰래 안도했다.
“어쨌거나 함부로 평가하지 마. 나는 시로네가 최고가 될 거라고 믿어. 그래서 인생을 건 거야.”
“오호라.”
까놓고 말해서 남자들의 의기투합이라는 건데, 얼마나 대단한 친구인지 궁금했다.
‘시로네라. 마법학교 쪽은 관심이 없어서…….’
순간 그녀의 눈이 반짝였다.
사실 어떻게 말을 꺼낼까 고민하던 차에 좋은 핑곗거리가 생긴 것이다.
“나도 보여 주면 안 돼? 시로네라는 아이.”
“뭐? 네가 내 친구를 왜 봐?”
“그렇게 자랑을 하는데 궁금해서 견딜 수가 있어야지. 네가 부럽기도 하고. 한마디로 직장 먼저 잡아 두고 학교 다니는 거잖아.”
“그렇다고 뜬금없이 말이 되냐? 게다가 시로네는 크레아스에 있어. 여기랑 엄청 멀다고.”
“뭐 어때? 며칠 후면 학기도 끝나는데. 어차피 우리 가족은 점령지에 있어서 만날 사람도 없단 말이야. 크레아스에 놀러 가면 되지. 맞다, 거기 남쪽에 섬 하나 있잖아? 관광지라서 평소에 가 보고 싶었는데. 같이 놀러 가자.”
미리부터 준비한 테스의 말에 리안도 조금씩 흥미가 동하기 시작했다.
물론 테스와 단둘이 놀러 가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지만 시로네가 끼면 얘기가 달랐다.
“음, 하지만 셋이 가면 좀 어색할 텐데. 사교성이 좋은 편이 아니라서. 특히나 여자한테는.”
긍정적인 태도에 테스의 입술이 고양이처럼 올라갔다.
한편으로는 바위처럼 꿈쩍도 안 하는 그의 마음을 돌리는 시로네라는 사람이 더욱 궁금해졌다.
“시로네도 1명 데려오라고 해. 마법학교에 아는 여자들 많을 거 아냐? 2 대 2로 놀러 가는 거지. 어때?”
쌍쌍 여행이라.
재밌게 들리기는 했다.
무엇보다 학기가 끝나고 시로네랑 놀 궁리만 한 리안이기에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뭐, 일단 생각 좀 해 보고.”
이미 허락한 거나 마찬가지였기에 테스는 만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았어. 그럼 휴가를 위해 마지막 실기 평가를 화려하게 끝내 볼까?”
절반 이상의 생도들이 실기를 끝내고 어느덧 테스의 차례가 돌아왔다.
“17번 엘자인 테스. 평가 준비 끝!”
장애물 통과의 출발선에 선 테스가 소리치자 쿠안이 손가락을 구부리며 신호를 보냈다.
“출발해.”
라인을 따라 질주하는 테스는 진검으로 만든 장애물을 통과해 나갔다.
앉은키보다 낮은 칼날이 다가올 때는 몸이 굳을 수밖에 없었다.
‘유연성으로 승부를 보는 건 여기까지겠어. 이래서 외중력이 필요한 거구나.’
어릴 때부터 스키마를 연 그녀지만 외중력은 시도한 적이 없었다.
육체에 작용하는 스키마의 특성상 몸부터 만들어야 하는 성장기 시절에 고강도의 기술을 연마하는 건 어떤 유파에서도 권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이다!’
완전히 누운 상태에서만 빠져나갈 수 있는 장애물 앞에서 테스는 퍼스트 임팩트를 가했다.
반작용으로 올라오는 충격파가 스키마를 통해 전해졌다.
‘여기서 무게중심을 밖으로 뺀다!’
테스가 상체를 완전히 뒤로 눕히자 콧방울 위로 칼날이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성공이다!’
요행이 아니다. 여태까지 받은 모든 훈련들이 외중력을 받쳐 주는 느낌이었다.
“17번 엘자인 테스! 장애물 통과 끝!”
테스가 두 팔을 벌리고 보고하자 생도들의 박수갈채가 터졌다.
물론 그녀는 심장이 쿵쾅거리는 탓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게 외중력. 진짜로 되잖아?’
쿠안의 지도가 헛된 게 아니었다. 아마 처음부터 이것을 노리고 교육했을 터였다.
‘성격파탄자라도 교관은 교관이네.’
다음 시가전 무브먼트까지 멋지게 해낸 테스는 당당히 1위에 올랐다.
참가자가 얼마 남지 않았기에 이 성적을 뛰어넘을 사람은 없을 듯했다.
“28번 오젠트 리안. 평가 준비 끝!”
쿠안의 미간이 구겨졌다.
어차피 기대도 하지 않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기대감이 드는 묘한 생도였다.
“해 봐.”
리안은 땅을 박차고 돌진했다.
스키마가 딱히 필요치 않은 장애물은 발군의 수준으로 통과할 수 있었다. 문제는 마지막 장애물이었다.
‘퍼스트 임팩트!’
땅을 강하게 밟으면서 상체를 뒤로 젖혔다. 동시에 쿠안의 눈빛이 번뜩였다.
칼날이 자신의 목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것을 느낀 리안은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어라?’
그 순간, 쿠안이 엄청난 속도로 다가와 리안의 얼굴을 발로 걷어찼다.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으나, 덕분에 목이 떨어져 나가는 것은 면할 수 있었다.
쿠안이 절뚝거리며 다가왔다.
“이 자식아! 너 미쳤어? 죽고 싶어 환장했어? 스키마는 어따 팔아먹고 칼날에 목을 들이밀어?”
리안이 황급히 정신을 차리고 일어섰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했습니다! 스키마…….”
“무슨 헛소리야? 너 스키마가 뭔지 몰라? 스키마 안 되는 놈들은 실기에서 열외야!”
“아닙니다! 성공했습니다! 근력 강화 검사를 했고, 확실히 통과 판정 받았습니다!”
“뭐? 근력 강화? 어디서 거짓말을…….”
근력 강화는 본인 체중의 두 배를 들어 올리는 것으로, 스키마 여부를 검증하는 검사 중 하나였다.
주위를 둘러보던 쿠안은 리안의 체중을 계산해서 적당한 것을 찾아냈다.
“야, 너 여기 와서 이거 들어 봐.”
훈련장을 건축하고 남은 큼직한 돌덩어리였다.
리안은 심호흡을 하고 다가갔다. 솔직히 근력 강화 검사에도 최선을 다해 통과했던 만큼 긴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후우우우!”
돌덩어리를 껴안은 리안은 온 힘을 다해 허리를 폈다.
후들거리는 다리로 중심을 잡고 상체를 번쩍 세우자 묵직한 돌이 머리 위로 떠올랐다.
“후! 후! 어떻습니까?”
쿠안은 말없이 리안의 육체를 손으로 더듬었다.
근진동을 통해 느껴진 것을 확인한 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이런 빌어먹을.’
스키마가 아니었다.
수많은 생도를 교육시켰지만, 솔직히 이 정도로 재능이 없는 인간은 처음이었다.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아무리 소질이 떨어져도 최고 시설에서 교육을 받으면 스키마 정도는 하게 마련이었다. 하지만 리안은 그조차도 되지 않고 있었다.
세상에 검사 지망생은 널리고 널렸으니 재능이 없으면 그만일 테지만, 쿠안은 묘한 아쉬움이 남았다. 그런 마음이 들게 하는 놈이었다.
‘대체 얼마나 단련을 했으면…….’
이런 놈은 밉지 않다. 아니, 1명의 검사로서 존경해야 마땅한 의지력이었다.
그럼에도 주저하는 이유는 한 가지 문제 때문이었다.
‘재능이 너무 없어.’
조금만 있어도 어떻게 해 보겠는데 아예 전무한 수준이었던 것이다.
“리안, 미안하지만 너는 스키마를 열지 못했다.”
쿠안 교관의 입에서 미안하다는 얘기가 나온 건 처음이었기에 생도들의 표정이 황당하게 변했다.
리안은 믿지 않았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여기 이렇게…… 이 바위를 들고 있잖아요! 그럼 이건 뭔데요?”
쿠안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건…… 바보처럼 강인한 네놈의 근력일 뿐이야.”
리안은 멍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그가 들고 있던 바위가 쿵 하고 떨어졌다.
오젠트 리안.
카이젠 검술학교 1학기 꼴등.
예상치 못한 손님(1)
마법학교 전반기 수업이 끝났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한 학기를 마무리하는 교내의 분위기는 훈훈했다.
교사들도 제자들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집으로 돌아갈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육체 훈련이 주가 되는 검술학교에서는 수련만큼이나 휴식을 중요한 소양이라고 가르치지만, 정신을 단련하는 마법학교라고 해서 그 사실을 간과하는 건 아니었다.
정신 또한 눈에 보이지는 않아도 엄연히 인간에게 부여된 능력이기에, 아무리 끈기 있는 학생이라도 과열된 머리를 식히는 여유는 필요했다.
다만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되기에 알페아스 마법학교에서는 발표회를 하지 않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자유 주제로 논문을 써 올 것을 요구한다.
물론 시로네는 해당 사항이 아니었다. 초자연 심령과학 연구회에서 개최한 ‘보이지 않는 것’의 발표회로 최고점을 받은 그는 홀가분하게 방학을 맞이할 수 있었다.
학생들이 하나둘씩 집으로 향하는 방학 당일, 시로네는 텅 빈 제3수련장을 찾았다.
매일같이 영창 소리와 마법의 폭음으로 시끄러웠던 곳에 고즈넉한 정적만 흐르고 있었다.
제3수련장은 학교에서 규모가 큰 편에 속했다.
1,600미터 트랙이 외곽을 돌았고 8등분으로 쪼개진 구역에는 각종 마법 효과를 시험해 볼 수 있는 장치들이 마련되어 있었다.
시로네는 이동 마법 훈련장으로 들어갔다.
순간 이동, 플라이, 다크포트, 에어 워크 등, 마법사가 구사하는 이동 마법은 무수히 많다. 그 모든 마법을 수련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환경은 황량한 공터면 충분했다.
그곳에서 시로네는 반년의 성과를 되짚었다.
‘우선 이동 마법.’
시로네가 주력으로 하는 이동 마법은 순간 이동이었다. 거기에서 더욱 발전하여 곡선 이동의 레인보우 드롭과, 좌우 이동을 고속으로 구사하는 패트롤까지 습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