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061
시로네의 눈이 가늘어졌다.
‘영악한 놈.’
어쨌거나 당장은 페르미가 토르미아에 신경을 써 주는 게 나쁘지 않았다.
포니가 케시아의 국왕을 돌아보았다.
“반갑습니다. 토르미아의…….”
그녀가 말을 멈추고, 시로네도 국왕 마놀카를 보고 정신이 멍해졌다.
“…….”
미라처럼 앙상한 몸, 얼굴에는 주름이 가득했고 죽은 듯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진짜 죽은 것 같은데.’
마약에 생각이 미친 시로네가 눈에 살기를 드러내며 페르미를 노려보았다.
“페르미, 너 이 자식……!”
왕을 미라로 만들어서 데려오다니.
“내가 뭐? 아…….”
깨달은 페르미가 마놀카를 흔들었다.
“영감님, 영감님. 좀 일어나 봐요. 자지 말라니까.”
“어, 어?”
국왕의 몸이 부르르 떨리더니 정신을 차린 듯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 벌써 도착했나? 헐헐. 반갑네, 젊은이들. 케시아의 국왕 마놀카라고 하네.”
시로네가 물었다.
“괜찮으세요? 몸이 안 좋으신 것 같은데.”
“다들 그렇게 말을 하지. 내가 원체 살이 안 찌는 체질이라서 말이야. 껄껄껄!”
“…….”
페르미가 어깨를 으쓱했다.
“뭐만 했다고 하면 나냐? 이 영감님은 원래 그래. 나이도 72세, 한창 청춘이시라고.”
‘172살은 되어 보이는데.’
모두 같은 생각이었다.
“청춘은 예끼, 이놈아. 이 나이 먹고 무슨 욕심이 있겠나? 뭔가 하고 싶으면 이 청년에게 말하게. 그나저나 케시아가 성전에 오다니, 죽기 전에 한은 풀었구먼.”
“죽기는 왜 죽어요? 이제 조만간 전 세계의 미녀들이 영감님에게 청혼할 텐데.”
“너무 치열하게 살지 마, 이놈아. 세상에 치이는 게 인간이라지만, 같이 치받아 버리면 네 골만 깨져. 뭐든지 적당히 하라고, 적당히.”
“네, 네.”
그들의 대화를 다 들었음에도 어떤 관계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대체 뭐야?’
시로네가 생각에 잠긴 그때, 본청의 문이 활짝 열리며 음악이 울려 퍼졌다.
“어서 오십시오! 세계의 지도자들이여!”
건장한 체격에 턱이 갈라진 말끔한 인상의 남자가 호위조차 없이 등장했다.
‘기스.’
자이브의 왕이었다.
“전야제는 12개국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치러지지만, 기다리는 분들에게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이렇게 막간의 행사를 준비했습니다.”
“막간의 행사?”
모두가 의아해하는 그때 본청에서 기스보다 키가 훌쩍 큰 여자가 나왔다.
“……어?”
분해의 대천사 사티엘.
“소개합니다. 앞으로 자이브의 미래를 이끌 새로운 힘. 천국의 군대입니다.”
본청의 옥상이 번쩍하더니 수백 개의 섬광이 교차하며 하늘로 솟구쳤다.
섬광 하나하나가 천사였고, 각기 다른 개념의 사법 광륜이 동시에 펼쳐졌다.
“빌어먹을.”
세상이 진동하는 듯한 압도적인 위력에 관리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기스가 두 팔을 벌렸다.
“자이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성전의 규칙 (1)
하늘을 가득 채운 천사들의 집합을 올려다보며 왕들은 망연자실했다.
‘설마설마했더니.’
천국의 군대가 자이브를 기점으로 종적을 감추었다는 보고는 들은 바였다.
‘천사를 끌어들여?’
원하는 것을 알면 귀신하고도 거래하는 게 인간이지만 충격은 상당했다.
‘타협의 여지가 남아 있었나? 저 정도 규모면 국가 하나를 폭격할 수준인데.’
사티엘은 각국의 행렬을 빠르게 살폈다.
‘이카엘은 어디 있지?’
네피림 옆에는 없는 것 같다.
‘이미 빼돌린 건가? 아니, 그럴 수는 없겠지. 내가 여기 있는 한…….’
그녀의 눈이 부릅떠졌다.
‘사탄!’
구스타프 하비츠.
천국에서 싸웠을 때하고는 형태가 다르지만 사탄의 기운은 그대로였다.
결합의 대천사 메티엘을 비롯해, 수많은 천사를 소멸시킨 천국 붕괴의 장본인.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사티엘의 치솟는 분노를 느낀 하비츠가 처음으로 흥미를 드러냈다.
“호오? 천사?”
안장 위로 올라가 돌아서 앉은 그가 우오린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손으로 햇빛을 가렸다.
“흐음, 사티엘이군. 익숙한 느낌이야. 그래, 내가 저것들을 집어삼켰지.”
기억보다 본질적인 느낌으로 하비츠는 사탄의 모든 과거를 흡수했다.
“어이구, 무서워라.”
신의 주파수를 통해 천사들의 살의를 들은 하비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확고한 원망. 저것들은 그게 문제야. 뭐든지 명확해야 하거든.”
매섭게 눈을 치켜뜨고 있는 사티엘이 보였다.
“에, 에에.”
혀를 길게 빼낸 그가 풍경 속의 사티엘을 핥듯 혀끝을 위아래로 놀렸다.
사티엘의 성광체가 무섭게 진동했다.
“이 벌레 같은 자식이!”
“흐흐흐. 에, 에에. 흐흐흐흐.”
웃음을 참지 못하는 와중에도 하비츠는 혀를 더욱 지저분하게 놀렸다.
“분해시켜 주마!”
사티엘의 성광체가 광륜으로 퍼지고, 하늘의 천사들이 포격 태세를 취했다.
기스가 침착하게 말했다.
“참으세요.”
“닥쳐. 인간 따위가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하지 마. 너부터 죽여 줄까?”
“그거야 상관없지만, 여기서 소란을 부리면 이카엘이 좋아할 텐데요?”
“…….”
빛의 고리가 구체로 되돌아왔다.
“사탄 또한 계획에 있습니다. 저를 믿으세요. 이카엘은 당신보다 불행해질 겁니다.”
‘이카엘.’
사티엘이 이를 뿌드득 가는 소리를 들으며 기스는 입꼬리를 올렸다.
‘천사와 거래할 수 있는 이유. 사티엘의 동기가 지극히 인간적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이카엘이 지른 불이지만.
‘감정은 곧 욕망. 그리고 욕망을 가진 존재라면 무엇이든 통제할 수 있다.’
자이브의 국민처럼.
사티엘이 본청으로 돌아서며 말했다.
“오래 기다리지 않을 것이다. 이카엘을 데려와서 피눈물을 흘리게 만들어.”
“……알겠습니다.”
평천사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감추는 가운데 타국의 관리들은 심각했다.
‘산 넘어 산이로군.’
시로네가 말했다.
“사티엘이 규합시킨 평천사의 숫자가 300명이 넘어요. 마라까지 더하면 단일 국가의 화력으로는 아마 최상급이 아닐까 싶은데요.”
예전의 인류가 아니다.
“세계 인구의 3분의 1이 줄었지. 30개의 국가가 지도에서 사라졌어. 핵심 인력도 부족하고, 이제는 이렇다 할 강대국도 없는 상황이야.”
루피스트가 고개를 돌렸다.
“타국의 카드가 만만치 않아. 토르미아도 문제지만, 너의 신념도 관철시키기 어려울 것 같은데.”
“…….”
생각에 잠긴 시로네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총력전.”
“아르간. 프리지.”
진리의 피라미드가 지평선 쪽에 아른거리는 곳에서 시로네가 걸음을 멈췄다.
“네, 메시아님.”
일행이 의아하게 쳐다보는 가운데 2명의 사도가 즉각 무릎을 굽혔다.
“자이브로 가라. 지금 당장.”
“네?”
진리의 피라미드를 눈앞에 두고 갑자기 목적지를 바꾼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어찌하여…….”
“천사들의 행방을 찾았어. 12사도가 전부 소집될 거야. 거기서 내 지시에 따라.”
천사라는 말에 사도의 눈빛이 변했다.
“알겠습니다.”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땅을 박차고 날아오른 사도들이 드래곤으로 변했다.
순식간에 하늘 높이 날아오른 기룡과 빙룡의 모습에 아레스 일행은 새삼 떠올렸다.
‘그래, 드래곤이었지.’
말라붙은 나그낙 오아시스를 엄청난 마법으로 복구시킨 장본인이었다.
글렌은 걱정스러웠다.
“드래곤이 없이 괜찮을까? 진리의 피라미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는 미지의 공간이야.”
루키아의 감정병이 유예되었으니 다음으로 생각해야 할 것은 안전이었다.
카니스가 쏘아붙였다.
“자신 없으면 돌아가. 드래곤 같은 거 없어도 우리끼리 잘해 왔으니까.”
글렌도 지지 않았다.
“만반의 준비를 하자는 거야. 전력 이탈은 어떤 상황에서도 큰 변수지. 마법사는 똑똑하다고 들었는데, 이제 보니 모두 그런 건 아닌 모양이군.”
“뭐가 어째?”
나그낙 오아시스에서 충돌했던 감정이 2차전으로 번질 기미가 보였다.
“그러는 너야말로 애인이 아플 때는……!”
카니스가 흠칫 말을 멈췄다.
“쳇, 됐어.”
그에게도 아린이라는 소중한 사람이 있었다.
그 사실을 느낀 글렌의 감정도 누그러졌으나, 확실히 해 둘 필요는 있었다.
“야훼가 루키아를 도와준 건 사실이야. 내 목숨으로 갚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신앙이 꺾이는 일은 없을 거야. 나는 여전히 그를 부정한다.”
“누가 뭐래? 알았다고.”
대가를 바라며 돕는 건 치사하지 않은가.
물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기에 글렌도 뒤늦게 카니스를 인정했다.
‘……그래도 마법사군.’
카니스가 투덜대며 자리로 돌아오자 아린이 미소를 지으며 손을 잡았다.
-잘 참았어. 제발 성질 좀 죽여.
정신 채널이었다.
-내가 뭐? 아까부터 계속 징징거리잖아. 물론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아린이 그런 상황에 처했다면 끔찍했을 터였다.
“후후.”
잠시 카니스를 바라보며 웃던 아린이 모두가 보는 앞에서 뺨에 입을 맞추었다.
“……!”
카니스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지자 시로네가 피식 웃으며 시선을 돌렸다.
‘여전히 찰떡처럼 지내는구나.’
아무리 그래도 뺨에 입을 맞춘 정도로 카니스가 당황할 줄은 몰랐다.
‘나보다 더 심하네.’
그 모습을 부럽게 바라보던 글렌이 흘끗 시선을 돌리자 루키아가 한쪽 눈썹을 올렸다.
“뭐?”
“응? 아, 아니, 그냥 본 건데?”
“엉큼하기는.”
루키아가 글렌의 팔뚝을 세게 꼬집었다.
“아야! 미안해!”
서로의 사랑을 의심할 여지는 없지만 사제인 그들은 표현이 서툴렀다.
아레스가 시로네의 어깨를 짚었다.
“이런 사랑도 있고, 저런 사랑도 있는 거지.”
“아, 네. 그렇죠.”
정적이 흘렀다.
어색함이 극에 달할 즈음 아레스가 얼굴을 들이밀며 나직하게 물었다.
“우리 여동생은 ‘무사히’ 있는 거겠지?”
“네? 아, 그게…….”
시로네가 ‘무사히’의 기준을 못 잡고 더듬거리자 아레스가 폭소를 터트렸다.
“농담이야! 딱 봐도 알겠구먼. 오빠로서 말해 주는 건데, 각오 단단히 해야 할 거야. 카르미스는 한번 불타면 최고가 되기 전까지는 안 멈추거든.”
“…….”
진리의 피라미드로 걸어가는 아레스를 바라보며 시로네는 퀭한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