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088
“성전 긴급회의가 시작됩니다. 각국 대표들은 빠르게 본청으로 모이라는 전언입니다.”
타국 또한 현재의 사태에 소요가 이는 것 같았다.
‘키트라도 올 것이다.’
루피스트가 말했다.
“가지. 뭔가 말이 나올 테니까. 일단 들어 보고 대응하는 게 좋겠어.”
“먼저 가세요.”
의외의 발언에 루피스트가 고개를 돌렸으나 시로네는 입을 다물었다.
‘위저드.’
지금쯤이면 어떤 식으로든 결판이 났을 테지만, 너무 조용한 것이 이상했다.
“잠시 들를 데가 있어서요.”
시로네가 복도를 달려가자 루피스트와 플루는 서로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눈치챈 것은 아니겠지?”
“네.”
어차피 시간문제일 테지만.
***
하비츠와 일전을 벌인 장소에서, 위저드는 오랫동안 생각에 잠겨 있었다.
눈물마저 말라붙을 무렵, 그녀는 두 손을 천천히 들어 목을 움켜쥐었다.
“역시.”
죽는 게 맞다.
이미 꺾여 버린 정신으로 다시 하비츠를 상대할 수 있을 리 없지 않은가.
손아귀에 힘이 들어가고 뇌에 산소가 차단되자 풍경이 반짝거렸다.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으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죽는 건 두렵지 않아.’
진실로 두려운 것은 자신의 시체를 한심하게 내려다볼 시로네의 얼굴이었다.
‘미안해요, 오빠.’
의식이 멀어지고 죽음이 코앞까지 다가왔지만 마음은 점차 홀가분해졌다.
많은 것을 짊어졌기 때문이리라.
“흑. 흑.”
눈물이 흘러내렸다.
‘죽을 거야.’
시로네를 실망시키며 살아 있느니, 시체가 되어 그를 맞이하는 게 나았다.
‘조금만 더.’
쇼크에 정신이 경련하고 이제는 고통마저 느껴지지 않을 즈음…….
“으아아앙.”
위저드는 결국 손을 풀고 말았다.
-한 가지만 약속해.
시로네가 말했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해라. 네가 그렇게 생각했다면 내가 너를 지지할 거야. 다만…….
절대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돼.
“미안해요. 미안…….”
싸워야 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숙명, 천재적인 재능은 오직 그것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니까.
후들거리는 다리를 붙잡고 위저드는 일어섰다.
‘하비츠를 죽인다.’
이제는 무심하게 바라볼 수 없을 테지만 그만큼 하비츠를 이해하게 되었다.
‘죽이지 않으면 되는 거야.’
또한 그것이야말로 구스타프 4기예가 하비츠를 노리고 있는 방식이었다.
“하비츠는 죽일 수 없어.”
발칸이 말했다.
“하비츠를 죽이는 사건은 일어나지 않으니까. 따라서 하비츠를 죽이기 위해서는…….”
제타로가 말했다.
“죽여서는 안 된다는 거지.”
“그래. 모순이지만, 우리가 하비츠를 좋아하는 한 우리는 여전히 접근할 수 있다.”
나타샤가 물었다.
“배니싱은 어쩌고?”
“확실히 우리에게 순수성을 기대하기는 어렵지. 하지만 그건 하비츠를 잘 몰라서 하는 소리야.”
스모도가 말했다.
“배니싱을 막을 방법은 없지만 배니싱을 발동하지 않게 만들면 된다, 이런 얘기를 하고 싶은 거지?”
그것 또한 모순이지만.
“처음 깨달은 건 아벨라와 결혼했을 때야. 첫날밤에 그녀는 하비츠를 침대에 꽁꽁 묶었다.”
제타로도 그때를 회상했다.
“뒤늦게 암살 계획을 눈치채고 하비츠의 방으로 갔잖아. 아슬아슬했지.”
“아니, 이미 늦은 상황이었어. 아벨라가 을 찔렀으면 하비츠는 죽었을 거야. 하지만 그때 하비츠는…….”
발칸에게 나가라고 했다.
“모든 게 장난일 뿐이야. 호의를 갖고 엄습하는 죽음에 대해, 하비츠는 마치 기대하는 듯도 보인다. 자신의 죽음조차 흥미로운 거겠지.”
스모도가 말했다.
“말이 쉽지, 실제로는 어려운 일이야. 그런 모순을 유지할 수 있는 정신 상태라는 건 인간이 아니지.”
“혹은 진심이거나.”
발칸이 고개를 돌렸다.
“너 말이야.”
세 사람의 시선이 제타로에게 향했다.
하비츠는 숲속을 거닐며 중얼거렸다.
“쫄깃쫄깃하구먼.”
세상 모든 악행을 다 저지른 그가 유일하게 경험하지 못한 것이 있다.
‘죽는다는 건.’
그의 발밑에 10개의 그림자가 생기더니 시옥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사탄이시여, 부르셨습니까.”
여전히 위저드를 죽여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광신도는 신에게 불만을 품을 수 없었다.
“2명 빠졌군. 이빨이 나갔어.”
“죄송합니다.”
현재 4시와 12시가 사망한 상태였다.
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관점일 뿐, 신의 관점에서 개념은 사라지지 않는다.
“빨리 선출해라.”
다그친다고 될 일은 아니지만 하비츠는 제대로 놀아 보고 싶었다.
“알겠습니다.”
시옥.
심령권이 닫힌 상태에서 유일하게 현실과 지옥을 오갈 수 있는 12개의 자리였다.
***
이면 세계의 깊은 동굴 속.
에텔라는 어둠을 향해 돌아누운 채로 마치 죽은 듯이 잠에 빠져 있었다.
수없이 정화 시간을 물었다.
87해 2,875경…….
이면 세계가 존재한 이래 일곱 번째로 긴 시간을 듣는 순간 그녀는 무너졌다.
‘차라리 죽었으면.’
잠을 자는 와중에도 그녀는 간절히 바랐다.
이대로 눈을 감고 자신을 잊어버리면, 영원히 깨어나지 않기를 원했다.
“흑.”
수면조차 질려서, 현실을 깨달을 때면 맑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태극의 사슬로 연결되어 있는 샤갈은 동굴의 벽에 기대어 생각에 잠겼다.
시간은 차고 넘칠 정도로 많았다.
‘단장님.’
서커스단의 단장 라이덴.
유일하게 사랑했던 티아를 죽였고, 샤갈은 라이덴의 몸에 단도를 박아 넣었었다.
‘다 거짓이라고?’
풀잎 서커스단은 세상에 존재한 적이 없다.
‘아니, 과연 그럴까?’
지옥에 떨어져 이 지경이 되고 보니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다.
‘그럼 진짜는 뭔데?’
자신을 제외한 사람들은 기억 속에 진짜를 담고 살아가는 것일까?
그의 시선이 에텔라를 향했다.
‘티아.’
돌아누워 있어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샤갈에게 그녀는 분명 티아였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니까.’
사실은 티아의 얼굴도, 그녀가 누구인지도 모른다.
“티아.”
샤갈의 목소리에 에텔라의 어깨가 움찔했으나 그 이상의 움직임은 없었다.
사슬이 바닥을 차갑게 긁고, 짐승처럼 기어간 그가 에텔라의 위에 올라탔다.
늘 똑같은 행위, 똑같은 나날.
태극의 사슬은 서로의 감정을 섬뜩하리만치 자신의 것으로 느끼게 했다.
수치심, 울분, 쾌락과 분노가 뒤섞이면서 결국 아무것도 모르게 되어 버리는.
음과 양의 소용돌이.
리안이 물었다.
“파마광천성?”
“응. 성음을 통해서 마계를 공격할 생각이야. 이론상 가능한 일이지만, 얼마나 효과적일지는 알 수 없어.”
“독하군.”
진강의 각오란.
“설령 성공한다고 해도 성음이 자유로워지는 건 아니야. 육신이 사라져도 마는 남으니까. 진강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복수하려는 거야.”
씁쓸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겨 있던 리안이 시로네를 돌아보았다.
“그냥 놔두지는 않을 거지? 이제는 내가 있잖아. 게헨나의 불로 성음의 업을 정화시키면…….”
“그렇더라도 현실로 데려올 수는 없어. 유일한 방법은 시옥을 이용하는 거야.”
시간의 빈틈을 만드는 12명의 광신도.
“율법의 수 12는 인지를 뜻해. 인간은 전체를 12개로 쪼개서 받아들인다는 거지. 12시간, 12개의 별자리, 12명의 사도, 그리고 시옥. 모두 우연은 아닐 거야. 시옥이 죽었다고 해도, 그 개념은 누군가로 대체되겠지.”
“그 시옥의 자리에 진성음을 넣는다는 거로군. 하지만…… 어디에 가야 만날 수 있지?”
손유정의 허리에 매달려 있는 살인자의 얼굴, 리체라가 관심을 보였다.
“아마도 화공사 시스템제어 지부에 있을 겁니다.”
모두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다.
“시스템제어 지부?”
“아, 들은 적이 있거든요. 산 채로 지옥에 떨어진 생육신들은 흑승이 잡아가죠. 하지만 이례적으로 사탄이 선발한 엘리트는 그곳으로 간다고 하더군요.”
“엘리트라.”
시로네가 턱을 괴었다.
“사탄의 유혹에 넘어간 자들 말이군. 그럼 모르타싱어도 거기에 있겠네.”
십로회 서열 10위, 또한 손유정이 이카엘을 따라 인간 세상에 내려온 이유였다.
“모르타싱어?”
손유정이 리체라의 머리카락을 붙잡고 들어 올렸다.
“지금 어디에 있어?”
“아니 그게, 어디 있냐고 한들…….”
“빨리 대답해!”
사슬을 붙잡고 빠르게 돌리자 리체라의 침이 고리 형태로 뿜어졌다.
“으아아! 나도 몰라요! 지옥 서쪽에 있다고밖에는! 그것도 확실치 않다고요!”
시로네가 말했다.
“멈춰.”
“이 멍청아! 넌 아는 게 뭐야?”
손유정이 말을 듣지 않자 시로네는 다시 진심을 담아 목소리를 내뱉었다.
“멈추라고.”
목에 걸린 긴고아가 바짝 조여들면서 손유정의 눈이 크게 뜨였다.
“흐아아아!”
그 상태로 무릎을 꿇은 그녀가 세상 서러운 표정으로 시로네를 돌아보는데.
“응?”
정신을 차리고서야 느껴지는 기운에 그녀 또한 먼 산으로 시선을 넘겼다.
시로네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리안.”
“그래, 저게 뭐지?”
산속의 동굴에서 형용할 수 없는 요상한 기운이 아지랑이처럼 일렁거리고 있었다.
“히야…….”
언제 그랬냐는 듯 손유정이 입술을 모으며 일어서고, 시로네가 지시를 내렸다.
“가 보자.”
공간 이동을 시전해 동굴 앞에 착지하자 어둠 속에서 신음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남자와 여자였다.
‘샤이닝.’
손바닥에 빛의 구체를 띄우고 30미터 정도를 전진하자 흐릿한 실루엣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