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165
그때 비서가 들어왔다.
“폐하, 대회의실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20분 뒤에 각국 대표의 긴급 소집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
발칸이 친구들을 돌아보았다.
“봤지? 타국도 알고 있는 거야. 이대로 가다가는 전부 파멸이라는 것을.”
발칸이 일어서자 나타샤가 부축했다.
“가려고?”
“당연히 가야지. 다들 정신 차려. 아직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어. 남들이 지칠 때가 도박사의 타임이라고. 나타샤, 너는 우오린에게 가라.”
그의 눈이 광기로 번뜩였다.
“무슨 수를 써도 대회의에 참석하지 못하게 해.”
“알았어.”
나타샤가 방을 나가고, 옷을 갈아입은 발칸이 제타로의 어깨를 짚었다.
“설마 벌써 포기한 건 아니지?”
“발칸, 나는…….”
“너는 게임메이커야. 그것도 뛰어난 게임메이커지. 이유가 뭔지 알아?”
제타로가 고개를 들었다.
“네 룰은 늘 공정하니까. 게임에서 져도 변명의 여지가 없게 만들지. 하비츠가 네 게임을 좋아했던 이유는 바로 그것 때문이야.”
“…….”
“도박사인 나조차 승패를 짐작할 수 없는 게임을 만든 게 너야. 알겠어? 녀석을 즐겁게 하는 건 위저드가 아니라 바로 너라고.”
제타로의 눈에 생기가 돌았다.
‘하비츠.’
그저 망상일까?
동네 꼬마 4명이 모여 높은 담벼락 위를 올려다보며 노래를 불렀다.
“하비츠~ 하비츠~.”
노올자.
***
하비츠는 위저드를 노려보았다.
“흐으으으.”
상아탑의 별들은 하비츠의 일그러진 얼굴에 당혹감이 어린 것을 간파했다.
‘어떻게 된 거지?’
마도 10인회의 리더 바르토크는 위저드의 훈련을 지켜본 사람 중의 하나였다.
‘오대성이 키운 인간 병기이니 배니싱을 파훼하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사탄의 반응은…….’
어딘가 슬퍼 보였다.
“하비츠.”
위저드가 다가갔다.
“당신을 사랑해요. 이제 도망치지 말아요.”
“흥.”
믿을 수가 없다.
‘나를 사랑한다고? 천만에. 이건 거짓말이야. 나를 죽이기 위한 술책이야.’
그럼에도 반발할 수 없는 이유는.
‘만약 사실이면?’
그 찰나의 경직을 간파한 위저드가 1프레임을 넘어 하비츠를 강타했다.
“컥!”
하비츠가 바닥을 구르자 상아탑의 별들이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겼다.
‘뭐지? 방금…….’
모든 인류가 눈을 감은 기분이었다.
아르민은 이해했다.
‘시공간계 능력의 극치. 하비츠에게 특정 시간이 없다면, 저 아이는 공간을 지운다.’
같지만 전혀 다른 두 사람이었다.
“후우. 후우.”
코와 입에서 피를 철철 흘리는 하비츠가 위저드를 노려보며 물었다.
“나를 사랑한다고?”
“그래요.”
하비츠의 입가가 찢어졌다.
“좋아.”
시옥의 그림자가 생기는가 싶더니, 다음 순간 두 사람이 방에서 증발했다.
“……떠난 건가?”
상아탑의 별이라고 해도 율법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에 간섭할 수는 없었다.
“네, 아마도.”
아르민이 덜컹거리는 문을 가리켰다.
“시공간의 빈틈으로.”
하비츠는 빠르지 않다.
하지만 매초의 0.666초를 통과하는 동작은 율법에 기록되지 않기에.
‘어디 쫓아와 봐.’
빠르다, 느리다의 개념이 아니었다.
“크윽!”
그 순간 위저드가 하나의 프레임을 초월하여 하비츠의 옆구리를 강타했다.
“자꾸 도망칠 거예요?”
마음 같아서는 목을 부러뜨리고 싶지만 강력한 적의는 룰을 파괴할 터였다.
“크크크.”
하비츠가 웃었다.
“너무 심한 거 아냐? 솔직히 이제는 의심이 되는데? 네가 나를 사랑하는지.”
어쩌라고.
“사랑해요. 당신의 손가락을 부러뜨리지 않는 이상, 그건 사실이죠.”
그런 룰이었다.
“좋아, 그렇다면…….”
시옥을 통해 거리를 좁힌 하비츠가 위저드를 끌어안고 바닥에 쓰러졌다.
살심이 치솟은 위저드가 주먹을 쥐었으나 차마 반격은 할 수 없었다.
‘안 돼.’
여기서 하비츠를 공격하면 그를 사랑한다는 말이 거짓이 될 수도 있다.
‘아니, 손가락을 부러뜨리지 않았으니 괜찮아. 하비츠는 끝까지 믿을 거야.’
과연 그럴까?
“…….”
확신이 생기지 않았다.
제대로 예측하지 못하면 애써 시스템에 가둔 사탄이 다시 빠져나갈 터였다.
‘하비츠는, 나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지?’
알 수 없다.
결국 서로를 모르는 건 마찬가지라는 점에서 그들의 승률은 50 대 50.
하비츠가 일어섰다.
“좋아, 나를 사랑하는 건 ‘사실’이로군.”
이것으로 위저드에게 더욱 강한 린치를 허용해야 하지만, 믿을 수밖에 없었다.
물러서는 하비츠의 얼굴은 조금은 허탈하고, 조금은 찝찝한 표정이었다.
‘나는 이 아이와 무엇을 하고 싶은 거지? 분명 내 안의 뭔가가 채워졌지만…….’
그보다 더 큰 결핍이 느껴졌다.
“언제든지 와라.”
말을 남긴 하비츠가 복도의 끝으로 내달리자 위저드는 입술을 깨물었다.
터지려는 울음을 애써 참으며 상황을 복기했다.
‘반격할 수 없었어.’
덕분에 신뢰를 얻기는 했지만 만남이 지속될수록 강도는 세질 터였다.
애정과 폭력의 등가교환.
‘언제까지…….’
어쩌면 영원히.
우리는 타인의 진실을 알 수 없기 때문에.
***
“진실이 뭔데요?”
태성이 말했다.
“씽, 사실이 곧 진실입니다. 여태까지 제가 인류를 지킨 것이 진실이에요. 저를 믿어야 합니다.”
“닥쳐.”
지옥의 군대가 상아탑을 초토화시키며 올라오는 와중에도 씽은 흔들리지 않았다.
“마족들이 올라오고 있어요, 씽. 마지막 기회예요. 제가 죽으면 지성도 죽는 겁니다.”
“아니, 오히려 반대야. 인류의 지성이 더 넓은 곳으로 향하는 것을 당신이 막고 있지.”
바깥 세계의 장벽.
“답답하게 굴지 말아요.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것도 있는 법이에요. 여태까지 모든 인류가 서로 사랑했고, 그 결실을 맺었어요. 그것마저 부정하나요?”
“그래.”
씽은 영혼을 쥐어짜 내며 항변했다.
“육체적 관계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 또한 관리자가 만든 시스템일 뿐이야. 아무리 살을 섞어도, 체액을 교환해도, 진실은 알 수 없는 거니까.”
“뭐가 그렇게 중요한데요? 그 많은 시간 동안 아무런 문제 없이 살아왔잖아요.”
“지금은 다르지. 인류의 운명이 달린 논제니까. 살고 싶다면 나를 설득시켜. 증명을 해.”
“정신 마법이 있잖아요. 인간은 타인의 정신을 직접 확인할 수 있어요.”
“그것 또한 시스템이지. 드리모도, 이면 세계도, 전부 관리자가 통제하고 있어. 마음이라는 것을 직접 확인할 방법은 없다고. 따라서 논리적으로 이 세계에 마음을 가진 존재는 오직 나뿐이야.”
“설득력이 떨어져요.”
“하지만 반박도 할 수 없지. 그런 문제야. 모순이 없다면 누군가는 지켜야 해. 적어도 인류의 마지막 순간, 오메가 999년에는 말이야.”
“대체 무슨 수로 증명을 하라는 거예요? 마음을 직접 보여 줄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요!”
“그래서 믿을 수 없다는 거야. 타인의 진실 따위, 누구도 알지 못하지. 바깥 세계의 관리자를 믿는 것보다 나 자신을 믿는 게 나아. 우리 인류 모두가.”
그렇게 말하면서도 의문이 싹텄다.
‘정말 이게 옳은 건가?’
인류 최강의 관철력을 가진 그녀조차도 마음에 균열이 가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녀는 이를 악물었다.
‘흔들리지 말자. 나를 믿는 거야. 마음을 공유할 수 없는 한, 내가 전부인 거야.’
***
“마음을…… 공유한다고?”
요라한의 표정이 멍해졌다.
“네. 소세계창유라고 해요. 세상의 모든 것과 연결될 수 있어요. 마음이 통합되고 새로운 계가 열리죠.”
“바위 같은 것도?”
화족들이 까르르 웃었다.
“말씀드렸잖아요, 세상 모든 것과 동화될 수 있다고. 풀, 나무, 바람, 땅, 새나 다람쥐도요. 물론 혈통마다 동화가 잘되는 게 따로 있지만요.”
“땅은 무슨 느낌이야?”
“음, 뭐랄까. 절대적으로 안전한 느낌? 아무런 대가 없이 보호받는 기분.”
화족들이 눈을 감았다.
조금씩 입꼬리가 올라가는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요라한은 생각했다.
‘마음을 공유한다고?’
모두가 배려할 수 없는 이유는, 서로에 대한 불신과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달라. 서로가 연결되어 있기에 어떤 오해도, 의심도 하지 않는 거야.’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의 마음이 지옥이라면.’
화족은 인간을 지옥의 구렁텅이에서 꺼내 줄 유일한 희망일지도 모른다고.
“어머, 왜 그런 표정을 짓고 계세요? 요라한 님은 참 엉뚱한 분 같아요.”
“엄청난 거야.”
“네?”
“지금 당장은 힘들겠지만, 언젠가는 모든 인간들이 너희들을 반길 날이 올 거야.”
화족의 볼이 발그레해졌다.
“정말…… 그럴까요?”
“물론이지! 내가 장담할게. 아, 그리고 나도 소세계창유를 해 볼 수 있을까?”
“물론이죠. 잠시만요.”
그 순간 아르망이 끼어들었다.
“멈춰.”
“왜, 왜 그래?”
3일 동안 지내며 말은 편해졌으나 그녀를 대하는 건 여전히 어려웠다.
“분명히 경고했을 텐데. 허튼수작을 부리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위험한 일도 아니잖아.”
“누구냐에 따라 다르지. 네가 악한 마음을 품으면 이 아이는 상처를 받게 돼.”
“난 악한 마음 없어.”
“모르는 일이야.”
“그러니까 실험해 보면 되잖아.”
“…….”
고집스럽게 입을 다물어 버리자 요라한이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내가 포기할게.”
아르망이 그를 따라 몸을 돌렸다.
“어디 가지?”
“내 방에. 오늘 생각한 것 좀 적어 두려고.”
“지금은 안 돼. 산에 가야 하니까.”
“응? 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