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168
‘갈 데까지 갔다 이거야.’
가올드의 눈이 뒤집히고, 에어 프레스의 위력이 끝을 모르고 치솟았다.
감각의 극치에 도달한 인간과 무감각의 극치에 있는 거인 간의 시소게임이었다.
에어 프레스의 크기는 어마어마했지만 이미르에게는 바늘과 같을 터.
초고속으로 두들겨 내는 공기압이 수압을 뚫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젠장! 아직도 멀었다고?’
좌절감이 느껴질 정도의 깊이였으나, 욕망을 초월한 의지 또한 그에 못지않았다.
‘크으으으으!’
얼마나 오래 참았을까, 다른 사람들은 모조리 질식했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시점이었다.
‘안 돼. 너무 멀다. 닿을 수 없어.’
가올드.
꿈에서도 잊은 적이 없는 목소리가 환청처럼 귓가에 아른거렸다.
‘미로야.’
마치 누가 밀어낸 것처럼 정신이 고통의 극한을 뚫자 엄청난 고통이 밀려들었다.
눈에서 흐른 피가 바다에 섞이고 사지가 경련을 일으키는 그 지점에서…….
툭.
저항이 느껴졌다.
‘닿았다.’
이미르의 신경에 가해진 충격이었다.
후끈한 열기에 이어 바다가 통째로 증발하고, 가올드의 비명이 육성으로 들렸다.
“으아아악!”
해저의 표면에 무릎을 꿇은 채 몸을 감싸고 있는 그는 고통이라는 단어조차 떠올리지 못했다.
“크으으으!”
지옥 속에서도 버틸 수 있는 이유는 내일이 있기에.
루버와 몽아가 시로네의 상태를 살피는 동안 세인과 강난, 아리우스가 달려갔다.
“괜찮아? 정신 차려!”
가올드의 얼굴을 본 순간 강난은 손을 멈췄다.
마치 피부가 벗겨진 사람에게 손을 대는 것 같은 공포가 밀려들었다.
“비켜 봐.”
미로가 다가오더니 말릴 새도 없이 가올드의 목을 팔로 끌어안으며 일으켜 세웠다.
“으아아아!”
강난의 눈에 불이 켜졌다.
“미쳤어? 지금 어떤 상태인지 알면서!”
그러거나 말거나 미로는 가올드의 목을 끌어당기며 반대편 손으로 머리를 헝클었다.
“잘했어.”
비로소 정신을 차린 가올드가 고통에 전율하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미로가 씩 하고 웃으며 말했다.
“어쩌니 해도, 역시 실물에게 안기는 게 최고지?”
“흐으으!”
핏물로 범벅이 된 가올드의 눈에 분노가 서렸다.
‘맞아, 이런 애였지.’
어떻게 그걸 기억하지 못할 수가 있을까?
‘정신병자 같으니라고. 개또라이! 천하의……!’
의식이 점점 멀어지고, 스르륵 눈을 감은 가올드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
학창 시절 때부터 마음을 설레게 했던, 이 여자를 나는 너무나 좋아한다.
가올드의 고개가 푹 쓰러지자, 그를 지그시 바라보던 미로가 바닥에 내려놓았다.
“어쨌든 여기까지 왔네. 이 아래가 이미르의 모태 심리, 심층 1단계라는 거지.”
미로가 바닥을 쿵쿵 밟았다.
“흠.”
그러더니 분이 풀리지 않는 듯 다시 세게 밟았다.
“에잇! 죽어라, 죽어.”
“소용없어요.”
꿈에서 개로 살았던 아리우스가 두 발로 다가왔다.
“가올드 씨는 무감각의 영역인 심해를 뚫고 자극을 전했죠. 하지만 이 지반 또한 단단합니다. 그 정도로 때려서는 기별도 안 갈 거예요.”
“그래? 그럼 부숴 버릴까?”
미로가 천수관음의 화신술을 발동하자, 강난은 그녀가 조금 화가 난 것 같다고 생각했다.
‘가올드가 받았던 고통을 조금이라도 되돌려주고 싶은 마음…….’
그렇다면 강난도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리우스가 말을 이었다.
“그것도 가능하죠. 무감각의 영역은 이미 깼으니, 파고들어 가면 도달할 겁니다.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군요.”
아리우스가 가리킨 지평선 너머에 해저 화산이 있었다.
“가올드 씨의 에어 프레스가 지반에 닿는 순간 화산이 폭발했을 겁니다. 그 열기가 바다를 증발시킨 거죠.”
“그게 가능한 일이야?”
“정신세계는 상징과 은유로 구성되니까요. 다른 식으로 풀이하자면, 그만큼 이미르의 열망이 뜨겁고 강력하다는 뜻이겠죠.”
일행은 입을 다물었다.
단지 통각을 느낀 것만으로도 바다를 날려 버릴 정도의 욕구에 강난이 이기죽거렸다.
“얼마나 쌓인 거야? 다른 의미로 들어가기 무섭잖아.”
“하하! 걱정 마세요. 거인은 생식능력이 없으니까요. 물론 가올드 씨는 미치도록 반갑겠지만. 그리고 시로네 씨는…….”
루버가 시로네를 업고 걸어왔다.
“무사히 수면 중이시네. 여전히 전승몽의 정보가 들어오고 있다는 뜻이겠지.”
미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까지 기다릴 수는 없어. 여기서는 현실의 시간도 제법 빨리 흐를 테니까.”
미로는 가올드를 업었다.
“출발하자. 마지막 관문, 이미르의 화신이 있는 곳으로.”
세인이 다가왔다.
“가올드는 내가 업을게.”
“괜찮아.”
화산을 향해 걸어가며 미로가 뒤를 돌아보았다.
“나중에 나도 할 말은 있어야지.”
그 말의 뜻을 음미하던 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게 내일을 향해.
살아가는 것 (2)
***
거대 굴착기를 운전하던 넘버세븐은 전방의 길목을 가로막은 제트의 장벽을 발견하고 속도를 최고로 끌어올렸다.
봉을 잡은 마르샤가 소리쳤다.
“미쳤어?”
“그럼 싸웁니까? 뚫고 가는 수밖에 없어요.”
다음 순간 굴착기의 드릴이 제트의 장벽을 파고들었다.
무한궤도에 깔린 안드로이드가 깡통처럼 찌그러질 때마다 조종석이 들썩거렸다.
‘기체가 이 정도로 뜨다니. 내구력 장난 아니네.’
마침내 시야가 확 트였으나 건너편 블록에 비슷한 숫자의 제트가 모여 있었다.
“번뇌를 제거하라.”
탄이 날아들자 넘버세븐이 소리쳤다.
“긴급 탈출!”
채굴 팀이 하늘로 뱉어지는 순간 굴착기가 폭발했고 일행은 10미터를 날아갔다.
“괜찮아요?”
넘버세븐의 말에 마르샤가 이를 악물었다.
“잘하는 짓이다.”
“어쩔 수 없었잖아요. 그래도 거의 다 왔어요.”
20미터 전방에 있는 도시에서 가장 높은 건물을 바라보며 오퍼레이터가 물었다.
“확실해? 여기가 메인 시스템이라는 보장이 없는데.”
가장 큰 건물이 코어라는 생각 또한 인간적이기에.
“다른 선택지가 없어. 이제 어디로 갈 수도 없다고.”
사방이 안드로이드의 은색 빛으로 반짝거렸다.
“그나저나 입구가 어디야?”
문이 보이지 않았다.
“제가 해 볼게요.”
막대 사탕 마크가 벽을 살피고, 프리먼이 뒤편을 가리켰다.
“어이, 저기.”
어느새 제트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우리가 막겠습니다.”
앵무 용병단의 간부들이 돌진하는 동안 막대 사탕 마크는 시스템을 확인했다.
“무슨 코드가 이래? 뮤커스가 있던 시대하고는 차원이 다른데.”
페어리가 지배하는 미래에서 율법의 신이 직접 개입한 미래로 변한 것이다.
오퍼레이터가 말했다.
“완벽하게 해독할 필요는 없어. 신호를 교란해서 입구만 열면 되잖아?”
“아니, 그게…….”
말이 끝나기도 전에 폭발의 열기가 밀려들었다.
제트의 포격에 앵무 용병단의 간부들이 밀리고 있었다.
그들 또한 현실에서는 내로라하는 고수들이지만 미래의 이기 앞에서는 소용이 없었다.
막대 사탕이 이를 악물었다.
“죄송해요. 시간에 맞출 수 없겠는데요.”
“한 가지 방법은 있어.”
넘버세븐이 언더 코더의 카드를 꺼내며 말하자 오퍼레이터가 물었다.
“다른 장비도 가져온 거야?”
굴착기 ‘엑스트라’의 데이터까지 아포칼립스에 구현한 엔지니어라면 가능성이 있었다.
‘제발, 크고 강한 걸로…….’
하이 기어의 보스 크리처 정도를 기대했으나 넘버세븐은 자신이 없는 표정이었다.
“데이터 용량은 무한대가 아니야. 그래서 취사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어.”
“알았으니까, 빨리 해. 뭔데?”
넘버세븐이 오퍼레이터를 돌아보며 말했다.
“화내지 마.”
버튼을 누르는 순간 하늘 꼭대기에서 풍절음이 들렸다.
“응?”
위를 살핀 오퍼레이터의 눈이 커지는 것과 동시에 쿵 하고 기계장치가 그녀의 몸을 집어삼켰다.
막대 사탕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미드 기어?”
하이 기어의 기체를 충전 및 보존하는 장치였다.
“사실 분위기 좋을 때 쓰려고 했는데.”
미드 기어의 잠금장치가 풀리고, 검은 아우라를 뿜어내는 오퍼레이터의 기체가 요염한 걸음걸이로 나왔다.
소녀에서 여인이 된 느낌이었다.
“괜찮은 분위기였어.”
넘버세븐이 원하는 낭만적인 분위기는 아니었을 테지만.
넘버세븐이 머리를 긁적였다.
“쳇, 아무튼 출력 조절을 잘해야 돼. 데이터는 끌어올 수 있어도 여기서는 충전이 불가능하다고.”
기회는 한 번.
“충분해.”
이제 코앞까지 밀린 앵무 용병단의 간부들을 바라보던 그녀가 땅을 박차고 튀어 나갔다.
바람처럼 빠른 속도로 제트의 무리에 섞인 그녀가 태도 흑장을 꺼내 들었다.
“붕괴.”
자기장이 검은 구체의 형태로 퍼지면서 반경에 있는 모든 안드로이드가 그곳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채굴 팀은 본능적으로 귀를 막았으나 금속의 충격음은 손바닥의 뼈를 뚫고 고막에 닿을 정도였다.
질끈 감았던 눈을 천천히 뜬 넘버세븐은 구형으로 찌그러진 거대한 고철 덩어리를 발견했다.
“오퍼레이터!”
걱정이 무색하게 허공에서 아름답게 회전한 오퍼레이터가 옆에 착지했다.
“왜 그렇게 호들갑이야? 내가 누군지 잊었어?”
야훼가 탈환하기 전까지, 하이 기어 무패의 전설이었다.
오퍼레이터가 건물을 바라보며 말했다.
“비켜. 내가 부술게.”
막대 사탕이 물러섰다.
“네, 그냥 파괴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솔직히 이대로는…….”
메인 시스템을 해킹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였지만, 굳이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최고 출력으로 부술 거야.”
오퍼레이터가 흑장을 겨누며 튀어 나갈 자세를 취하자 넘버세븐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만약 부수지 못한다면 기체가 파괴될 것이다.
“다시 생각해 보는 게 어때?”
“아니, 어중간한 힘은 출력만 낭비하는 셈이야. 이번 한 번으로 끝을 내야 해.”
일행이 비장한 표정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오퍼레이터가 하체의 출력을 높였다.
그 순간, 건물의 벽에 직사각형의 선이 그어지더니 좌우로 문이 열렸다.
“…….”
두 발을 모은 오퍼레이터의 엔진음이 빠르게 줄어들었다.
마르샤가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