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185
담당 인포메이터로서 샤갈의 마지막을 지켜봐야 한다는 사명감이 들었다.
시로네는 확신한다.
‘선택할 수 없다면 통합도 없어.’
그렇기에 통합적 정신 체계에 도달한 가이아인은 마음에 통달한 자들.
‘나는 그들의 세계를 보았으니까.’
모두가 서로를 이해하기에, 이 우주가 어떻게 되든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경지.
‘그 경지를 향해…….’
23층에 도착한 시로네는 자신을 기다리는 살풍경을 눈에 담았다.
3성급 주민 아르테와 위성 토케이가 목이 잘린 채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균형부는 전멸.’
한쪽에는 율법부의 흑강시와 대법관 탄주라, 그의 위성 대호가 쓰러져 있었다.
“크윽!”
흑강시의 숨이 끊어진 것을 확인하는 그때 탄주라가 거친 신음 소리를 냈다.
“탄주라 씨!”
황급히 달려간 시로네가 미라클 스트림을 시전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이미 죽었어.’
상체만 남은 탄주라가 힘겹게 입꼬리를 올렸다.
“대법관의 판결, 집행유예. 오대성께서 올 때까지 비루한 정신을 유지하고 있었지요.”
심장이 멈춘 상태에서 뇌만 가동되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예요?”
“보다시피…… 바알에게 전멸했소. 그 녀석은 괴물이 되었습니다. 인간이 만든 괴물.”
시로네는 이를 악물었다.
“최선을 다해 버텼습니다. 빠르게 쫓아가면 시간에 맞출 수 있을 것이오.”
지금 당장 최상층으로 향하고 싶지만, 탄주라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 없었다.
탄주라가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죽었으니. 한 가지 억울한 게 있다면, 정답을 듣지 못하고 가는 것.”
씽은 옳은가?
“저는 누구도 타인의 진실을 알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제 지성의 한계겠지요. 하지만…….”
탄주라가 시로네의 어깨를 짚었다.
“제가 틀린 거겠지요. 그렇죠?”
삶의 마지막 순간, 탄주라가 듣고 싶었던 정답은 그의 지성과는 달랐던 모양이다.
“저는…….”
시로네도 모른다.
차오르는 눈물을 억누르며 그가 내뱉을 수 있는 말은 그저 거대한 희망.
“그렇다고 믿어요. 꼭 증명할게요.”
탄주라는 배시시 웃었다.
그리고 더 이상 부담을 주기 싫다는 듯 동공에서 생명이 빠르게 빠져나갔다.
“후우우우.”
시로네의 턱이 부르르 떨렸으나 위를 노려보는 눈빛에는 살기가 가득했다.
“마魔.”
누구나 알고 있는 옳음은 탁한 욕망과 분노 앞에서 모래성처럼 허물어지고 만다.
‘이들은…… 끝까지 지키고 싶었던 거야.’
지성의 빛이 꺼져 가고 있었다.
상아탑 201층.
바알의 뒤를 따른 마족 1진은 상아탑의 주민들을 천천히 죽이고 있었다.
“역시 강해지고 볼 일이야. 지성이니 뭐니 해도, 결국 우리에게 안되는구먼.”
그런 식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던 마족들이 문득 계단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호오?”
피에 절어 버린 듯한 꼴로 시로네가 걸어오고 있었다.
“뭐야? 왜 이렇게 늦었어? 이제 보니 야훼도 완전 게으른데? 그래 놓고 뭐…….”
마족의 몸에 빛의 연기가 맴돌더니 폭발하듯 그 자리에 살점이 비산했다.
비로소 분위기 파악을 한 마족들이 웃음기를 지운 가운데 시로네가 말했다.
“변할 수 없는 건 없다고 믿어.”
“어이, 훈계는…….”
“하지만 너희들은 변하지 마라.”
마족이 입을 다물었다.
“그냥 변하지 마. 내 눈앞에서 계속 악으로 머물러 줘. 앞으로 몇 초간만이라도.”
“당연한 거 아냐?”
시로네는 필사적으로 마음을 억눌렀다.
“그래도 난 너희들이 참회할 수 있다고 믿어야 해. 정말로 그랬으면 좋겠어. 그런데…… 그러지 않았으면 해.”
“푸…….”
마족들이 폭소했다.
“푸하하하! 얘 지금 뭐라고 하는 거냐? 야훼 씨, 술 드셨어? 왜 이렇게 횡설수설이야?”
“왜냐고?”
시로네의 눈이 부릅떠졌다.
“진짜 화가 났거든.”
야훼의 분노가 폭발하는 순간, 눈이 멀 정도의 빛이 201층을 가득 채웠다.
최후의 5시간 (1)
그린 오션.
종족 전쟁은 천사들의 합류로 더욱 치열해졌다.
“이런 젠장!”
12사도가 흩어진 가운데 유리엘을 상대하는 사도는 화룡 인페르커스였다.
극락곤이 굉음을 내며 회전하고 유리엘이 바람처럼 풀어지며 날아들었다.
“전쟁은 끝났다.”
대천사의 육탄 공격을 받은 인페르커스는 그의 두꺼운 가슴을 끌어안았다.
“헛소리하네.”
전투 설정이 바뀌고, 인페르커스의 얼굴 반쪽이 괴물처럼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급기야 목 위쪽이 드래곤으로 변한 그녀가 유리엘의 얼굴에 대고 소형 브레스를 쏘았다.
“쿠오오오오!”
“…….”
얼굴에서 김이 나는 유리엘을 발로 차자 수십 미터를 날아가 바닥에 처박혔다.
“짜증 나게 하고 있어.”
하늘에서 이를 발견한 기룡 아르간과 흑룡 아비리스가 그녀의 옆에 착지했다.
아르간은 난감한 표정이었다.
“브레스를 쓰면 어떡해요? 이러면 엘프의 숲이 타 버린다고요. 메시아님이 하신 말씀 잊었어요? 누군가를 지킬 때가 아니면 금기를 깨지 말라고…….”
“장난해? 천사들 전부 쳐들어온 거 안 보여? 지금 앞뒤 가릴 처지가 아니야. 우리가 이겨야 엘프도 지키지.”
아비리스가 천천히 일어섰다.
“뭐야.”
검은 피부의 여전사, 강인한 인상의 두 눈에 호박색 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그런 거였어?”
폴리모프를 해제한 그녀는 20미터 길이의 검은 드래곤이 되어 하늘로 날아올랐다.
“크르르르르.”
무서운 눈으로 지상을 굽어보는 순간, 사도와 천사가 동시에 고개를 쳐들었다.
“저, 저거…….”
천사보다 놀란 건 사도였다.
“저 미친!”
사도들이 황급히 몸을 날리는 순간 아비리스가 턱을 벌리며 브레스를 시전했다.
‘심연의 그림자.’
지상에 손톱보다 작은 점이 찍히더니 무서운 속도로 퍼지며 숲을 잠식했다.
어둠은 실체가 없다.
그렇기에 아무것도 없고, 지상의 모든 생물체는 완벽한 무無의 영역을 경험했다.
자신의 사지가 어디에 붙어 있는지도 느낄 수 없기에 행동력은 0이었다.
‘완전히 발이 묶였어.’
이면 세계의 무저갱을 원하는 장소에 구현하는 아비리스의 브레스, 심연의 그림자.
충전 시간은 12시간으로, 이는 12사도 중에 다섯 번째로 긴 딜레이였다.
아비리스가 웃었다.
“크하하하! 끔찍한 무를 경험해라! 내가 바로 흑왕광폭룡 아비리스이니!”
페이튼이 소리쳤다.
“웃기고 있네! 너 그냥 미친 용이잖아! 우리까지 말려들었으면 어쩔 뻔했어?”
다른 사도들이 속속들이 하늘에 도착하자 아비리스가 긴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크크, 이거 좋은데? 이제야 좀 싸울 맛이 나는군. 뭐 해? 너희들도 해.”
“하지만 메시아님에게 혼날 텐데요? 통제할 수 없는 힘에 대해 부정적이시잖아요.”
기룡 아르간이 검지를 세우며 말했다.
“아, 그건 괜찮아요. 인페르커스 씨가 책임지기로 했거든요. 우리는 잘못이 없죠.”
“야! 어떻게 말이 그렇게…….”
인페르커스가 따지려는 순간 뇌룡 블리츠가 말했다.
“1명 안 왔어.”
사도들의 시선이 그린 오션을 완전히 뒤덮고 있는 무저갱의 어둠으로 향했다.
“누구야, 그 덜떨어진 사도가?”
빠르게 11명의 면면을 확인한 그들은 지상에 남은 사도를 비난할 수 없었다.
“혼백룡.”
자신마저 잃어버리는 거대한 심연에서, 백룡 아스라이커는 무릎을 꿇고 있었다.
“…….”
최상의 에고를 가지고 있는 그녀는 모든 생물체에게 극호의 대상이지만.
“심연인가.”
무의 영역에서는 그것조차 의미가 없을 정도로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쓸데없는 짓을.”
메사아에게 밉보이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도이기에, 결심에 큰 용기가 필요했다.
어둠을 응시하는 시선이 몽롱해지면서 그녀의 육체가 하얀 빛으로 퍼졌다.
폴리모프를 해제한 아스라이커의 실체는 영체로 이루어진 순백의 드래곤.
“휘이이이이이!”
여우처럼 예리한 인상이었으나 거대한 눈 외에는 온통 여백이라 섬뜩했다.
브레스-백골의 진노.
심연에서도 빛을 내는 해골의 영들이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퍼졌다.
충전 시간은 고작 6시간.
백골의 진노에 관통당한 존재의 혼백은 스스로를 완벽한 사망 상태로 인식한다.
‘영생자, 초월적인 의지를 가진 자, 무생물에게는 브레스가 통하지 않지만…….’
심연의 그림자와 함께 발동할 경우 대량 살상을 유발하는 능력이었다.
이미 죽었다고 느낀 숲이 시커멓게 말라 가는 가운데 천사들이 바닥에 쓰러졌다.
“흐으으으!”
영겁의 수명을 가졌기에 소멸은 없지만 죽음의 공포가 정신을 뒤흔들었다.
“그곳이 너희들의 무덤이니.”
다시 폴리모프를 시전한 아스라이커는 다소곳이 앉아 심연을 음미했다.
포이네가 눈웃음을 지었다.
“장관이구먼. 장관이야.”
숲은 거대한 구멍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수를 셀 수 없는 백골의 영들이 어지러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결국 했군. 아스라이커도 공범이야.”
끝까지 집착하는 인페르커스의 말을 무시하고 포이네가 블리츠를 돌아보았다.
“몇 시간 남았지?”
“…….”
뇌룡 블리츠는 침묵했다.
“모르는 척하지 마. 카라토르사 님의 소멸로 우리는 코어를 잃었어. 무언가를 전해야 한다면 너에게 하셨겠지. 오메가 999. 끝나려면 얼마나 남았지?”
드래곤은 시간의 사도.
오메가 1년부터 999년을 거친 무등룡이라면 대충 계산이 가능할 터였다.
“앞으로…….”
블리츠가 입을 열었다.
“5시간.”
정적이 흘렀다.
“카라토르사 님의 말에 의하면, 오늘이 신이 정한 역사의 마지막 날이다. 하지만 추정일 뿐이야.”
광룡 페이톤이 말했다.
“메시아님도 짐작은 하고 계시겠군. 오메가를 받았으니. 어쨌든 5시간만 엘프를 지키면 된다는 거잖아? 심연의 그림자도 당분간 유지될 테고. 쉬운데?”
12사도 전원이 금기를 깬다면 5시간 정도는 충분히 막을 수 있을 터였다.
“변수가 있겠지.”
포이네는 방심하지 않았다.
“우리가 천사들의 지원을 예상했던가? 힘의 대결이 아니야. 엘프가 전멸하면 패하는 전쟁이지.”
“그러니까 어떻게 죽이냐고. 우리가 막고 있는데.”
“글쎄…….”
포이네의 눈이 가늘어졌다.
‘저 작은 것들이 무슨 계략을 꾸미고 있는고?’
***
멜키두의 중간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