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197
크라운을 죽일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다.
‘바람의 술. 아루오레.’
바람의 정이 깃들인 화살이 마하의 속도로 튀어 나가고, 뒤늦게 소닉붐이 터졌다.
“크라운 님!”
페어리들이 놀라 소리쳤을 때에는 이미 상황이 끝나 있었지만 그들의 예상과는 달랐다.
“뭐야?”
엘프의 머리통을 목에서부터 뜯어 버린 에린이 천막의 입구 쪽에 서 있었다.
“이렇게 쉬우면 실험할 가치도 없잖아?”
“끄륵…… 끄륵…….”
엘프 남자는 입을 뻐끔거렸다.
죽음에 대한 공포보다도, 엘프라는 종족의 멸망에 대한 공포가 훨씬 컸다.
‘이 녀석은 페어리도, 엘프도 아니야.’
괴물이다.
‘바람의 마법 에이오스. 가장 기본적인 마법인데도 엘프의 한계를 초월했다.’
엘프의 요정 에녹스보다도…… 아니, 심지어 천사조차 크라운을 제압할 수 없을 터였다.
가장 큰 문제는 그의 육체가 엘프들이 아끼고 사랑하는 에린의 몸이라는 점이었다.
‘이 녀석은 에린이 아니야. 속으면 안 돼.’
만약 엘프족이 내막을 모르고 크라운을 아지트로 받아들이게 된다면, 그때는 전멸이었다.
“에, 에녹스…… 님.”
결국 단말마조차 내지르지 못한 채 그는 피눈물을 흘리며 숨을 거두었다.
“쯧.”
머리통을 던진 에린이 일그러진 표정을 지었다.
“너무 빠른 것도 짜증이 나는군. 아슬아슬하게 피하려고 했는데, 지루해서 그냥 죽였어.”
페어리들은 숨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어쨌든 임플란트는 성공적이군. 짐승의 육체하고는 비교가 안 돼. 심지어 인간보다 월등하고 말이야.”
이 행성에서 얻을 수 있는 최상급 육체였다.
“성, 성공을 축하드립니다.”
“훗.”
엘프의 좌뇌와 우뇌 사이의 송과체를 일부분 걷어 내고 크라운의 뇌를 이식한다.
물론 생물의 자기보존 본능에 의해 보통의 경우는 면역 체계가 쇼크를 일으킬 테지만…….
“나는 가능하다.”
‘최상’의 정을 가지고 태어난 크라운은 임플란트 대상의 시스템을 순식간에 통제했다.
크라운은 이 상태를 ‘탑승’이라고 불렀다.
“……묘하군.”
에린의 눈빛이 깊어졌다.
“이게 생명인가?”
여태까지 누구도 생명의 바깥에서 생명을 바라본 적은 없을 터였다.
과연 그는 무엇을 본 것일까?
호기심 많은 페어리들이 귀를 기울였지만 그는 혼자만의 생각에 심취했다.
“뭐, 좋겠지. 당분간 이 육체를 타고 다녀 볼까? 더 강한 육체가 나오기 전까지 말이야.”
“저, 크라운 님. 이 몸은 어찌할까요?”
두개골이 열린 크라운의 시체가 테이블의 쟁반 위에 오롯이 누워 있었다.
페어리들은 접근조차 하지 못했다.
“…….”
불과 10분 전까지 자신의 것이었던 육체를 바라보는 크라운의 시선은 차가웠다.
‘나를 정의하는 것.’
육체? 정신? 생각? 기억?
‘그것 또한 내가 나이기에 할 수 있는 사고일 뿐이다. 이미 내가 아니라면 그런 것조차…….’
의미가 없고.
‘나를 정의하는 것은.’
오직 내가 나라는 특정 개념, 저 초월적인 곳에서 내려오는 이데아에 있다.
‘미싱 링크였어.’
내가 나에 탑승하는 순간 이데아는 실종되지만, 크라운은 똑똑히 보고 있다.
‘그렇기에 나는…….’
깨어난 자(Illuminati)
테이블의 시체를 움켜쥔 크라운이 상체를 입에 넣고 이빨로 끊어 냈다.
“히익!”
으드득. 으드득.
입속에서 뼈가 갈리는 소리에 페어리들이 떠는 가운데 그가 읊조렸다.
“내가 아니다.”
이제는 섭식에 필요한 에너지원일 뿐.
“지시할 때까지 대기해라. 엘프의 아지트로 갈 것이다.”
“어쩌시려고요?”
또한 섭식의 이유가 번식을 위해서라면.
“지배.”
크라운이 두 팔을 벌렸다.
“나는 왕이 될 것이다. 내 자손들이 이 땅에 번성하여 인간의 막후를 지배하게 되리니.”
세계의 주인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금단의 영역 (4)
***
유리엘이 되물었다.
“그리움……이라고?”
아스라이커는 천국의 역사를 떠올렸다.
“당신은 전쟁을 끝낼 수 있었어요. 이카엘이 당신의 편을 들었을 때 말이죠. 당신만이 끝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이카엘을 소멸시키지 않았어요. 개념이 존재하는 한 천사는 순수한 정신체로 태양에서 다시 태어나는데도 말이죠.”
“…….”
“이카엘을 파괴할 수는 있어도 이카엘에 대한 그리움까지는 파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카리엘이 그토록 집착했고, 당신은 침묵했던 게 아닙니까?”
“무슨 말이 하고 싶은가?”
“파괴할 수 없는 파괴의 대천사여, 당신은 카리엘보다 더 인간적이에요. 그리고 여전히 이 전쟁을 끝낼 수 있습니다. 신의 섭리에 놀아나지 마세요.”
“그럴 수도 있겠지.”
유리엘은 부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신과 싸운다고 한들 무엇이 바뀌지? 그것은 너에게 놀아나는 게 아닌가?”
“이카엘을 사랑하잖아요.”
무저갱 속에서도 유리엘의 기운이 느껴졌다.
“그건 사랑입니다. 당신이 끝까지 부정하는, 그리고 지금도 끝없이 고민하는 그 감정은 사랑이에요. 카리엘의 사랑과는 또 다른, 오직 그녀를 향한…….”
사법 광륜 라그나로크가 집적되자 어둠이 흩어지고 유리엘이 모습을 드러냈다.
“혼백룡, 나를 모멸하지 마라.”
지금 이 순간만큼은 모든 전쟁을 순식간에 끝낼 수 있는 파괴의 대천사였다.
“아니면, 아니라고 말하면 될 일입니다.”
그런가?
유리엘은 파괴의 대천사가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 기능 자체가 없을 것이기 때문에.
“나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유리엘은 결국 그 짧은 말을 내뱉지 못했다.
“이카엘이 모를 거라고 생각하나요?”
아스라이커가 말했다.
“스스로 부정하기에 남들도 모르는 척하는 것일 뿐. 아마도 누군가는 당신의 빈틈을 보고 있을 것입니다.”
한 여자가 떠올랐다.
‘미로.’
그래서 그녀는, 극선의 관음은 부딪칠 때마다 자신의 속을 뒤집어 놓았던 것일까?
“무등룡께서는 말씀하셨죠. 오롯이 파괴할 수 있을 때 유리엘은 전쟁을 끝낸다. 그만 받아들이세요. 그것이 진정한 당신의 싸움입니다.”
아비리스의 브레스, 심연의 그림자의 효과가 점차 사라지며 풍경이 드러났다.
백골의 진노가 휩쓸고 간 숲은 방사능에 피폭된 것처럼 말라붙어 있었다.
유리엘은 라그나로크를 소멸시켰다.
“고민하지 않아.”
빛의 날개가 펼쳐졌다.
“신이 나를 이용하려는 것이라면, 신을 파괴하고 새로운 신을 세우면 그만. 그리움이 내 발목을 잡는 것이라면, 그것조차 파괴할 뿐이다.”
그 말을 남기고 섬광이 되어 날아간 자리에 웅장한 바이브레이션의 잔음만이 남았다.
아스라이커가 시선을 내리깔며 읊조렸다.
“……우직하기는.”
하긴, 그 정도로 우직하기에 이카엘이 모든 것을 알면서도 의지한 것이겠지만.
“자.”
아스라이커가 몸을 일으켰다.
“전쟁 재개인가.”
하늘에서 대기하고 있던 11명의 사도 또한 심연의 그림자가 걷히는 것을 확인했다.
상당수의 페어리들이 노화되어 소멸했고, 천사들도 기진맥진한 얼굴이었다.
광룡 페이톤이 말했다.
“숲은 날렸지만 효과가 있네. 어떡할래? 브레스로 계속 조질까? 아니면…….”
독룡 포이네가 말했다.
“패를 한 번에 드러내지 마. 이대로 전쟁이 끝날 것 같지 않으니까.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게 뭐지?”
기룡 아르간이 물었다.
“그런 게 꼭 있어야 할까요? 마치 우리가 이기지 못할 것을 상정하는 느낌인데요.”
블리츠가 말했다.
“그런 전투니까. 이 전쟁의 결과는 우리가 아니라 메시아님이 바꾸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특별한 변수는 없어. 단지 우리가 잘 싸워서 이긴다는 것은 위험한 생각이야.”
12사도는 침묵한 채 숲을 지켜보았다.
‘무엇을 놓치고 있는가?’
심연의 그림자가 걷히고 광활한 황무지에서 엘프와 페어리는 다시 싸우고 있었다.
“헉! 헉!”
썩은 늪지대를 빠져나온 1명의 엘프 여성이 더러운 몸을 이끌고 바닥을 기었다.
“살, 살려 주세요!”
“에린!”
페어리 부대에 활을 쏘아 대던 엘프 중의 1명이 그녀를 알아보았다.
“엄호해 줘!”
활을 차고 앞으로 돌진한 엘프가 에린의 팔을 붙잡고 아군 진지로 끌어들였다.
“어떻게 된 거야? 죽은 줄 알았잖아!”
에린은 눈물을 흘렸다.
“크라운의 막사에 끌려갔어. 내가 죽었어야 했는데, 그리드가 나를 위해…… 아, 아아아!”
둘의 관계를 알고 있는 엘프는 더 이상 묻지 않고 에린을 끌어안았다.
“괜찮아. 일단 진정해. 에녹스 님에게 보고드리자.”
엘프들의 부축을 받으며 숲으로 들어가는 에린의 표정이 순간 싸늘해졌다.
‘흥, 드디어 만나는 건가?’
하늘에서 그 광경을 내려다보는 12사도는 무심하게 시선을 돌릴 뿐이었다.
‘이 숲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누구도 알지 못했다.
***
씽은 물론 음지와 양지도 미문의 육체를 통해 나타난 남자를 바라보았다.
“아르고네스라고?”
최초의 인류 가이아인, 그 이전의 드래곤, 그 이전에 존재했던 모든 생물의 원천.
바알이 차가운 눈빛으로 다가왔다.
“그래, 지옥에서도 들은 적이 있지. 하지만 관리자는 인간의 목적과 별개로 움직인다고 하던데.”
태성도 의문이었다.
‘어째서?’
우주의 역학에 따라 둘은 부부의 관계로 설정되어 있지만 사고방식은 달랐다.
‘나는 인류를 지키는 프로그램. 하지만 그는…… 이미 한번 인간을 멸종시키려고 했어.’
신의 영역을 침범했기 때문이다.
‘혹시…… 인간을 지키기 위해?’
태성은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어. 나에게 있어 인간은 유일무이한 결과지만 그는 어떤 계에서도 생물을 만들 수 있다.’
태성이 인류에 모성애를 갖는 이유였다.
‘하지만…….’
최초의 인류에게 가이아라는 이름을 지어 준 것도, 태성의 간청으로 그 가이아를 용서한 것도 아르고네스였다.
바알이 말했다.
“레테 님과 달리 너희 둘은 상호 보완적인 관계. 설마 태성을 지킬 생각인가?”
“그래.”
“응?”
태성이 눈을 깜박였다.
“행성 프로그램이 잘못되면 나에게도 여파가 미치니까. 무엇보다 한낱 피조물에게 당할 수는 없지. 부모도 몰라보는 너 같은 놈 말이야.”
“그건 받아들이기 어렵군.”
바알의 미간이 구겨졌다.
“네가 만든 건 인간이지 우리가 아니야. 하긴, 마족은 인간의 감정에서 나왔으니 손자 정도는 되겠지만, 그렇다고 네가 레테 님보다 우월한 것은 아니지.”
“왜 왔죠?”
태성은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었다.
“인간의 일에 관여하지 않는다고 했잖아요. 기회를 주기로 한 거 아니었어요?”
자신의 소멸보다도 아르고네스가 일으킬 셀 버스터가 더 두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