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21
메뉴판을 살핀 시로네가 고민하더니 물었다.
“술…… 마실 거야?”
“아무래도 시키긴 해야겠지? 술집이니까. 안주 위주로 먹자. 여기서 점심을 해결하는 게 낫겠어.”
테스가 주문했다.
갈리앙트섬의 전통주와 뜨거운 국수, 다진 고기가 나왔다.
배를 채우는 데 열중하는 그때 옆 테이블에서 소란스럽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알싸한 기분이 들어 시선을 돌리자 거하게 술상을 차린 네 사람이 보였다.
고대의 유적(3)
리안이 말했다.
“지금 옆 테이블, 우리 얘기 하는 거 같은데?”
테스가 말렸다.
“신경 쓰지 마. 술 취해서 저러는 거야.”
용병들이 술집에서 스트레스를 푸는 건 예사지만 끝이 좋은 경우는 없었다.
“세상 좋아졌어, 애송이들도 무장을 하고. 야야, 너희들 그러다 골로 간다.”
“검 한번 무식하게 크네. 그거 휘두를 수나 있는 거냐? 차라리 돌을 지고 다니지.”
리안이 눈에 힘을 주며 돌아보았다.
반면에 시로네는 신경 쓰지 않고 기억을 더듬었다.
들어오면서 확인한 바에 의하면 옆 테이블에 앉은 용병은 4명. 남자가 셋, 여자가 하나. 궁수가 포함되어 있는 듯했고 여자는 무기가 없는 걸로 보아 마법사일 가능성이 높았다.
‘궁수에 마법사라.’
전문가 포지션이 2명이라면 제법 밸런스가 좋은 그룹이라고 할 수 있었다.
“뭐? 쳐다보면 어쩔 건데? 내가 오늘 좀 열 받는 일이 있거든? 여기서 피 좀 볼까?”
“어휴, 그만해. 애들 놀리는 게 재밌니?”
마법사로 추정되는 여자가 말리는 척을 했으나 진심은 느껴지지 않았다.
리안은 그게 더 얄미웠으나 시로네가 움직이기 전에 먼저 판을 엎을 수는 없었다.
‘비위도 좋다, 너는.’
국수를 우물거리며 생각에 잠긴 시로네의 눈에서는 특별한 감정을 찾을 수 없었다.
에이미마저 태연하게 음식을 먹고 있자 결국 리안도 시선을 되돌렸다.
“쳇!”
그렇게 모든 채널을 닫아 버리자 흥이 깨진 용병들도 일어날 채비를 했다.
낮부터 술이 과했는지, 아니면 말을 너무 많이 해서인지 표정이 좋지 않았다.
“으, 머리 아파.”
“어이, 너희들 오늘 운 좋은 줄 알아. 평생 그렇게만 살아라. 장수할 거다.”
용병들이 술값을 지불하고 밖으로 나가자 가게 주인이 혀를 차며 다가왔다.
“너희들 괜찮니? 하여튼 망나니들. 애들한테까지 행패를 부리다니.”
시로네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저 사람들을 아시나요?”
“근래 들어 자주 오지. 이유는 모르지만 다른 용병들도 유적지를 자주 찾는단다. 목숨 내놓고 사는 놈들이라 눈빛만 스쳐도 싸움을 걸기 일쑤지. 너희들은 잘 참은 거야. 저 녀석들은 정말 뒤가 없으니까.”
“흐음, 자주 온다…….”
시로네는 그 말이 의미심장했다.
며칠을 체류했다는 것은 특별한 의도가 있다는 뜻이었다.
테스가 리안에게 말했다.
“잘했어. 의외로 잘 참더라? 네가 사고 칠까 봐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알아?”
“……위험하기는 했지. 하지만 다시 만나게 될 거잖아? 그것 때문에 기다린 거 아냐?”
시로네가 웃으며 일어섰다.
“맞아. 우리도 출발하자.”
가게를 나가자 중앙 사원 쪽으로 향하는 용병들이 보였다.
시로네 일행은 미행 대신 높은 곳에서의 감시를 택했다. 궁수의 스키마 빌드가 대부분 감각계이기에 거리를 좁히다가는 들킬 공산이 컸기 때문이다.
사원 건물 4층에서 살핀 용병들은 서른이 넘지 않은 젊은 파티였다.
야무진 체형의 검사가 리더인 듯했고, 허리에 찬 검은 테스가 디자인만 보고도 장인의 이름을 떠올릴 정도로 인지도가 높은 철검이었다.
테스가 한마디를 보탰다.
“물론 한정판은 아니지만.”
리더 옆에는 둔기를 든 거한이 위치했고, 장발의 남자와 로브를 입은 여자가 뒤를 따랐다.
“전사가 둘, 그중에 1명은 검사. 궁수가 하나, 마법사가 하나. 이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네. 관광지인데도 대열을 갖추고 있어. 실전 경험이 많은 파티야. 미행하지 않은 건 옳은 판단이었던 것 같아.”
용병들은 중앙 사원 동쪽에 있는 계단식 제단으로 향했다.
시로네는 그곳을 기억해 냈다. 특이하게도 원주민이 지키고 있어 의아하다는 생각을 했던 장소였다.
원주민에게 다가간 궁수가 말을 걸고 있었다. 케르고 언어를 할 줄 아는 듯했다.
원주민은 무뚝뚝하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람들의 이목을 신경 쓰는 게 분명했고, 적기임을 깨달은 시로네 일행이 빠르게 움직였다.
“지금이야! 가자!”
원주민이 장치를 가동하자 제단에 직사각형의 균열이 일더니 안으로 밀려들어 갔다. 두꺼운 석문이 옆으로 이동하면서 시커먼 입구가 나타났다.
그사이 도착한 시로네가 외쳤다.
“잠깐만요! 우리도 들어갈 거예요!”
굳은 표정으로 뒤를 돌아본 용병들은 시로네 일행의 얼굴을 기억하고 인상을 구겼다.
“뭐야? 네놈들 언제 따라온 거야?”
시로네는 궁수에게 물었다.
“아저씨, 저희도 같이 들어가면 안 돼요?”
“저리 꺼져! 우리가 여길 어떻게 찾아냈는데! 그리고 아저씨 아니거든?”
“그러지 말고 좀……!”
재차 간청을 하려는 그때 리더로 보이는 검사가 검을 뽑아 들었다.
발검 속도가 빠르다고는 할 수 없지만 수없이 반복한 느낌이 몸에 배어 있었다.
“너희들, 죽고 싶냐? 우리가 만만해 보여? 안 꺼지면 여기서 전부 목을 따 주겠어.”
시로네는 태연하게 검 끝을 바라보았다.
술집과 다른 대비 효과에 기분이 더욱 나빠졌다.
“이 자식들이……!”
제단을 지키는 원주민이 끼어들었다.
“일행인가?”
어깨를 움찔한 리더가 유일하게 통역이 가능한 궁수를 돌아보며 물었다.
“뭐라고 하는 거야?”
“저 녀석들이 일행이냐고 묻는데?”
“일행은 무슨. 지금 처리할 테니까 기다리라고 그래.”
궁수가 리더의 말을 전하자 원주민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마치 모욕을 당한 사람처럼 얼굴이 붉어진 그가 고압적인 어투로 말했다.
“전사는 이곳에서 싸우지 않는다. 신성한 제단을 피로 어지럽히는 자는 이곳에 발을 들일 수 없다.”
입맛을 다신 궁수가 통역했다.
“그만두는 게 좋을 거 같아. 여기서 싸우면 안 들여보내 준다고 하네.”
리더가 검을 거두었다.
“쳇! 운 좋은 놈들. 두 번이나 목숨을 건지는군.”
그렇게 말하고는 착검과 동시에 제단으로 들어가자 다른 일행도 뒤를 따랐다.
시로네 일행은 잠시 자리를 지키며 눈치를 살폈다.
용병을 앞세워 들어갈 수 있을 것도 같았지만 원주민의 날카로운 눈초리가 신경 쓰였다.
원주민이 말했다.
“시험을 받고 싶다면 들어와라. 천사의 눈동자가 너희들을 지켜볼 것이다.”
“뭐라고 하는 거지?”
테스의 물음에 리안이 답했다.
“글쎄. 기왕 왔으니 편히 놀다 가라는 거 같은데? 쫓아낼 생각이었으면 문을 닫았겠지.”
그 말을 믿은 건 아니지만 시로네는 결정을 내리고 걸음을 옮겼다.
원주민에게서 별다른 반응이 없자 남은 세 사람도 어둠 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8명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아는 관광객은 아무도 없었다.
미로의 시공(1)
제단 내부는 횃불이 켜져 있어 구조를 살필 수 있었다.
정사각형의 구멍이 지하로 뚫려 있고 내벽을 따라 직각 나선의 계단이 설치되어 있었다.
벌써 나선을 두 바퀴나 돌아 내려간 용병들이 보였다.
두 번째 관문이 있을지도 모르기에 시로네 일행은 황급히 그들을 따라잡았다.
“쳇! 간사한 놈들.”
용병의 리더는 거금을 주고 얻은 정보에 무임승차한 애송이들에게 짜증이 났다.
하지만 우선은 이곳에 온 목적을 이루어야 했으니 싸울 생각은 잠시 접어 두었다.
궁수가 시로네에게 물었다.
“너희 제정신이냐?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어째서 이런 곳을 들락거려?”
“그럼 아저씨는, 아니 형은 왜 이곳에 왔는데요?”
“뭐야, 설마 모르고 따라온 거야?”
“네, 모르는데요.”
궁수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적지에 숨겨진 문이 존재한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었으니까.
유적지 지하에 무언가 존재한다. 하지만 그게 무엇인지는 모른다.
여기까지가 유적지에 관심을 갖는 일반인들이 생각할 수 있는 한계였다.
시로네가 말을 이었다.
“어차피 같이 들어왔으니까 말해 줄 수 있잖아요. 여기에 뭐가 있는 거예요?”
일견 옳은 소리였으나 이곳을 찾기 위해 발바닥에 땀나도록 뛰어다닌 입장에서는 억울했다.
무엇보다 암호는 정보 등급이 높아서 20골드라는 돈을 지불해야 했다. 물론 이미 문을 통과한 이상 아무 의미 없는 게 되어 버렸지만.
‘괜히 짜증 나네.’
순간 궁수의 머릿속에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이러면 어떨까? 너희가 문을 들어왔다는 건 보안 등급이 높은 암호를 뚫었다는 얘기야. 돈으로 환산하면 족히 100골드는 될걸. 그래서 말인데, 너희에게 정보를 팔게. 질문 하나당 5골드야, 어때?”
시로네는 고민조차 하지 않았다.
“괜찮아요. 어차피 내려가면 알게 될 텐데요, 뭐.”
궁수의 얼굴이 붉어졌다.
돈이고 뭐고, 어린애들에게 조롱당한 기분이었다.
‘이런 싸가지없는 꼬맹이가……!’
그 순간 리더가 걸음을 멈췄다.
선두가 정지하자 뒤를 따르는 사람들도 순서대로 속도를 줄였다.
“아니, 듣고 보니 그게 좋겠군. 우리가 여길 찾느라 얼마나 고생한 줄 알아? 그걸 날로 먹으려고 들면 안 되지. 여기서 더 내려가고 싶다면 돈을 지불해.”
시로네는 에이미를 돌아보았다. 그녀가 어깨를 으쓱하자 알았다는 듯 리더에게 말했다.
“그럼 안 내려갈게요. 저희는 여기에 있을 테니까 내려가서 일 보세요.”
“이런 개새……!”
리더는 자신도 모르게 울컥했다.
술집에서 그릇에 코를 처박고 있었던 것도 이 순간을 위해서일 터였다. 한마디로 뒤통수를 제대로 맞은 것이다.
시로네가 말했다.
“하지만 질문 하나에 1골드라면 응할 생각도 있어요.”
“응? 1골드?”
리더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어차피 본전을 챙길 수 없는 이상 몇 골드라도 버는 게 이득이 아닌가.
“좋아. 질문 하나당 1골드다. 먼저 내.”
시로네는 1골드를 꺼냈다.
사실 따로 조사를 해도 되지만 친구들도 시로네의 의중을 짐작하는 듯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뜻에 따랐다.
‘손해는 아니야.’
정보야 얼마든지 조사할 수 있지만 친구들의 안위는 돈으로 살 수 있는 게 아니다. 적당한 액수로 위험도를 짐작할 수 있다면 어떻게든 남는 장사라는 생각이었다.
1골드를 건넨 시로네가 물었다.
“이곳에는 왜 온 거죠?”
질문이 너무 광범위할 경우 말을 지어낼 여지가 있기에 핵심부터 묻고 들어갔다.
“원주민을 만나러 왔다. 됐지?”
감정이 섞였으나 시로네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것도 대답이 될 수 있지만 설명은 해 주셔야죠. 이런 식이라면 저는 더 안 물어볼래요.”
리더는 아차 싶었다.
이렇게 나오면 아쉬운 쪽은 오히려 자신들이었다.
마법사가 곧바로 말을 보탰다.
“우리도 딱히 아는 게 없어. 왜냐면 진짜로 원주민을 만나러 왔을 뿐이거든.”
“음.”
여전히 핵심을 피한 대답이지만 그렇기에 짐작이 가는 사실이 있었다.
이들은 ‘원주민’을 만나러 온 것이다.
‘관광지에 있는 케르고인을 말하는 게 아니야. 이들이 만나려는 사람은 필시…….’
시로네가 다시 물었다.
“왜 그들을 만나려고 하죠? 여기 1골드요.”
돈을 받은 궁수는 입맛을 다셨다.
솔직히 남에게 밝히기 부끄러운 얘기였다.
“루프를 사기 위해서야. 블랙마켓에서도 유통되지만 여기서는 훨씬 싼값에 대량으로 살 수가 있지. 그걸 팔아서 여행 밑천을 마련할 생각이야. 자, 대답이 됐나?”
미로의 시공(2)
솔직히 충격이었다.
용병들의 목적이 루프 밀매라면, 유적지의 비밀은 처음부터 없었던 것일까?
‘아니, 단정 짓기는 일러. 이들도 단편적인 정보만으로 이곳을 찾은 거니까. 무엇보다 루프는 원주민에게 마약이 아닌 제사 물품이야. 그런 걸 대량으로 구입한다는 것은…….’
생각을 끝낸 시로네가 물었다.
“혹시 이 지하 끝에는 원주민 자치 구역과 연결되어 있는 통로가 있나요?”
“뭐? 너 어떻게 그걸…… 아차!”
아직 돈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궁수가 인상을 찡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