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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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국 핵심 인사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위저드의 청문회가 열렸다.
시로네가 물었다.
“위저드, 무슨 문제야?”
“단순한 정신착란이에요. 별거 아니에요. 신경 쓰게 해서 죄송합니다.”
‘단순한 정신착란.’
그 말이 더 서글프게 들렸다.
“정신착란이라면 정확히 어떤 종류야?”
“하비츠가 보여요.”
장내의 숨소리가 줄어들었다.
“가끔. 어떨 때는 자주. 저에게 말을 걸어요. 물론 제 생각이라는 건 알아요.”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하비츠의 배니싱을 파훼하기 위해 위저드는 정신적 백지상태를 가져야 했다.
“마지막 전투에서 연달아 무상신을 썼는데, 그 영향이 큰 것 같아요.”
시이나가 물었다.
“어째서 말하지 않았지? 정기 면담 시간에도 문제없었잖아. 언제부터 그랬어?”
위저드는 입을 다물었다.
침묵의 의미를 깨달은 시이나는 힘이 탁 풀렸다.
“처음부터? 그러니까 10년 동안 그 상태로 지냈다는 거야? 아무에게도 말 안 하고?”
“…….”
루피스트가 말했다.
“일단 상태는 알겠어. 다른 걸 물어보지. 시로네의 말에 의하면 제르비스는 이미 너를 만났다던데?”
“네.”
“또한 우리는 네 무상신이 준동경계를 뚫고 제르비스의 의식에 심대한 타격을 입힐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네 의견은 어떻지?”
위저드는 당시를 떠올렸다.
“저는 못합니다.”
“뭐?”
“아니, 하고 싶지 않아요. 이제 무상신은 사용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어릴 때의 화신이에요. 17살인 저에게는 너무 버거운 것 같습니다.”
포기 선언이었다.
“말인즉슨, 고장 났다는 건가?”
위저드는 알비노를 돌아보았다.
담담하게 임하려고 했지만 분노는 남아 있었다.
“왜 그런 식으로 말하죠?”
모두가 놀랐다. 항상 예의 바르고 밝은 성격이었기에 당혹감도 컸다.
“제가 기계로 보이세요? 여태까지 저에게 들인 돈이 아깝나요? 아니면 고작 사람들의 환호와 박수 정도로, 제가 목숨이라도 걸 줄 알았어요?”
알비노는 눈썹을 긁으며 입맛을 다셨다.
“됐네. 기분 나빴다면 사과하지.”
“아뇨.”
위저드가 소리쳤다.
“갚으면 될 거 아니에요! 차가운 사람들 머릿속에는 저에게 투자한 걸 어떻게 돌려받을까, 그 생각밖에 없죠? 무슨 일을 해서라도 전부 갚을 테니까, 이제 그만 저 좀 놓아주세요! 포기해 달라고요!”
“허허.”
알비노는 수염을 꼬았다.
“그래 뭐. 기왕 차가운 사람이 되었으니 내가 총대를 메지. 미안하지만 나는 자네처럼 그런 뜨거운 생각 같은 건 한 적이 없어. 처음 자네가 고장 났다는 걸 알았을 때 머릿속에 떠오른 건 하나뿐이었네.”
알비노는 머리를 두드렸다.
“고칠 수 있을까?”
위저드는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차가운 논리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고칠 수 있다면 어떻게 고치지? 시간에 맞출 수 있나? 뭔가 할 말이 많은 것 같은데, 사실 내 귀에는 잘 들어오지 않는구먼. 자네의 상태는 자네에게 큰 문제겠지만, 우리에게는 결국 자네의 문제지. 그러니 잡담은 여유가 있을 때 하고, 어서 말 좀 해 보지 않겠나?”
위저드가 끝까지 입을 다물고 있자 답답해진 알비노가 테이블을 두드렸다.
“고칠 수 있어, 없어? 빨리 말해. 시간 없다고! 지금도 각 부처에서 자네를 전력으로 상정하고 작전을 짜고 있단 말일세! 자정에 성전이 열리기 전까지 결론이 나려면 지금 선택을 해야 돼!”
모두가 위저드를 주목했다. 그 압박감에 소녀는 애써 목소리를 쥐어짜 냈다.
“저는…….”
못하겠어요.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턱 밑까지 올라온 그 말은 결국 내뱉지 못했다.
세상은 그녀에게 모든 것을 주었다.
하지만 그 대가로, 그녀는 어떤 상황에서도 불가능하다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죄송합니다.”
의미 불명의 말을 남긴 채, 위저드는 차가운 표정으로 회의실을 나가 버렸다.
“제가 가 볼게요.”
시로네가 일어서자 에이미도 뒤를 따랐다.
회의실의 분위기가 무거워진 가운데 이루키가 알비노를 곁눈질하며 말했다.
“흥분을 하고 그래요, 안 어울리게.”
“흐음.”
알비노는 수염을 꼬았다.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들자 루피스트가 작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위저드의 심정도 이해가 되지만 어르고만 있다가는 골든 타임을 놓치게 된다.
‘협회장인 내가 했어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이 자리의 대부분은 위저드에게 동맹 의식을 가지고 있어. 껄끄러운 부분을 처리해 주신 거야.’
그런 식으로 세상은 돌아간다.
아우터 리포트 (4)
***
“시로네! 기다려. 같이 가.”
시로네를 빠르게 따라잡은 에이미가 나란히 발을 맞추면서 물었다.
“정신착란이라니. 알고 있었어?”
“아니. 신경 써서 살피긴 했지만 전혀 내색하지 않아 몰랐어. 그런 성격이잖아.”
“세상에, 하비츠의 환영을 본다니. 어릴 때부터 얼마나 무서웠을까?”
“내 생각은 달라.”
위저드는 나약한 아이가 아니다.
“위저드가 단순한 정신착란이라고 한 이유는, 정말로 별것 아니기 때문일 수도 있어. 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 앞에서 말이야.”
“근본적인 문제?”
“무상신.”
시로네가 말했다.
“위저드의 화신은 사건의 1프레임을 소실시켜. 그럼 그 1프레임은 어디로 사라지는 걸까? 그리고 그 순간에 위저드는 어떻게 되는 거지?”
에이미는 곰곰이 생각했다. 막연하게나마 한 가지 가능성이 떠올랐다.
“무한무.”
“그래. 무(無)라는 개념조차 상상할 수 없는 완벽한 공(空). 진공(眞空)이 아니야. 무한무를 정확히 정의하는 또 다른 이름은 바로…….”
시로네는 천장을 보았다.
“초공(超空).”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조차 존재할 수 없는, 진정한 무의 영역이었다.
“그럼 위저드는 무상신을 발동하는 매 순간마다 무한무에서 돌아온다는 거야?”
“그렇겠지.”
에이미가 항변하듯 팔을 펼쳤다.
“하지만 여태까지 잘해 왔잖아. 최후의 전쟁 때도 딱히 문제는 없었는데?”
시로네는 예시를 들었다.
“만약, 네가 아무것도 없는 세계로 간다고 생각해 봐. 그리고 그곳에서, 음…… 대략 1억 년 정도를 살아야 해. 죽을 수도, 누군가를 만날 수도, 어떤 자극도 느낄 수 없는 텅 빈 공간에서.”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1억 년이나?”
“시간은 중요하지 않아. 1억 년이든 100억 년이든, 그보다 훨씬 빠르든. 어차피 네가 돌아오는 시점은 고작 1프레임이 지났을 뿐이니까. 그리고 돌아오는 순간, 그곳에서 있었던 기억은 사라지는 거야.”
에이미는 정신이 멍했다.
“그때부터 시작이야, 위저드가 느끼는 공포는. 소실된 1프레임에 무엇이 있는지는 누구도 몰라. 그저 돌아왔으니 계속 이어 가는 것뿐이지.”
“네가 무한무에서 돌아온 것처럼?”
“3년 걸렸지, 나는.”
“…….”
막상 설명을 듣고 당시 시로네를 떠올리자 숨이 턱 막히는 듯했다.
“나도 기억이 없어. 어떤 느낌인지, 어떻게 다시 돌아올 수 있었는지. 그냥 정신을 차려 보니 이곳이었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뿐이야.”
시간의 일부분을 잃은 채.
“위저드는 나보다 더 심하겠지. 그 녀석이 고작 1프레임의 소실로 초공을 일으키는 건, 애초에 그런 관성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이야. 숨을 쉬듯이 자연스러웠겠지. 그래서 의식할 수도 없었을 테지만…….”
“이제는, 의식하기 시작했다?”
시로네는 고개를 끄덕였다.
“최후의 전쟁이 끝난 뒤로 많은 생각을 했을 거야. 소실된 1프레임에 나는 어디 있었을까? 혹시 1억 년의 시간을 외롭게 보냈고, 단지 기억을 못 하는 건 아닐까? 어쩌면 이번에 다시 무상신을 발동하면, 그런 상황을 또다시 겪어야 하는 게 아닌가? 기억이 없기 때문에 더 무서운 거야. 인간에게 가장 큰 공포는 미지의 두려움이니까.”
“힘들었겠구나.”
“평범한 사람은 버틸 수 없었겠지. 그 본질적인 공포가 하비츠라는 망령을 깨운 것 같아. 천적이었지만, 위저드와 가장 깊은 교감을 나눈 상대이기도 하지. 그렇게 점점 망가져 갔던 거야, 위저드는.”
시로네는 콧잔등을 찡그렸다.
“막연하게나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 나는 무한무를 다녀왔으니까. 어쩌면 위저드에게도 같은 공포가 생길 수도 있을 것이라고.”
“네 탓이 아니야. 물어볼 수 없었잖아. 너에게 말을 듣는 순간 더 의식하게 될 테니까. 그때는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생겼을지도 몰라.”
“그래. 먼저 말해 주기를 기다렸지. 하지만 10년이야. 말이 안 되잖아. 그 녀석은 외로운 싸움을 하면서도 밝게 웃었던 거야. 우리 결혼식 때까지도.”
친구들과 함께 춤을 추며 웃고 있던 그녀의 미소 안에 감춰진 것은…….
‘끔찍한 두려움.’
삶이 붕괴될 정도의 공포였다.
***
위저드는 막다른 벽에 이마를 대고 외쳤다.
“다들 뭐야!”
마치 위로하듯 하비츠가 그녀의 옆에 등을 기대고 반대편을 보고 있었다.
“내가 기계야? 아무것도 모르잖아!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왜 말하지 못했는지!”
그런 곳이다.
사람들은 타인에게 온갖 것을 투영해서 마치 그를 전부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 사람을 들여다볼 생각도, 이유도, 필요도 없는…….
그런 건조한 세상일 뿐인 것이다.
“괜찮아, 위저드.”
그렇기에 인간은 늘 외롭고, 악한 마음은 그 연약한 틈새를 파고든다.
“이제 알았으니 됐잖아. 너도 그들을 위해 싸울 필요가 없어진 거니까.”
위저드의 고개가 천천히 돌아갔다.
“하비츠…….”
생각해 보면 그랬다.
그와 목숨을 건 사투를 벌였지만 유일하게 위저드에게 공감해 준 사람이었다.
“난 아직도 네가 좋아. 그래서 날 죽였어도 따라다니는 거지. 솔직히 우리, 재밌었잖아?”
그랬던가.
“또 재밌게 놀자. 이번에는 세상과 싸우는 거야. 이게 왜 재밌냐면, 우리가 이기기 때문이지.”
위저드는 피식 웃었다.
“아마도?”
“하하! 멋진데? 우리가 가르쳐 주자고. 전부 너를 두려워하게 될 거야. 그건 아름답지는 않지만, 적어도 건조하지는 않지. 왜냐하면 진심이니까.”
“그래, 그럴 수도 있겠다.”
위저드의 눈에 희열이 담겼다.
“내가 힘을 되찾으면 친구들도 오늘처럼 나를 대할 수 없을 거야. 너무 쉽잖아?”
일견, 악은 멋있어 보인다.
모든 문제를 쉽게 해결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강하고, 여유와 너그러움으로 무장할 수 있으며, 건조한 세상에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다정한 손길을 내미는 것이다.
“그래, 위저드. 더 이상 네가 상처받을 일은 없을 거야. 내가 지켜 줄 테니까.”
하지만 그 다정함 속에 감추어진 것은.
-너를 범할 거야.
자신의 욕망을 채우고자 하는 지극히 이기적이고 저열한 감정이라는 것.
10년 전의 상황이 뇌리를 스친 위저드는 살기를 드러내며 돌아보았다.
“큭!”
하비츠는 없었다.
“하아, 하아.”
급격하게 빨라진 심장박동을 다스리는 동안 위저드는 정신을 차렸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정신착란이 아무리 심해졌다고 해도, 야훼의 제자가 악에게 휘둘리다니.
‘정신 차려. 진짜 미쳤어?’
위저드는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반대편에서 시로네와 에이미가 오고 있었다.
“아, 위저드. 일단 나랑 얘기를…….”
“스승님.”
시로네는 입을 다물었다.
“모두에게 사과드리고 싶어요. 하지만 그 전에 알고 싶은 게 있어요.”
“그래.”
“스승님에게도 저는 그저 최강의 마법사일 뿐인가요? 만약 제가 강하지 않았다면, 스승님도 지금처럼 저를 아끼지 않았을 건가요?”
“음.”
시로네는 고민 끝에 답했다.
“너에게 재능이 없었다면 그랬겠지. 애초에 너를 가르치지 않았을 테니까.”
위저드의 눈빛이 흔들렸다.
“하지만 만났잖아.”